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48화 (148/171)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8

[산해관 정문]

- 쿠콰앙...

왕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삽차와 짐차가 산해관 앞쪽에 쌓여진 토성을 순식간에 치워내자 십여 대의 땅크에서 발사된 포탄이 산해관 정문을 단박에 박살 내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공병대원들이 혜자를 건너기 위한 부교를 빠르게 설치했다. 부교의 설치가 끝나자 왕기가 손을 높이 들은 후 앞쪽으로 힘차게 내지르며 외쳤다.

- 전군 돌격!

뒤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40만이 넘어가는 여진과 거란 그리고 사무라이 연합군들이 산해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왕기가 뒤에 시립해 있는 상령을 보며 말했다.

"공병대원들에게 전해라. 산해관의 전투가 끝나기 전에 챙길 수 있는 최대한의 철판과 대포를 짐차에 실으라고 말이야. 어지간한 재물보다 잘 정련된 쇠와 구리가 고려에 더 필요하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런 후 그대는 산해관을 뛰어넘어 뒤쪽으로 와서 짐과 함께 철저하게 감시를 실시한다. 산해관을 빠져나가는 자가 있는지를 말이야."

"혹시 대도로 가는 전령을 차단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지금쯤이면 산해관의 책임자가 산해관이 뚫렸고 여진과 거란의 40만이 넘는 기마병들이 원나라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준비시키고 있을 것이야. 짐이 고려에서 보병을 일절 데리고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나? 원나라 정벌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서이다. 이번 전쟁은 한마디로 말해 속도전이라고. 원나라 정벌을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대도로 진격하여 원나라 황제와 그 가족들을 산 채로 사로잡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해관이 뚫렸다는 소식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만 해. 전령을 막지 못하면 황제와 그 가족들이 그들의 근거지인 대초원으로 도망을 칠 것이야. 카라코롬으로 말이다. 그럼 일이 복잡해지고 흘려야 하는 피가 걷잡을 수없이 많아지게 된다."

용건이 끝났다는 듯 하늘로 솟아오르는 왕기를 보며 상령이 중얼거렸다.

"폐하께서도 인간이시구나..."

산해관을 뛰어넘기 위해 하늘을 미끄러지고 있던 왕기가 상령의 중얼거림을 듣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령이 아무 근거도 없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어. 지금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뜻 같은데. 그게 뭐지?'

잠시 후 산해관 뒤쪽 상공에 떠있는 왕기의 곁으로 상령이 날아왔다. 화경에 이른 고수답게 왕기 옆에 둥실 떠있는 상령이 입을 열었다.

"폐하. 산해관 내부는 금방 정리가 될 것입니다. 지키고 있는 병력이 8천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사무라이들만으로도 정리가 가능한 숫자이고 보시다시피 여진과 거란 병력들은 내부가 사람들로 꽉 차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산해관을 빠져나가는 전령을 발견하셨습니까?"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대는 그럴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네. 폐하. 폐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잖습니까? 인간은 본디 욕심이 많은 족속이라 수많은 죄를 저지른다고 하시면서 그러한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랬지. 짐을 보고 다들 신의 아들이니 뭐니 하지만 그대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짐 또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짐도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짐이 정복 전쟁을 연이어 벌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짐의 백성들과 대고려 제국이 보다 잘 되길 바라는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소관이 어찌 폐하의 그런 마음을 모르겠사옵니까? 일전에 폐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폐하께서 개발하신 수많은 신기술과 그와 관련된 개발품들을 욕심 많은 사람들이 복제하려고 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당장 원나라의 대포만 해도 그렇지요. 일전에 항주에서 보았던 대포보다 기술력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크기가 대폭 줄었고, 사정거리 또한 이전보다 늘어났지요. 그들이 참고한 것은 당연히..."

