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30화 (130/171)
  • 종교전쟁(宗敎戰爭)의 싹이 트다 - 2

    신성 프랑스 제국의 베니스령에서 왔다는 푸른 눈의 상인이 도자기 상점의 주인을 향해 더듬거리는 고려어로 크게 화를 내었다.

    "왜 내게... 상감 청자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오? 지난번 거래 때 본인이... 직접 주문을 하고 간... 상품이잖소?"

    그러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표정을 지은 도자기 상점 주인이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주문을 내면 뭘 해? 약속 시간을 세 달이 넘게 어겨서 왔잖아? 대고려 제국의 상감 청자는 한 달에 100점도 채 제작이 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상감 청자는 대

    고려 제국에서 만드는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최상품이면서 일종의 예술 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거야. 품질 관리를 위해 황제 폐하께 제작을 허락 맡은 장인만이 제작할 수 있는 거라고. 그대가 주문한 상감 청자 100점이면 돈이 얼만 줄 아나? 그걸 계속 나보고 가지고만 있으라고? 오지도 않는 그대를 기다면서 말이야. 그동안 난 땅 파서 먹고 사나? 계약서를 쓸 때 분명히 알려줬잖아? 약속 시간에서 한 달이 지나면 다른 상인에게 팔겠다고 말이야. 그쪽이 발주한 상감 청자는 이미 다른 상단에 넘겼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

    그러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푸른 눈의 상인이 더듬거리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말했다.

    "내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것이 아니잖소? 여기서 산 도자기를 싣고... 배를 타고 돌아갔더니 본국에서 한 달 가까이...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소이다. 빌어먹을 전염병... 때문에 말이오. 그 바람에 출항도... 게획보다 늦어졌고.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소."

    그 순간 노국공주의 설명을 듣고 있던 왕기가 다급히 물었다.

    "전염병 때문에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설마... 흑사병(黑死病)이 창궐해서 '콰란틴(Quarantine)'이 발동된 것인가?"

    "비슷하지만 콰란틴은 아닐 것입니다. 콰란틴은 '40일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Quarantin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중세 때 흑사병으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후로 경각심이 생긴 유럽에서 19세기 때 흑사병이 다시 발발하자 항구에 정박하려는 배들을 미리 선상에서 검역당국의 검사를 받고 'clean bill of health'를 받아야만 입항할 수 있게 만든 것에서 비롯된 말이니까요. 이 clean bill of health를 받지 못하면 40일간 항구 밖에서 격리되어 있어야만 했지요. 현대에서의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말이 격리이지 죽으려면 배 안에서 다 같이 죽으라는 뜻에 가깝지요. 지금은 14세기이니 콰란틴은 아니겠지만 항구에서 배를 장기간 입항시키지 않은 것을 보면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왕기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고려에 흑사병이 돌면 막을 방법이 있겠소? 전직 의사인 유나 그대가 나보다 더 잘 알지 않겠소."

    "불가능하옵니다. 날이 훤한 대낮에 그것도 개경 내성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 소첩이 관련자들을 불러 엄중하게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흑사병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지만 이 시대의 흑사병은 급성 페스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소첩이 한창 페니실린을 개발하고 있긴 합니다만 페니실린만으로 흑사병을 치료하기에는 역부족이지요. 보다 강력한 항생제인 스트렙토마이신, 겐타마이신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첩에게는 그걸 개발할 능력이 없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설사 페니실린이 개발되어 있다 하더라도 치료를 할 만한 시간 자체가 없다고 보시는 게 맞을 것입니다. 급성 페스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전염병들 중에서 사람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기 때문이지요. 그 무시무시하다는 에볼라보다 더 빨라 발병한지 6시간이면 사람이 죽게 됩니다. 밤사이 페스트로 사망한 친구를 조문하기 위해 찾아간 친구들과 장례식을 집전한 신부 그리고 시체를 날랐던 인부들이 그 다음날 모두 사망해 같은 날 같은 묘지에 묻힌 일화는 유명하지요."

