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34화 (134/171)

가자! 인도(印度)로 - 1

[국방과학연구소 야외시험장]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거대한 넓이를 자랑하는 야외시험장은 이전에 왔을 때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외에 지어져 있는 거대한 창고에서 길게 이어져 있는 두 개의 나란한 철로의 모습은 현대의 기찻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철로 양쪽에 세워져 있는 전봇대를 서로 연결하고 있는 전선이 살짝 늘어져 있다는 것만 색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현대의 한국에서도 1898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여 1969년 철거가 되기 전까지 공중에 가설한 전선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서대문에서 청량리를 달리던 최초의 전차(電車)가 운행되던 선로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기가 선로 옆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최무선 옆으로 기척도 없이 낙하했다. 그러고는 현대의 통신병처럼 안테나가 길쭉하게 삐져나와 있는 백팩을 울러매고 있는 최무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 사이에 철로에 전봇대까지 설치되어 있는 걸 보아하니 단순히 땅크 때문에 짐을 부른 것이 아닌가 본데? 그대가 날 또 깜짝 놀라게 해 줄 모양이로군."

화들짝 놀란 최무선이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부터 하였다.

"죄송하옵니다. 폐하.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왕기가 물었다.

"갑자기 그게 뭔 소리인가? 설마... 이전처럼 황금으로 떡칠한 전차를 개발한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폐하. 단지... 얼마 전에 여춘옹주께서 대고려 제국의 황녀를 순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소인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제대로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였사옵니다. 이는 황실에 대한 불충이오며 소신이 당장이라도 능지처참을 당해도..."

왕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되었다. 여춘옹주가 낳은 '세영(世英) 공주'를 말하는 모양인데... 모자 모두 몸 건강히니 신경 쓸 필요 없느니라. 그건 그렇고...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보병용 무선 통신 장치인가? 많이 소형화가 되었구나."

"네. 폐하.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 통신 장비를 키워도 그 전달 거리가 생각처럼 증가하지는 않았사옵니다. 이는 고려의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관계로 전자기파가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못한 탓으로 보입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송신탑이라는 것을 산 정상에 세우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그래서 평야지역에서 반경 100리까지 연락이 가능한 소형 무선 통신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개경에서 평양까지 4대의 송신탑만 건설하면 무선 통신이 가능해진다는 뜻이지요. 또한 폐하께서 말씀하신 주파수를 자유자재로 조종하여 통신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개발이 요원한 것 같사옵니다. 하지만 소신이 죽기 전까지 꼭 개발에 성공하도록 가일층 노력하겠사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아라.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하지 않느냐? 그 정도만 해도 놀라운 성과인 것이야. 그대가 개발한 무선 통신 장치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바다 위에서 그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짐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느니라. 그래서 오늘은 짐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폐하."

최무선이 등에 매고 있던 무선 통신 장치를 이용하여 어딘가로 빠르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창고에서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더니 창고 문이 서서히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창고 안에서 정면에 고양이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으며, 지붕 위에는 달리면서 전기를 공급받을 전선과 연결되는 갈고리가 달려있는 전철이 모습을 보이더니 뒤꽁무니에 달려 있는 짐칸에 무언가를 잔뜩 실은 채 철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최무선이 설명을 시작했다.

"본래의 개발 목표는 달리는 호랑이와 같은 빠른 속도의 전철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직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아 연구원들끼리는 못난 호랑이 새끼라는 뜻으로 '대산묘(大山猫)'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대산묘라. 스라소니를 말하는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폐하. 하지만 소인이 우겨 전철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세상의 꽃봉오리가 되라는 세영 공주의 이름을 따 세영호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전철은 이 세상에 새로운 변혁과 신문물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될 것이며, 장차 전철을 이용하는 모든 대고려 제국 백성들은 황실의 은덕에 감사드리며 영원히 그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여춘옹주가 좋아하겠군. 언제쯤 본격적으로 운행이 될 것 같으냐?"

