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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제국건국기-157화 (157/171)
  •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3

    [예성강 하구]

    머나먼 인도령에서 향료와 면화를 가득 싣고 대고려 제국 제1운하를 통과하며 고무까지 가득 실은 보급선이 예성강 하구에 도착하자 왕기와 병사들이 탄 보급선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하구 쪽의 널따란 항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저 멀리 있는 예성강 조선소 전철역까지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이유는 사흘전 왕기가 빠르게 황실로 날아가 소식을 미리 전했기 때문이었다.

    - 와아아...

    - 짝짝짝...

    인도를 점령하고 돌아온 병사들이 배에서 줄지어 내리자 대고려 제국 백성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구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우렁찬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대고려 제국! 대고려 제국!

    그러자 이미 익숙한 듯 백성들이 리듬감 있게 손뼉를 치며 그 소리를 따라 했다.

    - 짝짝짝~ 짝짝. 대고려 제국!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한 목은 이색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왕기를 보며 물었다.

    "폐하. 잠시 안 본 사이에 고려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는 기둥에 묶여있는 나팔 같은 곳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들고 있는 사람도 없고 소리를 외치는 사람도 없는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군요. 그리고 백성들이 마치 단체로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다 같이 절도 있게 손뼉을 치는 것은 또 무엇이고요?"

    마치 월드컵 응원을 보는 듯한 모습에 현대의 기억을 잠시 떠올리고 있던 왕기가 대답을 해주었다.

    "기둥에 여러 개 묶여 있는 나팔 같은 것들은 확성기라고 하는 것이네. 아마도 축음기에 녹음한 것을 틀고 있는 중일 거야.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새롭게 개발한 것이지. 축음기와 확성기를 개발하면 그 두 개를 조합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저런 식으로 손뼉을 치는 것은... 짐도 아직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짐이 없는 사이에 황후가 유행시킨 것이 틀림없을 것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정몽주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왕기에게 질문을 던졌다.

    "퍠하. 소인도 인도로 떠나기 전 개평선을 타본 적이 있어서 전철을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만 특이한 것이 있어서 여쭤보겠습니다. 병사들이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옷을 걷어올려 왼쪽 어깨를 검사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지요. 저게 무슨 뜻입니까?"

    "제국에서 실시하는 예방접종을 받은 자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일 것이야.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예기치 못한 역병이 퍼질 수도 있으니까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대들과 이번에 귀국한 병사들도 모두 예방 접종부터 맞아야 할 것이야."

    왕기가 대답을 하며 무언가를 찾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살짝 실망한 얼굴로 뇌까렸다.

    '아직 장갑차 개발이 덜 끝난 것인가? 눈에 보이지를 않는구나. 개발이 완료되었다면 최무선이 나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몇 대쯤은 끌고 나왔을 법도 한데 말이야. 최대한 빨리 최무선을 만나봐야 하겠어.'

    그 순간 왕기가 고대하던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띠리링. 천제 환인이 그대에게 대화를 요청하셨습니다.]

    '빨리 연결해줘.'

    그러자 곧바로 천제 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답변이 많이 늦어서 미안하네. 그때도 말했지만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야. 특히 그대의 질문보다 그대가 마지막에 한 부탁 때문이었네.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여러 신들의 협력을 얻어야만 겨우 가능한 일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네. 게다가 그대의 뜻을 반대하는 신들이 방해공작을 펼치기도 해서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방해공작을 펼친 신들이 누구인지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여. 그러니까 구질구질한 설명은 집어치우시고 간단명료하게 결과만 알려주시지요?'

    왕기의 재촉에 천제 환인이 답했다.