    "그럼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소첩이 몇 가지 방책을 세워 긴급하게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첫째, 서역에서 출발해 금란도로 들어오는 모든 배들은 열흘간 항구에 입항 금지를 시켰습니다. 콰란틴처럼 40일까지는 필요 없고 열흘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급성 페스트에 걸리면 짧으면 6시간 길어봐야 5일 이내에 사망하니까요. 둘째, 열흘간 바다 위에서 버틸 식수와 식량이 부족하면 대고려 제국에서 지원하고 돌아갈 때 세금에 합산하여 부가하도록 조치를 내렸습니다. 셋째, 검역관들을 급히 편성했습니다. 검역관은 온 전신을 가리는 의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복면을 쓴 채 열흘이 지난 배에 탑승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작한 수은체온계로 모든 선원들의 체온 검사를 실시하고, 모든 선원들을 발가벗겨 외견상 피부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자들은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려놨습니다. 당장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아주 잘 하셨소. 근데... 신성 프랑스 제국의 베니스령에서 온 상인이라고 하였소? 세계사 시간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제국이구려."

    "소첩 또한 그렇사옵니다. 폐하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역사가 많이 비틀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소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역에서 신성 프랑스 제국이 급격하게 세를 확장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럴 것이오. 카빈 소총을 장착한 군대를 막을 만한 나라가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프랑스가 영국을 물리친 다음 스페인을 정복한 후 제국을 선포하였고, 곧바로 '합스브루크 왕가(Habsburg Haus)'가 지배하는 서역의 강자인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런 후 단 몇 달 만에 오스트리아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었다고 하옵니다. 폐하께서 잘 아시다시피 유럽은 같은 대륙에서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옵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이라 정복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특히 페스트의 창궐과 더불어 그 기세가 무섭게 확장되고 있다고 하옵니다."

    "페스트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오?"

    "네. 폐하. 새로이 교황으로 즉위한 자가 페스트를 치료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군요. 교황이 치료할 수 있는 숫자가 하루에 이십여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각 나라의 지방 영주들이 신성 프랑스 제국과 싸우기를 꺼려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옵니다, 자신들이 페스트에 걸렸을 때 살아날 유일한 구명줄이 교황이기 때문이지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정복한 신성 프랑스 제국은 현대의 독일 지역인 프로이센 쪽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이탈리아반도에 있는 제노아, 베니스, 밀라노, 나폴리 같은 도시 국가들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을 했다고 하옵니다."

    "흐음... 베니스가 신성 프랑스 제국에 항복을 했다라. 이건 제법 문제가 심각하군. 베니스는 서역에서 배를 대량으로 건조하는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오.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이 있는 중동의 '레반트(Levant)' 지역으로 원정군들을 대량으로 실어 나른 배들을 그들이 건조했다는 것만을 봐도 알 수가 있지."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신성 프랑스 제국에서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끝나는 즉시 십자군 원정을 다시 시작할 거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하옵니다.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오? 베니스에서 왔다는 상인이 열을 받아 도자기 상점의 주인을 죽였다는 것이오?"

    "아니 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최초의 시비는 중동에서 온 상인이 시작했다고 하옵니다."

    "그자는 또 왜?"

    "중동에서 온 상인도 자신이 주문했던 도자기를 인수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개경의 대봉상회]

    시리아에서 왔다는 칸도라를 입은 상인이 대봉상회 주인에게 능숙한 고려어로 따지고 있었다.

    "내가 주문한 고려의 상감청자들은 왜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오? 난 분명히 약속한 시간 내에 왔잖소?"

    그러자 공민교도로 보이는 주인이 상점 벽에 떡하니 걸려있는 성장(聖章)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대는 고려어를 능통하게 읽고 쓸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성장 제1구절이 뭔지 한번 읽어보시구려."

    "공민 1헌 : 태조께서 그리하셨듯 고려는 부처의 호위를 받아야 하므로 숭불 정책을 유지한다. 하지만 고려는 다른 종교 역시 차별을 두지 않으므로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보장하는 바이다. 단 교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뜯거나 교인들을 폭행 또는 성추행을 하며 인신공양을 하는 종교 그리고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들을 모두 부정하는 종교는 사이비로 규정해 포교활동을 금지한다."

    "그대가 방금 읽은 것처럼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황제 폐하께서 모두 사이비라고 규정하셨소. 그대가 믿는 종교는 알라를 제외한 모든 신을 부정하는 종교이지 않소? 그런 사이비 교인 따위에게 고려의 예술품인 상감 청자를 팔지 않기로 송상의 수뇌부에서 결정했소이다. 지금 개경의 내성 안으로는 백성들에 의해 무당의 출입조차도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라오. 그러니..."

