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33화 (133/171)

인도(印度) 정벌에 나서다 - 3

[국방과학연구소 내부]

최무선의 뒤를 따라 국방과학연구소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간 왕기가 각종 팻말들이 걸려 있는 연구실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말했디.

"짐이 처음 보는 연구실들이 많이 생겼군."

그러자 최무선이 뒤로 돌아 왕기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이게 다 폐하 때문이지요. 얼마 전에 폐하께서 과거를 여는 동시에 취재(取才)를 직접 주재하셨잖습니까? 그때 뽑힌 전국의 장인들이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기 위에 매진하고 있사옵니다. 아직 그렇게까지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바람에 서로 상생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폐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실학의 꽃이 이 연구소에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던 왕기의 귀에 난데없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땅. 땅. 땅...

각각 다른 음계를 지닌 청아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자 왕기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음계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솔솔라라솔솔미 솔솔미미레...'

그 순간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던 최무선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당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은 왕기가 최무선을 보며 물었다.

"이건 주로 아악에 사용되는 편경(編磬)을 이용한 연주로구나?"

"맞사옵니다. 폐하. 2층의 걸이에 각각 8개의 'ㄱ'자 모양의 돌을 매달고 '각퇴(角槌 : 편경을 때리는 나무망치)'를 이용하여 치면서 소리를 내는 편경을 이용한 연주입니다. 페하께서 취재에서 발굴한 밀양 출신의 '박시용(朴時庸)'과 '박천석(朴天錫)' 부자(父子)가 한창 제작 중인 대고려 제국의 모든 악기들을 조율하기 위한 표준 음계를 내는 편경 소리이지요. 지금 듣고 계시는 것은 노국공주께서 훈민정음과 산수, 과학 등을 익히기 위해 서당을 다니는 고려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직접 작사 및 작곡을 하신 '서당종'이라는 노래입니다. 실험실을 오가며 하도 자주 들어서 저도 익히 알고 있는 노래이지요. 이 모든 것은 폐하의 은덕 때문입니다."

'편경은 본디 송나라 때 고려로 들어온 악기이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가 예악의 기본이 되는 이런 편경을 경기도 남양에서 나는 질 좋은 경석을 이용해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이야. 대전통편(大典通編)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편경을 가장 먼저 숨기고, 한 개라도 파손할 시 곤장 100대에 3년 유배라는 벌을 내리라고 할 정도로 중요시 한 악기라고.'

최무선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뇌까리고 있던 왕기가 물었다.

"짐의 은덕이라? 무엇이 짐의 은덕이란 말인가?"

"폐하.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전국의 모든 서당이 무료로 운용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사옵니다. 학비도 받지 않고, 책자도 모두 공짜이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려 전역의 어린아이들이 서당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한창 집안의 농사일을 도우며 가축을 먹을 풀들을 베기 위해 산과 들판을 돌아다녔어야 할 아이들이 자유롭게 서당을 다니며 공부할 시간이 생겼지요. 일본에서 끌고 온 포로들이 고려 전역에 퍼져 농사일을 돕고 있으니까 가능해진 일이옵니다. 요즘 아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아시옵니까?"

"무엇인가?"

"서당에서 두각을 내어 과거에 합격을 한 뒤 성균관에서 열심히 실학을 공부한 후 국방과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것이옵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도 그러한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요. 국방과학연구소에만 들어가면 녹봉이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기술이나 발명품을 개발하면 폐하께서 엄청난 보상금을 내리신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처럼 유학을 배워 조정의 관리가 되겠다는 꿈이 이제는 드물어졌습니다. 대고려 제국은 과거처럼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아니라 페하의 말씀처럼 실사구시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기술자들과 공학자들이 우대받는 국가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공돌이 출신인 왕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릴 때였다. 저 멀리 보이는 복도 쪽에 대고려 제국의 중앙군 휘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십여 명의 군사들이 엄중히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당 종이 울려 퍼지고 있는 편경 개발실을 빠르게 지나친 왕기가 최무선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중앙군이 경계를 서고 있는 실험실은 무얼 개발하는 것인가? 기술을 도둑맞을까 경계를 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엄격히 말하면 기술을 도난당할 까봐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실에서 개발하는 내용은 소신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까요. 폐하 말고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연구원들조차도 정확히는 모를 것입니다. 행여나 재물을 탐낸 자들이 도적질을 할까 봐 서있는 것이지요."

