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41화 (141/171)
  • 중화(中華)를 박살내야만 한다 - 1

    1346년 12월 26일

    [델리의 왕궁]

    인도의 쿠글루크 국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왕기가 1만의 철갑 기병을 이끌고 거대한 모스크처럼 생긴 델리의 왕궁으로 쳐들어가 손쉽게 점령해 버렸다. 그런 후 왕궁의 대전에서 통역관을 대동한 채 인도 국왕과의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 끼이익...

    잠시 후 협상이 모두 끝났는지 왕기 일행이 대전의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더없이 화려하게 치장된 왕궁의 복도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정뭉주가 쪼르르 뛰어와 물었다.

    "폐하. 소인에게 견문을 넓혀준다면서 왜 협상 자리에서 쫓아내신 것입니까?"

    투정이 살짝 섞인 정뭉주의 말에 왕기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핏물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는 보자기를 가볍게 두들겼다.

    - 툭. 툭.

    "아직 그대의 나이가 어려서 짐이 사람 죽이는 걸 눈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느니라."

    "폐하. 인도 국왕의 목을 치신 것입니까?"

    "그렇다. 오늘부터 인도는 인도 총독으로 임명된 무지와 그를 보좌하는 무장이 1만의 철갑 기병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야. 제1함대도 계속 인도에 주둔할 것이고. 애초에 그럴 작정으로 꾸린 함대이니까. 일본과 달리 인도의 땅은 넓고도 넓고 인구 수 또한 무지막지하다. 제대로 된 무력을 갖춘 군대가 주둔하지 않으면 다스리기가 절대 쉽지 않을 것이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정몽주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물었다.

    "소인이 보기에는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인도 국왕을 죽일 작정을 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자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서 그런 것이옵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짐은 대고려 제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리되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몽주야. 짐의 말을 잘 들어라. 말도 생각도 아닌 선택과 행동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가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말을 내뱉으며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가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인 것이야. 인도 국왕은 그의 선택과 행동으로 이미 증명을 하였다. 그에게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티끌만치도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런 자를 짐의 밑에서 인도를 다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죽인 것이니라."

    "아..."

    신음성을 내뱉으면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나이의 정몽주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던 왕기가 간부들을 이끌고 인도 국왕의 침실로 향했다.

    [인도 국왕의 침실]

    대고려 제국의 연경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침실에서 간부들을 소집한 왕기가 무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겠지?"

    "네. 폐하. 당장 시급한 것은 공병대원들에게 삽차와 짐차를 이용하여 갠지스강 진흙밭의 흙을 파내어 보급선에 실은 다음 고려로 보내는 것일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화약이 바닥을 보이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인도의 향신료와 면직물을 고려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겠지요."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인도의 백성들에게 착취를 당한다는 느낌이 절대 들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인도 전역에 고려 은행을 세운 다음 적절한 돈을 주고 수거하란 말이다. 인도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고려와 얽힌 원한 관계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고려의 영토로 영원히 흡수해야만 하는 땅이니라. 조만간 서역에서 인도의 향신료와 면직물을 탐내어 교역을 하려고 들 것이야. 그때 대고려 제국이 자신들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서역의 국가들과 욕심 많은 상인들로부터 안전한 게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란 말이다. 훈민정음도 적극적으로 퍼뜨려 대고려 제국과의 동질성을 강화시키도록 하고.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폐하. 앞으로 천년만년이 지나도 인도는 대고려 제국의 땅이 될 수 있도록 아기 다루듯 조심해서 통치를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인도 전역을 10개의 주로 나누어라. 그런 후 각 주마다 천명의 철갑 기병을 배치하고 서로 간에 무선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하거라. 그런 후 카스트 제도를 이용해 하층민을 괴롭히는 자들은 일벌백계로 모두 단호하게 처벌하거라. 아기 다루듯 조심해서 통치를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체벌도 필요한 법이지. 제법 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무력을 동원해서 인도의 뿌리 깊은 악습인 카스트 제도를 반드시 근절시켜야만 한다. 모든 인도 백성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지시키란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내가 진정으로 아끼는 무지 너와 무장을 여기 남겨두고 떠나는 이유를 알아주길 바란다. 인도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무기들이 많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느냐?"

