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56화 (156/171)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2

1347년 7월 7일

[동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

- 쏴아아...

나일강의 상류 수원 두 개 중의 하나이며 흔히들 백(白)나일의 수원지라고 부르는 빅토리아호에서는 마치 폭포 소리처럼 우렁찬 소리가 며칠째 줄기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한 소리는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세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을 정도로 거대한 민물 호수인 빅토리아 호수에서 일주일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가 도통 그칠 줄을 모르며 호수 표면을 끊임없이 두들겨 대는 빗줄기 소리였다.

그러한 현상은 청(靑)나일의 수원지라고 불리며 에티오피아의 서반부를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아비시니아(Abyssinian)' 고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세게 떨어지고 있는 빗줄기가 일주일 내내 아비시니아고원의 땅을 줄기차게 내려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두 군데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나일강의 상류에서 흘러들어온 수량이 급격히 넘쳐나 나일강 하류는 연례 행사인 대범람을 겪고 있었다.

[이집트의 카이라(Kahira)]

현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의 전신이자 승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카이라는 나일강 삼각주의 남단에서 약 25km 떨어져 있으며, 나일강의 우측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아직 오스만 트루크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지 않아 맘루크(Mamluk)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는 카이라의 백성들 중 몇 명은 나일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며칠째 불어오는 강한 강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걱정 어린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게지라(Gezira : 여의도처럼 나일강 안에 있는 하중도(河中島))가 강물에 잠겨 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군.

- 네일로스(Neilos : 나일강을 다스리는 신이자 그리스신화에서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와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안키노에, 멤피스, 헤라클레스의 아버지가 됨)님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 살면서 나일강이 이렇게까지 범람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 이러다 멤피스(Memphis : 나일강 좌측 편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의 수도이자 네일로스의 딸)까지 잠길지도 모르겠는걸? 듣기로는 상류 쪽에서 날이 갈수록 물이 더 많이 유입되고 있다고 하던데 혹시 이러다가 카이라도 위험한 것 아냐? 짐을 꾸려 가족들과 도망이라도 가야 하려나?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대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며칠째 불어오는 강력한 강바람으로 인해 유속까지 빨라져 성난 파도처럼 거칠게 흘러가는 나일강의 강물을 보며 이집트의 백성들이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이 걱정 어린 얼굴로 정찰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앞바다]

일주일 전 베니스를 출발해 지중해를 건너 단숨에 알렉산드리아 앞바다까지 도착한 교황의 군대를 이끄는 몬시뇰 프란치스코경은 막 도착한 정찰대의 보고를 받고서는 긴급하게 수하의 장군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들으셨소? 나일강이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알렉산드리아에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라시드를 통해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갈 작정이었는데 큰일이오."

그러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몬시뇰이시여. 범람을 일으키고 있는 나일강을 천척의 배를 이끌고 거슬러 올라가다가는 노꾼들이 모두 탈진해 죽을 것이며, 만약 화약을 싣고 있는 보급선이 침몰이라도 한다면 십자군 원정군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를 완전히 점령하려면 나일 강변에 줄지어 있는 대도시들인 아슈트, 소하그, 룩소르 그리고 아스완까지는 정복을 하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 있소? 그대들도 아시다시피 나일강 유역을 제외한 이집트의 땅 대부분은 황무지이며 끝없는 사막일 뿐이오. 나일강을 따라가지 않고 배를 버린 채 병사들을 이끌고 사막을 통과하다가는 탈수로 죽기 딱 좋은 땅이란 말이오. 30만 중에서 과연 몇만이나 살아남아서 아스완까지 가겠소?"

