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32화 (132/171)

인도(印度) 정벌에 나서다 - 2

"...자고로 네 가지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마련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몸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한 초월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서역에서 믿는다는 가톨릭의 예수가 그러하며, 중동에서 믿는다는 알라가 또 그러하고, 고려에서 믿고 있는 불교의 부처가 또 그러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그러한 분 중에 한 분이시지요."

평상시의 무장답지 않은 차분한 설명에 왕기가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장 네 말이 맞다. 특정한 종교가 존재하려면 그들이 신이라고 믿고 따르는 존재가 있어야만 하겠지. 하지만 네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 있다. 난 예수나 부처 같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니라. 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그건 사람들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야.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될 것이니라."

왕기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는 무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종교의 믿음이란 단순히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 외에도 세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이 그러한 신적인 존재를 믿는 신도들이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러한 신도들과 신적인 존재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톨릭의 교황과 신부란 자가 그러하고, 이슬람교의 칼리프와 이맘이 그러하며, 불교의 주지승과 승려들이 또 그러하지요. 공민교의 향수(香修) 또한 그러합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신적인 존재가 행했던 이적(異蹟)과 그의 사상 및 언행 등을 기록한 경전이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불교의 대승삼부경(大乘三部經)인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같은 경전이 그러하고, 가톨릭의 성경이 그러하며, 이슬람교의 코란이 또 그러합니다. 공민교의 경우에는 사도신경이 존재하고 있지요."

마치 자신이 암기한 것을 줄줄 내뱉는 듯한 무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왕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공민교의 향수? 향수가 무엇이더냐?"

"공민교의 발원은 개경에 있던 향도들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러한 향도들 중에서 신심이 깊고 사도신경에 대한 해석이 뛰어난 자들을 공민교에서는 향수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고려 전 지역에서 공민교도들을 이끌고 있는 종교적 지도자들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재차 물었다.

"그대답지 않은 조리 있는 설명은 잘 들었다. 한데... 아직도 종교 분쟁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느냐고 물은 짐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구나."

"폐하. 소신의 생각으로는 종교 분쟁을 해결하려면 분쟁을 야기하는 종교의 네 가지 중 두 가지를 무력화 시키거나 폐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변경시키셔야만 하옵니다. 물론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요. 공민육헌에 이미 천명을 하셨으니까요. 모든 종교에서 유일신의 교리를 없애려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소신이 말한 네 가지 중에 신적인 존재를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지요. 죽은 뒤 사흘 후 부활을 했다는 예수도 이미 종적을 감춘지 천년이 넘었고, 부처도 이미 입멸(入滅)을 하셨으며, 예언자로서 알라의 선택을 받았다는 무함마드 역시 이미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 오래이지요. 결국 남은 건 세 가지뿐입니다. 신도와 종교 지도자 그리고 경전이지요. 만약 폐하께서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시는 분이시라면 종교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집니다. 특정 종교의 신도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고 종교 지도자들을 깡그리 다 죽여버리면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헐벗고 굶주린 힘없는 백성들을 그 누구보다 아끼시는 분이시며, 황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욕적인 삶을 살고 계십니다. 제국의 황제라기보다 구도자(求道者)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계시지요. 폐하의 성정상 그러한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무장의 논리정연한 발언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왕기가 순순히 대꾸를 해주었다.

"따라서? 짐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냐?"

"다수의 힘없는 평신도들은 놔두시고 소수의 종교 지도자들을 족쳐 폐하의 명을 쫓게 만들거나 폐하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은 죽이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경전을 수정하는 작업을 병행하시면 종교 분쟁의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긴 합니다만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종교 지도자라고 해도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문맹이기 때문이지요. 경전을 손에 쥐여주어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일전에 폐하께서 알려주셨잖습니까? 서역에 있는 성당이라는 곳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은 이유는 대부분의 신도들이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으로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바로 그러한 점을 노리는 것이지요. 대고려 제국의 인쇄술은 아주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경전을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지요."

"그러니까... 종교 분쟁을 야기하는 다른 종교들의 경전을 대고려 제국에서 대량으로 찍어내서 뿌리자는 뜻이더냐? 짐이 원하는 것처럼 유일신 교리를 없앤 경전을 말이야."

"역시 현명하시옵니다. 페하. 그런 내용의 경전이 무료로 신도들 사이에서 대량으로 플리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의 변화를 조금씩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삽화 및 인쇄 상태가 아주 뛰어나고 내용 또한 아주 흥미로워 신도들을 충분히 매혹시킬만한 훌륭한 경전을 찍어내야 하겠지요. 그 누구도 감히 폐하의 그런 정책에 반대를 못할 것입니다. 폐하의 뜻을 거역해 유일신을 고집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목이 날아가 다 죽은 상태일 테니까요. 그리고 교리란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를 창시했다는 무함마드도 최초에는 다른 신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권세가 높아지고 이슬람교가 세력을 확장하자 다른 모든 신들을 부정하고 알라만을 신으로 보았지요. 그리스도란 말도 처음에는 단순히 유태 민족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뜻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이 집필되고 신도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기 전에는 유일신의 독생자이며 인간의 원죄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존재라는 뜻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그만큼 경전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빙긋.

무장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은 왕기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장 너에게 그러한 생각을 주입시킨 자가 누구이더냐? 그대의 발언은 각종 종교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야. 설마 그대 스스로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뒤에 누가 있는지를 밝히거라. 만약 짐에게 거짓을 고한다고 판단되면... 오래간만에 짐과 대련을 한번 하는 것도 좋을 테지. 옛 추억도 떠올릴 겸 해서 말이야."

