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49화 (149/171)
  •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9

    [황하 상공]

    넘실거리는 싯누런 황하 상공을 자기부상신법을 이용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고 있던 왕기가 자신의 바로 뒤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달려드는 벌떼라도 쫓듯 미친 듯이 양팔을 쉴 새 없이 휘젓던 이전과 달리 가끔씩 양팔의 소매를 힘차게 휘두르며 바짝 쫓아오고 있는 상령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비천운룡신법(飛天雲龍身法)을 완전히 대성했구나. 능숙한 화경의 경지야. 하지만 조심하여야만 한다. 짐은 이깟 원나라 정벌보다 그대가 더 소중하니까 말이야.'

    그러자 상령이 태연히 허공을 날아가면서 전음으로 대꾸했다.

    [소관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소관보다 폐하께서 더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고집불통이며 서로 힘을 합치지 않기로 유명한 무림인들이 4천이나 한자리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천하제일인이자 대고려 제국의 황제이신 폐하를 처치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며, 원나라가 고려의 정보를 지속적을 캐내었다면 불사의 존재인 폐하를 어찌 처치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정벌 때 대고려 제국이 불사의 사무라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대단한 비밀도 아니니까요.]

    '걱정 말거라. 잊었느냐? 천하에서 경공으로 짐을 따라잡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여차하면 도망을 칠 테니 그대도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몸을 빼거라. 짐이 무림인들을 상대할 테니 그동안 그대는 대포를 처리하도록 하고. 대포를 다 박살 내든지 아니면 대포를 운영하는 대포병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면 될 것이야. 단 하루 만에 새로운 대포병들을 양성할 수는 없을 테니까.'

    전음을 나누는 사이 어느덧 황하의 남쪽 강변이 가까워지자 상대방의 진형이 훤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밤이 늦은 시각에도 여기저기서 힘차게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힘들더라도 다들 열심히 삽질을 하란 말이다.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적의 포격에 대비해 참호(塹壕)를 빨리 파서 대포를 보호해야만 한다.

    - 대형 화톳불을 절대 꺼트리지 말아라.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고려검황의 성격상 언제 이곳으로 넘어올지 모른다. 검황을 처치하는 즉시 사체를 대형 화톳불 속에 집어던져서 재로 만들어야 죽일 수 있단 말이다.

    - 각자 따로 놀지 말고 진법 대형을 정확히 갖추란 말이다. 혼자서는 고려 검황을 절대로 상대할 수가 없다. 상대는 천하제일인이며 스물도 안되는 나이에 화경에 오른 무공의 천재이다. 하지만 한 명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각 문파의 진법을 이용한 차륜진(車輪陣)진만이 승산이 있단 말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우뚝.

    귀청을 때리는 뜻밖의 외침들에 황하 상공에 멈춰 선 왕기가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리며 상령에게 다시 전음을 보내었다.

    '그대의 말처럼 상대방도 제법 준비를 단단히 한 듯하다. 참호에 밀어 넣은 대포를 일일이 다 부수기보다는 포병들을 처치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야. 친절하게도 앞 가슴에 포(抱)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으니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절대 죽지 말거라. 이건 짐의 명령이다. 짐이 먼저 선공을 하도록 하지.'

    그 순간 오색찬란한 강기에 휩싸여 있던 칠칠이와 삼삼이가 왕기의 손을 벗어나 빔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빛의 꼬리를 길게 끌며 지상으로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 쓔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강기에 휩싸인 쌍검이 포병들의 몸통을 꿰뚫고 지나가기 시작하자 적진에서 대혼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 적의 습격이다!

    - 이건 고려검황의 무쌍쌍검(無雙雙劍)이야.

    - 고려 검황이 나타났다. 다들 자신들의 문파에 빨리 알려라.

    무인지경으로 포병들을 학살하고 있던 강기에 휩싸인 칠칠이가 막힌 것은 태극 문양이 그려진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온 일곱 검수들의 합격에 의해서였다.

    "칠검합벽(七劍合壁)!"

    - 깡!

    일곱이 휘두른 검이 마치 한 사람이 휘두른 듯 동시에 칠칠이에 부딪치며 우렁찬 단 한 번의 쇳소리와 함께 칠칠이가 튕겨 나오자 왕기가 다급히 칠칠이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때 삼삼이의 돌격을 막아내는 또 하나의 검진이 있었다. 매화 문양이 새겨진 검을 든 24명이 강강술래를 돌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한밤중에 눈처럼 새하얀 매화를 피어 올리며 삼삼이를 차례차례 가격하기 시작했다.

    "매화동심(梅花凍心)

    - 땅. 따당. 따다당...

    마치 편경을 두드리듯 연속되는 쇳소리와 함께 삼삼이마저 막히자 지켜보고 있던 상령이 다급히 전음을 보내었다.