    [그러도록 하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겠네. 이성계라는 아이의 부인이 누구이든 세종이 탄생할 수 있느냐는 게 첫 번째 질문이었지?]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창업이 수성난(創業易 守成難 :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대고려 제국을 건국한다손 치더라도 그걸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광대한 제국을 평화롭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저 못지않게 능력이 특출난 자가 제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앉아야만 한다는 뜻이지요. 그럴만한 재목으로는 세종 대왕만 한 분이 또 없습니다. 문제는 역사상의 세종 대왕이 제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세종 대왕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줄만한 명분이 없습니다. 반대하는 신하들과 세력들을 모조리 다 쳐 죽여야만 겨우 가능할 것이고, 설혹 그렇게 해서 황제 자리에 억지로 앉힌다 해도 정통성이 흔들려 통치 기간 내내 말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세영 공주와 이성계를 성혼시켜도 이방원이 탄생하고 이방원의 셋째 아들인 이도(李祹)가 탄생할 수 있느냐를 질문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종 대왕이 제 핏줄인 외가 쪽 증손자가 되는 셈이니까 제가 굳이 피를 보지 않더라도 황제의 자리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고 정통성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 첫 번째 질문의 답은 '가능하다'이네.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인물은 역사의 비틀림 따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세영 공주를 이성계와 혼인시키더라도 앞으로 정확히 50년 뒤에는 세종이 탄생할 것일세. 그가 지닌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품도 그대로일 것이고 말이야. 설사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해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 정도면 첫 번째 질문의 답변이 된 것 같은데?]

    '네. 충분합니다.'

    [그럼 그대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자나미가 직접 해줄걸세.]

    천제 환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지하의 명부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귀기가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왕기의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대의 반려인 노국 공주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죠?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본 신녀가 약속한 3인 중에 아직 한자리가 비어 있으니까요.]

    '제 질문의 요지를 잘못 파악하고 계시는군요. 불사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제 영혼의 반려인 노국공주는 양쪽 나팔관이 거의 다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생리를 주기적으로 잘 하고 있고 특별한 통증이 없어 본인은 잘 모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임신이 거의 불가능한 몸이지요. 운 좋게 임신이 된다고 해도 자궁 외 임신이 되어 아기를 유산할 가능성이 아주 높고요. 이대로 그냥 놔뒀다가는 평생을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요. 그래서 제가 외과적으로 수술을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외과수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술을 한 후 노국공주를 죽여버릴 계획입니다. 그럼 자연적으로 다시 몸이 건강한 상태로 부활을 할 테니 외과 수술에 따른 문제점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문제는 부활을 할 때 나팔관이 다시 꽉 막힌 상태로 부활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말짱 도루묵일 테니까요.'

    왕기의 장황한 설명에 그때야 이자나미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렸는지 제대로 답을 해주었다.

    [흐응... 반려에 대한 사랑이 아주 끔찍하네요. 좋아요. 제가 도와드리지요. 일전에 그대가 본 신녀와 한 약속을 성실히 잘 지켜준 고마움도 있고 하니까 말이지요. 그녀를 부활 시킬 때 나팔관 수술이 잘 끝난 몸 상태로 해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되었나요?]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답변을 한 왕기가 주먹을 불끈 쥐며 빠르게 뇌까렸다.

    '가장 걱정했던 문제 한 가지가 해결되었어. 나팔관을 뚫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는 확신이 없으면 신성력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서역의 대적자와 불가피하게 협상을 했어야만 할 수도 있었는데... 이젠 맘 놓고 전쟁을 치를 수 있겠구나.'

    그 순간 또다시 천제 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그대가 한 부탁에 대한 답을 해주겠네.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 부탁이야. 대적자를 처치하고 얻은 소원권 따위로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행히 그대가 과거로 넘어와 취한 인본주의적인 행보와 만민 평등사상 그리고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처신 등을 유의 깊게 지켜보면서 감명을 받은 신들이 여러 명이라서 말이야.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힘을 하나로 모아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네.]

    '그럼 제가 부탁드린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로군요?'

    [딱 잘라서 말해주지. 가능하네. 단 이번 한 번에만 국한되는 것이야. 소원권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고 말이야.]