    "철의 품질이 뛰어나고 예로부터 암살단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암살에 적합한 독특한 무기들을 많이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다. 너와 무장 정도는 되어야 적들의 암살 기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야. 짐이 믿고 인도를 맡길 수 있는 자들은 지금 당장은 너희 둘밖에 없다. 아무쪼록 죽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그 순간 목은 이색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페하. 소인도 고려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인도에 남겠사옵니다. 새로운 코란을 저술하기에는 아직 이슬람교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확인했으니 인도에 남아 코란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가능성을 확인했다?"

    "네. 폐하. 코란의 2장 256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진리는 거짓과 구별되었으니 우상을 섬기지 않고 신을 믿는 이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가장 튼튼한 끈을 쥐었음이다. 신은 들으시며 알고 계신 분이시다라는 구절이 말입니다. 그리고 코란의 10장 99절에 이런 말도 나오지요. 너희 주이신 알라께서 원하셨더라면 지상의 모든 이가 믿었을 것이다. 네가 그들에게 신앙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 있겠느냐는 구절이 말입니다."

    코란의 내용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목은 이색을 보며 왕기가 피식 웃었다.

    "이제는 코란을 아주 달달 외웠나 보구나. 하지만 너무 경전에만 매몰되지 말거라. 경전이 아니라 그 경전을 해석하는 사람의 뜻과 행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된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하지만 폐하께서 걱정하시는 종교분쟁이란 것은 결국 자신이 믿는 신을 다른 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지요. 소인이 요즘 한창 공부하고 있는 가톨릭 또한 마찬가지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가톨릭 문헌에 따르면 초기 가톨릭 교부들은 신앙에는 강요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합니다. 서방과 동방의 가톨릭 교부들 모두 신앙은 강제할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기독교 신앙을 강제하는 일은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설파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점을 잘 이용하면 종교분쟁을 막을 수도 있을 것으로..."

    그 순간 왕기가 이색의 말을 단호히 잘랐다.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짐의 생각은 좀 다르니라. 두 종교가 신앙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모두 초기에 나온 말들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힘이 부족할 때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교세가 강해지고 세력이 성장하게 되면 모든 종교들이 신앙을 강제하려고 든다. 왜인 줄 아느냐? 그럴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생겼기 때문이지. 결국 종교분쟁이란 것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권력 다툼과 똑같은 것이야. 힘이 약할 때는 숙이고 있지만, 힘이 강성해지면 그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제 힌도 국왕이 개전 초기에 알라의 뜻에 의해 '가주(Ghazu)를 허락한다고 외치던 것을 들었느냐?"

    "들었사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건 줄 아느냐?"

    "이슬람교를 창시한 모하메드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지요."

    "그 배경을 알고 있느냐?"

    이색이 고개를 젓자 왕기가 설명을 해주었다.

    "간단하다.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밀려나 메디나로 도망갔을 때 한 말이다. 메디나에서 돈이 떨어진 모하메드가 자신의 신도들에게 약탈을 허용했지. 그게 가주인 것이야. 겉으로는 신앙의 탈을 쓰고 있지만 결국 재물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인 것이다. 종교분쟁은 결국 신앙심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소인이 폐하의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근데... 폐하. 소인에게는 걱정이 하나 있사옵니다."

    "일전에 말한 종이 문제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를 찍어내며 수많은 고려지(高麗紙)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려에서는 종이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폐하께서는 인도에도 훈민정음을 퍼뜨리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다시 책자를 찍어내야만 하겠지요. 인도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고려의 몇 십 배에 해당하는 양의 책자를 말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코란과 성경까지 찍어내려면...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의 종이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는 인쇄술이 뛰어나지만 그러한 종이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능력이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짐이 이미 대책을 세워뒀으니까. 고려지는 품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대량 생산이 어려운 종이이기도 하다. 재료인 닥나무를 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방망이로 두드려서 종이를 제작하는 도침법(擣砧法)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방법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짐이 새롭게 개발하는 종이는 나무만 있으면 되느니라. 나무를 전기 모터를 이용해 아주 잘게 쪼개면 '펄프(Pulp)'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무가 굳이 닥나무일 필요도 없지. 그러한 방식으로 종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니라."

