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58화 (158/171)
  •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4

    [국방과학연구소 상공]

    오랜만에 또다시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은 왕기가 연구소 상공에서 또다시 많은 변화가 발생한 연구소 전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새로운 시험장에 못 보던 건물이 또 들어서 있군. 최무선 이놈이 내가 뼈빠지게 번 재물로 플렉스(Flex)를 아주 제대로 즐기고 있구나."

    왕기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야외시험장에 새로이 깔린 시험로들을 살펴보았다. 일전에 땅크가 등판 시험을 하던 코스 외에도 여러가지 코스들이 새로 지어진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현대의 자동차 서킷처럼 인조석을 이용하여 깔끔하게 포장한 원형으로 되어 있는 자동차 주행시험장 같은 코스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발이 푹푹 빠질 것 같은 고운 모래로 되어 있는 코스와 바닷가의 갯벌처럼 질퍽한 진흙밭으로 되어 있는 코스, 온통 자갈밭으로 되어 있는 코스들이 새로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코스 근처에는 군대의 사격훈련장처럼 거리별로 표적지가 붙어있는 허수아비 같은 것들이 세워져 있는 시험장도 있었으며. 그 인근에는 비행기 격납고 같은 큼지막한 건물이 하나가 지어져 있었고,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장갑차 시험 운행을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이로군.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가는데... 문제는 시험주행을 하고 있는 장갑차가 단 한 대도 안 보이고 있다는 것이야. 개발과정에서 무슨 문제라도 발생한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자동차와 관련된 지식들을 대부분 알려줬고 직접 설계까지 해줬는데 말이야.'

    고개를 갸웃한 왕기가 경비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이동하여 격납고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건물 안에는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없게 천으로 된 휘장을 씌워놓은 물체들이 여러 개 보였고, 최무선을 비롯한 수십 명의 과학자들이 설계도를 펼쳐놓고 한창 회의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흐흠... 다들 고생이 많구나."

    잠시 후 자신의 등장을 알린 왕기가 최무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벌컨포는 이미 개발을 끝냈는데 장갑차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벌컨포야 개발이 어려울 것이 전혀 없지요. 대포뿐만이 아니라 땅크의 포신과 땅크 전용 포탄까지 개발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문제는 장갑차였습니다."

    "보아하니 저기 천들을 씌워놓은 것들이 장갑차들인 것 같은데... 일단 그것들부터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폐하."

    고개를 끄덕인 최무선이 뒤에 줄지어 서있는 연구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갑차의 최초 시제품부터 순서대로 덮개를 벗기도록 하거라."

    - 네. 원장님.

    기술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최초의 시제품의 덮개를 벗기자 왕기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호오... 아주 멋지구나."

    왕기의 눈에 비친 건 자신이 예상했던 현대의 현금수송용 장갑차 같은 투박한 차량이 아니었다. 유선형으로 늘씬하게 빠진 차체에 앞뒤로 두툼한 고무바퀴가 달려있고 전체를 칠흑처럼 까맣게 옻칠을 해놓은 모습이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뛰쳐나갈 듯한 흑호(黑虎)를 보는 듯했으며, 덩치가 좀 큰 배트모빌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왕기의 칭찬에 용기를 얻었는지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겉보기만 번지르르할 뿐 제대로 된 장갑차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놈입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흑변(黑便 : 검은 똥)'이라고 불리는 놈이지요."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더냐?"

    "폐하께서 땅크 대신 장갑판의 두께를 대폭 줄인 장갑차를 개발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게를 줄여 일반 병사들이 탑승해도 장시간 운행을 할 수 있고 빠른 이동 속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동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폐하께서 알려주신 공기 저항을 덜 받는다는 유선형이라는 차체 형상에 집착하다 보니 앞바퀴와 뒷바퀴에 걸리는 무게 배분에 실패했습니다. 배터리가 장착되는 곳은 뒷부분이며 거기에 전기 모터까지 실리게 되지요. 그렇게 되다 보니 뒷바퀴에 하중이 너무 많이 걸리고 앞바퀴는 하중이 너무 적게 걸리는 현상이 일어나 고속으로 달릴 때 제대로 된 방향 전환이 힘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해버렸죠."

