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61화 (161/171)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7

1347년 11월 14일

[요르단의 카라크]

열흘 전 무스카트의 바위산 지대를 통과한 후 끝도 없는 사막을 내달려 온 대고려 제국군의 기갑부대가 새로이 만난 험준한 바위산 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요르단 서쪽에 있는 모하드 산맥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노을이 조금씩 지기 시작하는 바위산 지대 아래쪽에 위치한 카라크에는 1142년 이전의 십자군 원정대가 야심 차게 건설했다가 1189년 살라딘이 이끄는 군대에게 함락당한 요새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고, 그 너머 서쪽에는 마침내 사막 지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듯 출렁이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병사들이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호수다! 호수야! 지겨운 사막이 마침내 끝났다고.

- 어서 빨리 호수에 뛰어들어 목욕이나 했으며 소원이 없겠다. 온몸이 모래투성이라고.

- 몸이 찝찝한 건 둘째치고 차량들도 세차를 해야 하겠어. 달릴 때마다 차 안으로 들어온 모래가 날려서 자꾸 콧구멍과 입안으로 들어간다고.

그 순간 확성기가 잔뜩 달린 장갑차 쪽으로 다가간 왕기가 병사들의 기대감을 와장창 깨뜨리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잘 들어라! 모든 병사들은 호수 안으로의 입수를 금지한다. 차량들의 세차 또한 금지하는 바이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호수는 사해(死海)라고 불리는 호수이니라. 소금 함량이 바다보다 높아 가만히 있어도 몸이 둥둥 뜬다는 짜디짠 물로 이루어진 호수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왕기의 명령에 실망한 병사들의 신음성이 곳곳에서 흘러나오자 왕기가 다시 확성기를 이용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해가 나왔다는 것은 예루살렘까지 남은 거리가 백리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를 달리면 반 시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 그러니 다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장비와 무기 점검을 철저히 하도록.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전투를 치를 계획이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느냐?]

- 존명!

열흘 내내 모래먼지가 풀풀 날리는 사막을 달리는 게 답답했는지 전쟁터에 곧 투입된다는 명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을 한 다음 희희낙락하며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투다. 다들 준비 철저히 해.

- 몇 날 며칠 사막을 또 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싸우는 게 더 낫다고. 대고려 제국군의 위용을 제대로 보여주자고.

- 정비병들. 땅크와 장갑차 정비 똑바로 하고 벌컨 사수들은 탄약 확인 잘 해라. 나중에 모자란다고 전투 도중에 다급히 무전 날리지 말고.

그 순간 무지가 왕기에게 다가와 신속하게 보고했다.

"폐하. 함대에서 최영 장군이 보낸 무선 통신이 도착했습니다."

"뭐라고 하더냐?"

"지난 열흘간 아라비아반도 남쪽을 빙둘러 홍해를 거슬러 올라간 함대가 메카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십자군 배들을 방금 전 모조리 격침시켰다고 하옵니다."

"아군의 피해는? 적들의 배에도 대포가 실려 있어서 해상에서 포격전이 벌어졌을 텐데..."

"전무하다고 합니다. 1함대와 2함대가 하나로 합쳐진 무력 앞에 버텨낼 적의 선박은 없지요. 기본적으로 대포의 사정거리가 워낙 차이가 나서 원거리에서 모두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다행이로군. 최영 장군에게 전해라. 홍해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로 상륙해라고 말이야. 이집트를 완전히 접수한 다음 곧바로 그다음 계획을 실시하라고 명령해. 그대의 말처럼 1함대와 2함대가 합쳐진 무력이라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페하. 근데... 이번에 개발된 무선 통신용 장갑차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라비아반도에 뿌려놓은 단 30대의 장갑차만으로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홍해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받다니요. 이전에 비해 무선 통신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라비아반도가 산이 거의 없는 사막지대라 그런 것이야. 장애물이 없으니 무선 통신용 전파가 멀리까지 전달될 수가 있지. 그리고... 연구소에서 황금을 물 쓰듯 하고 있으니 그 정도 기술 진보는 이루어져야지."

