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3
[국방과학연구소 부력(浮力) 시험실]
왕기가 자신이 인도 정벌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새 또다시 새롭게 생긴 거대한 실험실에서 최무선과 면담을 가지고 있었다.
"짐이 개발하라고 말한 세 가지 것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왕기의 물음에 최무선이 실험실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수조 탱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 번째 것은 이미 충분한 기초 연구가 끝나 설계도면이 나온 상태이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연구소에서 이미 시험 중에 있사옵니다. 시험 결과 실전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보다 정확한 것은 공병대원들이 개발품을 가지고 직접 훈련을 실시해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무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심왕부의 경작지에서 보내온 고무의 양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니까요. 화약 또한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고무는 초석과 함께 보급선에 실려서 조만간 고려로 들어올 것이니까 말이야."
왕기가 거대한 수조에 부표처럼 둥실 떠있는 네모난 형태의 부유물을 힐끗 쳐다본 다음 말을 이었다.
"잊지 말아라. 이번 원나라 정벌의 성공은 최무선 그대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개발에 성공했다는 그대의 말을 믿어도 되겠지?"
"소인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을 말입니다. 한민족이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정복할 기회인데 소인이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개발에 성공하였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 제1함대도 없고 철갑 기병도 없는 상태에서 제국이라고 불리는 원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오로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땅크 군단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인을 비롯한 연구진들이 폐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두 번째라면 땅크의 기동 시간을 개선하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땅크의 기동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페하께서 직접 모는 전용 땅크가 아닌 이상 기동 시간이 너무 짧다는 문제점이 있었지요. 그래서 최대한 효율을 올려보았습니다만 기술적인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아직은 기술력이 모자란 것으로 조사되었지요. 그래서 연구진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새롭게 나온 방안이 차라리 힘 보따리를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교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힘 보따리? 땅크에 들어가는 배터리 수십 개를 집어넣은 상자와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전기 모터와 변속기를 하나로 묶어놓은 파워팩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걸 빠르게 탈착 및 장착을 하자는 것이더냐?"
"정확하십니다. 기술력이 떨어져서 유지시간을 늘릴 수가 없다면 차라리 물량으로 밀어붙이자는 것이지요. 땅크의 숫자는 벽력가 무인 2명이 1대에 탑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차피 150대에 불과합니다. 더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벽력공을 익힌 무인들은 땅크를 만들 듯 계속 찍어낼 수가 없으니까요. 벽력가의 벽력공은 전기를 다루는 무공이기에 사람을 가리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오죽하면 폐하께서 익히고 계신 뇌전벽력신공이 불가해무공이라고 선정이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무인들이 탑승한다고 해도 기동 시간은 반(半) 시진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이래서는 땅크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기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경량화를 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해 있는 상태입니다. 원나라에서 대포를 무한정 찍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땅크의 장갑판 두께가 너무 얇아지면 위험하기 때문이지요."
"잘 생각했다. 청동 대포에서 쏘는 포탄 따위에 맞았다고 파괴되는 땅크라면 의미가 없지. 그래서?"
"땅크의 힘 보따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설계하여 뒤따라 가는 짐차에 실려 있는 지게차를 이용해 새로운 힘 보따리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교체하도록 설계를 변경하였습니다. 숙련된 자들이라면 5인 1조로 반각 이내에 교체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달리다가 어딘가에 고장이 나도 상관없고,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반 시진을 달리고 반각만에 교체를 한 후 다시 반 시진을 달리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루 내내 달리면 얼마를 갈 수 있는 것인가?"