- 부르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한바탕 몸을 떨던 무장이 순순히 입을 열었다.

"폐하와의 대련을 한번 해보고 싶긴 합니다. 소인도 최근에 깨달음이 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급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소인은 공민교도이며 개경에 있는 향수들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두 사람과 자주 의견을 나누고 있사옵니다."

"그게 누구더냐?"

"한 명은 사도신경을 저술했다는 18세의 젊은이입니다."

"목은 이색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색이 사도신경을 저술할 때 오래전부터 폐하의 언행을 옆에서 지켜보며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소신이 제법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조부가 동북면병마사였던 조휘(趙暉)이며, 약관의 나이에 충숙왕忠肅王) 전하를 옆에서 섬겼던 자입니다. 쌍성총관부가 페하에 의해서 함락되자 개경으로 이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왕기가 머릿속에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지금... 조돈(趙暾)을 말하는 것이더냐?"

"그러하옵니다. 폐하."

'조돈이라. 본래의 역사에서 쌍성총관부 탈환에 크게 공헌하였고 문신의 몸으로 홍건적을 격퇴하는 공을 세웠으며, 홍건적의 재침으로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남행을 하게 되자 행궁숙위의 책임을 맡았던 자이다. 공민왕과 아주 가까웠던 신하이야. 안 그래도 숙청에서 살아남은 삼상의 권력이 과거 시험 이후로 너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조돈을 시켜 견제를 해야 하겠군. 동북 면에서 쭉 살았으니 북방민족의 습성도 잘 알 테니 이성계를 견제하기에도 적합하고 말이야. 새로운 성경과 코란을 출판하는 작업은 목은 이색에게 맡기면 될 것이고.'

생각을 정리한 왕기가 무장에게 말했다.

"두 사람에게 일러라. 짐이 한번 보고 싶으니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입궐하라고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1346년 7월 1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인도 정벌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 가운데 대고려 제국의 본토는 진시황릉에서 가져온 재물로 인해 빠르게 국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국토 개발 현장에는 본토 고려인들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왕기의 뜻에 의한 것으로 기존의 농경지는 일본에서 끌려온 포로들에게 경작을 맡기고, 품삯이 두둑하고 전문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공사 현장의 인부들은 모두 본토 고려인들로 충원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야외시험장]

- 크르르릉...

인조석으로 지어진 45도 경사의 비탈길을 아래쪽에 무한궤도를 장착한 쇳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힘차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옆에 있는 최무선을 보며 물었다.

"납축전지로 제법 잘 올라가는구나."

"네. 폐하. 폐하께 시연을 하기 전에 저희 연구소에서 측정한 것으로는 이번에 새로 개발된 전기 모터의 성능이 아주 뛰어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많은 부분을 개선한 결과이지요. 덕분에 언덕도 잘 오르고, 무른 진흙밭도 거뜬히 지나가며, 얕은 개울가도 단숨에 건너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속 시간이지요. 힘은 좋으나 지속시간이 짧은 것이 흠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무게 자체가 너무 무겁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신 경운기나 불도저, 지게차 등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저기에 두꺼운 쇠로 된 상자를 얹으면 무게가 더욱 늘어나 가동 시간이 더욱 짧아지겠구나?"

"네. 폐하. 그건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 정도만의 성능으로도 고토를 개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량으로 생산하여 고토로 보내면 개간이 올해 내에 끝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럼 고려에서는 더 이상 식량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아주 잘하였다. 자금을 아낌없이 밀어줄 테니 팍팍 생산해서 고토로 올려보내거라. 여유가 되는 대로 조선소 건설 현장이나 도로포장, 철도 건설, 댐 건설 현장에도 보내도록 하고. 각종 공사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 순간 왕기가 품 안에서 설계도를 하나 꺼내어 건네었다.

"폐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이것은 '땅크'라는 것의 설계도이니라. 길들이지 않은 야수처럼 땅 위를 크르릉거리며 돌아다니는 전략 무기라는 뜻이지. 무한궤도가 이미 개발되었으니 땅크를 제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야."

잠시 설계도를 뚤어지게 바라보던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폐하. 안 그래도 무거운 무한궤도 위에 이렇게 두꺼운 쇳덩어리와 대포를 동시에 올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옵니다. 설계도 대로라면 기동 시간이 일각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짐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납축전지를 모두 빼지 않았느냐?"

"그렇게 되면 움직이지 않는 고철에 불과할 텐데요?"

"이건 대량 생산용 설계도가 아니니라. 오로지 짐을 위해서 제작될 전용 땅크의 설계도인 것이야. 납축전지 대신 짐의 내공을 이용하여 구동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땅크..."

"아... 무슨 말인지 알겠사옵니다. 납축전지 대신 페하께서 지니고 계신 뇌전벽력신공의 힘으로 전기 모터를 돌리실 생각이시로군요?"

"정확하다. 제작이 가능하겠지?"

"당연히 가능하옵니다. 장인들에게 폐하의 전용 땅크라고 말하면 다들 밤을 새워가며 열과 성을 다하여 제작할 것입니다. 소신을 믿고 맡겨주시지요."

"결과물을 기대하도록 하지. 무한궤도를 이용한 경운기 말고 또 보여줄 것이 있다고?"

"네. 폐하. 그건 야외시험장이 아니라 연구소 내부에 있사옵니다. 소신을 따라오시지요."

기대에 찬 눈빛의 왕기가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최무선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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