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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제국건국기-159화 (159/171)
  •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5

    1347년 10월 31일

    [제2함대의 전력모함]

    한 달 전 새로이 건조된 제2함대의 핵심인 전력모함에 탑승해서 고려를 떠난 왕기가 인도를 들리지 않고 대고려 제국군의 상륙지점인 아라비아반도의 무스카트를 향해 곧바로 나아가는 도중 수병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안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옆에서 수행하고 있던 목은 이색이 반갑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야...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오늘 저녁은 닭고기를 넣은 카레로군요?"

    이색의 말에 굳이 왕기를 호위하겠다며 인도에서 건너와 2함대에 탑승해 있던 무장이 물었다.

    "카레란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왕기가 대신 답했다.

    "인도에서 가져간 향료를 이용해 새롭게 만든 음식이지. 병사들에게 제법 인기가 좋아. 야채와 고기에 입맛을 자극하는 향신료까지 듬뿍 들어가 있으니 하얀 쌀밥 위에 올려서 쓱쓱 비벼 먹으면 먹기도 편하고 맛도 좋지. 몸에도 좋고 말이야. 쌀은 어차피 고려에서 남아도니까."

    - 우걱우걱.

    잠시 후 식탁에 앉아 카레에 비빈 쌀밥을 맛있게 먹으며 식탐을 한껏 부리고 있던 무장이 왕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폐하. 요 몇 달간 고려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좀 알려주시죠."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었다. 고려 전역에 철도가 이미 깔렸고 곳곳에 세워진 조선소에서는 나머지 함대들이 계속 건조 중에 있지. 시베리아 횡단 철도도 예정대로 쭉쭉 깔리고 있는 중이고. 북방의 고토를 개간한 경작지에서는 대량의 식량을 획득해서 군량미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러자 목은 이색이 반박했다.

    "폐하.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무장님도 아시다시피 북방의 고토는 황실의 직영지입니다. 그곳에서 거둔 엄청난 양의 쌀이 '황실미(皇室米)'라는 이름으로 고려 전역에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보급되었습니다. 고려 본토의 대지주들이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자랑해봐야 더 넓은 고토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지요. 그러다 보니 고려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지방 대지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선소나 제철소 또는 전국 곳곳의 공사현장에서 노역을 해서 번 돈을 들고 시장에 나가면 저렴한 가격의 쌀이 넘쳐나니까요. 쌀값이 대폭락을 해버리고 구하기도 쉬워지니 대지주들의 위치가 바닥까지 추락했고, 대지주와 협력하여 위세를 부리던 유림의 힘도 완전히 빠져버렸지요."

    "폐하. 참으로 잘 된 일입니다. 고려의 백성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대지주들의 횡포에서도 완전히 해방되었으니까요."

    무장이 존경에 찬 눈빛으로 왕기를 바라보며 말하자 목은 이색이 마치 자신이 칭찬받는 양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예정보다 빨리 깔리고 있는 것에는 북원과의 전격적인 협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원과의 협상이 있었다고?"

    그러자 왕기가 답해주었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혜종의 건강이 무척이나 안 좋아.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이야. 따라서 북원의 왕좌는 조만간 기황후가 낳은 아들이 이어받을 것이니라. 아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수렴청정을 하는 기황후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 그녀가 협상을 요구해오더구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는 일에 몽골족을 써달라고 말이야. 고려의 돈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지. 아시아를 대부분 점령한 광활한 대고려 제국 영토에서는 고려의 황실에서 찍어낸 돈이 금이나 은과 똑같은 지위로 통용되고 있다. 위조도 불가능하고 고려 은행에 한번 계좌를 만들어두면 대고려 제국령 어딜 가더라도 인출이 가능하니 그 편리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지."

    "그래서 기황후의 제안을 수용하신 것입니까?"

