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55화 (155/171)

이슬람 세력을 흡수하다 - 1

1347년 6월 30일

6월 말이 되자 고려 본토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강산이 뒤바뀌어 있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왕기의 특명에 따른 여름이 되기 전까지 개경과 전국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 공사를 완공하기 위해 북방의 고토에 있던 각종 중장비들이 지방 곳곳으로 이송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재물을 풀며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험준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강을 건너는 다리가 곳곳에 세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기가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에 의해 공사에 동원되는 백성들에게는 노임이 정확하게 지불되고 있었기 때문에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한 돈벼락에 고려 전역이 흥분과 기대감에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기회를 잘 잡은 특정 기술을 가진 전문 기술자들이 재물을 빠르게 축적하여 중산층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배금주의 역시 싹을 틔우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 폐해가 아직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관직을 지닌 자들의 부정에 대해 왕기가 워낙 엄격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차 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중세 시대에 불과한 1347년의 고려가 현대의 자본주의와 흡사한 체계를 서서히 갖춰가고 있는 그때 왕기는 고려에 있지 않고 대신들의 등쌀을 피해 머나먼 외국으로 피신해 있었다.

[인도의 왕궁]

연락도 없이 불쑥 왕궁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왕기를 보며 무지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폐하. 연통도 없이 머나먼 인도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그대가 말한 양동 작전 중에 하나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잔뜩 해서 왔지. 아직 제2함대의 건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주력함인 전력항모와 호위함인 거북선을 제외한 보급선들은 구조가 단순해서 얼추 거의 건조가 끝났다네. 그래서 짐이 직접 이끌고 인도로 왔지. 일전에 갠지스강의 진흙을 잔뜩 싣고 고려로 돌아갔던 보급선도 포함해서 말이야. 거친 바다를 건너 인도까지 무사히 보급품을 싣고 가려면 짐이 동승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요. 오직 폐하만이 그 빠른 이동속도로 함대 인근의 기후를 곧바로 알아차려 배들의 침몰을 사전에 방지하실 수 있으니까요."

"지금쯤이면 땅크와 각종 보급품들 그리고 신병들을 잔뜩 태운 배들이 뱅골만을 통과하고 있을 테니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갠지스 강을 거슬러 델리로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새로이 건조되는 제2함대를 신병들로만 채울 수는 없어서 말이야. 경험이 많은 병사들이 필요해. 보급선에 인도의 면화와 향신료들을 잔뜩 싣고 향수병에 빠진 병사들을 태워서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네. 고국에서 한두 달 쉬다 보면 다시 전장으로 나갈 힘이 생길 테지. 제2함대의 건조가 끝나면 다시 그들을 태워 인도로 보낼 생각이라네. 그리고... 고려에만 계속 있으려니 골치가 아파서 말이야."

- 털썩.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거린다는 듯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의자에 주저앉는 왕기를 보며 무지가 사뭇 언성을 높였다.

"어떤 개호로자식들입니까? 감히 폐하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상령은 그걸 두 눈 뜨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단 말입니까? 유림이 또다시 황실에 반기를 든 것입니까? 아니면 대지주들이 농민들과 힘을 합쳐 반란을 꾸미기라도 한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이 무관으로 등용된 사대무맥 소속의 무인들이 역심을 품고..."

- 훠이. 훠이.

잔뜩 흥분하여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어대는 무지를 향해 손을 휘저은 왕기가 입을 열었다.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야. 고려에서 감히 짐을 건드리거나 거역할 세력은 없어. 차라리 그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 군사들을 동원해 짓밟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유림은 상령사화 이후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중이야. 또 한 번 그런 참화를 겪었다가는 유림의 기반이 뿌리째 뽑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대지주들과 사대무맥 또한 마찬가지이고. 날 괴롭히는 것은 조정의 대신들이야. 벌써부터 후계자 문제로 날 괴롭히고 있다고. 그놈의 적통(嫡統), 적자(嫡子), 황태자(皇太子)... 아주 지긋지긋해. 황후가 아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대신들의 잔소리가 심해지고 있어. 거기에 만으로 아직 채 1년도 안된 세영 공주의 결혼 문제도 있고."

"세영 공주마마의 혼처를 벌써 결정하시려는 것입니까?"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은 공주를 두고 온갖 곳에서 탐욕을 내고 있어. 자신의 아들과 약혼만이라도 시켜달라는 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북원, 서금, 후요, 왜국 등 새로이 중원에 건국된 국가의 왕들과 동남아 쪽의 왕들까지 합세해서 바리바리 사신을 보내고 있다고. 그 바람에 대신들이 더욱 흥분하여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야. 자칫하다가는 대고려 제국 황제 자리가 이민족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봐. 거기에 국내에서는 이자춘이 자신의 아들과 제발 약혼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있지."

"하지만 폐하의 보령이 이제 겨우 18세이십니다. 후계 문제를 걱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만..."

"짐도 그리 생각하고 있네. 문제는 노국공주와 성혼을 한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야. 2년 이내에 회임을 못하는 것을 보아 어쩌면 평생 회임을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대신들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거기에 여춘옹주와 벽하옹주는 이미 회임을 한 경력이 있으니 더욱 안달이 난 것이지. 짐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으니까. 미련한 자들 같으니라고. 짐이 어떻게 세운 대고려 제국인데 이민족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준단 말인가?"

"페하께서 공주마마의 혼처를 이민족과는 하실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습니. 그리고 이자춘의 아들이라면... 일전에 소신도 본 적이 있는 이성계라는 아이가 아닙니까?"