    "그 정도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기 모터나 배터리의 위치를 이동한다든지 해서 말이야."

    "그래서 나온 것이 2호 차량이지요."

    왕기가 연구원들이 새롭게 덮개를 벗긴 장갑차를 바라보았다. 시제품보다 차체가 좀 더 길어졌고 후미쪽에 바퀴가 두 개가 더 달려있는 것이 흡사 현대의 대형 화물차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특이한 것은 장갑차 좌우에 달려있는 커다란 공기흡입구였다. 마치 슈퍼카인 페라리처럼 말이다.

    "무게를 좀 더 균등하게 실리게 하기 위해 전기 모터를 앞쪽으로 당겼고, 차축의 길이를 늘려 배터리의 무게를 분산했으며 바퀴도 두 개 더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실전 시험에서 탈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밖에 설치된 주행시험장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장갑차가 최초로 투입될 곳이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지대라고 들어서 모래로 된 주행시험장을 만들어서 달렸더니 그날로 장갑차가 퍼져버리더군요. 흡기구를 통해 들어온 모래가 모터와 배터리를 온통 뒤덮어놔서요."

    "흡기구 따위는 도대체 왜 만든 것이더냐? 전기 모터는 짐이 같이 설명을 해준 내연기관처럼 뜨거운 열이 발생하지 않아 따로 냉각장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분명히 알려줬을 텐데 말이야."

    "최초의 장갑차를 시험운전한 병사들의 불만 때문이었지요. 전기모터에서는 열이 그다지 발생하지 않지만 배터리에서는 열이 어느 정도 발생합니다. 거기에 벌컨포까지 정신없이 쏘아대면 장갑차 안이 화약의 열기로 후끈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날이 덮기로 유명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전투를 치를 차량이다 보니 병사들이 하소연을 하더군요. 이대로 만들면 사막에서 쪄죽을 거라고요. 그래서 달리면서 실내의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흡기구를 만들었더니..."

    "그럼 공기흡입구에 거름장치를 장착하면 될 거 아니냐? 모래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래서 나온 것이 3호 차량이지요. 2호 차량에서 흡기구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 거름망을 설치해서 제작한 차량입니다."

    "그럼 거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 같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지요. 그 이유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개발자 대부분들이 여태껏 무한궤도 차량만 죽어라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 알려주신 대로 일전에 황하를 도강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공기가 잔뜩 들어간 고무 튜브라는 것을 안에 넣고 밖에는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세밀하게 홈까지 판 가황고무를 이용해 고무바퀴를 만들었지만 무한궤도만 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모래로 된 주행로에서 바퀴가 빠져 헛돌기 일쑤이고 그런 현상은 진흙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아라비아 사막처럼 모래로 된 경사로는 아예 올라가지도 못하고요. 이래서는 중동 전장에서 사용이 불가능하지요. 인조석으로 잘 포장된 도로는 고려 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아직도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습니다."

    최무선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 있던 왕기가 아차 하는 심정으로 뇌까렸다.

    '이런... 내가 실수를 하였구나. 처음부터 오프 로드용 지프처럼 4륜 구동 자동차를 설계해 줬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이제 와서 설계 변경을 다시 하고 4륜 구동 장갑차를 실현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야. 그리고 4륜 구동은 연료 효율이 나빠 주행시간이 짧아질 것이 분명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당장이라도 구현이 가능한 장갑차를...'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왕기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간단한 해결책이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옵니까? 알려주시옵소서."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하기보다 생각을 전환하거라.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야. 고무바퀴를 단 장갑차는 땅크와 달리 고속에서도 방향 전환이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그런 장점을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무한궤도를 단 땅크처럼 험지를 통과하는 능력은 확실히 뒤떨어지지. 따라서... 그 두 개를 섞어놓으면 된다. 그 정도라면 애초의 목적에서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야."

    쿵하면 짝이라고 하더니 최무선이 왕기의 말을 단숨에 알아듣고서는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고무로 된 앞바퀴를 이용해 방향 전환이 자유로우면서도 무한궤도인 뒷바퀴를 이용하여 모래나 진흙밭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게 만들라는 말씀이시지요? 무게가 조금 더 증가하긴 하겠지만요."

