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50화 (150/171)
  •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10

    - 쐐애액...

    천하제일인이라는 왕기가 자신이 알고 있는 초식들 중에 가장 빠른 공격 수법인 학취습어(鶴嘴襲魚)를 시전하자 대기가 날카롭게 쪼개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오색찬란한 강기에 휩싸인 쌍검이 두터운 강철 벽이라도 단숨에 뚫고 들어갈 것처럼 강렬한 기세를 뿌리며 날아갔다. 제삼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더없이 멋들어진 수법이었지만 막상 그런 공격을 직접 받게 된 백팔나한진을 구성하고 있던 중년의 승려 얼굴에는 당혹감이 살짝 비쳤다. 하지만 눈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가 있는 것이 제법 성깔이 있어 보이는 중년의 승려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뒤로 물러나거나 몸을 피하지 않고 자신이 들고 있는 도를 힘차게 휘두르며 막아갔다.

    -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던 왕기의 찌르기가 막혔다. 그리고 계속 찌르고 들어가려는 왕기와 막아내려는 백팔나한진과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야. 108명의 내공을 한 명에게 모아준다는 것은 거짓이었어. 그랬다면 내가 아니라 내공을 건네받은 그자부터 몸이 터져 죽었을 테지. 한 명당 30년의 내공만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 합치면 3천 년이 넘어가니까. 물경 50갑자가 넘어간다고. 그걸 버틸 수 있는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명의 승려가 내가 전력을 다한 공격을 이런 식으로 손쉽게 막아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렇다면...'

    왕기의 생각이 깊어지는 그 순간 중년의 승려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두 명의 승려가 도를 휘둘러 검을 들고 있는 왕기의 팔을 자르려고 들었다. 도저히 못 이기겠다는 듯 왕기가 검을 거두며 뒤로 슬쩍 몸을 빼자 백팔나한진을 구성하고 있던 승려들이 발을 재게 놀리며 왕기를 에워싸려고 들었다.

    - 쉬쉬쉬슁...

    백팔나한진에 완전히 갇혀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직감한 왕기가 칠성둔형을 전개하며 순간적으로 뒤로 멀찌감치 빠져버렸다. 그러고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인이 가장 장기로 삼는 것이 경공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로군. 그런 느려터진 발걸음으로는 절대 날 가둘 수 없다. 하지만... 칭찬을 해주지. 본인이 맘먹고 한 공격을 2초나 막아낸 자는 하북 팽가의 도왕 이후에 최초이니까."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말을 하는 도중에도 왕기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백팔나한진의 원리 자체는 잘 모른다. 진법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기본적인 이론은 대충 알 것 같군. 이건 모두 동류(同流)의 내공을 아니 완전히 똑같은 내공 심법을 익힌 자들이 모여서 전개하는 진법이야. 정밀하게 설계된 108개의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같은 성질을 지닌 기가 서로 공조(公助)를 하여 기의 증폭(增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공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기가 침입한 곳을 향해 기의 증폭이 발생하여 다른 기를 배척하는 것을 이용하는 진법인 것이야. 누가 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하군. 이걸 깰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톱니바퀴를 하나라도 고장 내면 되는 것이지. 정밀한 기계일수록 아주 사고한 고장으로 멈춰버리니까. 그럴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얄팍한 속임수가 두 번씩이나 통할 만큼 만만한 세상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백팔나한진 따위로는 본 검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지."

    왕기가 남은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리며 다시 백팔나한진을 향해 돌격할 자세를 취하며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고는 정해진 규칙에 의해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백팔나한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찾았다!'

    왕기의 눈에 좀 전에 공격을 받았던 중년의 승려가 들어오자 땅을 힘차게 박차며 날아갔다. 그러자 중년의 승려가 자신을 향해 다시 찔러들어오는 왕기를 보며 욕을 하며 도를 또다시 힘차게 휘둘렀다.

    "이 새끼는 왜 자꾸 나만 공격을..."

    - 쾅!