    "하지만 폐하.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벌목을 하다가는 고려 전역의 산들이 민둥산이 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색의 반론에 왕기가 무지를 바라보았다.

    "무지는 짐이 일본 정벌을 구상할 때 맨 처음 세운 작전이 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지가 즉답했다.

    "일본 전역을 초토화 시킨다는 작전이었지요."

    "그러하다. 일전에 고려로 잠시 다녀올 때 일본 총독으로 가있는 신라면에게 이미 명을 내렸느니라. 일본 전역의 나무를 베어서 종이로 만들라고 말이다. 지금쯤이면 일본 곳곳에 펄프 공장들이 세워지고 있을 것이야. 어차피 일본은 사람이 살만한 땅이 아니다. 끊임없는 지진과 화산 폭발, 해일 등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지. 그런 곳에 사람이 살다가는 훗날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야."

    '후쿠오카의 원전 사고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미리 싹을 잘라야만 해.'

    속으로 빠르게 뇌까린 왕기가 말을 이었다.

    "짐은 일본 전역을 처음에 구상했던 것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만들 작정이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을 여기저기로 옮겨 무인도로 만들 것이야. 그러니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모조리 다 베어내도 상관이 없겠지. 어차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될 테니까."

    이색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무지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에게도 걱정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엇이더냐?"

    "폐하께서 인도 정벌을 끝마치는 대로 곧바로 원나라를 칠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철갑 기병 1만과 제1함대를 모두 인도에 주둔시키게 되면 원나라를 칠 기마 병력이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1함대가 없으니 바다를 통한 병력의 투입 또한 불가능하겠지요. 제2함대가 꾸려지고 새로운 철갑 기병들이 양성될 때까지 원나라 정벌을 잠시 뒤로 미루시는 것이 어떠할지요?"

    "짐이 거기에 대한 대책을 다 세워 놨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원나라 정벌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며 절대 뒤로 미룰 수가 없다. 그쪽에서도 이미 대포를 개발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해. 시간을 주면 줄수록 대포의 성능이 개선될 것이고, 그에 따라 고려군의 피해 또한 증가할 것이니라. 그럼 간부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고...."

    왕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짐이 고려에 다녀오는 동안 계획한 대로 인도를 통치하기 위한 작전을 잘 수행하도록 하거라. 정몽주는 다시 뒤주에 들어가도록 하고."

    - 존명.

    1346년 12월 27일

    [연경전의 침실]

    뒤주를 등에 업고 하루를 꼬박 날아 고려로 돌아온 왕기가 침실에서 노국공주에게 물었다.

    "짐이 없는 동안 별일 없었소이까?"

    "별일이 두 가지나 있었지요."

    "그게 무엇이오?"

    "하나는 사당을 전국 대도시에 세운 유림이 차례를 맡기러 오는 백성들에게 중화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분은 '이소역대기불가(以小逆大其不可)'이지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그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할 때 내건 명분인 '사불가론(四不可論)' 중에 하나가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서 조만간 원나라를 칠 거라는 소문이 시중에 파다하게 돌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유림이 자신들의 근본이 뒤흔들리는 일이라 느꼈는지 적극적으로 중화사상을 퍼뜨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또 뭐요?"

    "대고려 제국의 황후, 즉 신첩이 미쳐서 백성들을 떼거지로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정복 전쟁에 미쳐서 유학의 근본인 중국을 치려 하고, 황후는 미쳐서 고려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든다는 것이 유림에서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소문이지요. 유림에서 이번 기회에 황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려고 작정을 한 듯합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자세히 설명을 해보시오."

    "보름 전쯤에 신첩이 전국에 방을 내린 적이 있사옵니다. 아마도 그것이 빌미가 된 듯싶사옵니다."

    "방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유림에게 빌미를 줬단 말이오?"

    "신첩이 내린 방의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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