    "이왕이면 고려인의 핏줄이 북원의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 기황후가 약속하기를 자신의 며느리 그러니까 황태자비도 고려 여인으로 하고 고려 황실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말했으니까 말이야. 북원은 장차 대대로 고려의 부마국이 될 것이니라. 과거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지.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깔려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바이칼 호수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 넓은 호수 위에 철도를 깔 수는 없어. 그렇다고 위로 둘러 가자니 무려 1,500리를 북상해야만 한다. 그만큼 길이가 길어지고 날씨 또한 혹한인 곳을 지나가야만 해. 그리고 바이칼 호수 북쪽은 높이가 600장이 넘어가는 산들이 즐비한 고산지대야. 하지만 호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서 둘러 가면 일이 간단해지지. 그곳이 북원의 영토라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협약을 했다. 몽골족들을 인부로 고용하여 고려 돈으로 노임을 지불하고 북원의 수도인 카라코롬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되는 철도를 깔아주기로 말이야. 그 대신 북원은 철도의 안전 보장과 나라말을 훈민정음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지. 그 정도 조건이면 크게 나쁠 건 없어. 그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비상시를 대비해서 짐의 명을 충실히 따르며 중원을 빠르게 견제할 수 있는 신속 이동군도 필요하니까. 그러기에는 북원의 기마병 만한 게 또 없지."

    장황한 왕기의 설명이 끝나자 무장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한족은 아주 원수처럼 대하시면서 몽골족에게는 생각보다 자비를 많이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원나라에 오래 계셔서 동질감이라도 느끼시는 것입니까?"

    "몽골족이 고려인과 비슷한 점이 많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격언에 따른 것이니라.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어라는 격언 말이다. 몽골족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까이 두고 항상 예의주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기존의 역사에 따르면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망하고 중국에 새로운 통일 국가인 청나라를 세운 것은 흔히 만주족이라 불리는 여진족과 몽골족의 연합세력이다. 여진은 이미 서쪽으로 멀리 쫓아보냈으니 몽골족과 손을 잡아 두 세력이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계속 견제하는 것이 좋아. 그래야 내가 죽은 후 청이 세워지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속으로 빠르게 뇌까린 왕기가 무장에게 물었다.

    "짐보다 일찍 제1함대를 이끌고 무스카트로 향한 무지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보기는 했지만... 십자군 군대의 행보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말해보거라. 그대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병력은 무려 30만에 달하며 대포와 카빈 소총으로 무장해 있습니다. 나일강의 대범람 때문에 이집트 점령이 늦어진 십자군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두어 달 넘게 머물며 도시 하나와 그 주변 일대를 완전히 피로 씻었지요. 건장한 남자는 모두 포로로 끌고 가서 노꾼을 만들어 버렸고, 나이가 많거나 어린 남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화약이 아깝다고 모두 목을 베어 바다에 집어던졌지요. 그 수가 무려 10만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흐음..."

    왕기의 입에서 신음성이 자동적으로 흘러나올 때 무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자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겁탈한 후 발가벗겨 목에 밧줄을 걸어 개처럼 끌고 다니다가 나일강의 대범람이 끝나자마자 모두 토막을 내어 죽여서 바다에 버렸다고 하더군요. 죽은 시체와 시체에서 흘러나온 핏물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천리밖에 있는 키프로스 섬에까지 핏물이 흘러갔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교황이 다급히 명을 내렸지요. 내년 '사순절(四旬節 : 부활절 전에 행해지는 40일간의 재기)'전까지는 지중해 일대에서의 물고기 포획을 금지한다고 말입니다. 인육을 먹어 살이 찐 물고기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교도들의 피와 살점이 섞인 불경한 물고기라고 하면서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이 끝나면 다시 정결한 물고기가 될 것이니 그때야 포획을 하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무장의 말에 왕기가 긴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아... 짐이 이래서 종교분쟁을 환멸 하는 것이니라.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를 않기 때문이지.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느냐?"

    "십자군 군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를 단숨에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지요. 포로로 잡은 이슬람 노꾼들을 채찍질하며 쉬지 않고 부려먹었으니까요. 나일강을 따라 노를 젓다 탈진하여 죽은 노꾼들의 시체가 길게 줄을 이어 둥둥 떠올랐다 하더군요."