"벽력공을 익힌 무인들이 탄 땅크는 반 시진만에 100리를 주파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폐하의 전용기는 300리도 너끈히 가능하지만요. 그걸 12시진으로 계산하면 2,400리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요. 거기에 힘 보따리 교체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2천리 정도를 달릴 수 있다고 보시면 무난할 것입니다. 물론 평지를 달릴 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중국 땅은 곳곳이 산지인 고려와 달리 평야 지역이 많으니까. 그럼 단순 계산상으로는 한 달에 6만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소리로군."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에서 최남단인 홍콩까지 직선으로 2천 km 정도가 된다. 2천 km를 리로 환산하면 5천리 정도 되니까... 전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땅크 군단이 중국 대륙을 완전히 관통하는 것이 가능하겠군. 남은 건 땅크와 그에 따른 보급 부대가 황하와 양자강을 빠른 시간 내에 별다른 피해 없이 잘 도강해야만 한다는 것이야. 그것만 가능하다면... 전쟁 개시 한 달 만에 중국을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다.'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지 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의 성능이라면 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다들 고생했구나. 마지막 것은?"
"이미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성능 자체는 만족할만합니다."
"그럼 되었느니라. 모로 가도 개경만 가면 되는 것이지. 짐이 명한 3가지를 다 개발했다면 원나라 정벌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야. 만약 원나라 정벌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앞으로 연구소에서 황금을 물 쓰듯 해도 짐이 뭐라 하지 않겠노라. 짐에게 보고할 것이 또 있느냐?"
"연구소 내에서 자체적으로 새롭게 개발한 발명품이 또 하나 있습니다. 소인을 따라오시지요."
왕기가 최무선을 따라간 연구실은 [윤전기 개발실]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고, 안에는 하얀색의 종이가 거대한 롤에 잔뜩 감겨 있었으며 현대식 윤전기처럼 생긴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전에 폐하께서 말씀하신 신문이라는 것을 찍어내는 기계인 윤전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원리 자체는 간단해 개발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조만간 고려 전역에 도로 공사가 모두 끝나고 무한궤도 대신 폐하께서 말씀하신 고무 타이어라는 것을 장착한 짐차들이 제작되면 고려 전역에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배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매일이 어려우면 주보(週報)도 가능하겠지요."
왕기가 손을 들어 하얀색의 종이가 가득 감겨있는 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일본에서 가져온 종이인 것이더냐?"
"네. 폐하. 신라면이 일본에서 펄프라는 것을 이용해 대량으로 제작한 종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당장은 한 달에 3롤 정도만 가능하지만 조만간 한 달에 100롤까지도 가능할 거라고 했습니다. 일본 전역에 펄프 공장을 동시에 짓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짐의 계획대로 일본이 머지않아 나무 한그루 없는 땅으로 변하겠군."
한편 그 시각 베니스에서는 위고 교황과 교황청의 기술 고문이 문답을 나누고 있었다.
[수상도시 베니스]
빅토리 위고함에 실려있는 대포로 인해 배의 옆부분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갤리선을 가리키며 교황이 물었다.
"대포에 적중된 갤리선은 곧바로 바다에 가라앉아 침몰을 하는 것인가?"
그러자 교황청의 기술 고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운 좋게 배 밑창에 구멍이 뚫리더라도 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가라앉지가 않습니다."
"그럼 대포를 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대포는 배를 가라앉히려고 쏘는 것이 아닙니다. 배 안에 타고 있는 선원들 특히 노잡이들을 집중적으로 죽이기 위해 쏘는 것이지요. 포탄이 나무로 된 뱃전을 뚫고 들어가면 그 충격으로 깨어진 나뭇조각들이 총알처럼 빠르게 사방으로 비산하게 됩니다. 거기에 적중된 노잡이들이 죽게 되는 것이지요. 일정 숫자 이상으로 노잡이가 죽게 되면 갤리선은 기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순간 곧바로 전투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한 노잡이들을 죽이기 위해 또 하나의 전술이 개발되었습니다. 빅토리 위고 함은 배의 옆부분이 단단한 구리로 덮여있습니다. 이는 배와 배끼리 가까이 스쳐갈 때 갤리선 밖으로 나와 있는 노들을 단숨에 부러뜨리기 위함이지요. 노가 부러지는 충격으로 노잡이들은 그 자리에서 보통 즉사하게 됩니다."
