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24화 (124/171)
  • 일본 정벌 - 역사는 반복된다 - 2

    [개경의 국방과학연구소]

    밤이 깊어가고 있는 시각 고려의 개경에 도착한 왕기가 상공에서 국방과학연구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왕기의 눈에 들어온 국방과학연구소의 전경은 마치 현대의 연구소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인조석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길들이 그러했고, 건물 외벽에 설치된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내부가 환하게 보이는 신축 건물들이 그러했으며, 그런 건물들 내부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개발에 성공한 형광등의 불빛들이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왕기가 주관하는 기술 개발에 따른 결과물들이었다.

    '이것 참... 나처럼 현대에서 넘어온 사람이 보면 21세기의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구나. 짧은 시간에 내가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긴 했어. 처음 연구소를 세웠을 때와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야.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좀 더 맹렬하게 기술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 정벌부터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해.'

    잠시 감상에 빠져있던 왕기가 최무선이 있는 신축 건물 쪽을 항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실]

    고려 장인들의 기술 축적을 위해 서역의 기술자들과 협업하여 제작한 유리창들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도록 설계된 연구소의 신축 건물. 소장실의 문에도 유리창이 나 있었다. 소리도 없이 허공을 미끄러져 소장실 앞으로 이동한 왕기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최무선을 살펴보았다. 대물렌즈와 오목렌즈를 이용하여 제작된 현미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최무선의 모습에 왕기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물었다.

    "실학기술부 장관은 무얼 그리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이더냐?"

    흠칫하며 고개를 치켜든 최무선이 왕기를 발견하고서는 다급히 무릎을 꿇더니 큰절을 넙죽 올렸다.

    "최무선이 대고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일본 정벌 중이신 분께서 갑자기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작전명 삼위일체 때문에 왔느니라. 준비는 잘 해두었겠지?"

    "폐하의 명령이신데 소신이 소홀히 할리가 있겠사옵니까? 말씀하신 대로 철저하게 준비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폐하의 명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데... 소신이 주제넘게 몇 가지를 말씀드려도 되겠사옵니까?"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구나. 물어보거라."

    "폐하께서 명명하신 '소이탄(燒夷彈)'은 사람들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는 비인도적인 무기라고 말씀하시면서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오신 것입니까?"

    "일본의 천황이란 자가 날 그리 만드는구나. 그자에게는 자국의 백성들에 대한 애정이 눈곱만치도 없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는 듯 최무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폐하께서 특이하신 것이지요. 폐하처럼 백성들을 제 몸처럼 아끼는 위정자(爲政者)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역사상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금의 주변 국가들을 둘러봐도 그러하지요."

    "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시대의 인명 천시 풍조를 말이야. 하지만 일본 천황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아마도 그 나라의 민족성 때문이겠지."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이탄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소이력이 뛰어난 재료가 있어야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해 불에 잘 타면서도 소이탄이 터질 때 불꽃의 온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재료 말입니다."

    최무선의 말에 왕기가 현대의 네이팜탄을 떠올리며 말했다.

    "맞느니라. 그래서 내가 송진에서 뽑는 기름을 대량으로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거기에 동물성 기름까지 말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재정부 장관인 앙리가 북방 민족이 세금으로 바친 양과 염소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량의 지방을 이용하여 동물성 기름을 잔뜩 제작해 놓았지요. 송진에서 뽑은 기름 또한 한가득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하지만 하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화약 가루를 대량으로 살포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비행선이 떠있는 아득한 상공에서 뿌리게 되면 지상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바람에 이리저리로 흩어져 버려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폐하. 벽력가에서 가져온 화약이 바닥을 보이고 있고, 고려 땅에서는 초석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화약을 아낄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짐에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라. 그리고 초석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본 정벌이 끝나는 대로 초석이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는 곳을 정복할 생각이니까 말이야."

    "일전에 폐하께서 말씀하신 머나먼 신대륙에 있다는 칠레라는 곳 말씀이십니까?"

    "당장 거기까지 가서 초석을 구해오는 것은 힘들지. 거리가 너무 머니까. 하지만 고려와 가까운 곳에 초석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곳이 있느니라."

