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47화 (147/171)
  •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7

    1346년 3월 7일

    [산해관 앞쪽의 평야]

    땅크와 각종 짐차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달리게 하여 두만강에서 단 일주일 만에 산해관까지 주파한 왕기가 노을이 짙게 깔려가는 시각 자신이 고려로 귀국할 때 보았던 과거 만리장성의 한 평범한 성문에 불과했던 모습과 달리 보수 공수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해관의 정경을 살펴보고 있었다.

    가운데에 사람과 마차 몇 대가 동시에 넉넉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뚫려있던 거대한 아치형의 문은 마치 흙으로 토성을 쌓듯 산해관 입구부터 50m 가량 두껍께 매워져 있었고 그 사이에 사람 하나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좁은 소로만이 지그재그 형태로 뚫려 있어 마치 산중의 오솔길을 보는 듯했고, 높이가 14m에 이르던 만리장성의 외벽은 더욱 증축되어 30m는 족히 넘어 보였으며, 그러한 외벽은 온통 쇠로 된 철판으로 덮여있었다. 특히 마치 고층 아파트의 창문들처럼 철판 가운데 뽕뽕 뚫려 있는 네모형의 구멍마다 대포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상령이 '노룡두(老龍頭)'라고 불리는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과 연결된 동쪽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천혜의 요새로군요. 오른쪽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왼쪽은 산으로 완전히 가로막혀 있으니 말입니다. 산과 바다 사이의 관문이라... 산해관(山海關)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적절합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이 또한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뀐 탓이겠지. 본디 산해관이란 이름은 명나라 때의 명장이었던 서달(徐達)이란 자가 관문을 개축하고 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뚫기가 너무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라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명을 받은 만주족이 명나라 땅으로 들어가려고 여러 번 공략을 시도했지만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게 아니야. 한족 입장에서 민족의 배신자로 여겨지고 있는 '오삼계(吳三桂)'가 문을 열고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청나라는 세워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대고려 제국이 융성해짐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원나라가 긴급히 만리장성을 개축하고 보수를 하며 이름을 산해관이라고 지은 것이야.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겠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어차피 다 비슷하니 말이야.'

    그때 상령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함대가 없는 것이 정말 아쉽군요. 발해만(渤海灣)과 연결된 노룡두 쪽으로 함대를 진입시켰다면 해상에서의 일제 포격으로 저 정도 성벽쯤은 단숨에 부실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없는 것을 찾아서 무얼 하겠나? 1함대는 인도에 있고 건조 중인 2함대는 올해 말이나 겨우 건조가 끝날까 말까 한데 말이야. 그렇다고 원나라 정벌을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수는 없어. 그리고 그대가 땅크의 위력을 아직 몰라서 그러는 것이야. 짐과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날개 안정 분리 철갑탄'은 시대를 뛰어넘은 회심의 역작이라고. 극도로 뛰어난 관통력을 가지고 있지. 저 정도 두께의 철판쯤이야..."

    왕기가 발해만의 바닷물을 끌어들여 산해관 장벽의 북쪽과 동쪽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혜자와 그 앞쪽에 밭고랑처럼 패어 있는 평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산해관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을 뚫으면서 밭고랑처럼 패어 있는 곳을 지나 흙으로 된 두터운 장벽을 다 파낸 후 물이 흐르는 혜자를 건너 야만 가능하다는 뜻이로군. 대고려 제국군이 아니라면 공략할 엄두가 안 날 정도인 곳이야. 하지만 이 산해관을 돌파해야만 땅크가 원나라 땅으로 진입할 수 있다."

    "폐하. 밭고랑처럼 패어있는 곳을 잘 보시면 제법 넓은 땅에 집중적으로 둥근 구덩이들이 파여 있는 곳이 보일 것입니다. 저기가 아마도..."

    "대포의 최대 사정거리가 닿는 곳일 테지. 시험 포격을 하느라 흙이 저런 식으로 파였을 테니까. 그리고 그 면적이 넓은 이유는 대포가 설치된 높이가 각각 달라서 그런 것일 거야"

    "소관의 예상보다 사거리가 훨씬 더 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거야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쏘니까 그런 것이지. 하지만 문제없느니라. 짐이 오늘 직접 보여줄 것이야. 원나라가 재물을 물 쓰듯 하며 죽어라 개발한 대포 따위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 무선 통신 장치를 울러매고 있던 상령이 마침내 기다리던 전통이 도착했다는 듯 반가운 얼굴로 외쳤다.

    "폐하. 여진과 거란 연합군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방금 전 막사 인근에 도착했다고 하옵니다."

    "왜 이렇게 늦은 것이라고 하더냐?"

