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60화 (160/171)
  •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6

    1347년 11월 3일

    [아라비아반도의 무스카트]

    제2함대가 아라비아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무스카트에 도착한 것은 밤하늘에 유리조각을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한밤중이었다.

    - 철썩. 철썩. 쏴아아...

    오만만 앞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해안가에 상륙한 왕기가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 땅크를 숨겨놓을 임시 진지와 병사들이 기거할 막사들을 잔뜩 설치해 둔 채 자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무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날이 제법 쌀쌀한 편이구나. 그리고 주변이 온통 바위산투성이고 말이야. 짐이 상상했던 사막과는 제법 많이 다른데?"

    "폐하. 지금 이곳의 계절은 겨울입니다. 물론 고려의 겨울처럼 춥지는 않지만 초가을 정도의 선선한 기온을 보이고 있지요. 오히려 더 잘 된 일입니다. 병사들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사막의 태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리고 바위산들은 해안가 쪽에만 집중적으로 모여 있습니다. 하루 정도의 시간을 들여 바위산 지역을 통과하고 나면 사방이 온통 모래뿐인 사막 지역으로 곧바로 들어서게 되지요."

    "바위산 일대를 통과하기에 어렵지는 않고?"

    "일전에 땅크를 여러 번 끌고 와서 사전 정찰을 통해 지나갈 길을 이미 파악해놓은 상태입니다. 제법 높은 바위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고, 절벽과 절벽 사이를 공병대원들이 가교를 놓은 후 통과해야 할 곳도 더러 있지만 땅크나 철갑 기병이 통과하기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근데... 폐하께서 새로 개발하셨다는 '흑표(黑豹 : 검은 표범)'라고 불리는 장갑차들도 통과가 가능할지는 소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바위 언덕 중에서는 제법 경사가 가파른 곳도 많아서요."

    "걱정할 필요 없다. 흑표에도 무한궤도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땅크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면 장갑차도 얼마든지 다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연구소에서 이미 다 시험을 끝마쳤다. 막상 사막지대에 들어서게 되면 땅크가 흑표의 주행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이야. 장갑차는 무게가 가벼워 땅크보다 못해도 2배 정도는 빠르게 내달릴 테니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보급선에 실려있던 장갑차들이 끝도 없이 해안가에 상륙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내린 건 특수한 기능들을 장착한 장갑차들이었다. 사방에 형광등을 잔뜩 매단 조명용 장갑차들이 내려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 가운데 확성기를 잔뜩 달은 장갑차량과 통신장비용 안테나를 잔뜩 달은 장갑차들이 내렸고, 그다음부터는 벌컨포를 2문씩 장착한 전투용 장갑차들이 끝도 없이 줄을 지어 내리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무스카트 이곳이 신드바드가 탄생한 고향이라고 하던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총력을 다하여 제작한 5천 대의 장갑차를 이끌고 신드바드처럼 어디 한번 모험을 떠나볼까나?'

    그 순간 무지가 물어왔다.

    "폐하. 장갑차들을 저렇게 검게 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땅크는 사막 지형에 맞는 보호색으로 누렇게 칠하셨지 않았습니까? 새까만 장갑차가 밤이라면 몰라도 낮에는 사람들 눈에 확 띌 것 같은데요?"

    "그러라고 일부러 칠한 것이다. 사람들 눈에 잘 띄라고 말이야. 땅크는 위력이 뛰어나지만 대고려 제국을 대표하는 무기가 될 수는 없어. 그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지. 전 세계에 150대에 불과한 땅크를 풀어놔봐야 티도 안 난다. 하지만 장갑차는 달라. 시간만 충분하다면 십만 대 백만 대도 찍어낼 수가 있다. 장갑차는 대고려 제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가 될 것이며, 전장을 지배하는 악마가 될 것이고, 대고려 제국을 적으로 돌린 자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공포의 상징이 될 것이니라. 전 세계 어느 지역이던 장갑차가 등장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포로 벌벌 떨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니라. 그런 의미에서 이왕이면 눈에 잘 띄게 도색을 해놓은 것이야. 등장만으로도 적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어 손쉽게 전투를 끝낼 수 있도록 말이야."

    훗날 전장의 '블랙-부처(Black-Butcher : 검은 도살자)' 또는 '흑귀(黑鬼)'로 불리게 될 흑표 장갑차의 하선이 끝나자 그 뒤를 이어 보급품과 병사들을 잔뜩 실은 짐차들과 공병대와 정비대용 특수 차량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하선이 끝나가자 확성기를 잔뜩 매달은 장갑차로 다가간 왕기가 확성기를 이용해 명령을 내렸다.

    [내일 하루는 바위산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 정신들 바짝 차려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차량과 짐들을 정리하고 막사로 들어가 취침을 하도록. 아침 식사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출발할 것이니 정비병들은 최대한 일찍 일어나 자신이 맡은 차량들이 이상 없도록 미리미리 정비를 끝내거라. 부족한 잠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면 될 것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존명!

    해안가 일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병사들의 대답에 왕기가 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고려 제국군의 이동을 방해할 자들은 없는가?"