    "거기가 어디이옵니까?"

    "인도이니라. 인도에 있는 갠지스 강의 진흙밭은 천연적인 초석 농장과 같은 곳이지. 갠지스 강의 강물과 높은 기온, 소의 배설물들이 혼합되어 엄청난 양의 초석을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곳이야. 지금쯤 거기에는 고려가 천년을 사용해도 충분한 초석이 매장되어 있을 테지. 진흙밭에 불과한 그곳을 노리는 자는 짐밖에 없을 것이니라. 그러니 화약이 떨어질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을 끝낸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뭐 정 급하면 하버-보쉬 법을 이용해 암모니아를 만들어 초석을 제작해도 되는 것이지. 하버-보쉬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이다. 질소와 수소 그리고 촉매로 사용되는 산화철과 반응 속도를 증가시킬 고기압이지. 수소와 산화철은 이미 내 수중에 있다. 전기 모터를 이용하면 고기압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남은 건 대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야. 현대에서는 액체공기를 분류함으로써 질소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난 그것이 불가능하다. 아직까지는 액체 공기를 만들 방법이 내게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질소를 얻는 것도 조금만 연구하면 실현 가능해. 대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공중질소고정법(空中窒素固定法)을 사용하면 되니까 말이야. 아크 방전에 의해 공기 속의 질소와 산소로부터 일산화질소를 만들고, 이것을 공기와 접촉시켜 이산화질소를 만든 다음 물과 반응시켜 질산을 얻는 것이 공중질소고정법의 기본 원리이니 어려울 것이 없어. 아크 방전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고, 현대처럼 비싼 전기료 때문에 상업화를 하지 못할 일도 없지. 난 명색이 대고려 제국의 황제라고.'

    왕기가 머릿속으로 고1 화학 시간에 등장하는 암모니아를 거의 무한정으로 생성 가능한 하버-보쉬 법의 화학식을 떠올렸다. 인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양면성을 띤 화학식이었다. 질소 비료를 인위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져 인류의 식량부족 해결을 가져왔지만, 초석이 없어도 화약 생산이 가능해져 대량 살상이 발생하는 세계 대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왕기가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화학식을 떠올리고 있을 때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삼위일체라는 작전명의 뜻이 소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화약 가루를 잔뜩 실은 비행선, 동물성 기름과 송진에서 뽑아낸 기름을 가득 실은 비행선, 마지막으로 거대한 불꽃을 일으켜 그것들을 태울 산소와 수소 기체가 실린 비행선, 이 세 개를 합쳐서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제법 그럴듯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네게 설명해 줘도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이니라. 언젠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짐이 직접 설명을 해주겠다. 그러니 넌 내일 아침부터 삼위일체 작전을 시행할 비행선들을 준비시켜라. 짐이 직접 비행선을 이끌고 일본으로 날아갈 테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근데... 현미경으로 무얼 보고 있었던 것이냐?"

    왕기의 물음에 최무선이 현미경으로 보고 있던 것을 들어 올렸다. 날아갈 듯한 봉황이 전면에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왕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10,000원권 지폐였다.

    "조폐창에서 시범적으로 제작한 지폐와 위조 전문가들이 제작해온 위폐를 비교해 보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은행을 만들고 지폐를 본격적으로 유통하려면 위조가 불가능해야 된다고 거듭 강조하셔서 소신이 현미경을 이용해 직접 확인 중에 있었지요. 위조 전문가들이 위조가 가능한지를 말입니다."

    "살펴보니 어떠하더냐?"

    "위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눈으로 보기에는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가 된 것들도 있었지만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위폐인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말을 하던 최무선이 손을 움직여 스위치를 켰다.

    - 파악.

    눈이 부신 밝은 빛이 터져 나오자 최무선이 말을 이었다.