    '폐하. 무당파의 칠성검진과 화산파의 매화검진입니다. 모든 문파에서 최고수들로 진법을 구성해서 나온 것 같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적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적진을 향해 무쇠로 만든 추처럼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 콰앙!

    천둥이 터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땅바닥에 큼지막한 구멍이 파이고 왕기의 주변을 휘감는 선풍에 휘말린 흙먼지들이 하늘로 말려 올라갈 때였다.

    '속전속결이다. 적들은 검진에 의한 차륜전을 펼칠 생각이야. 내가 가진 내공이 깊고 회복 또한 빠르다고 하지만 자고로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 오래 끌수록 이쪽이 불리해진다.'

    - 쉬이잉...

    공중부양선처럼 지상 위에서 살짝 떠있는 왕기의 신형이 질풍처럼 빠르게 칠성검진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고는 강기에 휩싸인 쌍검을 하늘 위로 올렸다 가볍게 내리쳤다.

    - 크윽. 큭. 크흐흑..

    갑작스레 들이닥친 정전기로 인해서 칠성검진을 구성하고 있던 초로의 검수들이 일제히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찰나의 순간 왕기의 쌍검이 칠성검진을 향해 짓쳐들었다.

    - 깡. 까가강...

    마치 바짝 마른 수수깡이 부러지듯 일곱 개의 검이 부러졌고 일곱 개의 목이 잘려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 무당파의 장로들로 이루어진 칠성검진이 단 한 수에 박살 나다니.

    - 역시 천하제일인 답구나. 무림 역사상 이런 경지에 오른 자가 있었나?

    4천에 가까운 무림인들이 일시에 얼어붙으며 공포에 사로잡힐 때 화산파의 매화검진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속지 마라. 간단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야. 고려검황은 전기를 다룰 줄 안다. 하지만 미리 내공을 끌어올리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네놈들이 어디 한번 증명해 보..거...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호처럼 몸을 날리자 왕기의 목소리가 도플러 효과에 의해 점점 멀어졌고, 그의 몸이 날아간 곳은 매화검진이 아니라 병사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가득 담아놓은 청동 항아리였다.

    300근은 거뜬히 넘어가 보이는 청동 항아리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집어든 왕기가 방향을 틀어 매화검진 쪽으로 날아갔다.

    "이번 공격을 버티면 네놈의 말을 인정해 주지."

    - 촤아악.

    날아가며 청동 항아리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두르자 빠르게 쏟아져 나온 물들이 자그마한 물방울로 잘게 부서지며 매화검진을 향해 덮쳐갔고, 그런 안개처럼 뿌연 물방울 무리와 함께 왕기의 신형이 쇄도해 갔다.

    "매... 매화합심(梅花合心)!"

    다급히 외치는 음성과 함께 매화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매화를 피어 올리려고 할 때 왕기의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화만발(梅花滿發)"

    그리고 순식간에 피어난 매화 백여 송이가 매화검진을 직격해갔다. 하지만 24명의 매화검수로 이루어진 매화검진에서는 단 하나의 매화도 피어오르지 못했다.

    - 퍼버버벅...

    연속되는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두들겨 맞아 몸통에 구멍이 나고 머리통이 박살 난 이십사 매화검수들이 일제히 땅바닥으로 쓰러질 때 검향지경의 경지에서만 발생된다는 콧속으로 스며드는 상쾌한 오존의 향을 들이마시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매화검법의 매화는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매화검법의 약점은 습기이지. 수증기가 공기의 전도도를 높여 검날에 축적된 전하가 공기중으로 쉽게 흘러 나가게 하기 때문이야. 정전기가 자주 발생하는 겨울에도 비가 오면 정전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물론 나 정도 경지가 되면 별다른 상관이 없지만...'

    - 크악. 컥. 케헥...

    등장한지 반각도 채 되지 않아 칠성검진과 매화검진을 연달아 박살 낸 왕기가 양 떼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적의 포병들을 손쉽게 죽여나가고 있는 상령을 힐끗 쳐다본 다음 검을 고쳐잡으며 다시 뇌까렸다.

    '무림 고수들이 4천이나 모였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들에 불과해. 결국 핵심은 태산북두인 소림과 무당 그리고 검의 조종이라고 불리는 화산이다. 칠성검진과 매화검진이 박살 났으니 남은 건...'

    그 순간 어디선가 세찬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귀에 익은 목소리로 외치는 우렁찬 불호가 울려 퍼졌다.

    "아미타불. 소림사의 제자들은 천하의 악적(惡敵)을 처치하기 위해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펼치거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왕기의 시선이 불호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가자 건장한 승려들로 이루어진 그 유명한 백팔나한진과 그 중심에 쇠지팡이를 들고 우뚝 서있는 노승이 보였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소림사의 방장인 자비대사와 처음 보는 백팔나한진을 자세히 살펴보며 왕기가 중얼거렸다.