[예루살렘 앞 평원]

예루살렘 인근의 농부들이 쥐를 주식으로 잡아먹어 길조로 여긴다는 가면 올빼미마저 날개를 접고 둥지로 돌아간 이슥한 밤. 예루살렘 앞 평원에서는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의 힘겨루기가 한창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 크르르릉...

상공에 높이 솟아올라 땅크와 장갑차들이 거대한 모래 폭풍을 일으키며 조금씩 예루살렘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왕기가 성 앞 광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대한 인의 장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빙둘러 싸고 있는 이슬람 병사들의 보였고 그러한 이슬람 본진과 예루살렘 성 사이에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여진 현장이 포착되었다. 전원이 이슬람 병사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즐비한 곳을 살펴보던 왕기가 뇌까렸다.

'보아하니 예루살렘 성벽에 거치되어 있는 대포의 사정거리를 제대로 몰라 가까이 접근하다가 일제 포격을 두들겨 맞아 이슬람 병사들이 몰살을 당한 모양이로군. 못해도 만명은 족히 죽었겠는걸. 하지만... 그 정도로는 티도 안 날 것이야. 병사들의 숫자가 워낙 많으니까. 이대로라면 이슬람 쪽이 일방적으로 밀리겠는걸?'

그 순간 이슬람 본진에서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거대한 공성 투석기 수십 대가 병사들 사이를 헤치고 예루살렘 성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무게추에 의해 힘을 가하는 '트레뷰셋(Trebuchet)'이었다. 특이한 것은 적들의 총격으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좌우로 두꺼운 판자를 넓게 댄 형태의 투석기라는 점이었다.

'이슬람 쪽에서도 나름 대비를 하고 왔군.'

투석기들이 조심스럽게 시체들이 즐비한 곳으로 접근하더니 일제히 멈춰 섰다. 대포의 사정거리 밖에 열을 지은 투석기들이 일제히 거대한 돌을 예루살렘 성 쪽으로 날리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성벽에 거치되어 있던 대포들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 쉬이잉,,,

- 콰과광...

하지만 양쪽 모두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투석기와 대포 둘 다 사정거리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라면 서로 버티기에 들어갈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건 참을성이 적은 쪽이 손해 보는 전쟁이야. 돌격을 한 쪽이 먼저 두들겨 맞고 시작해야 하니까.'

왕기의 말처럼 그렇게 한동안 투석기와 대포의 격돌이 이루어진 후 예루살렘 정문 쪽의 성문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말을 탄 기병들을 선두로 그 뒤에 카빈을 거머쥔 소총수들이 줄을 지어 끝도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이슬람 진형에서도 기병이 앞으로 돌출하기 시작했고 활을 든 궁수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양쪽이 서로를 노려보며 일촉즉발의 그 순간 왕기가 등에 울러메고 있던 무전기를 통해 다급히 무지에게 통신을 때렸다.

[작전 개시. 작전 개시...]

그러자 예루살렘 남쪽에서 다가오던 조명용 장갑차에서 사방을 비추는 불빛들이 터져 나와 남쪽 하늘을 환하게 밝혔고, 확성기를 단 장갑차에서는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파바박.

- 애애앵...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에 이슬람과 가톨릭의 병사들의 이목이 남쪽으로 집중될 때 확성기를 단 장갑차에서 서역어와 아랍어로 전투를 중지하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루살렘 남쪽에 마련된 협상 회장]

5천 대의 장갑차와 150대의 땅크가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으며 대포와 투석기가 닿지 않는 곳에 임시 막사를 쳐서 마련된 협상 회장에서는 이슬람 군대의 핵심인 오르한 1세와 그의 아들과 휘하의 장군들 그리고 가톨릭 군대의 핵심인 몬시뇰 프란치스코를 포함한 장군들이 본인의 정체를 대고려 제국의 황제라고 밝힌 왕기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즉시 전쟁을 모두 멈추시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이건 대고려 제국의 황제인 짐의 부탁이자 명령이기도 하오."

왕기의 말을 통역관들이 통역을 하자 양쪽에서 거친 항의가 동시에 쏟아졌다.