    도자기 상점 주인이 터번을 맨 인도에서 온 상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고려의 상감 청자를 수입해 갈 수 있는 자는 이 중에서 그대가 유일하오."

    그러자 터번을 맨 인도 상인이 안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본인이 믿는 힌두교는 이슬람교와 달리 다른 신을 부정하지 않지요. 소지하고 계신 모든 상감 청자를 본인이 사도록 하겠습니다."

    - 촹.

    그 순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초승달처럼 휘어 있는 '삼쉬르(Shamshir : 사자의 꼬리라는 뜻을 지닌 아랍식 곡도)'를 뽑아든 중동 상인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런 불경한 자를 보았나? 어디서 하찮은 인도인 따위가 아랍 상인의 고귀한 상업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더냐?"

    그 순간 왕기가 노국공주에게 물었다.

    "개경에 무당들이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것이 무슨 말이오? 짐은 그런 명령을 내린적이 없는데..."

    "고려에서는 이전에도 무당들이 함부로 개경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고려의 집권 세력이었던 유학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 정도가 더 심하옵니다. 페하께서 공민육헌에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에게 돈을 뜯는 행위는 사이비로 규정되기 때문이지요. 공민교도가 세를 불린 후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재차 물었다.

    "인도 상인이 터번을 쓰고 있다고 하길래 '시크교(Sikhism)'를 믿는 줄 알았는데 힌두교를 믿는 모양이구려? 근데 아랍 상인이 왜 인도 상인을 무시하는 것이오?"

    "폐하.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되어 있사옵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시크교란 종교가 없사옵니다. 시크교의 개조(開祖)인 '나나크(Nānak)'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요. 16세기에 창시된 시크교의 출현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종교이옵니다. 두 종교를 비판적으로 통합한 것이 시크교이지요. 나나크의 '자신은 힌두도 아니며 무슬림도 아니다'라고 한 말은 유명하지요. 그리고... 지금의 인도는 힌두교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인도가 힌두교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지배를 받고 있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폐하. 지금은 북아프리카와 유럽 일부, 서아시아를 거느린 대제국으로 발돋음하는 오스만 제국이 한창 일어서는 시기이지요. 지금 인도를 다스리고 있는 자는 '무함마드 빈 투글라크'라는 자입니다. 흔히 노예 왕조라 불리는 맘루크 왕조에서 할지 왕조를 거쳐 쿠글루크 왕조로 넘어온 것이지요. 그자는 스스로를 술탄이라고 부르고 있사옵니다. 술탄이란 이슬람교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가 수여한 정치적 지배자의 칭호이지요.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굳게 믿다는 뜻이옵니다. 그러한 이유로 아랍 상인이 인도 상인의 말에 크게 화를 낸 것입니다. 인도의 정식 국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에 힌두교도가 이슬람을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내가 이래서 신들을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애초에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도 좀 인정해라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오?"

    "화가 잔뜩 난 아랍 상인이 도자기 상점 주인과 인도 상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지요. 그런 후 상점 근처에 있던 고려 백성들에게 제압을 당하였습니다. 현재 베니스 상인과 아랍 상인 일행들은 모두 옥에 갇혀 있는 상태이고요. 이자들을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잠시 고민을 하던 왕기가 입을 열었다.

    "대고려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고려 상인이 사사로이 살해당한 것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소이다. 그들 모두 참수를 시키시오. 그런 후 짐이 내린 방과 함께 개경 내성 입구에 목을 거시오. 대고려 제국과 교역을 원하는 상인들은 반드시 공민육헌에 따라야만 할 것이라고 말이오."

    "폐하. 그랬다가는 이슬람과 가톨릭 양쪽에서 극렬하게 항의를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옵니다."

    "상관없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 쪽의 명분을 제대로 세울 것이오. 어떠한 종교도 유일신 교리를 가질 수 없다는 명분을 말이오. 그들이 대고려 제국과 전쟁을 원한다면 해줘야지. 짐이 과거로 끌려온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러한 종교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폐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명을 내려 그자들의 목을 치고 개경에 방을 내걸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빠르게 사흘이 흘러갔다.

    1346년 6월 1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침통한 표정의 왕기가 어전회의에서 앙리의 보고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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