- 충성!

연구소 소장과 제국의 황제가 함께 등장하자 중앙군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올렸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병사들의 경례를 받은 왕기의 눈이 연구실의 팻말로 향했다.

[무선 통신 기술 개발실]

- 관계자 외에는 절대 출입을 금지함

- 비관계자는 발각 시 즉각 사형에 처함

무시무시한 경고문과 함께 달려있는 팻말을 확인한 왕기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무선 통신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기술이 개발되었다기보다 무선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우연찮게 발견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수많은 실험을 하는 와중에 발견한 우연의 일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로 가도 개경에만 가면 된다고 말입니다."

- 끼이익.

최무선이 문을 열어준 거대한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 왕기의 눈에 비친 것은 한마디로 딱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 풍경이었다. 왕기조차 생전 처음 보는 각종 장비들이 늘려있고, 과거 옥상에 주로 설치되던 TV 안테나와 위성 방송 수신용 파라볼라 안테나와 비슷한 것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거대한 규모의 실험실은 어찌 보면 만화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보물을 잔뜩 숨겨놓은 보물창고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황금으로 제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입구에 경비를 세워둔 게지. 황금을 이렇게나 많이 사용하다니...'

그 순간 최무선이 설명을 해주었다.

"폐하. 이방의 모든 장비들은 대부분이 순금으로 제작되어 있사옵니다. 예민한 전자기파를 시험하는 장비들이기 때문에 전기가 가장 잘 통하는 금속인 순금을 사용하였지요."

"값비싼 순금으로 떡칠을 했다는 소리로군?"

왕기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표정의 최무선이 대꾸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잖습니까? 무선 통신만 개발되면 세상이 뒤바뀔 거라고요. 재물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해도 좋으니 개발에만 성공하면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낌없이 사용하였지요. 제일 먼저 보실 것은..."

현대식 무선 통신 장비를 기대하고 있던 왕기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최무선의 손에 들린 말발굽 모양을 한 소리굽쇠였다.

- 땅...

망치로 소리굽쇠를 때린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연구원들이 무선 통신을 개발하기 이전에 폐하께서 알려주신 '파동(波動)'과 '공명(共鳴)', '증폭(增幅)', '감쇄(減殺)' 등이 무엇인지부터 이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유용하게 사용한 것이 폐하께서 편경을 개발하라고 지시를 내린 박시용 부자에게 알려줬다는 이 소리굽쇠이지요. 이걸 통해 음파의 전달과 공명 그리고 증폭과 감쇄를 연구원들이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그런 후 이걸 전자기파(電磁氣波)에 똑같이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음파가 가능하다면 전자기파 또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으니까요."

'소리굽쇠란 18세기에 영국의 한 트럼펫 연주자가 악기를 조율하기 위한 도구로 개발한 것이었다. 원리 자체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만들기도 쉽지.'

속으로 뇌까린 왕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음파와 전자기파는 특성이 제법 많이 달라."

"소인을 비롯한 연구원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알려주신 내용들이 있으니까요.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음파와 달리 전자기파는 매질이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신 헤르츠라던지 광속과 같은 속도라던지 하는 내용은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이..."

최무선이 손을 들어 아래쪽에 진동을 방지하기 위한 용수철이 잔뜩 달려있는 사람 몸통만 한 거대한 유리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진공 유리관에 순금 가루를 곱게 갈아서 채워 넣은 장비입니다. 전자기파란 것이 정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장비이지요. 만들기가 제법 어려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형광등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땅...

최무선이 유리관 쪽으로 다가가 소리굽쇠를 힘차게 때렸다.

"보시다시피 유리관 안에 있는 순금 가루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유리관 안에 떠있는 순금 가루들은 연구소에서 개발한 어떤 종류의 소리굽쇠에도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유리와 소리굽쇠를 제작하기 위한 쇠의 고유 진동수가 다르고, 유리관 안에는 음파가 전달될 매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최무선이 거대한 사각형 장비로 다가가 스위치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께서 알려주신 전기회로와 안테나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미 고려에는 교류발전기가 존재하고 있고, 코일은 손쉽게 제작이 가능하며 축전기 또한 그러합니다. 그 결과..."