    "어허... 소림사의 백팔나한진은 봉(棒)을 이용해 펼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같이 날이 시퍼런 도(刀)를 들고 있구려? 이래서야 부처의 자비를 앞세우는 소림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왕기의 물음에 자비대사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봉을 들고 백팔나한진을 펼치는 것은 적을 제압하여 계도하기 위함이외다. 하지만 그대는 천하의 악적이니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만 하겠소."

    "그렇소? 쉽지는 않을 텐데?"

    "백팔나한진은 고매한 진법의 원리에 의해 그대를 상대하는 한 사람에게 백팔 명의 내공이 온전하게 전달되는 것이오. 천하의 고려검황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오."

    "자비대사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구려. 기는 에너지요.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전이할 때에는 빛과 소리, 열 등으로 중간에 로스가 발생하기 마련이라오. 백팔 명의 내공이 한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외다. 물론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어떤 고립된 물리계의 에너지는 그 형태가 비록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 에너지의 총량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전의 법칙에 의해서 에너지의 총량 자체야 똑같겠지만..."

    왕기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뜬 자비대사가 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무공 이론이란 말이오?"

    "설명해 줘봐야 모를 것이오. 억울하면 윤회하여 공돌이로 다시 태어나시든가. 근데... 소림에 언제 이렇게 내공이 뛰어난 고수가 많았단 말이오?"

    "악적인 그대를 처치하기 위해 원나라 황실에서 아낌없이 약초를 내려주셨소. 절대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백팔나한진만한 게 없으니까."

    "거참... 말끝마다 악적 악적 하는데 듣기가 영 거북하구려. 본인이 소림에 베푼 것이 적지 않을 텐데 말이오."

    왕기가 백팔나한진 전체를 휘감으며 바닥의 흙먼지를 하늘로 끊임없이 솟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거대한 선풍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백팔나한진에 반야심공의 구결이 적용된 모양인데... 그것을 본인이 풀어서 소림에 알려줬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구려?"

    "악적의 말이 맞소. 혜능께서는 단순히 반야심공만을 창안하신 게 아니오. 백팔나한진에 그 구결을 적용시키는 방법 또한 남겨놓으셨소. 지금 보는 백팔나한진은 소림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한진이오. 그리고... 그대가 천마 교주를 처치할 때 공심 사조를 기습하여 죽였다는 것을 소림에서 영원히 모를 것이라 생각하시오? 문답무용(問答無用)! 백팔나한진은 공심 사조와 무당의 태청진인(太淸眞人)을 비겁하게 기습하여 죽인 천하의 악적을 지금 즉시 처단하거라."

    - 아미타불!

    108명이 동시에 불호를 외치며 백팔나한진을 본격적으로 시전하자 거대한 선풍이 더욱 강력해지며 나한진에서 강력한 기세가 솟구쳐 올랐다.

    "좋소. 어디 한번 붙어봅시다."

    왕기가 누가 잡아당기듯 뒤로 쭉 미끄러지더니 자기부상신법을 극도로 끌어올려 백팔나한진을 향해 총알처럼 쏘아져나갔다. 그러고는 쌍검을 휘둘러 승려 한 명을 힘차게 베어갔다. 그러자 이름 모를 승려 역시 도를 휘둘러 맞받아쳤다.

    - 콰과광

    왕기의 쌍검과 백팔나한진을 구성하고 있는 한 승려의 도가 맞부딪치자 대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왕기의 신형이 가랑잎처럼 튕겨 나와 선풍에 휘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급히 몸을 추른린 왕기가 황급히 다시 거리를 벌리며 뇌까렸다.

    '이거 쉽지가 않군. 진법에서 발생되는 거대하고 강력한 선풍이 검의 진로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말로 백팔 명의 내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듯해. 이름도 모르는 소림의 일개 무승(武僧)이 전력을 기울인 나의 참격을 받아내다니... 하지만 백팔나한진만 깨부수면 황하를 손쉽게 도강할 수가 있다. 그럼 원나라 정벌은 끝난 거나 다름없어. 소림은 중원 무림의 근본이며 얼굴이다. 소림이 자랑하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백팔나한진만 박살 내면 중화라는 헛된 자부심 따위는 산산이 깨져나갈 것이야.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왕기가 다시 백팔나한진을 향해 재차 돌격을 감행했다.

    "하아압!"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리는지 왕기가 기합을 내지르며 백팔나한진을 향해 강기로 휘감긴 칠칠이와 삼삼이를 베기였던 이전과 달리 찌르기 형태로 힘차게 무찔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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