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 정벌을 준비하기 시작하다 - 2
[국방과학연구소 신관]
잠시 안 본 사이에 또다시 새롭게 건립된 연구소의 신관 건물은 황실의 건물보다도 더 휘황찬란했고 눈에 보이는 모든 부위가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것이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최무선 이 자식이 신관을 지으면서 아주 돈으로 떡칠을 해놨군. 쯧...'
속으로 혀를 찬 왕기가 신관 안으로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찾아갔다.
[축음기 및 확성기 개발실]
왕기가 처음 보는 실험실 앞에 도착했을 때쯤 아기 상어의 마지막 부분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신난다. 뚜루 루 뚜루. 춤을 춰. 뚜루 루 뚜루.
그 순간 걸걸한 남자들의 합창 소리가 실험실 안에서 들려왔다.
- 노래 끝! 오예!
- 아기 상어 말고 다른 걸로 틀어달라고.
- 그래.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올챙이와 개구리 어때?
그리고 곧바로 왕기가 익히 아는 올챙이 송이 실험실 안에서 들려왔다.
-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쏘옥.
그리고 올챙이 송에 익숙한 듯 남자들의 합창 소리도 울려 퍼졌다.
- 쏘옥!
고개를 갸웃한 왕기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아침부터 고주망태가 되어 뻗어 있는 연구원들이 연구실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술잔을 들고 있는 몇몇 연구원들은 구리로 만든 원통에 주석박(箔)이 감긴 것을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주석박 위에 올려져 있는 바늘이 홈의 깊이에 따른 소리의 세기를 변화시킴에 의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녹음 재생기인 '포노그래프(Phonograph)'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였군.'
잠시 후 장내를 정리한 왕기와 최무선이 독대를 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아침부터 술판이라. 관리를 아주 잘 하고 있구나. 그리고 신관은 아주 돈으로 떡칠을 했더구나."
대놓고 하는 질책에도 불구하고 최무선은 눈빛은 미동조차 없었다.
"폐하께서 잘 못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술판을 벌인 것이 아니라 전날 밤 폐하께서 원나라 정벌을 무사히 마치고 오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벌인 술판이 아침까지 이어졌을 뿐이지요. 그리고 폐하께서 약속하셨잖습니까? 원나라 정벌에만 성공하면 황금을 물 쓰듯 해도 용서하시겠다고요. 연구실에 모여 있던 자들은 땅크 개발에 이어 축음기와 확성기 개발에도 참여했던 핵심 연구원들이지요. 폐하께서 원나라 정벌에 실패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관을 지을 때 미리 좀 황금을 당겨쓴 것뿐이지요."
태연자약한 최무선의 대꾸에 헛웃음을 지은 왕기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축음기와 확성기 개발을 한 것이냐? 그래서 개발에는 성공을 했고?"
"모든 연구원들이 폐하께서 최종적으로 꿈꾸고 계시는 무선 전화기 개발에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전파를 이용하기 전에 음파를 이용하는 연구부터 하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기초부터 다시 단단히 닦은 후 전파를 이용해보자는 뜻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축음기와 확성기 개발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전파와 달리 음파는 곧바로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지요. 방금 전에 들으신 동요들은 폐하께서 부재 중일 때 황후마마께서 직접 알려주신 것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훈민정음을 빨리 배우기 위해서는 흥겨운 율동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신나는 동요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아기염소와 곰 세 마리라는 동요도 녹음이 되어 있는 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왕기가 입을 열었다.
"되었다. 아무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마. 지금부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시급히 개발해 줘야 할 것이 있다. 서역 정벌을 위한 것들이지."