    "이건 형광등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형광등이 아닙니다. 유리 내부에 형광물질을 전혀 바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형광등에서 자외선이 대량으로 나오게 되지요. '자외선 등'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자외선 등에 위폐를 비춰보면... 진짜 지폐처럼 '고려 제국'이라고 쓰인 글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전국의 은행 지점에 현미경 1대와 자외선 등을 1대 설치하면 위조지폐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주 잘 하였다. 일본 정벌이 끝나는 대로 전국에 은행을 설치할 것이니, 그대는 지폐를 유통할 작업을 철저하게 준비하거라."

    "존명!"

    [연경전의 침실]

    최무선과의 면담을 끝마친 후 연경전으로 날아온 왕기가 갑작스러운 자신의 방문을 반기는 노국공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무선이 위폐를 구분할 방법을 만들어 두었더군. 본격적인 지폐 시스템을 고려에 구축할 수 있겠어."

    "지폐의 그림이나 문양은 마음에 드십니까? 일전에 훈민정음해례본에 들어갈 그림을 조각한 조각가에게 시킨 것입니다. 10원 권에는 태조 왕건을, 100원 권에는 고려자기와 백자들을, 1,000권에는 대포와 거북선을, 10,000원 권에는 페하의 초상화를 실었지요."

    "아주 마음에 들더군. 그대의 얼굴도 같이 싣지 그러셨소?"

    "소첩의 영혼은 한국인이지만 기록상으로는 엄연한 몽골족이잖습니까? 지폐의 문양은 쉬이 바뀌지 않으니 소첩의 얼굴은 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무선이 삼위일체라는 작전명이 무슨 뜻인지 묻더군."

    "삼위일체는 성부(聖父)와 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을 뜻하는 것이잖습니까?"

    "현대를 살았던 그대조차도 직전 명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군. 삼위일체를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알고 계시오?"

    "영어로는 'Trinity'이지요."

    "맞소이다. 태평양 전쟁 때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황 폐하를 위한 옥쇄니 뭐니 하며 사람들의 생목숨을 희생해가며 끝까지 버티던 일본이 어떻게 항복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계시오?"

    "원폭 때문이었지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little boy)'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fat man)' 때문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요. 그 정도는 소첩도 알고 있사옵니다."

    "일본 원정을 떠나기 전에 짐이 고민을 했었소이다. 미래의 일본처럼 지금의 일본도 그런 식으로 버티면 어떡할까라는 고민을 말이오. 민족성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지 않소? 그래서 세운 작전이 삼위일체 즉 트리니티라요. 트리니티는 미국에서 실행한 인류 최초의 핵실험 프로젝트 명이었소.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해서 진행된 최초의 원폭 실험을 뜻하는 것이지."

    눈을 휘둥그레 뜬 노국공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페하. 그럼 삼위일체가 핵폭탄을 제작하는 작전이란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하지.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소? 태평양 전쟁 때처럼 이번에도 일본이 끝까지 버티면 엄청난 위력을 지닌 폭탄을 투하하여 일본이 백기를 들게 만들자는 뜻에서 지은 작전명이었소. 물론 핵폭탄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이오."

    "그것이 진정 가능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제작하신 폭탄은 네이팜탄의 일종이라고 알고 있사옵니다. 제법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불태울 수는 있겠지만 폭발력이 그렇게까지 큰 폭탄은 아니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네이팜탄 정도의 성능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소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좀 달라졌소. 비록 핵폭탄은 아니지만 내일 밤에는 삼위일체라는 작전명처럼 일본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들 폭탄이 교토에 투하될 것이오. 물론 직접 실험을 해본 적은 없어서 완벽하게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러니까... 작전명을 지을 때만 해도 네이팜탄 정도로 만족을 하셨는데 일본 원정을 떠난 후 갑자기 폭탄의 위력을 가일층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셨다는 말씀이시로군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특별한 일이 있긴 있었소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말하기는 좀 그렇구려."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럼 이제 그만 주무시지요. 일본 원정을 떠난 이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을 테니까요."

    "그럽시다."

    1346년 4월 21일

    일본 정벌에 마침표를 찍을 운명의 아침이 밝아왔다. 전날 밤 잠을 푹 잔 왕기가 국방과학연구소로 날아가 일본으로 날아갈 비행선들을 직접 점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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