"현재 개경에서 평양까지는 이미 철로와 전봇대 건설 작업이 모두 끝났사옵니다. 지금은 평양에서 신의주까지의 선로를 건설 중에 있지요. 연구소에서의 시험이 모두 끝나면 늦어도 한달 이내로 개평선의 시범운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전철을 바라보고 있던 왕기가 전철의 짐칸에 실려있는 장비들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각각 다른 색깔로 도색되어 있는 땅크 2대 이외에도 현대의 포클레인과 같은 '삽차'와 덤프트럭과 비슷한 '짐차'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에 실려있는 것이 땅크만이 아니로구나. 삽차와 짐차는 언제 또 개발했단 말이냐?"

"폐하께서 거듭 강조하셨잖습니까? 건설 공사 현장에서 꼭 필요한 것이 땅을 파는 삽차와 삽차에서 퍼낸 흙을 실어 나를 짐차라고 말입니다. 무한궤도와 관련된 연구는 이미 끝난 상태이며 땅크까지 만든 경험이 있는 장인들이옵니다. 삽차와 짐차를 개발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농경지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되는 경운기와 달리 땅크, 삽차, 짐차 등은 운전할 자들을 따로 뽑아서 전문적으로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며 아무에게나 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기술이 타국으로 곧바로 새어나갈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 순간 왕기의 뇌리로 아직은 역부족이라 생각하여 미뤄두었던 작전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삽차와 짐차를 하루에 몇 대나 만들 수 있는 것이더냐?"

"장인들을 독려해 12시진 내내 제작에 돌입하면 하루에 10대 정도는 충분히 제작이 가능할 것이옵니다."

"10대라. 보름이면 총 150대로군. 그 정도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겠어. 내일까지 10대를 더 만들어 대고려 제국 공병대에 공급하거라, 삽차와 짐차를 운전할 운전병들을 공병대에서 대거 뽑아 훈련시킬 생각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9월 1일 제1함대가 대만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삽차와 탑차를 제작하도록 해. 만일 계획보다 더 많은 숫자를 제작하면 짐이 장인들에게 재물을 듬뿍 내리겠다고 전달하고."

"알겠사옵니다. 폐하. 다들 밤을 잊고 제작에 몰두할 것입니다."

- 끼이익.

그 순간 왕기의 앞에 전철이 정차하자 왕기의 눈이 자연스럽게 전차에 실려있는 2대의 땅크로 이동하였다. 그중 한 대는 무한궤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붉은색으로 도색되어 있었으며, 특히 회전포탑을 중심으로 황금색 봉황이 날갯짓을 펴고 있는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양쪽 장갑판에 번개 문양의 1이라는 숫자와 대고려 제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띄는 전차였다. 다른 한 대의 전차에는 별다른 그림도 없이 칙칙한 회색빛의 도장에 대고려 제국이라는 글씨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빨간 땅크가 폐하의 전용기입니다. 회색 땅크는 대량 생산용 땅크이지요. 페하의 전용기와 달리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장갑판의 두께를 최소화하고, 전지의 수를 대폭 줄이는 동시에 자체적으로 지속적인 충전이 가능하도록 뇌전공을 익힌 벽력가의 무인들 3명을 불러 시험 운행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폐하의 전용기는 전지 자체가 아예 탑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시험 운행을 해볼 수가 없었지요. 오늘 두 전차를 비교 시험해볼 계획입니다."

"빨간색에 황금색 봉황까지... 전장에 나가면 적들의 눈에 확 띄겠구나."

"그걸 노리시는 것 아니었사옵니까? 전장에서 일반 병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들의 이목이 폐하에게 쏠리기를 바라시는 줄 알고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만..."

"맞느니라. 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회색 땅크의 시험 결과는 어떻게 나왔느냐?"