왕기가 품속에서 설계도 몇 장을 꺼내어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첫째는 장갑차라는 것이다. 땅크와 유사하면서도 확실하게 다른 점이 몇 가지가 있는 운송장비이자 신무기이지. 첫째, 무한궤도 대신 고무로 된 타이어라는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에 따라 새로운 조향장치와 현가장치가 개발되어야만 한다. 셋째, 장갑판의 두께를 최소화하여 무게를 경량화 시켜야만 한다. 장갑판의 두께는 서역에서 개발한 카빈총에서 날아온 총알이 관통을 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잠시 설계도를 훑어보던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무한궤도를 단 땅크와 움직이는 방식이 전혀 다르군요?"
"그렇지. 땅크가 우회전을 하려면 오른쪽 무한궤도를 정지시킨 후 왼쪽의 무한궤도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럼 자연스럽게 우회전이 되는 것이지. 하지만 장갑차는 전혀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회전을 위해 핸들이라는 것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앞부분에 있는 고무 타이어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우회전을 하게 되는 것이지. 무한궤도를 장착하고 있는 땅크와 비교해 방향 전환이 아주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무한궤도가 없고, 대포도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장갑판의 두께까지 얇아져서 이동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운용 시간이 현격하게 길어지겠군요?"
"아주 잘 파악했느니라. 그게 바로 짐이 노리는 것이다. 벽력공을 익힌 무인의 숫자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땅크는 150대 이상으로 운용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장갑차는 땅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기 때문에 일반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히 운용이 가능할 것이야. 시간만 충분하다면 수만 대를 찍어내어서 그 숫자와 쾌속함으로 전장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니라. 짐이 이걸 가지고 온 것은...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제작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땅크와 짐차, 삽차 등을 이미 제작한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고무도 대고려 제국의 수중에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지."
"알겠습니다. 폐하. 오늘부터 연구소의 총력을 기울여 장갑차를 시험 제작하겠습니다. 근데... 장갑차에 실려있는 것은 무엇이옵니까? 대포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벌컨포라는 것이다. 여섯 개의 총신을 하나로 묶은 후 전기 모터로 회전시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총알들을 발사시키는 것이지. 그대가 개발을 주장하던 총기의 일종이라고 보면 될 것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벌컨포가 아니다. 원리 자체는 아주 단순하니까."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벌컨포가 사용할 총알에 있지. 날개 안정 분리 철갑탄의 원리를 잘 알고 있겠지?"
"네. 폐하. 이미 개발까지 성공했으니 소인이 모를 리가 없지요.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탄자의 지름을 줄이고 길이를 늘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칫 포신 내에서 발생하는 폭압이 새어나갈 수가 있지요. 그래서 탄을 두 가지를 결합하여 제작하는 것이지요. 하나는 폭압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포신의 구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인 '이탈피'와 발사 후 이탈피가 분리되면 최대한의 힘으로 날아가서 목표물을 뚫고 들어가는 '관통자'로 나누어서 말입니다. 저도 산해관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적들이 설치한 철벽을 땅크의 포탄이 종이짝처럼 찢고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날개 분리 철갑탄의 위력이지요."
"벌컨포의 총알도 그처럼 두 가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야. 화약을 담은 탄피라는 것과 탄피 앞에 장착된 탄두로 말이야. 다른 점은 땅크의 포신을 떠난 이탈피가 30여장 정도 날아가서 분리되는 것과 달리 벌컨포의 탄피는 쏘자마자 곧바로 분리되어 옆으로 사출된다는 것이다. 설계도에 자세히 설명을 해놨으니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니라. 이렇게 제작을 하면 둥근 구슬을 총알로 사용하는 서역의 카빈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을 보일 것이니라."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소인도 이제 제법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장갑차와 벌컨포가 어떤 원리를 이용하는지, 어떤 위력을 보일지는 대충 가늠이 됩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엇이 궁금하더냐?"
"그렇게 총기 개발을 반대하시던 폐하께서 왜 마음을 바꾸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서역은 총기뿐만이 아니라 대고려 제국처럼 이미 대포를 제작해서 보유하고 있다. 기존의 무기로는 그들을 손쉽게 찍어누를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대고려 제국군의 피해 또한 막대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뜻이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둬서는 곤란하지. 또한 그들은 광신도이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카빈 소총을 들고서 끝도 없이 덤벼들 것이야. 막상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소모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죽어서 자신들이 믿는 신의 곁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죽여줘야지. 그리고 짐이 설계한 벌컨포는 일반인들이 손쉽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몇 가지 안전장치를 해두었느니라. 백성들의 손에 들어가 대량 살상이 이루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야."
