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29화 (129/171)
  • 종교전쟁(宗敎戰爭)의 싹이 트다 - 1

    노국공주가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는 특별한 사건은 시간을 이틀 거슬러 갔다.

    1346년 5월 27일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이 시대의 고려는 인구가 크게 증가해 600만에 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시비법(施肥法 : 거름주기)'의 전국적인 보급으로 휴경지가 줄어들어 식량 생산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기가 다스리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대고려 제국은 본래의 역사보다 2배 가까운 천만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여진과 거란으로 대표되는 북방민족의 합류와 일본 정벌의 성공으로 고려로 대거 잡혀온 일본인 포로들에 의한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이었다. 머리수가 많은 한족을 상대하기 위해 왕기가 그토록 바라던 최소 인구 수 천만을 짧은 시간 내에 뛰어넘은 것이었다. 특히 개경은 대고려 제국의 수도답게 조선시대의 한양보다 1.5배가 더 컸고, 인구밀도 또한 높아 무려 3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개경 시내]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시대의 개경 모습은 사신으로 고려에 들어와 개경에서 1개월간 머무른 후 귀국한 송나라의 문신 '서긍(徐兢)'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알 수 있듯이 조그마한 집들이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기와집은 열에 한 둘에 불과했다고 한다. 다만 소수 귀족들과 부유층들의 집은 상당히 크고 호화로웠으며, 특히 세도가 이자겸의 집은 궁궐 못지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왕기가 황제에 오른 후 개경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상당수의 집들이 초가집이 아니라 인조석을 이용해 네모 반듯하게 지어졌고, 대부분의 집들의 지붕에는 기와가 얹어져 있었다. 이는 왕기가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밀고 있는 실사구시의 결과물이었고 대량 생산 시스템 구축에 따른 변화였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왕기가 집권하며 아낌없이 뿌린 식량과 적절하게 책정한 세금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숙청 덕분에 백성들의 삶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먹고사는 것에 여유가 생기자 백성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 관심을 돌렸고 허름했던 초가집을 개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에 자본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축적한 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하루도 밀리지 않고 매달 꼬박꼬박 나가고 있는 이십만에 가까운 병사들의 녹봉과 어느덧 2만이 넘어가는 조선소 직원들과 용접공들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장인들의 녹봉이 개경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그들의 가정에 들어가면서 잉여 자금을 고려 은행에 맡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개경의 시진(市廛) 즉 시장이었다.

    [개경의 남대가 시장]

    황성, 내성, 나성으로 분류되는 개경에서 사람들이 가장 북적거리는 내성의 남대가에는 시장이 매우 발달해 있었는데, 이는 흔히 송상(松商)이라 불리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뛰어난 상술로 하나의 세력권을 이루었던 대표적인 상인군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관료와 재력가 집단, 기술자 집단 등 소비력이 뛰어난 자들의 가족 대부분이 내성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경 시장은 크게 두 종류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황실 주도의 시장으로 백성들의 삶을 위한 생필품 위주의 시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장인들이 모여 자연적으로 발달한 시장이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시장으로는 '철동 거리'가 있었는데 금속 기구, 농기구, 무기류 등을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남대가 시장에는 새로운 거리들이 속속 등장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인 '통조림 거리', '도자기 거리', '건자재 거리', '공민교 거리' 등이었다. 기존의 시장에서는 원나라에서 들여온 비단, 차, 약재 등이 팔렸고, 금, 은, 인삼, 화문석, 나전칠기, 종이 등 고려에서 나는 물건들도 같이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생긴 거리에서는 왕기가 개발한 상품들이 주력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중이었다.

    침상에 누워 팔베개를 한 채 자신의 가슴을 연신 쓰다듬으며 참새처럼 조잘대는 노국공주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던 왕기가 물었다.

    "통조림 거리가 뭔지는 알겠소. 군용 식량으로 개발한 통조림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것이겠지. 한국에서도 있었던 깡통시장처럼 말이오. 도자기 거리야 당연히 도자기를 팔고 있을 테고, 건자재 거리에서 무얼 팔고 있는지도 충분히 짐작이 가오. 근데... 공민교 거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오?"

    "개경에 공민교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소. 신라면이 이끄는 향도들 사이에서 짐을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고 있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잖소?"

    "일부 향도들 사이에서만 믿고 있던 공민교가 최근 그 기세를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신도들의 숫자가 대폭 증가했고 공민교도들이 예배를 올리는 사당도 여기저기에서 세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오?"

    "다름 아닌 폐하 때문이지요. 과거가 치러지던 3월 6일 폐하께서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왕기의 뇌리 속으로 과거 시험장에서 척무관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 몰랐느냐? 난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천자(天子)라고 부르지 않느냐?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고려에 내려주신 신의 아들인 게야. 고려의 만백성들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지 않느냐? 짐이 미륵의 화신이라고 말이다.