    또다시 폭음이 터져 나왔고 왕기의 검이 다시 막혔다. 그리고 양옆에서 두 명의 승려가 튀어나와 왕기의 팔을 향해 도를 휘둘러 왔다.

    '역시 같은 수법이로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돼.'

    마음속으로 명경지수를 떠올린 왕기가 찔러간 검을 거두지 않고 계속 밀어갔다.

    - 숭덩. 숭덩.

    뭔가가 칼날에 베이는 소리와 함께 왕기의 양팔이 양옆에서 튀어나온 두 승려의 도에 의해 팔꿈치 아래가 잘려버렸고, 잘린 팔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팔이 잘리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참으며 왕기가 끊임없이 명경지수를 떠올릴 때 천하제일인의 팔을 잘라버렸다는 기쁨에 두 명의 승려가 도를 위로 치켜들며 힘차게 외쳤다.

    - 고려검황의 양팔을 잘랐다.

    - 마침내 고려검황을 잡았어.

    단 한순간의 방심이었고 정밀하게 움직이던 톱니바퀴가 작동을 잠시 멈추는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강력한 자기장이 걸린 상태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왕기의 검이 둥실 떠오르며 잘린 팔을 마치 꼬리처럼 뒤에 매단 채 두 승려의 심장 부위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 퍽. 퍽.

    두 승려의 심장을 단숨에 꿰뚫고 지나간 왕기의 잘린 팔이 부메랑처럼 다시 되돌아오자 왕기가 속으로 빠르게 뇌까렸다.

    [이자나미에게 전달해. 팔을 다시 붙여달라고 말이야.]

    사람의 몸통을 뚫고 나와 피로 칠갑이 되어 있는 왕기의 팔이 다시 감쪽같이 붙여버렸다. 그러자 왕기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팔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전에 목이 잘린 상령이 부활하는 것을 보며 재생력이나 생명력과 관련된 능력인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을 했군. 이건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 회귀와 관련된 능력이다. 팔이 붙어있던 그 순간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이야. 물론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겠지만...'

    그 순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을 지켜본 자비 선사가 노호를 터뜨렸다.

    "천하의 악적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구나! 명색이 천하제일인이라는 자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냐? 그대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야. 그대가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던 천마 교주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휙. 휙...

    팔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휘둘러보던 왕기가 무심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본인은 천벌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 상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을 테지. 아까 그대가 말했던 것 같은데... 문답무용이라고 말이오. 피차일반이외다. 그럼 어디 한번 다시 붙어봅시다."

    - 쾅. 쾅. 쾅...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판을 향해 날아가는 다트(Dart)처럼 왕기의 신형이 계속해서 백팔나한진으로 날아가 부딪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이미 이빨이 두 개나 빠진 백팔나한진에서 한두 명씩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십여 차례가 지나자 힘이 충분히 빠졌다는 것을 감지한 왕기가 백팔나한진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살육을 시작했다. 잠시 후 백팔나한진이 모래성처럼 붕괴되며 백팔나한진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승려들이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뒤덮었다.

    - 스윽.

    마치 찰흙으로 만든 장난감의 목을 자르듯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자비 대사의 목을 가볍게 자른 왕기가 핏줄기를 내뿜으며 위로 솟구치려는 자비 대사의 머리통을 잡아채어 하늘 높이 치켜들고서는 핏물이 흥건한 시체 구덩이 속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전멸했다. 누가 또 감히 본인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냐? 그런 자가 있다면 당장 썩 나서거라. 천하제일인의 손에 목이 잘리는 영광을 내려줄 테니까 말이다.