말을 하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어차피 마지막 전쟁이기도 하고 말이야. 서역 정벌만 끝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점령은 식은 죽 먹기다. 그뿐만 아니라 총기 개발에 따른 대적자 탄생도 없을 것이라는 확약도 이미 받았고 말이야. 내가 먼저 총기 시대의 문을 연 것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폐하. 근데... 여기 적혀있기를 최종 목표가 분당 3천 발 이상을 발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탄환을 발사하면 대포보다 얇은 두께를 가진 총신이 과열될 것입니다. 이렇게 얇은 총신으로 견딜 수 있겠습니까?"
"괜찮아. 벌컨포 자체가 6개의 총신이 고속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높아서 그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설사 총신이 좀 과열된다고 하여도 어지간한 경우에는 장갑차에 실어놓은 총알이 더 빨리 떨어질 것이야. 그대는 짐이 건네준 설계도대로 충실히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서역 정벌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최무선에게 장갑차와 벌컨포의 제작을 명령한 왕기가 연구소를 나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고려 제국 인도령를 향해서 말이다.
1346 4월 3일
[인도의 델리]
왕기가 오래간만에 재회를 한 무지와 무장 그리고 새로운 코란 제작을 위해 인도에 남아있던 목은 이색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인도를 통치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는 없느냐?"
왕기의 질문에 무지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폐하. 처음에는 제법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이 인도의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 때문이었지요. 이렇게까지 뿌리 깊게 계급 제도가 박혀 있는 나라는 처음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많이 해결이 된 상태이옵니다."
"어떻게 해결을 하였느냐?"
"폐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관용을 베풀지 않고 철저하게 피를 보는 방식으로 다스렸지요. 계급을 이용하여 부당한 일을 저지른 자 역시 계급에 따른 처벌을 받도록 말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이유를 불문하고 목을 쳤습니다. 평민들인 바이샤는 죄질 여하에 따라 곤장을 때리거나 벌금을 물렸고, 노예와 천민인 수드라는 처벌 자체를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계속 다스렸더니 요즘 인도에서는 '대고려 제국 인도령에서 사고를 치고도 살아남으려면 계급이 낮을수록 더 유리하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에 속한 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사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다스리고 있구나. 내가 믿는 무지다워. 고생이 많았다."
"저보다는 무장이 더 고생했지요. 저야 명령만 내리면 그만이지만 무장은 철갑 기병들을 이끌고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형 집행을 해야만 했으니까요. 페하. 인도령에 있는 철갑 기병들이 많이들 지쳐있고 힘들어합니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제2함대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건조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니까. 가을이 되기 전에 건조가 끝날 것이야. 그럼 짐이 임무 교대를 해주마. 그건 그렇고... 그대와 의논을 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느니라."
"저도 정보를 좀 입수한 것이 있지요. 서역 정벌 때문입니까?"
"그러하다. 짐에게도 계획이 서있지만 그대의 심중이 궁금해서 말이야. 오래간만에 손바닥에 적어볼까나?"
이윽고 두 사람이 손바닥에 뭔가를 적은 후 동시에 내밀었다.
- 양동 작전(해상 X).
- 육로를 이용한 양동 작전.
무지의 손바닥을 확인한 후 활짝 웃은 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짐과 생각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가 확인해 주었어. 어디 한번 그대의 계획이 뭔지 자세히 설명을 들어볼까?"
왕기의 말에 무지가 벽에 걸려있던 세계지도를 때와 바닥에 깔은 후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서역 정벌은 기본적으로 양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고려 제국이 상대해야 할 적이 이슬람교도와 가톨릭교도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