    "그렇다. 몇 달 내로 대량으로 생산하여 아라비아 사막에 투입하려면 그게 최선이야. 그리고 무한궤도와 관련된 기술력은 이미 연구소에서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느냐? 짐이 말한 것처럼 개조하는 것은 금방일 것이야."

    "아무렴요. 나흘 아니 사흘 내에 개조하여 보여드리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거라. 짐이 나흘 뒤에 다시 오도록 하지. 그리고 그대가 하나 더 만들어줘야 할 것이 있다."

    잠시 후 연구소를 벗어나 개경 시내로 날아가던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대의 한국에서 짬짜면과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이 탄생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러한 개념이 꼭 음식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고무바퀴와 무한궤도를 같이 사용하는 '하프트랙(half-track : 앞에는 차바퀴, 뒤에는 무한궤도가 달린 군용 자동차)'은 현대의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던 차량이라고. 단지 전 세계 도로들이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된 이후로 그 효용가치가 점점 떨어져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제 남은 건 목은 이색을 만나 '산(山)'을 선정하는 작업만 끝마치면 된다.'

    [남대가 시장 인근의 한 대저택]

    인도에서 같이 돌아온 목은 이색을 찾아간 왕기가 마당에서 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집이 아주 으리으리하구나. 짐 몰래 인도에서 재물을 따로 꼬불치기라도 한 것이냐?"

    왕기의 질문에 목은 이색이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연달아 찧으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 쿵. 쿵. 쿵...

    "폐하!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소인이 어찌 그런 무도한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이 자리에서 소인의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단지... 소인의 부친이 좌의정 이곡이다 보니 폐하의 하해와도 같은 은총을 입어 매달 적지 않은 녹봉을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집은 그러한 녹봉을 차곡차곡 모아서 지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되었다. 설마 짐이 아무 죄도 짓지 않은 네 가문을 피로 씻겠느냐? 지금 너와 의논할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뿐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만 일어나 방안으로 안내하거라."

    왕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색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후우... 알겠사옵니다. 폐하. 소인이 제방으로 안내를 하겠사옵니다."

    잠시 후 목은 이색이 자신의 방에서 왕기와 독대를 하며 물었다.

    "폐하. 소인과 의논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지금 이 고려에서 이슬람의 경전과 가톨릭의 경전을 너만큼 깊이 연구한 자는 없을 것이야. 그러니 물어보겠다. 각각의 종교에서 가중 중요시하게 여기는 산이 무엇이더냐?"

    "산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산 말이다. 이왕이면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신중하게 잘 생각해야 할 것이야. 한번 결정하면 짐조차도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왕기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목은 이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산은 명확합니다. '히라(Hira) 산'이지요."

    "히라 산?"

    "그렇습니다. 메카 인근에 있는 산이지요. 그 산의 정상에 있는 동굴에서 수행을 하던 모하메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고, 그것이 이슬람교의 시작이니까요. 또한 모하메드가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산을 불렀다고 전해져 오는데 그때 부르기로 한 산이 바로 히라 산입니다. 물론 산을 불러오는 것에는 실패를 했지만요."

    "히라 산이라. 그럼 가톨릭은?"

    "얼핏 해골이란 뜻의 아랍어인 굴굴타에서 유래된 '골고다(Golgotha) 언덕'이 떠오르기는 합니다. 예로부터 처형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지요. 그곳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높이가 낮은 언덕에 불과한 곳이라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가 않지요.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산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아마도... '타보라(Tabor) 산'일 것입니다."

    "타보라 산? 그 산이 왜 가톨릭에게 중요한 것이더냐?"

    "가톨릭 경전에서 '예수의 변모(變貌)'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산이기 때문이지요. 루가(Luke)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자신의 제자들인 베드로, 사도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타보르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 산에서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나는 이적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갑자기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왔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해져 오고 있지요. 하느님 아들이라는 예수의 신분이 처음으로 밝혀진 곳입니다."

    "그럼 그 산도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나사렛이라고 갈릴리 고지의 남부에 있는 도시 인근에 위치한 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색의 말을 곱씹던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짐이 그대의 말을 참고해서 결정하도록 하지."

    왕기가 목은 이색의 방을 나와 빠르게 황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쏜살처럼 빠르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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