    '그런 일은 저도 한 번이면 족합니다. 더 이상 그런 부탁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결정한 신들에게 제가 감사해 한다는 말을 꼭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도록 하지.]

    더 이상 천제 환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왕기가 몸이 바짝 달았는지 보급선 위에서 곧바로 하늘로 치솟아 올라 황궁 쪽으로 날아갔다.

    [연경전의 침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왕기가 노국공주를 꼭 끌어안고서 고려 내부 상황을 듣고 있었다.

    "열흘 전에 본토에 깔던 철도 공사가 모두 끝났어요. 고토와의 연결도 모두 끝마쳤고요. 상령의 지휘 아래 전국에 흩어져 있던 철도 공사를 하던 자들을 끌어모아 외흥안령 산맥 북쪽으로 이동을 했어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깔기 위해서 말이지요. 믿기지 않지만 그 숫자가 100만 가까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럴 것이라 짐작했었소이다. 예성강에 모여든 사람들이 전국 10도의 사투리를 다 쓰고 있었으니까. 짐이 보급선 도착을 알린 게 불과 사흘 전인데 전국 10도에서 사람들이 다 모여든다는 건 철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니까.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공사에 투입된 인원이 100만이라. 전국 10도에 철도를 깔던 인원들이 다 합쳐진 것이니 한 곳당 10만 명만 잡아도 100만은 가뿐하지. 이제 남은 건 철도를 까는데 걸리는 시간이로군."

    "맞아요. 상령 말로는 큰 문제가 없다면 1년 이내에 완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더군요. 무려 10,000km에 가까운 길이의 철도를 까는데 말이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장인 것 같아요."

    "품성이 냉철한 상령이 그리 말했다면 과장은 아닐 것이오. 현대나 지금이나 철도를 까는 건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 없소. 어차피 단순노동에 가까운 일이니까.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지나가는 곳은 대부분이 평원 지역이라 산을 뚫거나 해야 하는 부대 공사도 필요가 없지. 차라리 지금이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오. 사람들로부터 철도를 깔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 일도 필요 없고, 러시아가 동진 정책을 취하기 전이니 방해를 할 세력도 없으니 말이오. 중요한 건 투입되는 인력의 숫자와 자금력이지. 둘 다를 무한정으로 쏟아부을 생각이니까 생각보다 빨리 깔릴 것이오."

    "그리고 제2함대의 건조가 앞으로 두 달 후면 모두 끝난다고 하더군요. 제2함대의 건조가 끝날 때쯤이면 전국에 짓고 있는 다른 조선소들의 건설도 얼추 끝나서 나머지 함대들의 건조가 곧바로 시작될 계획이고요."

    "두 달이라. 제2함대를 이끌고 인도까지 가려면 다시 한 달이 더 걸릴 테니 중동 정벌을 위한 전쟁은 세 달 후가 되겠군."

    노국공주로부터 몇 가지를 더 들은 왕기가 노국공주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보는 그 정도면 되었고...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이다."

    "소첩에게 말입니까? 무엇이든 말만 하시지요."

    "그대가 노래를 한 곡 지어줘야 하겠소이다. 그리고... 그대가 죽어줘야 하겠소. 솔직히 말해 수술이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을 죽여야 할지 나도 아직 자신이 없어서 뭐라 단정을 못 짓겠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노국공주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 왕기가 차분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설명을 다 들은 노국공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실습 경험이 없으신 폐하께서 소첩에게 배우셔야 하겠군요. 외과 수술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수술실도 따로 지어야 할 것 같고요."

    "그리해야 할 것이오. 나에게 알려줘야 할 것들을 그대가 잘 정리해 주시오. 그대를 최소한으로 죽이게 말이오."

    "그리하지요. 소첩도 수술대에 올라갔다가 목이 댕강 잘리는 경험을 여러 번 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잠시 후 연경전의 침실을 나온 왕기가 국방과학연구소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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