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44화 (144/171)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4

[...협상의 내용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민족을 존속시켜 달라는 것이에요. 그에 대한 대가로 본 신녀가 가진 신성력을 일부 전해주겠어요.]

- 피식.

이자나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린 왕기가 대꾸했다.

'그 잘난 신성력이란 게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진정한 불사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지. 불로 태워버리면 죽어버리는 그따위 허접한 신성력은 나에게 필요가 없소. 난 이 지구상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고, 일본이라는 민족 자체를 지워버릴 것이오. 물론 그들을 다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오. 영원히 하나의 통일된 민족으로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지. 자고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소이다. 일본 놈들을 그대로 유지시켜놨다가 미래에 또 어떤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냥 놔둔단 말이오? 그리고 난 그대를 신으로 떠받들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소이다. 그대의 신성력을 덥석 받았다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함부로 받는다는 말이오?'

부정적인 왕기의 대답에 이자나미가 마음이 급했는지 즉답했다.

[신성력을 받기 위해 굳이 본 신녀를 믿을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본 신녀의 신성력을 좀 받았다고 그대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에요. 이건 신의 이름으로 약속드릴 수 있어요.]

'내가 신이라는 잘난 작자들이 하는 약속 따위를 믿을 것 같소? 내가 왜 이곳으로 끌려와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본인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께서도 말씀하셨지. 왜인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킨 적이 없다(日本之人, 變詐萬端, 自古未聞守信之義也)고 말이오. 그 나물에 그 밥 아니겠소? 일본 민족이 그러한 이유가 민족신인 그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일 테지. 그러니 그대의 말을 어찌 믿는다는 말이오? 협상 따위는 일절 없을 것이니 당장 꺼지시오.'

그 순간 왕기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리링. 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强制)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명의 신이 공증을 서면 됩니다. 그리하면 제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약속을 절대 어기지 못합니다.]

'확실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현재 이자나미와 그대와의 대화를 모든 신들이 다 같이 듣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직접 공증에 나서겠다고 의사를 밝힌 신이 두 명 있으니 한번 들어나 보시지요.]

'그들이 누구인데?'

[부처와 천제(天帝) 환인(桓因)입니다.]

'그럼 그들이 공증을 서겠다고 하면 협상을 해보도록 하지. 단 나에게도 조건이 있다......'

잠시 후 황궁으로 돌아온 왕기가 연경전으로 가지 않고 상령의 거처를 찾아갔다. 상령과 마주 앉은 왕기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자나미가 나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신성력의 한계가 3명까지라는 것이지? 3명이라. 이걸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할 텐데...'

"폐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상령의 물음에 왕기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며 입을 열었다.

"짐이 그대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

"부탁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폐하께서는 그저 소관에게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소관을 보고 활활 타는 불속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그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대의 충성심을 짐이 어찌 모르겠느냐?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대는 불속으로 뛰어들면 안 된다.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폐하."

"그건 그렇고... 짐은 내일 아침 어전회의에서 그대에게 황제의 전권을 넘겨준 다음 인도로 날아갈 것이야. 그런 후 공병대원들을 독려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초석과 고무를 싣고서 안전하게 고려로 돌아올 것이다. 수송선이 폭풍우에 난파당하지 않으려면 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야. 아마도 한 달은 족히 넘게 걸릴 것이다. 그동안 상령 그대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일이옵니까?

"하나는 일본 출신의 사무라이들을 모우는 것이다. 그들을 이번 원나라 정벌에 앞장세울 것이야."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인 것입니까?"

"그것보다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하겠지. 원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한족의 피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고려인의 손으로 직접 했다가는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야. 짐은 그걸 일본인들 손으로 직접 하게 만들어서 두 민족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원한 관계가 생기게 해줄 작정이다. 그 대가로 중국 대륙 어딘가에 일본인들의 국가를 세워줄 것이니라. 될 수 있으면 황폐하고 살기가 어려운 땅이면서 고려와 멀수록 좋겠지."

"그렇다면 신강성(新疆省)이 어떨까요? 땅도 황폐하고 고려와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그곳은 예로부터 마교의 터전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국을 무사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교와 전쟁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면 감히 고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못할 테지. 거기에 원한에 사로잡힌 한족의 복수도 감당해야 할 테고. 그 문제는 그 정도로 하고... 상령 그대가 하나 더 해줘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짐이 없는 사이 그대가 유림을 정리하거라. 원나라를 정벌하기 이전에 반드시 유림부터 정리해야만 한다.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깔끔하게 정리를 하란 말이다. 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대가 전황을 저지른 것처럼 해서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물론 그리하면 짐이 귀국하는 대로 살아남은 유학자들이 그대를 처벌하라고 미쳐 날뛸 것이야. 제아무리 옥석을 가려서 손을 봤다고 해도 그들 모두 한통속인 유학자들이니까. 절대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아마도 그대의 목을 자르길 원할 테지. 그대가 죽길 원하면 그대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짐이 치세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가 있어. 짐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왕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왕기 대신 한바탕 칼춤을 추고 그 대가로 자신을 죽이겠다는 섬뜩한 말에도 불구하고 상령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소관이 그리하겠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강요하는 자신의 명에도 불구하고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으며 즉답하는 상령을 보며 왕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명경지수... 역시 나의 무공 스승 답구나."

