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36화 (136/171)
  • 마침내 인도(印度)를 정복하다 - 1

    1346년 9월 14일

    때마침 조류를 잘 만났는지 고려를 떠난 제1함대가 예상보다 빨리 대만에 도착하였다. 운항을 하는 도중 제1함대는 무선 통신을 이용한 기동 훈련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고, 왕기는 매일 같이 먼바다로 나가 함대가 태풍이나 풍랑을 만나지 않도록 관측을 계속하였다. 왕기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대만에 도착한 제1함대는 대만을 인도 정벌의 1차 보급기지로 삼기 위해 보급선에 실려있던 전쟁에 필요한 소모품들을 대량으로 하역한 후 곧바로 말레이반도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1346년 10월 1일

    [태국 춤폰 주]

    말레이반도로 이동한 제1함대는 현대의 태국 춤폰 주에 정박하였다. 물론 이 시대에는 태국의 땅이 아니라 14세기에 등장한 태국의 주요 종족인 타이족이 세운 첫 번째 통일왕조인 수코타이 왕조가 다스리고 있는 땅이었지만 말이다. 말레이반도를 관통하는 운하를 뚫기 위해 태국 춤폰 주에 공병대원들과 장비들 그리고 보급품과 식량 등을 하역한 제1함대가 말레이반도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 거점지인 신가포로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1346년 10월 15일

    공병대원들이 말레이반도 동쪽인 춤폰에서 서쪽에 있는 끄라부라 강까지의 대운하 개설을 시작한 지 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10km 넘게 운하가 파여지고 있었다. 이는 하루에 800m에 달하는 거대한 넓이와 길이의 흙을 파내는 엄청난 속도의 운하 건설 작업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200대가 넘는 삽차와 짐차의 뛰어난 위력도 있었지만 운하 건설에 직접 뛰어든 왕기의 영향 또한 컸었다.

    - 크르르릉.

    무한궤도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흙먼지가 끊임없이 하늘로 비상하고 있는 운하 건설 현장은 현대의 건설 현장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삽차가 퍼낸 대량의 흙들을 실은 짐차들이 기수의 수신호에 의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고, 건설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운하 좌우에 떠있는 천리안에 설치되어 있는 무선 통신 장치에서 보내는 무전들이 작업 현장에 있는 공병대원들의 간부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 현장 바로 위에는 무지가 공중에 둥실 떠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쉬이잉.

    건설 현장 외곽에 설치되어 있는 수천 채의 간이 막사들 중 한곳에 머물고 있던 왕기가 하늘에 떠있는 무지 곁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고는 무지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반야심공을 운기 할 때 발생하는 선풍이 이제 제법 위력적이구나?"

    "이곳은 페하께서 말씀하신 적도와 가까운 곳이잖습니까? 배를 타고 오면서 위도의 변경에 따른 미력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최근에 깨달음을 좀 얻었습니다. 소신이 폐하처럼 자기장을 이용하는 신법을 구사할 수는 없지만 선풍을 이용하는 방법은 제법 체득하였지요. 이제는 하루 종일 상공에 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대도 화경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아 보이는군. 시다발이가 정말 많이 성장했어."

    "폐하께서 오래간만에 그 호칭으로 불러주시는군요. 반갑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신가포로를 건설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간 무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더냐?"

    "운하 남부에 있는 원주민들을 북부로 모두 소거하는 작업 도중에 몇몇 부족이 협상을 제안했다고 하옵니다."

    "협상을? 어떤 협상을 제안했단 말인가?"

    "고려의 병사들 대신 자신들이 자생하고 있는 고무나무를 관리하고 운하 남부에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동시에 수액을 채취하는 작업까지 할 테니 물물교환을 하자는 협상이지요. 어차피 고무나무의 수액이라는 것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아니다 보니 지금 현재로서는 대고려 제국 말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물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물량을 속이거나 숨길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협상을 요구해 왔다고 합니다."

    "뭐 그렇긴 하지. 지금 이 세상에서 고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짐이 유일할 테니까. 협상 조건으로 대고려 제국이 해줘야 할 것은?"