침통한 표정을 지은 장군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누군가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프란치스코경. 본 군대의 최종 목적은 교황께서 공언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에서 탈환하고, 아라비아반도를 완전히 정복하여 신성 프랑스 제국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집트 정복을 뒤로 미루고 곧바로 배를 타고 예루살렘 앞바다에 상륙하여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순간 누군가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대의 말처럼 하면 예루살렘은 손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오. 카빈과 대포로 무장한 본 군대의 무력은 막강하니까. 하지만... 그 뒤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뭐란 말이오? 교황 성하의 칭찬? 그것 말고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을 것 같소이까? 이집트를 먼저 정복하게 되면 비옥한 이집트 곡창지대를 영지로 보상받을 수도 있고, 약탈을 통한 재물의 분배도 있겠지만 피를 흘려가며 예루살렘부터 정복하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허울좋은 명예와 기껏해야 대추야자나무 열매 몇 가마니일 것이오. 난 그리 못하겠소. 피 같은 내 영지의 병사들의 목숨을 대추야자나무 열매 따위와 맞바꾸려고 원정에 참가한 것이 아니니까."

그러자 예루살렘으로의 진격을 주장한 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성스러운 신의 군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이교도와 싸워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지극히 마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누군가가 또 반박했다.

"만약 예루살렘만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기꺼이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이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오.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면 이전 십자군 원정처럼 이교도들이 떼를 지어 덤벼들 것이오. 제아무리 우리 군대의 화력이 막강하다고는 하지만 아라비아반도 전채를 점령하는 것이 한두 달 사이에 가능할 것 같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1년 이상은 걸릴 것이오. 그동안 그 넓은 사막을 끝도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이오. 그 기간 동안 병사들을 먹일 식량은 어떻게 충당할 것이오? 아라비아사막에서 먹을 거라고는 대추야자나무 열매밖에 없소이다. 배에 실려있는 식량은 4개월치밖에 없고. 이집트를 정복해서 식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막에서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오."

"굻어죽을 땐 죽더라도 성지인 예루살렘부터 탈환하고 보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일 것입니다."

"그럼 그대가 그대 영지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시오. 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도 좋지만 내 손에 떨어지는 재물과 병사들을 굶기지 않을 식량이 더 중요하니까."

"이익...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지금 하신 말은 신성모독이오!"

시간이 지날수록 언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수하의 장군들을 지켜보던 몬시뇰 프란치스코가 입을 열었다.

"양쪽 의견이 다 일리가 있소. 하지만 나일강의 범람을 걱정하던 본인에게 교황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소. 신의 은총이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은 이집트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범람을 일으키고 있소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신의 뜻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강요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이오. 이 자리에서 십자군의 총사령관인 본인이 결정하겠소. 나일강의 범람이 끝날 때까지 본 군대는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여 머물 것이오. 본인이 알고 있기로는 나일강의 범람은 10월이 끝나기 전에 무조건 정리된다고 알고 있소이다. 본 사령관의 말이 틀리오?"

그러자 누군가가 즉답했다.

"명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나일강의 범람은 언제나 10월이 끝나기 전에 정리되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량을 자랑하는 강물이라도 흐르고 흐르다 보면 결국 바다로 다 빠져나가기 마련이니까요."

다른 의견이 있는지 수하의 장군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 몬시뇰이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그때까지 먹을 식량은 충분하니 여러분들은 자신의 수하들 중에 가장 용맹한 자들을 천명식을 뽑아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하시오. 카빈을 장착하고 있는 병사들의 숫자가 그 정도면 충분히 점령이 가능할 것이오. 도시를 약탈해서 재물도 좀 털고 도시에 보관하고 있는 식량도 좀 모으면서 젊은 여자들도 포로로 잡으시오. 그러면 대범람이 정리될 때까지 병사들의 불만이 없을 것이오. 범람이 끝나는 즉시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를 점령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이교도들의 도시를 약탈하고 여자를 겁탈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하게 웃고 있는 장군들 중에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 잘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정예 병사들을 추려 알렉산드리아를 단숨에 정복하겠습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장군들이 우르르 회의실 밖으로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몬시뇰 프란치스코가 발작적으로 고개를 발딱 치켜들어 회의실 천장을 우러러보며 중얼거렸다.

"신의 은총은 개뿔..."

