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秦始皇陵)의 발굴 - 1
1346년 4월 23일
[시모노세키 상공]
사흘전 교토를 단 한 번의 폭격으로 폐허로 만들었던 비행선들이 시모노세키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비행선에 매달린 기다란 줄 끝에 연결되어 있는 철창 안에는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묵혀있는 당대의 일본 천황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라가 수감되어 있었다. 철창이 지상과 가까운 지점까지 내려가자 요시아키라가 시모노세키에 발 디딜 틈 없이 모여있는 일본 백성들과 그들을 강제로 끌고 온 일본 병사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난 천왕이니라. 모두들 잘 들어라. 일본은 대고려 제국에게 무조건적으로 항복을 하였고, 일본은 고려에 영원히 복속하기로 협약을 맺었느니라. 그러니 다들 창칼을 버리고 항복을 하여라. 고려군이 안전하게 상륙을 할 수 있도록 해안가를 비워주란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1호 비행선에서 왕기와 같이 지상의 상황을 내려다 보고 있던 최영 장군과 무지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의외로군요. 불사의 존재라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천황이란 자가 목이 찢어져라 계속 항복 선언을 외치고 있군요."
최영 장군의 말을 무지가 받았다.
"천황이란 자가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것 같습니다. 폐하."
왕기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짐이 지난 사흘간 뭘 하다가 나타난 것 같으냐? 일전에 요시아카라의 책사 역할을 하고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를 고문하며 알아낸 게 있었지. 이자나미의 은총은 불사의 능력을 주긴 하지만 무통의 재주는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는 있어도 고통을 느끼는 것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 짐이 지닌 재주 중에 하나가 해부학에 제법 조예가 깊다는 것이지. 어딜 어떻게 해야 사람이 고통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니라. 지난 사흘 내내 고문을 했더니 천황이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버리더군."
왕기의 말이 끝나자 무지가 물었다.
"그렇군요. 근데 교토의 대폭격에도 불구하고 천황이 용케도 살아남았습니다. 불사의 병사들이라고 불리던 자들은 모조리 다 타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자나미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은 자라 그 정도로는 죽지 않더군. 하지만 상관없다. 일본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철창째 불타는 화산에 집어던질 계획이니까. 그럼 천황도 소멸될 것이야. 그러기 전에... 천황을 앞세워 일본 병사들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런 후 최영과 무지는 본래의 작전대로 혼슈에 상륙해서 포로들을 잡아가도록 해. 쓸만한 재주가 있는 자들과 신체 건강한 자들을 모조리 고려로 데리고 갈 것이니라. 그런 후 백성들에게 곧바로 농사를 짓게 만들어야만 한다. 파종 시기가 조금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농사를 시작해야 가을에 수확을 거둘 수가 있어. 안 그랬다가는 고려의 귀중한 재물로 저들을 모두 먹여살려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몰라. 최대한 빨리 혼슈를 정리한 후 고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속하게 작전을 진행하도록."
- 존명.
그리고 빠르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1346년 5월 20일
왕기가 일본 천황을 활화산과 온천이 많아 '불의 나라'라 불리는 규슈의 구마모토현 동부에 위치한 활화산인 아소산(阿蘇山)에 담가 영원한 죽음을 선사하고, 일본 정벌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돌아온 고려 군들을 떠들썩하게 환영하던 분위기도 이미 지나가고 고려는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지난 한 달 사이 고려는 제법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경에 넘쳐나는 이민족들이었다. 원나라가 서역과의 교역을 활발히 하며 전성기를 누릴 때 대도에서 보이던 광경이 개경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배를 타고 금란도를 통하여 입국한 중동의 상인들과 실크로드를 지나와 대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온 서역의 상인들 그리고 여란과 거진을 비롯한 북방민족과 포로로 끌려온 일본인들 중에 일부가 개성시내를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상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고려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중이었으며, 수도인 개경이 전 세계의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특이한 것은 고려의 청자와 백자 그리고 골회자기를 수입해가기 위해 눈이 뒤집혀 있는 각국의 상인들이 고려의 지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중동 상인들의 배가 금란도에 정박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고려 은행 금란도 지점에 들러 자신들이 본국에서 가져온 금과 은을 고려의 지폐로 교환하는 일이었고, 자신만의 통장 계좌를 개설하는 일이었다. 고려의 지폐는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고, 고려 은행 한 군데에 계좌를 뚫어놓으면 통신소를 이용해 고려 전역에 퍼져있는 어떤 은행 지점에서도 입출금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는 고려 상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현상이었다. 왕기가 꿈꾸던 훈민정음을 익힌 지식인 집단에 이어 상업을 이용해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 집단이 본격적으로 그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었다.