    "첫째가 통조림이었습니다. 이곳에 열대과일이 많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지요. 그리고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이 시식을 해본 통조림의 맛에 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가 도자기였지요. 고려의 도자기를 본 부족장들이 눈이 돌아가 있다고 하더군요. 날이 더운 지역이다 보니 의복은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 대신 그들 모두 고려의 백성이 되기 위해 훈민정음을 배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차피 수코타이 왕국에서도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전쟁 한번 하지 않고 자신들을 넘겨준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수코타이 왕국은 인도차이나반도 내륙에 수도를 둔 왕국이고 여러 개의 왕국이 난립되어 있던 곳을 간신히 통합한 왕조이기 때문에 머나먼 이곳 말레이반도까지 왕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리고 이곳은 농사를 지을 수없는 열대우림이기 때문에 그다지 얻을 것이 없는 땅이기 때문이야. 그대도 보지 않았나? 전력항모를 비롯한 대함대를 본 수코타이 왕이 기겁을 하며 은 삼만 관과 도자기 3천 점에 운하 남쪽의 땅을 모두 넘기기로 계약한 것을 말이야."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곳에도 이미 대고려 제국의 명성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도 분명히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어쩌면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두 달이 채 못되어 운하를 완전히 뚫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병들이 땅을 파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니까요."

    "사람은 원래 뭐든 계속하다 보면 늘게 되어 있는 법이지. 운하만 뚫리면 인도 정벌의 반은 이룬 거나 마찬가지야."

    "폐하. 고려에 한번 가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황실을 너무 오래 비워두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중으로 고려로 떠날 생각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하루면 도착할 것이야. 물론 고려에는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야. 화경에 달한 상령이 지키고 있고 막강한 중앙군이 버티고 있는 고려 황실을 건드릴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 왜애앵. 왜애앵...

    그 순간 공사 현장에서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지가 왕기를 보며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땅을 파는 도중에 또다시 암반이 발견된 모양입니다. 황망스럽지만 공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는 폐하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리해야지. 내가 여기 머물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 그대는 가서 포탄을 들고 오도록."

    "알겠사옵니다. 폐하."

    선풍을 이끌며 허공을 자연스럽게 날아 보급품 창고가 있는 막사 쪽으로 이동하는 무지를 보며 잠시 감탄에 찬 눈빛을 한 왕기가 공사 현장이 있는 지상 쪽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공병대장이 왕기를 보며 경례를 올린 후 보고를 하였다.

    "충성! 공사 도중 암반층이 또다시 발견되었습니다. 폐하. 암반의 크기가 너무 커 삽차로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땅바닥에 파묻혀 있는 집채만 한 거대한 돌덩어리를 향해 쌍검을 뽑았다. 그런 후 오색찬란한 강기를 씌운 후 암반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일각 정도 지났을 때 암반에 십여 개의 구멍을 뚫은 왕기가 공병대장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을 모두 뒤로 물리도록. 암반 폭파 작업을 시작할 때니까 말이야."

    "존명!"

    - 왜애앵...

    또다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모두 안전하게 뒤로 물러가자 왕기가 무지가 들고 온 포탄들이 터지지 않도록 자기장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감싼 후 암반에 뚫어놓은 구멍 속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기 시작했다. 작업이 모두 끝나자 하늘로 날아오른 왕기의 전신에서 스파크가 맹렬히 튀기 시작했다.

    - 휘익.

    왕기가 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십여 개의 번개 줄기가 암반에 뚫어놓은 구멍 속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 콰과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암반이 산산조각이 나자 공병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삽차 운전병들은 빨리 암반을 걷어내어라. 최대한 빨리 운하를 뚫어야 한단 말이다. 어서 서둘러."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공사 현장은 다시 삽차와 짐차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상공에서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건설 현장에서 사용할 천공기(穿孔機 : 지반에 구멍을 뚫는 중장비)와 다이너마이트 개발이 필요하겠군. 지금이야 내가 도움을 주고 있으니 운하를 파는 속도가 빠르지만 언제까지 내가 폭파병 역할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노벨이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더라?'