"맞아. 이제 만으로 12살이 되었으니 슬슬 혼처를 정할 때도 되었지. 제법 똘똘한 편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익혀 몸도 건강한 편이지. 역사적으로 볼 때 위대한 업적을 쌓을 능력도 있고 말이야."

눈치가 빠른 무지가 왕기의 의중을 읽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페하께서는 그럼 이성계라는 그 아이를 부마로 맞아들일 생각이 있으신 것입니까?"

무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왕기가 즉답했다.

"뭐 못할 것도 없긴 하지. 그 아이는 수명도 길어 일흔이 넘게 살 것이니까. 문제는 세종(世宗)이란 말이야. 세종... 만약 세영 공주와 성혼을 시켰는데 세종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그동안 제법 고민을 많이 했는지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왕기의 말에 무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폐하. 이제는 미래도 내다보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까? 이성계라는 아이가 70이 넘게 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세종은 또 누구입니까?"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왕기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세. 대신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대에게까지 짐이 시달려야 하겠나? 그러니 중동지역을 점령할 계획이나 검토해 보자고. 짐의 계획은 간단하네. 이번에 데리고 온 병사들 중에서 도강을 전문으로 하는 공병대원들과 철도를 까는 병사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어. 그들을 데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라비아반도를 건너 사막에서 땅크를 시험 운행해 보게. 그리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2함대가 도착하는 대로 그대의 계획처럼 곧바로 아라비아반도를 점령한 후 서역을 향해 진격하는 것이야. 빠르게 서역으로 보급품들을 실어 나를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될 철도를 깔면서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소신이 책임지고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고려로 돌아갈 향수병이 심한 병사들을 최대한 빨리 추려놓도록 하겠습니다. 폐하께서 돌아가실 때 같이 귀국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지방에 내려가 있는 무장과 이색을 부른 후 보급선이 델리에 도착하면 다시 의논하도록 하지요."

무지의 말에 동의의 표시로 왕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이탈리아반도 베니스에서는 거창한 출정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베니스항]

- 둥. 둥. 둥...

위고 교황이 내린 명에 따라 서역 전역에서 몰려든 영주들과 그에 딸린 기사들과 병사들이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펄럭이며 웅장한 북소리에 맞춰 베니스 항에 정박해 있는 천척의 전함에 차례차례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백여 명의 병사들의 손에 의해 들려가는 금박을 씌운 거대한 십자가가 대장선에 올라가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중동에 있는 사악한 이교도들을 깡그리 죽여버리고 돌아와.

-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하는 것은 축복이야. 다들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고 오라고.

- 형제자매님들이여. 신의 사자이신 교황님의 성스러운 축복이 그대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대들 앞에는 승리만이 존재할 뿐임을 굳게 믿으세요.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거리고 있는 거대한 십자가가 대장선에 무사히 올라가자 십자군 원정 총사령관이자 아비뇽 유수로 인해 탄생된 프랑스어로 "나의 주인님"을 뜻하는 'mon seigneur'에서 유래되어 교황의 명예 전속 사제를 뜻하는 '몬시뇰(Monsignor)'로 임명된 프란치스코(Francisco)가 교황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성하시여. 다시 한번 건의드립니다. 이집트 정벌을 네 달 딱 네 달만 기다렸다고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출발하여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집트를 빠른 시간 내에 정복하는 것은..."

위고 교황이 단호한 표정으로 몬시뇰의 말을 잘랐다.

"몬시뇰 프란치스코경은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그대 눈에는 천척의 전함에 타고 있는 용맹한 병사들의 손에 쥐여져 있는 카빈 소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전함에 실려있는 대포는 또 어떠하고? 이전의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병력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투입하였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라. 30만이 넘어가는 병력들이 신이 내려주신 신무기를 가지고 단 한 번에 몽땅 투입되는 거라고. 주님의 병사들을 가로막을 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네."

"소인도 그 점에 대해서는 단 한점의 이견도 없사옵니다. 하지만 단 한 달 만에 이집트를 점령한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소인이 이미 몇 번이나 설명해 드렸으니 잘 아실 것이 아닙니까?"

"해마다 발생한다는 나일강의 범람 때문에 그러는 것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성하시여.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의 범람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매년 발생하는 홍수로 인해 나일강이 에티오피아에서 운반해온 진흙으로 인해 따로 힘들게 흙을 일구지 않아도 되고, 적당한 시기에 씨를 뿌리기만 하면 막대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나일강의 범람이 올해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사옵니다. 나일강 상류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7월부터 나일강의 물이 급격히 불어납니다. 이집트인들이야 물이 불었을 때 피해 있다가 물이 다 빠지는 10월 말에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십자군을 태운 배들은 그럴 수가 없사옵니다. 홍수로 인해 불어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위고 교황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게. 주님의 은총이 있으실 걸세. 그대들에게는 주님의 보호와 주님의 사자인 본 교황의 가호가 함께 있을 것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걱정 말고 출발하게나."

"성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알겠사옵니다. 소인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교황이 내미는 손에 입맞춤을 한 몬시뇰이 대장군의 배에 올라타자 천척의 배가 하나둘씩 베니스 항을 벗어나 이집트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집트에 있는 나일강 상류에서는 때맞춰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건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이었다. 7월부터 발생하는 나일강 상류 지방의 폭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자연은 인간들의 의지에 따라 조종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였다. 제2함대의 건조가 늦어 중동 정벌이 위고 교황이 이끄는 십자군보다 몇 달이나 늦은 대고려 제국의 군대가 중동 지방에서 정면으로 십자군 군대와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묘하게 얽혀들어가는 운명 속에 빠르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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