그 순간 바다 위에서 빅토리 위고함이 갤리선 가까이로 스쳐 지나가며 상대방 배의 노들을 단숨에 부러뜨리는 모습이 위고 교황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교황청의 기술 고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빅토리 위고함에는 3가지 최신형 무기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철제 대포이며, 그 둘째가 옆 부분에 부착된 구리 갑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지금 보시는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 펑. 펑. 펑...
빅토리 위고함에서 대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같은 것이 바다 위를 날아가 갤리선에 적중되었고 곳곳에서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본디 배라는 것은 불에 잘 타지를 않습니다. 오랜 시간 바닷물에 절인 나무들로 제작할 뿐만 아니라 바다 위에 오랜 시간 떠있기 때문에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리스의 불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위고 교황이 배 옆구리에 구멍이 뻥뻥 난 갤리선과 노가 모두 부러져 꼼짝도 못 하는 갤리선 그리고 화염에 불타고 있는 갤리선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말처럼 3 대 1로 붙어도 가볍게 이기는군. 베니스의 조선소에서 몇 대나 건조되고 잇는 것인가?"
"현재 40대가 동시에 건조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정도면 영국을 정복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배의 숫자를 더 늘리게.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주님의 사자이자 교황인 내가 책임질 테니 100대까지 숫자를 더 늘려. 그런 후 영국을 점령한 후 곧바로 이교도와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야. 이 세상 모든 이교도들이 거룩하신 주님만을 믿게 되는 그날까지 전쟁은 결단코 끝나지 않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성하시여. 명을 따르겠나이다."
[대고려 제국의 개경]
국방과학연구소를 나온 왕기가 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개경의 밤하늘을 날아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은 건 병사들의 훈련과 보급선의 도착 그리고 유림의 정리뿐이다. 남은 두 달간 전국의 통신소에 흩어져 있는 벽력가의 무인들을 끌어모아 땅크 운전 및 집단 기동 훈련을 실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수상 도하 작전을 위한 공병대의 훈련과 파워팩을 빠르게 교체하기 위한 보급 및 정비 부대의 훈련을 철저하게 시켜야만 해. 그런 후 유림을 전격적으로 숙청한 다음 곧바로 원나라로 진격하는 거야.'
생각을 정리한 왕기가 중얼거렸다.
"가장 급선무는 화약과 고무를 실은 보급선이 고려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인도로 날아가 보급선의 귀환을 독촉해야 하겠어."
그 순간 왕기의 머릿속으로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리링. 지금 잠시 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오래간만에 들려온 메시지에 인상을 와락 쓴 왕기가 뇌까렸다.
'무슨 일이지? 설마... 신문을 찍어낸다고 새로운 대적자가 생기기라도 한 것이냐? 그건 너무 지나친 처사 같은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대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신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신이 있어? 그게 누구인가?'
[일본의 민족신 중에 하나인 '이자나미'가 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들려오는 메시지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왕기가 재차 물었다.
'일전에 일본에 있는 대적자를 화산에 집어넣어 죽였을 때 난 이미 선택을 끝마쳤다. 천마 교주를 처치했을 때처럼 그자의 능력을 흡수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근데 나와 무슨 대화를 나누겠다는 것이냐?'
[아마도 귀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일본의 초토화 작전 때문에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신이란 존재는 그를 믿는 신도들에 의해서 지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초토화되고, 일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변하게 되면 일본을 근거로 하는 민족신이 신위(神位)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일 없다. 그자가 아니 이자나미라면 그년이겠지. 그년이 신의 지위를 잃을까 봐 똥줄이 타는 모양인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일본의 민족신 따위와 대화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집어치우라고 해.'
그 순간 왕기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리링. 이자나미가 그대에게 협상을 요청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협상? 대화가 아니라 협상이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그 순간 지하의 명부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음울하면서도 귀기가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왕기의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본 신녀는 일본인들이 민족신이자 창조신이라 믿고 있는 이자나미라고 합니다. 그대와 협상을 하고 싶어요. 협상의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