    잠시 고민을 하던 왕기가 무지에게 날아가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 다음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고려 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1346년 10월 2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밤이 이슥한 시각 연경전에서는 한 달 만에 어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왕기가 문무백관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짐이 인도 정벌을 가느라 황실을 오래 비웠소. 그래도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씩은 돌아올 것이니 그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짐이 없는 사이 특별한 일이나 짐이 꼭 알아야만 하는 일들이 있소?"

    왕기의 말에 영의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 성군이신 폐하의 통치 덕분에 고려의 만백성들이 행복해하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현재 각 지방에서 상소가 빗발치듯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어떤 상소가 올라온단 말이오?"

    "얼마 전 개통하여 운행을 시작한 개평선의 세영호라는 전철 때문이옵니다.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백성들은 그 편리함에 반해 날이 갈수록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하지만 현재의 하루 두 번의 운행횟수로는 그 모두를 감당할 수 없기에 운행횟수를 늘려달라고 다들 아우성이며, 각 지방에서는 자신들의 지역에도 전철이 다닐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선로를 깔아달라고 상소를 올리고 있사옵니다."

    "그건 짐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선로를 까는 것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짐이 인도 정벌을 끝마치는 대로 고려 전역에 대대적으로 선로를 깔고 전철을 운행시킬 것이니 영상은 조금만 더 참으라고 그들을 잘 달래주시길 바라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영의정이 뒤로 물러가자 우의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 유학자들이 폐하께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취해달라고 상소를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숭유억불이라. 짐이 딱히 불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는 않는데... 유학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가장 먼저 '차례(茶禮)'를 없애달라고 주장하고 있사옵니다."

    우의정의 말에 왕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례라면 명절이나 부모의 기일에 올리는 제사가 아니오? 그것참 이상하구려. 유고에서는 제사를 그 어떤 곳보다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는 차례를 없애달라?"

    "소신이 말한 차례는 백성들이 지내는 제사가 아닙니다. 최근 백성들 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는 자들이 조상의 위패를 절에 맡겨 제사를 대행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사옵니다. 불교 특성상 제사상에 술 대신 차를 올리기 때문에 차례라고 불리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차례는 백성들의 재물을 갈취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공민육헌에 반하는 행위이며, 유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많은 유학자들이 앞다투어 상소를 올리고 있사옵니다."

    그 순간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학처럼 고고한 유학자들도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슬슬 깨달아 가는 모양이로군. 절에서 차례를 지내주며 버는 돈이 고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지?'

    "그 문제는 짐이 좀 더 알아본 후에 결정하겠소. 절에 제사를 맡겨 차례를 지내는 백성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절에서 받는 재물이 적정한 수준인지 등을 조사한 후에 말이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우의정이 물러가자 좌의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 최근 사대부들 사이에서 '가시나'를 다시 부활하자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사옵니다."

    그 순간 왕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대부들이 갑자기 가시나의 부활을 주장한다고? 설마 선미의 예쁜 날 두고 가시나는 아닐 테고... 계집아이를 일컫는 경상도의 방언도 아닐 텐데 말이야.'

    "가시나가 무엇이길래 사대부들이 부활을 원한다는 것이오?"

    "최근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로 백성들 사이에서 한자 사용을 자제하고 있기에 새롭게 생긴 말이지요. 순우리말로 가시는 꽃을 뜻하는 옛말이며, 나는 무리를 뜻하는 네에서 변형된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가시나는 꽃무리라는 뜻이로군. 신라 시대의 화랑(花郞) 제도를 부활하자는 뜻인 것이오?"

    말을 하고 있는 왕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사대부들이 화랑제도를 부활하자는 것은 결국 엘리트 제도를 도입하자는 뜻이다. 화랑으로 뽑이는 자들 대부분이 사대부 집안의 자제들 일게 불 보듯 뻔한 일이야. 어떡하든 일반 백성들과 계급을 나눠보겠다는 사대부들의 시커먼 속셈일 테지. 조선 시대의 양반과 상놈처럼 말이야. 거기에 숭유억불 정책에 차례의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어. 잠시 한 달 자리를 비운 것에 불과한데 고려 전역에서 기득권층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가? 하필 인도 정벌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이 시기에 말이야. 어쩌면 그걸 노린 것일 수도 있겠지.'

    "으음,,,"

    왕기의 입에서 신음성이 절로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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