"짐이 개발한 대포이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대포를 개발하고 제작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력들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재물에 눈이 멀어 원나라에 비밀을 팔아먹지 않은 자가 없다는 보장이 없지요. 원나라가 대포만 개발했겠습니까?"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

"소관의 생각으로는 원나라에서 유선 통신 기술도 이미 훔쳐 갔을 것입니다. 특히 유선 통신 기술은 폐하께서 하북 팽가에 있을 때 개발한 기술이라 더욱 복제하기가 쉬웠을 테지요. 산해관과 대도 사이에 유선 통신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럼 전령이 필요가 없지요. 통신소가 촘촘히 깔려 있는 고려에서처럼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원나라의 황제가 산해관이 뚫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을 것이며, 병력의 규모나 대고려 제국군이 산해관을 뚫은 방법 등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아마도 페하의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것입니다."

상령의 말에 잠시 머리를 굴리던 왕기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야.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배척하려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의 단계조차 벗아나버리면 인간은 그것을 경외시 하려고 든다. 해와 달이나 신들처럼 말이야. 짐이 개발한 땅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야. 여진과 거란이 40만에 달하는 기병을 이끌고도 짐에게 꼼짝을 못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지. 그들 눈에는 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어차피 결론은 똑같다. 최대한 빨리 대도로 달려가 원나라 황제와 그 가족들을 사로잡아야만 해. 산해관이 정리되는 즉시 대도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간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제대로 없을 것이야. 그렇게 알고 출발 전에 준비를 철저히 시키도록."

"알겠사옵니다. 폐하."

1346년 3월 11일

[대도의 황성]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산해관을 단숨에 뚫은 40만의 기마병과 150대의 땅크 군단과 그 뒤를 따르는 짐차들이 간간이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는 적들을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뚫고 지나가 불과 4일 만에 광활한 '동북 평원(東北平原 : 둥베이 평원)'을 통과한 후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에 도착해 있었다.

대도에 도착한 즉시 여진과 거란 그리고 사무라이들이 딴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예정대로 병력을 절반으로 쪼개 신강, 청해, 감숙성으로 보낸 왕기가 남은 병력으로 황성을 빈틈없이 에워싼 채 상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황궁에 남은 병사가 얼마 없는 것을 보니 그대의 말처럼 황제는 이미 도망을 친 것 같군.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황제에게 의탁한 무림의 고수들조차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야. 계약에 의해 그들은 죽을 때까지 황성을 떠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정보를 파악해 오거라. 대도에는 고려촌이 있으니 알아보기 힘들지는 않을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잠시 후 정보를 알아보고 온 상령이 왕기에게 보고를 올렸다.

"폐하. 원나라 황제가 양동 작전을 사용한 것 같사옵니다."

"양동 작전을?"

"네. 기황후와 황태자에게 원나라의 기마병 5만을 딸려보내 북쪽의 대초원으로 도피를 시켰습니다. 그러는 한편 황제 본인은 황궁에 있던 모든 무인들과 대포들을 운용하는 병사들을 모조리 이끌고 남하를 한 것 같습니다."

"어디로 남하를 했단 말인가?"

"황하를 건너 '관도(官渡 : 현재의 하남성 정주시 중무현 인근)'에 진을 친 다음 대포를 이용해 고려 군의 도강을 저지할 생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 무림에 방을 내렸다고 하옵니다. 고려군의 도강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문파에게는 무림에 걸려있는 모든 규제를 적용시키지 하겠다고 말입니다. 한족에 대한 차별 대우 역시 고려군이 물러나는 즉시 중지하겠다고 방을 내렸다고 하옵니다. 한족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취한 조치 같습니다."