"그대가 무슨 자격으로 돌아가라 마라 하는 것이오?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십자군 원정대는 중동에 있는 사악한 이교도를 박멸하라는 지엄하신 교황의 명을 받고 온 것이오. 그대가 요즘 한창 잘나가고 있다는 대고려 제국의 황제라고 해서 이렇게 협상 자리에 억지로 나오긴 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들어 줄 수는 없소이다."

몬시뇰의 반박에 이어 오르한 1세도 강하게 반박했다.

"대고려 제국의 군사력이 강하다는 소문은 본인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소. 머나먼 이곳까지 처음 보는 기이한 무기들을 잔뜩 이끌고 온 것을 보니 충분히 그러할 것이라는 것도 능히 짐작할 수 있소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알라를 위한 성전이오. 저들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예루살렘을 피로 씻은 자들이오. 본인은 절대 물러설 수 없으며 저들을 살려서 돌려보낼 수도 없소이다. 그러한 일은 절대 불가하오."

그러자 왕기가 엄중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짐은 알라께서 마호메드에 이어 지상으로 내려보내신 마지막 선지자이며 하느님의 독생자이신 예수의 배다른 동생이기도 하오. 또한 알라와 하느님 외에 하늘에 계신 여러 신들의 부탁을 받고 이곳까지 왔소이다.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종교 분쟁을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달라는 신들의 부탁을 말이오. 그러니 짐의 말을 들으시오."

"예수의 배다른 동생이라니. 이건 신성한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오!"

"존귀하신 마호메드와 거룩하신 알라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시오!"

두 사람의 반발에 왕기가 진정하라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짐의 말에 한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짐이 직접 증명하겠소이다. 그러면 물러가겠소?"

그 순간 막사 안으로 무지가 들어와 다급히 보고했다.

"페하. 남쪽에서 5만에 가까운 기마 병력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어찌할까요?"

"어디 소속의 병력들인가?"

"말안장에 봇짐장수처럼 꾸러미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물이 없어 온몸에 묻은 피를 씻지 못해 온통 피 칠갑을 한 상태이며, 가슴에 십자가가 그려진 휘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메카를 약탈한 후 예루살렘 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십자군 부대처럼 보입니다."

무지의 말에 왕기가 몬시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메카를 쳐들어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해온 재물은 이슬람의 것이니 재물이 든 자루들을 모두 내려놓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오. 그럼 짐이 그들을 막지 않으리다."

그러자 몬시뇰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는 못하오. 십자군 원정대 규율상 그들이 획득한 재물은 그들의 것이오. 본인이 총사령관이라고 해도 뭐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소이다. 저들이 몰살하게 되는 책임은 그대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왕기가 막사를 나오며 무지에게 명했다.

"짐이 한 말을 모두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짐의 명을 전달하고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모두 죽여라. 이 자리에서 양쪽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대고려 제국군의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지 않으면 협상이고 나발이고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야.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매로 다스려야지."

"알겠사옵니다. 폐하."

- 콰과과광...

재물을 놔두고 가라는 왕기의 제안을 거절한 십자군 부대가 전멸하기 까지는 채 반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서막을 알리는 것은 150대의 땅크에서 날아간 포탄이었다. 예루살렘 성벽에 거치되어 있는 대포의 사정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장거리를 호쾌하게 날아간 포탄이 기마 병력 사이에 떨어지자 십자군 원정대가 말을 더욱 빨리 몰기 시작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곳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순간 5천 대의 장갑차에 실려있던 만문의 벌컨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 두두두두...

그러한 막강한 화력 앞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막사 밖으로 나와 구경을 하고 있던 몬시뇰이 차 한잔 마시기도 전에 몰살을 한 십자군 원정대를 바라보며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고,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르한 1세가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때 왕기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협상을 해봅시다. 진지하게 말이지요. 만약 이번에도 짐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그대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이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막사 안으로 들어가는 왕기의 뒤를 두 사람이 마치 밧줄에 꽁꽁 묶인 사람처럼 질질 끌려가듯 힘없이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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