- 지이잉...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안테나 앞쪽에 놓여 있는 유리관 안에 있던 순금가루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시지요? 무언가가 유리관을 관통해 매질이 없는 상태에서도 순금 가루들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것으로 보아 전자기파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하지만 무선 전파 통신을 개발하는 것은 계속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연구원이 새로운 착안을 했지요. 전자기파 역시 파장이므로 소리굽쇠처럼 동일한 파장을 가진 것끼리는 서로 공명을 할거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그 순간 왕기가 눈을 부릅 뜨며 질문을 던졌다.

"설마... 순금으로 떡칠을 한 장비가 어딘가에 또 있다는 것인가?"

최무선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박연 폭포 근처에 이와 똑같은 전기회로와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지요.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재물을 아끼지..."

- 휘이휘이.

손을 내저은 왕기가 대꾸했다.

"알았으니 계속 설명이나 해."

'이건 내가 알고 있는 현대식 전파 통신과 방식이 많이 다른데? 뭐 시대가 다르니 발명품도 다른 것이겠지. 중요한 것은 결과야.'

왕기가 속으로 뇌까릴 때 최무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많은 연구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실험을 했지만 서로 다른 장비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방법을 찾아냈지요."

- 지이잉. 징. 징...

최무선이 스위치를 길게 또는 짧게 껐다 켰다 하자 왕기가 중얼거렸다.

"박연 폭포에 있는 무선 통신 전파소는 응답하라. 이건 고려 신호로군."

"그렇사옵니다. 곧바로 답신이 올것입니다."

그 순간 왕기의 눈앞에 있던 유리관 안의 순금 가루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무선 통신을 개발하는 것에 성공을 하긴 했군. 동일한 주파수를 찾기 위해 재물을 물 쓰듯 하며 온갖 개고생을 다 했지만 말이야. 차라리 다음부터는 연구하는 중간중간 짐에게 보고를 하거라. 그게 차라리 나을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이제 남은 것은 크기를 축소하는 동시에 통신이 가능한 거리 등을 알아보는 작업이 남았사옵니다."

"앞으로는 안테나 따위를 제작하기 위해 황금을 사용하지는 말거라. 평범한 쇠로도 충분할 테니까 말이야. 아무튼 고생했다. 무선 통신이 개발되면 바다 위에서 넓게 퍼져 있는 함대의 배끼리 서로 교신이 가능해 조직적인 운용이 가능해질 것이야."

1346년 8월 16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왕기가 인도 정벌의 준비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어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그런 왕기의 손에 바닥에 놓여 있는 납축전지와 연결되어 있는 손바닥만한 진공 유리관이 들려 있었고, 유리관 끝에는 조그마한 전구가 달려 있었다.

- 반짝. 반짝...

회의 도중 계속 반짝거리는 전구를 바라보던 왕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보고드립니다. 페하의 전용 땅크가 제작 완료되었습니다."

'유선 통신보다는 확실히 간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현대식 스마트폰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핸드폰처럼 전파를 소리로 전환해 주는 장비의 개발이 시급해. 하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 시대에 무선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야?'

"예성강 조선소에서 전력모함의 호위함인 거북선 3척의 건조가 모두 끝났사옵니다, 이로써 기존에 건조되어 있던 전력모함 1척에 거북선 4척, 전열함 100척, 보급선 200척으로 구성이 된 제1함대의 편성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건 보급품을 배에 싣는 것이옵니다."

무지의 보고에 왕기가 물었다.

"예정대로 9월 1일에 대만으로 출항이 가능하겠느냐?"

"네. 폐하. 얼마 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지게차가 있기에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보급품을 싣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옵니다."

"병사들은?"

"일본 정벌에 나섰던 병사들 위주로 이미 꾸려놓았습니다."

"좋다. 예정대로 보름 후 제1함대를 대만으로 파견한다. 다들 거기에 맞춰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 존명!

어전회의를 끝마친 왕기가 연경전을 나와 자신의 전용 땅크가 제작되어 있다는 국방과학연구소를 향하여 빠르게 날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