    "없을 것입니다. 폐하. 제국군이 통과할 바위산 일대와 바위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진입하게 될 사막 지역은 사람들이 전혀 거주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을 구할 수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슬람교인들이며 수니파, 시아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사망 이후에 갈라져 나온 이바드파 사람들입니다. 이바드파는 비교적 온건한 종파에 속하지요. 설사 대고려 제국군이 이동하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만한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고요. 놀라서 뒤로 자빠지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래도 만사를 조심해서 진행해야만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참으로 중요한 전쟁이야.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 분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는 전쟁이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막을 통과할 때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오아시스 지역을 피하며 진격할 수 있도록 진격로를 세심하게 짜놓았습니다. 위도와 경도를 재어서 위치를 확인하는 기술은 대고려 제국군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기 때문에 단 한 명의 병사도 사막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대부분의 병사들이 장갑차와 각종 짐차에 탑승한 채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갈증에 그렇게 시달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병사들이 마실 식수도 짐차에 이미 충분히 실려있는 상태이니 사막을 내달려 예루살렘으로 곧바로 달리면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아라비아반도 동남쪽 최남단인 무스카트에서 최북단 쪽에 위치한 예루살렘까지 사막의 배라고 불리는 낙타를 타고 가면 보통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들 합니다. 중간중간 오아시스나 도시를 들려 물을 보충해야 하고 거리 자체가 약 8천리 정도로 워낙 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정밀하게 계산한 바로는 짧으면 열흘 길어도 보름이면 충분히 주파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열흘이라. 하루에 천리를 가는 셈이로군."

    고개를 끄덕이던 왕기가 속으로 빠르게 뇌까렸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땅크는 최고 속도가 시속 40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갑차는 시속 80km까지 나오지. 하루에 12시간만 달려도 천리는 가뿐하게 주파할 수 있어. 남은 건 이제 쇼를 어떻게 잘 펼쳐 보이느냐 하는 것이로군. 이슬람교인들과 가톨릭교인들이 한곳에 잔뜩 모여 있는 양쪽 종교의 공통적인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말이야.'

    왕기가 속으로 뇌까리고 있을 때 900척의 배에 대포를 잔뜩 싣고 카빈을 든 25만에 달하는 병사들로 예루살렘을 단숨에 점령한 십자군 원정대가 도시 내에서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교도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오르한 1세가 내린 징집령에 의해 모여든 120만 명의 이슬람 병사들이 다마스쿠스에 집결해 있었다.

    [다마스쿠스의 고대 왕궁]

    과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주요 교역 도시이기도 하며 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한 다마스쿠스에 지어져 있는 고대 왕궁에서 오르한 1세가 수하의 장군들과 작전회의를 펼치고 있었다. 만약 오스만 제국이 계속 무탈하게 지속된다면 훗날 오스만 제국의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제국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하게 발전시켰기에 '제왕(Hüdavendigar)'이라고까지 불리게 될 무라드 1세로 등극할 예정인 자신의 아들까지 직접 대동하고 다마스쿠스로 온 오르한 1세가 엄중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예루살렘을 빼앗은 이교도들은 위력이 엄청난 대포와 카빈이라는 신무기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있고, 그 수 또한 20만을 훌쩍 넘어가고 있소이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대책을 말해보시오."

    그러자 장군 중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폐하. 예루살렘은 20만이 넘어가는 병사들이 오래 지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도시가 아닙니다. 그럴만한 식량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많은 병사들이 머물고 그들의 손에 죽은 시체까지 썩어들어간다면 틀림없이 역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예루살렘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들과 예루살렘을 정복한 병사들 사이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장군이 반박했다.

    "폐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들려오는 정보로는 적들이 이집트에서 약탈한 식량을 잔뜩 가지고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보급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는 그들을 단 시간 내에 물리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척후병으로부터 적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대포로 성벽들을 잔뜩 부셔놨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용맹한 이슬람 병사들을 부서진 성벽을 통해 안으로 침투시켜 적들의 목을 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오르한 1세가 어릴 때부터 영특하다고 소문난 자신의 아들에게 물었다.

    "무라드야. 너의 생각은 어떠냐?"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이자 최초로 술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오르한 1세가 준비하던 예니체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여 대대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제도를 정비해 진정한 제왕이라고 불리게 될 무라드 1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적들보다 유리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병력 숫자가 그들보다 몇 배나 많다는 것이며, 이곳이 우리들에게 익숙한 지형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40만을 따로 뽑아 바다에 떠있는 배와 예루살렘 간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남은 80만의 병력으로 예루살렘을 빙둘러 포위한 후 공성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취약점은 물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성내에 우물이 몇 개 있다고는 하나 갑자기 늘어난 20만의 병사들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입장이 전혀 다르지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오르한 1세의 물음에 무라드가 즉각적으로 답했다.

    "이곳 다마스쿠스는 오래전 과거부터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사방이 오아시스로 둘러쳐져 있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에서 물이 가장 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는 갈릴리 호수가 존재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병사 수가 무려 120만이나 된다고 해도 사방이 사막인 아라비아반도에서 식수로 곤란을 겪을 일은 전혀 없다는 뜻이지요. 이곳에서 병사들에게 충분히 물을 채우라고 명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하다가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물을 채워가면 예루살렘은 길어봐야 한 달 이내로 탈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논리정연한 무라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인 오르한 1세가 무라드를 자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라드의 작전에 따른다. 40만을 따로 뽑아 바닷가로 보내고 나머지 80만은 예루살렘으로 곧바로 진격을 시키거라. 적들이 성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하도록 해."

    - 알겠사옵니다. 폐하.

    1347년 11월 4일

    다음날 아침 오르한 1세가 이끄는 대규모 병력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바닷가로 진격했고 본대는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으며, 왕기가 이끄는 기갑부대는 바위산 지대를 통과하기 위해 일제히 무스카트 바닷가를 떠났다. 메카를 약탈했던 5만의 십자군 군대 역시 메디나를 지나 예루살렘 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