인간의 탐욕에 의해 십자군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과 아라비아반도 점령이 뒤로 미루어질 때 왕기의 계획은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인도의 델리]

- 크르릉...

대지를 뒤흔들며 대기를 떨어울리는 거친 굉음과 함께 갠지스강을 거슬러 올라온 보급선에서 줄지어 내리고 있는 땅크를 보며 무지가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대단한 신무기로군요. 말로는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위압감이 엄청납니다."

그러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왕기가 대꾸했다.

"문제는 운용할 인적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야. 물론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놓았지만... 아무튼 무스카트까지 잘 끌고 가서 사막 적응 훈련을 해보도록 해. 최대한 빨리 제2함대를 완제시켜 보내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철도를 어디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깔아 나갈지도 잘 조사하도록. 무작정 사막 위에 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향수병이 심하고 다치거나 몸이 축난 군사들과 이색과 정몽주를 이미 소집시켜 놨으니 인도에서 난 향신료와 면화가 보급선에 다 실리는 즉시 고려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에서 오신 승려분들은 계속 인도에 남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다시 또 한 달 가까이 배를 타셔야 하실 텐데... 많이 지루하시겠습니다."

왕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나 말고는 바다 상공을 빠른 시간 내에 몇 천리씩 날아다니며 정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번 항해는 그다지 지루하지 않을 거야. 짐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도 있고, 이번 기회에 결정해야 할 것들도 제법 있으니까 말이야."

1347년 7월 13일

병사들과 향신료와 면화가 가득 실린 보급선을 이끌고 인도를 떠나 뱅골만을 지나 대고려 제국 제1운하 쪽으로 항해를 하고 있던 왕기가 눈을 꼭 감은 채 밤이 새도록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후우우..."

긴 한숨과 함께 눈을 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왕기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문제라고..."

왕기가 마음속으로 빠르게 뇌까렸다.

'천제 환인과 대화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곧바로 익숙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리링. 그렇지 않아도 천제 환인께서 그대를 지켜보고 계시는 중이며 대화를 희망하고 계십니다.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왕기를 과거로 끌고 온 천제 환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갑자기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근데... 절 지켜보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고려 쪽에 무슨 급박한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허허... 그건 아니고 내가 그대에게 생색을 좀 낼 일이 있어서 말이야.]

'제게 생색을 낼 일이 있다고요? 여태껏 저에게 아무런 도움을 준 적이 없던 분이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언짢은 표정의 왕기를 지켜보고 있는지 천제 환인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너무 뭐라 하지 말게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신들의 협약에 의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근데... 날 왜 찾은 건가?]

'두 가지 질문과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찾게 되었습니다.'

[질문과 부탁이라. 지금쯤이라면 그대도 아마 잘 알고 있겠지?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물론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신들끼리의 협약에 의해 뭐든지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 게다가 신마다 주특기가 조금씩 다르단 말이지. 이미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겠지만 난 운사, 우사, 풍백을 거느리고 있어서 농경과 관련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자나미처럼 개인의 시간을 되돌려 죽은 자를 다시 부활시키는 능력 따위는 없다고. 앙그라 마이뉴처럼 인간의 정기를 빨아들이거나 안개로 변하게 해주는 능력도 없고...]

'잘 알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신의 개입은 인류에게 대재앙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좋아. 그럼 그대가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 무엇이고 부탁하고 싶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먼저 두 가지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제 머리로는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을 내릴 수가 없어서요. 첫째는......'

잠시 후 왕기의 질문과 부탁이 끝나자 천제 환인이 즉답을 하지 않고 말미를 요청했다.

[잠시 기다려 보게. 이건 나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알겠습니다. 명쾌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초조함 속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잠시만 기다리라던 천제 환인의 답변은 왕기가 탄 보급선이 대만을 지나 고려 인근에 도착할 때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1347년 7월 31일

왕기가 인솔한 보급 선단이 왕복 두 달간의 긴 항해를 끝마치고 예성강 하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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