그 순간 왕기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속으로 뇌까렸다.

'이자나미와의 협약에 따른 불사의 존재가 될 세 명 중 한 명으로 상령을 선정한다.'

상령의 몸이 잠시 아주 미약한 붉은빛에 휩싸인 것을 확인한 왕기의 머릿속으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리링. 불사의 존재 세 명 중 두 명이 그대와 상령 척노리로 결정되었습니다. 남은 숫자는 한 명입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상령의 거처를 나섰다.

1346년 12월 28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만조백관이 모여있는 가운데 왕기가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공표하고 있었다.

"짐이 인도에 다녀오는 동안 대고려 제국은 황후가 아니라 상령이 다스리게 될 것이니라. 이는 대고려 제국이 원나라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전시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이니라. 상령이 하는 말은 짐의 말이며, 상령이 하는 명은 짐이 내리는 것이다. 그에게 거역하는 자는 황제인 짐에게 거역하는 것으로 여겨 그 자리에서 참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야. 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존명.

문무백관이 입을 모아 대답할 때 왕기가 상령을 불러 대고려 제국 황제의 상징인 홀(笏)을 건네주었다. 황금으로 된 사각형의 막대에 각종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끝에는 진시황릉에서 가져온 수후주(隋候珠)가 박혀있어서 은은하게 빛을 뿌리고 있는 홀이었다.

"짐이 없는 동안 그대가 황제인 것이야.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대고려 제국은 소관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겠사옵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황후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 다음 인도를 향해 출발했다.

1347년 1월 1일

왕기가 인도로 떠난 지 나흘이 흘렀고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이날 고려 본토는 때아님 피바람에 휩싸였다. 황제의 대리인으로 임명된 상령이 전격적으로 유림을 피로 씻은 것이었다.

훗날 목은 이색이 쓴 '대고려제국사'에 이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 개벽 3년 해오름 달 초하루(1월 1일)

대고려 제국의 군권 특히 고려 본토를 지키는 중앙군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던 상령 척노리가 황제의 부재를 틈타 저지른 이날의 사화(士禍)는 보통 상령사화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 사화는 사전에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서 시행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하나, 전국 10도로 흩어진 중앙군이 한날한시에 유림을 피로 씻었다는 것이다. 바다 건너 저 멀리에 있는 제주도의 유림 역시 같은 날 핏물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이는 미리 치밀하게 군사들이 도착할 시간을 계산하여 작전을 진행된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둘, 전국 10도로 흩어진 중앙군의 손에 각 지방 유림의 살생부가 들려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중화(中華)와 사대(事大)를 당연시하고 있던 골수 유학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신속하면서도 과감하게 정리되었다. 또한 그날 고려 전역의 모든 통신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아 전국의 통신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셋, 느닷없이 황제의 대리인인 상령에 의해 유림이 핏물에 잠기게 되자 만조백관들이 일제히 황후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지만 황후마마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순후하면서도 자애로운 황후마마의 품성을 보아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로 미루어 보아 이날의 사화는 상령이 단독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황실과 이미 합의가 된 작전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던 고려 전역이 난데없는 불안과 소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는 사화의 칼날을 용케 피한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목 또한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전국 각 지방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가지며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고, 거기에 일부 대지주들과 농민들 또한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적절한 심문 과정도 없이 불문곡직하고 살생부에 올라가 있는 유학자들의 가문을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몰살시킨 것에 대한 반발과 전쟁 노예로 잡혀와 각 지방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일본인들이 원나라 정벌이라는 명목으로 차출되어 일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실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날로 불만이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민황제가 100여 척의 수송선을 이끌고 고려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후였다. 그리고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공개 심문 그것도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국문이 벌어지게 되었다.

1347년 2월 1일

[개경의 남대가 시장]

날이 갈수록 교역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크지고 있는 남대가 시장은 이전보다 넓이가 더욱 확장되어 있었고, 각종 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채 연일 상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남대가 시장 쪽으로 날카로운 창을 든 일단의 병사들이 수레를 이끌고 시장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고, 남대가 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더 넓은 공터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고려 최초의 공개 심문이 이루어지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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