    "일본의 사무라이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진과 거란은 모두 자신들의 말을 끌고 왔지만 포로로 잡혀와 고려에서 농사를 짓던 사무라이들에게는 보유하고 있는 말이 없으니까요. 그들을 말에 같이 태워 오느라 늦은 것 같습니다."

    상령의 보고에 왕기가 어느새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뭇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명했다.

    "오늘 밤중으로 산해관을 돌파할 것이니 다들 저녁을 든든히 먹고 작전 본부로 모이라고 해라. 그들도 산해관의 상태가 어떤지 좀 살펴봐야 할 테니까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대고려 제국의 작전 본부]

    작전 본부에서 왕기가 여진과 거란의 부족장들과 사무라이들을 대표하는 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얼굴들이 다들 왜 그 모양이냐?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구나."

    그러자 사색이 되어 있던 여진의 대표인 여민수가 즉답했다.

    "폐하. 여진과 거란의 기마병들에게 이곳은 사지(死地) 중에 사지입니다. 밤이 깊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저렇게 울퉁불퉁한 땅은 말들이 제대로 속력을 낼 수가 없습니다. 빠르게 달리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 말의 발목이 부러질 테니까요. 거기에 천문 가까이 되는 대포의 포격을 뚫으면서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희생을 무릅쓰고 산해관 가까이 다가가봐야 흙으로 쌓아만든 토성 사이의 좁은 소로를 다시 통과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또 혜자를 건너 야만 하지요. 산해관을 뚫다가 여기에 있는 모든 병력이 다 희생될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왕기가 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짐은 너희 민족들에게 따뜻하고 풍요한 중원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게 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것이 공짜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느냐? 그러한 것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하지만... 걱정 말거라. 산해관은 대고려 제국군이 뚫어줄 테니까 말이야. 너희들이 할 일은 뻥 뚫린 산해관 안으로 진격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대도까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야. 대고려 제국군이 앞장서서 길을 열면 너희들이 원나라 군사들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환해진 여민수가 물었다.

    "폐하. 그렇다면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에 있는 황성(皇城)도 저희 여진족과 거란족이 먼저 입성하는 것입니까?"

    욕심이 그득한 눈빛의 여민수를 보며 왕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보아하니 황성에서 노략질을 제대로 할 생각인가 본데...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라. 황성은 대고려 제국군만으로 점령할 테니까 말이야. 너희들은 대도에 도착하는 즉시 병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자신들의 나라가 세워질 신강, 청해, 감숙성으로 보내어 그 지역을 점령하고, 나머지 절반을 추슬러 대고려 제국군과 함께 강남으로 남하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너희들만의 힘으로 산해관을 뚫어보거라. 그럼 짐이 허락해 줄 테니까."

    왕기의 말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여민수가 답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입니다. 여진과 거란의 연합군은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 이번 전쟁의 주축은 대고려 제국군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일각 후 산해관 공략을 시작할 테니 다들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가 병사들을 잘 챙기도록."

    - 존명.

    힘차게 대답한 각 종족의 부족장들이 밖을 향해 우르르 몰려나가자 왕기가 덩그러니 작전 본부에 혼자 남아있는 상령을 보며 말했다.

    "상령. 이번 전쟁의 목적을 절대 잊지 말아라. 원나라 정벌을 꾀하는 한편 여진과 거란 그리고 일본과 한족 간에 씻을 수 없는 원한 관계를 맺게 하는 한편 그들의 정예 병력들을 축차적으로 소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고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후환이 없을 것이야. 짐의 수명이 무한정인 건 아니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근데... 여진과 거란 그리고 일본의 정예 병력을 지나치게 소진시키면 병력 숫자가 모자라 폐하께서 꿈꾸시고 계시는 서역 정벌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서역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그 숫자가 억이 훌쩍 넘을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짐이 이미 새로운 계획을 세워뒀으니까 말이야. 처음에는 바다를 이용하여 해양을 건너 서역을 정벌하고자 하였지. 그래서 적극적으로 함대를 건조하였는데... 얼마 전에 짐이 인도 정벌을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바다를 통해 원정을 가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한꺼번에 대규모의 병력과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것은 함대만 한 게 없지만 그래서는 전쟁이 너무 길어진다. 어쩌면 서역 정벌에 몇 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릴지도 몰라. 짐은 전쟁을 길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느니라. 그 정도로만 알고 있고 땅크 군단을 준비시키도록 해. 오늘 밤중으로 산해관을 돌파해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로 진격할 것이야."

    "존명!"

    [산해관 앞의 너른 평원]

    이제 곧 진격을 앞둔 땅크 군단에서 무선 통신이 빗발치고 있었다.