[연경전의 어전회의]
사람이 적어 썰렁하던 어전회의 풍경도 사뭇 달라져 있었다. 과거를 통해 등용된 신진훈정부(新進訓正夫) 세력들이 주축이 된 문관들이 100여 명 가까이 시립해 있었고, 무관들 또한 그 수가 100에 가까웠다. 무과에 합격한 자들과 비천(飛天), 장사(壯士), 남해(南海), 백두(白頭), 송도(松都) 무맥 등의 뛰어난 무인들이 모조리 무관으로 등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이잉...
징 소리와 함께 왕기가 어전으로 입장하자 문관과 무관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대고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왕기가 옥좌에 안자마자 최무선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폐하. 제1호 전력모함이 부산포 앞까지 시험운항을 성공리에 끝마쳤사옵니다."
"그래? 잘 되었구나. 이제부터 대고려 제국은 본격적으로 전 세계 바다에 진출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모함을 주축으로 하는 함대를 다수 조직해야 것이야. 전 세계 바다인 오대양에 함대를 주둔하려면 5대의 전력모함이 필요할 것이고, 거기에 고려 본토를 지키는 동해, 서해, 남해 함대가 있어야만 하겠지. 적어도 총 8개의 함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각 함대마다 주함인 전력모함을 상하좌우에서 지키는 거북선이 4대씩 필요할 것이고, 함대마다 전열함 100대와 보급함 100대 수송함 100대를 기본 편제로 구성한다. 이들 모든 함대는 철선으로 제작될 것이니라. 따라서 지금부터 최무선은 전력모함 7대와 거북선 31대 그리고 전열함 800대와 보급함 800대 수송함 800대를 건조하도록 하거라."
왕기의 말에 얼굴이 샛노래진 최무선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폐하. 전력모함 한 대를 건조하기 위해서는 황실의 1년 예산이 소모됩니다. 아무리 봐도 무리입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8개의 함대를 건조할 만한 재물이 고려에는 없사옵니다."
"왜 없느냐? 얼마전에 일본 총독으로 임명된 신라면의 보고에 따르면 매년 십만 관에 달하는 은을 고려 황실에 바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일본 전역에서의 본격적인 은광의 개발과 혁신적인 은 추출 기술인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을 이용해서 뽑아낸 은을 말이다. 고려의 상인들이 도자기를 팔아서 얻는 세금 또한 적지 않을 것이고, 북방 민족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 또한 적지 않다. 짐이 보기에는 절대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 순간 영의정 이제현이 나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폐하. 세금으로 단순히 함대만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고려에는 폐하께서 추진하시려는 정책들로 인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무한궤도의 개발과 전철의 개발, 그리고 전철 개발에 따른 고려 전역에 철도를 까는 일, 인조석을 이용한 도로포장과 산을 뚫어 길을 내는 일, 전기를 얻기 위한 댐 건설 등에도 재물이 무한정으로 소모될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래? 이럴 줄 알았느니라. 짐이 가진 재물이 떨어져서 세금으로 일을 추진하려고 하니 곧바로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는구나. 하지만 짐이 막대한 재물을 구해오면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니라. 상령!"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상령을 찾자 척무관이 황급히 앞으로 뛰어나왔다.
"폐하. 소신 여기 있사옵니다."
"넌 지금 즉시 원나라 황실에 짐의 서신을 보내거라."
"뭐라고 말입니까?"
"짐의 비인 여춘옹주가 출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짐이 여춘옹주와 함께 경치 좋은 서안에 있는 황실 별장으로 가서 두어 달 정도 쉬고 오겠다고 미리 서신을 보내놓도록 하거라. 상령 그대와 무지는 나와 같이 함께 간다. 짐이 자리를 비운 동안 짐의 정비인 노국공주가 고려를 다스릴 것이니라. 무장은 고려에 남아 짐의 정비를 곁에서 잘 지키도록 하고. 감히 황실의 전복을 노리는 세력은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럼 페하와 여춘옹주님을 모시고 서안까지 갈 대가(大駕 : 왕의 행차에 따른 가장 큰 규모의 의장 행렬)를 준비하겠습니다."