    등장하자마자 칠성검진과 매화검진 그리고 소림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백팔나한진마저 단숨에 박살 내버린 왕기의 믿기지 않는 무력에 4천에 가까운 무림인들 사이에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러자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대고려 제국의 황제인 본인이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겠노라. 지금부터 일각의 시간을 줄 것이야. 무림 격언에 '군자복구 십년불만(君子復仇 十年不晩 : 군자가 복수하는 데는 10년이라는 세월도 늦지 않다)'이라고 하였다. 부족함을 아는 자는 훗날을 기약하고 그만 물러가거라. 물러가는 자는 그 뒤를 쫓지도 않을 것이고, 대고려 제국이 원나라를 정벌한 후에도 과거를 모두 불문에 부쳐 원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처럼 자유로운 강호 활동을 보장할 것이니라. 하지만 일각 후에도 남아있는 자가 있다면... 짐이 직접 그자의 목을 칠 것이고, 원나라를 정벌한 후 그자가 소속되어 있는 문파를 찾아가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멸문시킬 것이야. 짐의 성정은 익히 들어서 다들 잘 알 것이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말이다.

    - 우르르르...

    운집해 있던 무림인들이 썰물이 밀려가듯 일제히 물러가자 왕기가 10만의 기마병으로 인의 장벽을 쳐놓은 관도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소리쳤다.

    "원나라 황제에게 짐의 말을 전달하거라. 내일 대고려 제국군이 황하를 건너면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자고 말이야. 항복 협상은 그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말을 끝마친 왕기가 상령이 처치하고 있는 포병대원들 쪽으로 몸을 날려 본격적으로 포병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1346년 3월 18일

    [황하 강변 북쪽에 위치한 여양]

    왕기가 작전 본부에서 공병대장에게 명을 내리고 있었다.

    "오늘 있을 황하 도강 작전을 자세하게 기술하거라. 그러라고 공책과 연필을 준 것이니까. 그런한 기록들이 모여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른 곳에서 도강을 할 때 오늘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잠시 후 황하 강변에 나간 왕기가 고무보트를 타고 부표를 설치하고 있는 공병대원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공병대장에게 물었다.

    "적의 포격은 없느냐?"

    "네. 폐하. 아직은 없사옵니다."

    "다행이로구나. 어젯밤 최대한 꼼꼼하게 처리하긴 했지만 혹시라도 포격이 있으면 곧바로 대원들을 물리거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소인에게 한 가지 건의사항이 있사옵니다."

    "뭔가? 부담 없이 말해보거라."

    "폐하께서 개발하신 고무보트는 아주 대단한 물건입니다. 무게가 가볍고 보관 또한 용이해서 짐차에 얼마든지 싣고 다닐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매번 이번처럼 폐하께서 도강 작전을 위해 적들을 정리해 주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고무보트에 박격포나 대포 같은 무기를 설치해서 도강을 방해하는 적들을 공격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그러한 무기들은 포탄까지 합하면 무게가 제법 나가게 된다. 그럼 가볍다는 고무보트의 이점이 사라져버려. 그리고 대체로 그런 무기들은 지지를 하기 위한 단단한 바닥이 필요해. 고무보트에는 적합하지가 않아."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시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바닥이 필요 없는 무기를 말입니다."

    공병대장의 말에 왕기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짐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니라. 바란다고 해서 모든 걸 뚝딱 다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현재로서는 새로운 무기를 제작할 마음이 없다. 지금까지 개발한 무기들로도 충분해."

    "소인이 장인 출신이고 직책이 공병대장이다 보니 최무선 장관과 비교적 친하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부교를 개발할 때 소인도 기술 개발에 참가를 했었고요. 따라서 최장괸으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총이라는 혁신적인 서역 무기를 보시고도 제작을 금지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최장관의 말처럼 일반인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를 개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 폐하께서 안 계신다고 대고려 제국 병사들이 도강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최무선에 이어 또다시 같은 이야기를 듣자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짐이 고민을 해보도록 하지."

    잠시 후 황하를 건너가기 위한 부교가 완공되자 탕크를 앞장세운 대고려 제국군과 이민족 연합군들이 도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도 쪽을 지키고 있던 십만의 원나라 기마병을 단 2시진만에 박살 내고 원나라 황제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쳐들어가 황제를 산 채로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원나라 정벌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고, 동아시아 전체가 왕기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남은 것은 중국 대륙을 갈가리 찢어서 이민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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