    - 간격을 최대한 벌려라. 적들이 포탄을 쏠 때 자유롭게 회피 기동을 할 수 있도록 땅크간의 간격을 충분히 넓히란 말이다.

    - 무서워하지 마라. 폐하께서 직접 장담하셨다. 원나라가 가지고 있는 대포로는 너희들이 타고 있는 땅크의 철판을 절대 뚫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명령에 따라 진격하면 되는 것이다.

    - 하지만 대포의 포탄에 적중되면 적지 않은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내장이 진탕 되고 뇌진탕이 올 수도 있을 것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대고려 제국의 최정예 병사이자 모두 내공을 지닌 벽력가의 무인들이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니라.

    - 혹시라도 땅크의 힘 보따리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무한궤도가 고장이 나면 그 자리에 바로 멈추거나 전장에서 최대한 빨리 이탈하거라. 너희들이 타고 있는 땅크는 고려청자 천 점보다 가격이 더 비싼 것들이야. 어떡하든 수리를 해서 다시 사용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 순간 가장 선두에 서있는 새빨간 땅크인 통신명 불새가 전 땅크에 무선 통신을 날렸다.

    - 여기는 불새. 여기는 불새. 모든 땅크병들에게 전달한다. 지금 이 순간 형광등을 켜고 짐의 뒤를 바짝 따라오도록. 발포 명령은 짐이 직접 내릴 것이니라.

    - 번쩍.

    - 뎅뎅뎅...

    그 순간 땅크의 앞쪽에 매몰되어 있던 형광등들이 자동차의 전조등처럼 일제히 켜지며 평원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크의 본격적인 돌격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는지 산해관에 있는 종탑에서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50대의 땅크가 굉음을 울리며 밭고랑처럼 울퉁불퉁한 평원을 평지처럼 내달리며 일제 돌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 크르릉...

    - 쿵. 쿠궁. 쿵...

    거친 엔진음과 함께 땅크의 무한궤도가 밭고랑을 거침없이 타고 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질 때 왕기의 무전이 뒤쪽에 포진하고 있는 박격포대에게 전달되었다.

    - 전 박격포대는 멈추라는 짐의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조명탄을 끊임없이 쏘아라. 땅크의 전조등만으로는 밤하늘을 날아오는 포탄을 볼 수가 없다.

    - 퍼버벙...

    박격포대에서 왕기의 명에 의해 대고려 제국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작한 조명탄을 쏘아 올리자 산해관 앞쪽의 너른 평원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해관에서의 본격적인 포격이 시작되었다.

    - 콰과과광...

    천문의 대포에서 쏘아진 포탄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오자 왕기가 탄 땅크는 더욱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150대의 땅크들은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돌파하기 위해 제각기 회피 기동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누런 흙먼지들이 상공으로 대량으로 치솟아 올라갔고 이곳저곳에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둥. 두둥...

    - 깡. 까가강...

    쇠로 된 둥그런 포탄이 바닥을 때리며 튕기는 둔중한 소리와 땅크의 철갑판을 때리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올 때 왕기의 무선이 전 땅크 군단에게 하달되었다.

    - 전군 포격 개시!

    그러자 포탄에 맞아도 멀쩡하게 달려가고 있던 땅크들에서 일제히 포격이 개시되었다.

    - 콰과광...

    150발의 포탄이 길이에 비해 탄자(彈子)의 지름을 최대한으로 줄여 속도와 관통력을 최대한 높인 날개 안정 분리 철갑탄답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산해관의 성벽으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침을 묻힌 손가락으로 창호지를 뚫듯 만리장성의 성벽을 도배하고 있는 철판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대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원나라가 재물을 물 쓰듯 쏟아부어 구축한 철웅성 같던 산해관의 외벽과 대포들이 그 한 번의 포격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쿠르르릉...

    잠시 후 연속되는 땅크의 포격을 이기지 못한 증축된 산해관의 높다란 장벽이 마치 높다란 빌딩이 무너지듯 힘없이 부서져 내리자 산해과 앞 토성까지 진격한 땅크 군단이 그 진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왕기의 전통이 작전 본부와 땅크 군단을 향해 날아갔다.

    - 상령은 지금 즉시 짐차와 삽차를 산해관 앞쪽으로 보내거라. 토성을 최대한 빨리 치운 후 공병대가 혜자에 부교를 놓은 다음 여진과 거란 연합군과 사무라이들을 앞세워 안으로 진격한다. 땅크 군단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있으면 집중 포격하도록. 오늘 밤중으로 산해관을 넘어 대도를 향해 진격할 것이야.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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