    "그 후에는?"

    "이집트 전체의 식량을 탈탈 털은 십자군 부대가 병력을 분산하였습니다. 대포를 탑재한 100척의 배와 5만에 달하는 병력이 홍해를 건너 메카로 진격했지요."

    "애초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을 놔두고 메카로 간 이유는?"

    "교황이 내린 칙령에 반감을 가진 것이지요. 이집트와 예루살렘을 빠르게 정복하지 않고 나일강의 대범람이 끝나기를 기다린 십자군 군대에게 화가 잔뜩 난 교황의 칙령이 전달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돌아오더라도 약속한 보상의 절반만 주겠다는 칙령이 말입니다. 그래서 십자군 군대가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지요. 메카를 정복해서 자신들이 가질 재물을 획득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종교적인 의미가 큰 곳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돈이 되는 곳은 아닙니다. 차라리 예루살렘 위쪽의 무역도시인 베이루트나 다마스쿠스, 트리폴리 같은 곳이 돈이 더 되지요. 하지만 메카는 다릅니다. 오랜 세월 이슬람 교인들의 성지로 여겨지면서 수많은 재물이 축적되어 있는 도시이니까요."

    "근데... 이집트에서 메카로 가려면 홍해를 건너야 할 텐데? 아직 운하도 뚫리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넘어간 것이지?"

    "이집트 백성들을 동원해서 대포를 장착한 배를 육지를 통해 홍해로 이동시켰지요. 바닥에 통나무를 깔고 사람들이 끌어서 말입니다. 그 옛날 피라미드를 만들 때처럼 말입니다. 그런 다음 대포와 카빈을 앞세운 5만의 병력이 메카를 아주 손쉽게 점령했습니다. 그러고는 메카를 완전히 초토화 시켰지요.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다 죽이고 돈이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다 뜯어서 배에 실어 놨다고 하더군요. 메카를 점령한 5만의 병력은 육로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본 병력들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예루살렘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고요."

    "육로로 이동하는 병력들은 고려군과 정면으로 맞부딪칠 수도 있겠군. 이슬람 쪽의 대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현재의 이슬람은 아나톨리아 반도를 근거지로 하고 발칸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한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전의 십자군 원정을 막아내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이 세웠던 이집트, 시리아, 예멘, 이라크, 메카, 헤자즈 등지를 아울렀던 '아이유브(Ayyubids)' 왕조는 이미 멸망을 했으니까요. 오스만 제국을 세웠던 제1대 술탄인 오스만 1세 또한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인 오르한 1세가 오스만 제국을 다스리고 있지요. 오르한 1세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였던 오스만 1세의 영토 확장 정책을 이어받아 계속 정복 전쟁을 벌였고 또한 새로운 군대라는 뜻인 '예니체리(yeniceri)'라는 정예 군대를 창설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가 이교도에 의해 이집트가 넘어가고 메카가 초토화되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지요. 전 제국에 군사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려군이 도착할 때쯤이며 두 세력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순간 목은 이색이 입을 열었다.

    "폐하. 차라리 고려군의 진격을 조금 늦추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는 것이지요. 두 세력이 신나게 치고받느라 힘이 빠진 후에 일제히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목은 이색의 말에 왕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된다. 비록 짐이 고려 백성들의 목숨을 이민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야. 짐에게 능력이 없다면 몰라도... 능력이 있다면 그러한 대참상은 반드시 막아야만 해. 결정적으로 이슬람과 가톨릭 세력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두 모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니라. 이번 기회에 종교분쟁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방책을 세워야만 할 것이야.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그에 대한 준비도 이미 충분히 되어 있는 상태이고 말이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는 듯 이색과 무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일 때 저녁 식사를 끝마친 왕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빠르게 사흘이 흘렀고, 왕기가 이끄는 제2함대가 아라비아반도의 무스카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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