    상념을 끝마친 왕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짐이 척무관과 나눴던 대화를 누군가가 엿들어서 퍼뜨린 모양이로군. 하지만 그건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는데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폐하께서 신의 아들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공공연하게 천명을 하셨으니 공민교의 교세가 급격히 확장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한 공민교도들에게는 '사대성물(四大聖物)'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성물을 사고팔고 교도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거리가 공민교 거리이지요."

    왕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대성물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오?"

    "공민교도들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물이라고 하더군요. 성화(聖畵), 성상(聖像), 성장(聖章) 그리고 사도신경(使徒信經)이라고 하옵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을 지은 왕기가 물었다.

    "그게 다 무엇이란 말이오?"

    "성화는 폐하께서 고려 백성들을 위해 이 땅에 임하신 후 처음으로 성력을 보여주신 사건을 그린 것이라고 하옵니다. 성상은 당연히 폐하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조각상이고요. 성장이라 함은 폐하께서 반포하신 훈민정음해례본에서 공민육헌만을 따로 떼어내어 인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사도신경은 얼마 전에 목은 이색이 지은 공민교의 성경이라고 하옵니다.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첩이 사대성물이란 것을 구해오라고 해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사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어디 한번 봅시다."

    - 부스럭. 부스럭.

    침상에서 일어나 수납장에서 보자기를 하나 꺼낸 노국공주가 입가에 웃음을 가득 지으며 왕기에게 내밀며 말했다.

    "공민교의 교주이신 폐하께서 직접 한번 살펴보시지요."

    자신의 정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국공주의 놀림에 왕기가 정색을 하며 답했다.

    "그만 놀리시구려. 이러다 짐이 죽은 후 사흘 뒤에 다시 부활이라도 할까 봐 겁이 덜컥 나는구려."

    말을 하며 빠르게 보따리를 풀은 왕기가 사대성물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화라고 불리는 그림은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대불이 수소로 가득 찬 팔을 발사하여 기철의 집을 박살 내는 그림이었고, 성상은 사람들이 기존에 믿고 있던 미륵상에 왕기의 얼굴을 가져다 붙인 것이었으며, 성장은 성스럽고 화려한 문양으로 공민육헌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마지막으로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사도신경을 집어 든 왕기가 첫 페이지에 있는 사도신경 서문을 빠르게 읽어보기 시작했다.

    - 공민교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고려 땅으로 내려오신 신의 아들인 공민황제를 교주로 한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지구가 포함된 태양계 그리고 태양계를 포함하고 있는 우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우주는 누군가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최초의 우주는 모두 하나의 점으로 뭉쳐져 있었으며 어느 날 미증유의 대폭발을 일으켜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우주는 중력이라는 힘에 의해 작동되고 있으며 인간 또한 그러한 중력을 적용받고 있는 지구에서 스스로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어 마치 벌레와 같았던 한낱 미개한 생명체에 불과했던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진화(進化)를 하게 되었고 현재의 인간이 되었다. 그러한 인간들 중에 욕망을 버리고 큰 깨달음을 얻어 고귀한 존재로 거듭난 자를 우리는 신(神)이라 부르는 것이다...

    서문을 읽어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이건 내가 저술한 천문학과 물리학, 생물학 등이 총합되어 지어진 것이로군."

    왕기의 말에 노국공주가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소첩이 보기에는 이건 신경이라기 보다 과학적인 팩트에 기반한 학술서에 가깝지요. 빅뱅이론에 중력장 이론에 진화론까지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니까요. 목은 이색이 글 쓰는 재주도 대단하지만 과학에 대한 이해력 또한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버무려 사도신경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냈으니까요. 좀 더 읽어보시면 아주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잘 지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 드는 느낌이 들게 만들더군요."

    "근데... 이런 내용들을 공민교도들이 다 믿고 있단 말이오? 현대에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수두룩한데 말이오."

    "폐하께서 여태껏 보여주신 이적들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신의 기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신의 기적을 수시로 행한 자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현대에서도 아주 유명한 짤이 하나 있지요. 한국인은..."

    "적당함을 모른다. 나도 그 짤은 알고 있소. 근데... 이런 식의 교리라면 기존의 종교들과 많이 상충될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러하지요. 소첩이 처음에 말씀드린 도자기 상인도 그런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눈으로는 사도신경을 읽으며 귀로는 노국공주가 해주는 설명을 마저 듣고 있었다.

    [개경의 도자기 거리]

    본래의 역사와 달리 이 시대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베나 곡식 같은 지방 특산물을 조정에 바치는 공납을 이송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고려 은행의 등장으로 공납 대신 조폐창에서 발행한 지폐로 공납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는 도자기 거리에 있는 상점 중에 하나인 대봉상회(大鳳商會). 훈민정음으로 제작된 화려한 간판이 걸려 있는 상점은 그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재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조석으로 반듯하게 지어져 있는 건물이 그러했고, 상점 좌우로 설치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자기들의 모습은 현대의 쇼윈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왕기가 개발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한 최신식 상점에서 멀리 서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푸른 눈의 상인과 큼지막한 터번(Turban)을 두른 인도 상인 그리고 중동인들의 전통 복장인 칸도라(Kandora)를 입은 상인이 상점 주인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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