"일단 운행 시간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뇌전공을 익힌 병사들이 탑승할 경우 거의 2시진 가까이 달릴 수가 있고, 최대 속도는 평범한 인간이 달리는 속도를 뛰어넘은 시속 100리 정도로 측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무인이나 달리는 말을 따라잡지는 못했지요. 비교적 경공이 느리다는 무장을 불러 시험을 해봤지만 땅크가 훨씬 더 느리더군요. 무지나 상령에게는 아예 가까이 접근조차 불가능하고요. 마음 같아서는 장갑판을 더 얇게 만들어서 속도와 지속시간을 끌어올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무인들의 검기나 권기에 뚫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무장의 충고를 받아들여 제작한 것입니다."

최무선의 설명을 듣고 있던 왕기가 물었다.

"그대는 땅크로 무인들을 격파할 생각인 것인가?"

"폐하. 땅크는 육지에서 싸우는 병기이며 평지에서 제 위력을 발휘합니다. 북방의 고토와 두만강을 도강한 후 원나라의 대도까지도 장애물이 없는 대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무인들이 가득한 원나라를 최소한의 피해로 정복하시기 위해 땅크를 만드신 게 아니었습니까?"

"뭐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머릿속으로 더 넓은 만주 벌판과 화북 대평원을 내달리는 대규모 땅크 군단의 위용을 떠올리며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몸을 훌쩍 날려 자신의 전용기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해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최무선이 시험 운행 결과를 기록하기 위해 관련 연구원들을 빠르게 불러 모았다.

- 크르르릉...

잠시 후 동력원인 전지가 전혀 탑재되어 있지 않아 그 누구도 몰수가 없다는 붉은색의 땅크가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야외시험장을 마치 비호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보일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회색 땅크가 힘겹게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최무선이 망원경으로 땅크를 관측하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소리쳤다.

"폐하께서는 대고려 제국의 지존이시며 더없이 바쁘신 분이시다. 이렇게 연구소까지 몸소 오셔서 시험 운행을 해주실 시간이 없으신 분이시란 말이다. 이번 기회에 실수 없이 잘 기록하도록."

- 알겠습니다. 소장님.

- 소장님. 폐하께서 타고 계신 빨간색이 3배 더 빠릅니다.

- 폐하의 전용기는 기동 시간도 한계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1346년 8월 30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대망의 인도 정벌을 위해 대고려 제국 해군의 제1함대가 대만으로 출발할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지 어전회의가 열리는 연경전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각종 계획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하던 회의가 어느덧 끝나가는지 옥좌에서 우뚝 일어선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듣거라. 내일 예성강 하구에서 대고려 제국 제1함대의 출항식 및 함대에 탑승한 병사들이 가족들과 헤어지는 송별식이 열릴 것이다. 그 자리는 대고려 제국 해군의 위용을 만백성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인 것이야. 많은 고려 백성들이 구경을 올 것이니 여기에 있는 중신들도 단 한 명도 빠지지 말고 모두 참석해서 인도 정벌을 위해 장도를 떠나는 병사들을 격려할 수 있도록."

- 존명.

[연경전의 침실]

세계 지도가 활짝 펼쳐져 있는 침실에서 왕기가 자신과 함께 대만으로 떠나는 최영 장군을 비롯한 간부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인도 정벌 계획에 변경이 생겼다."

"폐하. 제1함대의 출항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게획에 변경이 생겼다는 것이옵니까?"

화들짝 놀란 최영 장군의 물음에 왕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다. 갑작스러운 변경이라 그대가 많이 놀랐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영 장군은 걱정할 필요가 없느니라. 짐이 새롭게 세운 작전이 인도 정벌을 보다 쉽게 그리고 보다 빨리할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폐하."

최영 장군의 물음에 왕기가 지도의 한 부분을 콕 짚으며 말했다.

"모두들 지도를 잘 보도록. 짐이 새롭게 세운 계획은 다음과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