"관도에 진을 친 다음 도강을 저지한다라. 황제가 삼국지연의의 관도대전을 재현이라도 할 생각인가 보군."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니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작전은 비슷할 수밖에 없지요. 원나라 황제는 고려군이 수군을 전혀 이끌고 오지 않았고, 여진과 거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대포로 도강만 막아내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심산인 것 같습니다. 대포의 포격이 계속되면 공병대원들이 황하에 부교를 깔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무림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지속적인 소모전을 유도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기황후와 황태자를 초원으로 보내어 원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한편 자신을 미끼로 내세워 고려군을 남쪽으로 유도한다. 나쁘지 않은 계책이로군. 지금 즉시 여진과 거란 병력들을 황하 북쪽에 있는 여양(黎陽)으로 보내거라. 황제가 관도대전을 원한다면 들어줘야지. 대고려 제국군은 황성으로 들어가 돈이 될만한 것들을 다 뜯어내 짐차에 싣도록 하고."

"알겠사옵니다. 폐하."

1346년 3월 12일

하루 내내 황궁에 있는 재물들을 모조리 짐차에 실은 대고려 제국군이 먼저 떠난 여진과 거란 연합군을 따라잡기 위해 남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1346년 3월 17일

[황하 강변 북쪽에 위치한 여양]

여양에 도착한 왕기가 작전본부에서 상령에게 물었다.

"적들의 규모는?"

"원나라 기마병 10만이 황제를 지키기 위해 황하 강변에 포진해 있고, 대포 2천문 가량이 이미 설치되어 있사옵니다. 또한 각지에서 모여든 무림인들 4천 명이 대포를 지키기 위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중입니다."

"병력의 숫자는 이쪽이 우위로군. 도강에 성공만 하면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겠어."

"하지만 폐하. 황하 강변을 자세히 살펴본 공병대장의 말로는 황하의 폭이 비교적 좁고 도강이 편한 곳은 백마(白馬)라는 곳이라고 합니다. 관도대전에서도 나왔던 곳이지요. 하지만 그 폭이 좁다고는 하나 무려 5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공병대가 부교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시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무림인들 4천은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니며 대부분이 각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대포를 처리하지 못하면 도강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군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

"땅크에서 쏜 포탄이 황하를 건너가지는 못할 텐데요? 고려에 있는 비행선을 부르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다. 며칠 전 그대가 했던 말처럼 원나라가 고려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비행선의 약점 역시 꿰뚫고 있을 것이야. 불화살 한방이면 대폭발을 일으키며 터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번 전쟁에 비행선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하지만 짐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한족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려줄 것이며, 그들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깡그리 부숴버릴 생각이다."

"무슨 방법으로 말입니까?"

입가에 미소를 가득 지은 왕기의 눈에서 과거 대공을 이루고 5명과 연속해서 비무를 치르던 그때처럼 살기가 물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중원 무림에는 제대로 된 화경의 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일비와 사왕이 이미 모두 죽은 상태이니까. 하지만 대고려 제국에는 진정한 화경에 들어선 고수가 무려 2명이나 있지. 짐과 상령 그대 말이야."

"설마... 폐하. 단신으로 황하를 건너가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왜 힘들게 단신으로 가나? 그대와 동행할 생각이니라. 경공으로 황하를 건널 자신은 있겠지?"

"소신도 충분히 가능은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4천 대 2는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기마병 10만도 버티고 있을 테고요."

"약한 소리는 그만두게.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와 난 목이 떨어져도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야. 오늘 밤 그대와 내가 황하를 건너가 최대한 빨리 무림인들을 정리한 후 적들의 대포를 박살 낼 것이야. 황하 남쪽에 진을 치고 있는 원나라 황제와 그 일행들에게 똑똑히 알려줄 것이니라. 대고려 제국에게 덤비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말이야."

양자강에서 유래된 강(江)이란 한자는 본디 수(水)와 공(工)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한자이다. 이는 양자강이 흐르며 내는 특유한 물소리인 '꿍꿍(工의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하지만 황하는 강물이 누런 것을 빼고는 특별한 물소리를 발산하지 않고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각 누런 강물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황하 상공을 왕기와 상령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새처럼 훨훨 날아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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