"필요 없느니라. 임산부가 장거리를 오랫동안 여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비행선을 타고 이동할 것이니 그리 알고 수행원을 선정해서 준비하도록. 내일 곧바로 떠날 것이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본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려는 듯 옥좌에서 벌떡 일어선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의 어전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노라."
[연경전의 침실]
핵심 간부들이 왕기를 따라와 간부 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들 걱정하지 말아라. 짐의 믿기지 않는 이동 속도를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고려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날아올 것이니라."
그러자 척무관이 대꾸했다.
"걱정하지 않사옵니다. 폐하. 서안에는 이미 별장이 건립되어 있고 통신소까지 설치되어 있사옵니다. 고려의 소식을 바로바로 전달받을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그 순간 무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폐하. 정말로 진시황릉을 발굴하실 생각이십니까? 여춘옹주의 출산 때문에 가신다는 것은 대외적인 명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함대를 조직하기 위해 무려 3천 대에 가까운 철선을 제작할 막대한 재물을 얻기 위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맞아. 본격적인 진시황릉 발굴에 나설 것이야. 어려울 것 하나 없다. 이미 진시황릉을 빙 둘러싼 고려 황실의 별장이 지어져 있고, 짐이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빠르면 열흘 늦으면 한 달 안에 모든 발굴이 종료될 것이니라. 그런 후 원나라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행선에 재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면 끝나는 것이지. 진시황릉에서 얻은 재물로 대고려 제국은 제2의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니라."
1346년 5월 21일
명을 내린지 단 하루 만에 왕기 일행이 외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서안에 위치한 고려 황실의 별장에 전격적으로 비행선을 타고 내려앉았다. 별장에 행장을 푼 왕기가 척무관과 무지를 앞에 놓고 고려에서 가져온 구리 선을 보여주며 말했다.
"진시황릉은 이곳 별장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이 확실하니라. 하지만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한 사전 확인 작업이 필요하지. 이 시침(試針)을 이용해 황릉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것이니라."
왕기의 자신만만한 발언에 무지가 물었다.
"단순한 구리 선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옵니까?"
"가능하니라. 짐이 내공을 이용해 구리 선을 땅속 깊숙이 박아 넣어 전기전도도(電氣傳導度)를 측정할 생각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긴 하지만 길어봐야 이틀 이내로 진시황릉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폐하. 전기전도도란 것이 무엇이옵니까?"
"유선통신에 사용되는 전기를 잘 알고 있겠지? 그 전기가 얼마나 잘 이동하느냐를 측정하는 것이니라."
"그걸로 진시황릉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찾을 수 있느니라. 사마천이 기록해 놓기를 '하동이치곽(下銅而致槨)'이라고 하였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구리를 쏟아부어 황릉의 외곽을 둘러쌓다는 말이잖습니까?"
"그래도 모르겠느냐? 무지 너답지 않구나. 유선통신에 사용되는 전선이 뭘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잊었단 말이냐?"
"아.."
무지가 탄성을 터뜨릴 때, 왕기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구리는 전기전도도가 극도로 뛰어난 금속이다. 일반적인 흙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 진시황릉의 크기는 어마어마할 것이야. 그런 황릉의 외곽을 구리로 다 감쌌다고 되어있으니 땅속 깊은 곳의 전기전도도를 측정하면 황릉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엄밀히 말하자면 황릉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땅속 깊숙한 곳에 묻혀 있는 구리를 찾는 작업인 것이지. 시간이 아깝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해야만 해"
- 우우웅...
왕기가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리는지 벌떼가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제법 굵은 시침에 오색찬란한 강기가 어리기 시작했고, 왕기가 강기로 감싸인 시침을 바닥 아래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 푸우욱...
그리고 이틀이 빠르게 흘렀다. 눈을 꼭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시침 작업을 하고 있던 왕기의 입술이 가볍게 벌려졌다.
"찾았다... 시침을 통해 흐르는 전기전도도가 뛰어난 것이 진시황릉 외곽을 감싸고 있다는 구리가 확실해."
진시황릉의 보물을 얻을 생각에 왕기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할 때 고려에서는 왕기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