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벌 - 역사는 반복된다 - 1
[간몬 해협 상공]
간몬 해협 상공에서 일본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혼슈 쪽을 바라보고 있는 왕기의 눈에 깊은 번뇌가 서려있었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재도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모노세키 뒤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허름한 옷차림에 병기라고는 손에 쥔 나무창 또는 죽창이 전부인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일본 병사들에 의해 엄중하게 감시를 받으며 고려군과의 결전을 눈앞에 둔 시모노세키 쪽으로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행렬에서 뒤처지거나 체력이 달려 쓰러지는 자들에게는 병사들의 창날이 기차 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 크흑. 컥. 케헥...
일본어를 잘 모르는 왕기도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일본인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보호해 줘야 할 병사들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자국의 군대가 자국의 백성들을 죽여가며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고? 태평양 전쟁 때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 이놈들은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구나. 보다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 정말로 내가 파악한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만약 일본 천황이 내가 생각한 대로 작전을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 혼슈로 제1진과 제2진을 상륙시켜 삼대 평야를 불태우는 것보다 차라리 최후의 작전을 시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야. 지나치게 비인도적인 작전이라 망설였지만 차라리 그것이 일본 국민들을 위해서는 더 나은 방법일 테니까.'
결심이 섰는지 왕기의 신영이 빠르게 하늘을 날아 일본의 수도이자 천황이 거처하고 있는 교토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본 교토의 헤이안쿄]
일주일 전에 벌어진 규슈 전투에서 무려 10만에 달하던 규슈 방위군이 고려군에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시카가 요시아키라가 연일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들 그만 좀 싸우시오. 규슈 전투의 비참한 결과를 보고받았을 것 아니오? 거기에 따른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자리이니..."
그 순간 잔뜩 흥분해 있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서(關西) 지방 총사령관이 요시아키라의 말을 용기 있게 자르며 입을 열었다.
"천황 폐하. 소장은 도저히 그 보고서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고려군이 100명도 죽지 않았는데 규슈군 10만이 깡그리 전멸을 당하다니요. 그 말을 누가 믿겠사옵니까? 규슈군의 장비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고. 농민이나 어부를 강제로 동원한 오합지졸(烏合之卒)도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갑옷과 창 그리고 활이 사전에 지급되어 있었고, 거기에 귀중한 기병 2만까지 포함된 정예 병력이었단 말입니다. 10만이 맨손으로 싸워도 고려군에게 그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혔을 것입니다. 이건 천황 폐하의 참모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속임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천황 폐하로부터 '이자나미'의 은총을 하사받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천황 페하를 속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일본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교토 인근의 비파호(琵琶湖)와 세키가하라 평원을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관동(關東) 지방의 총사령관인 '스즈키 젠코(鈴木善幸)'가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천황 폐하. 소장도 관서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아스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불사의 은총을 받은 자들 중에서 사무라이 출신이 아닌 자는 이시하라 신타로가 유일합니다. 평상시에도 저희들을 무식하다며 괄시하던 신타로가 이번 기회에 무장 출신들을 모조리 밀어내고 본인이 최고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 계책을 부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좀 전에 관서를 지키는 병력 10만을 시모노세키에 밀어놓은 것도 모자로 관동을 지키는 10만의 병력마저 시모노세키로 이동하라고 말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토 지역을 제외한 혼슈 전체가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홋카이도를 약탈하고 있는 여진족들이 쓰가루 해협을 건너오게 되면 그들을 막을 병력이 전무하다는 뜻이지요. 천황 페하. 신타로의 말에 넘어가지 마시옵소서."
두 사령관의 연이은 진언에 이시카가 요시아키라가 이시하라 신타로를 보며 물었다.
"고려군만 우리의 적인 것은 아니다. 여진족을 막을 대책은 있느냐?"
요시아카라의 물음에 신타로가 공손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대답했다.
"천황 폐하. 여진족의 병력은 그다지 무서울 것이 없사옵니다. 야만족 특유의 흉포함은 가지고 있지만 고려군처럼 조직적으로 편제된 군대가 아닐뿐더러, 소신이 알아본 바로는 불사의 무사들을 상대할 방법이 여진족에게는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만약 여진족이 고려군보다 먼저 혼슈로 건너오면 교토 방위군 사령관인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에게 맡기면 간단하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교토 방위군에는 아직 400이 훌쩍 넘어가는 불사의 무사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고려군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이미 600에 달하는 불사의 무사들을 소멸시켰습니다. 천황 폐하께서도 하루에 다섯 이상 만들지 못하는 그들을 말입니다."
신타로의 말에 요시아카라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진족은 그렇다 치더라고 고려군을 무슨 방법으로 막겠다는 것이냐? 지금까지는 그대의 머리를 인정해 그대가 낸 계책대로 따라주고 있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대는 영원한 소멸을 면치 못할 것이야. 그대에게 내려준 이자나미의 은총을 회수하고 본인이 직접 그대의 목을 칠 테니까 말이야."
"소신도 각오하고 있사옵니다. 천황 폐하. 고려군의 강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막대한 위력의 대포를 수천 문이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대포가 설치되어 있는 전함보다 보급선과 수송선의 숫자가 더 많을 정도로 사전에 철저하게 보급 준비를 했다는 것이 둘째입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무력화 시켜야만 고려군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냐?"
"고려군 입장에서는 여기가 적지라는 것을 잊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제아무리 철저하게 보급을 준비해서 왔다고 하더라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지요. 대포를 무력화 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옵니다. 인해전술(人海戰術) 이지요. 대포는 포탄이 없으면 평범한 쇳덩이에 불과하니까요. 고려군이 상륙할 시모노세키로 나무창과 죽창을 쥐여준 농민들을 계속해서 밀어 넣고 있사옵니다. 그 작업을 관서 지역 사령관이 병사들을 시켜 수행하고 있는 중이지요. 만약 관서 지역의 백성들로 모자라면 관동 지역의 백성들까지 다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고려군이 그들을 다 처리하려면 대포를 끝도 없이 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포탄이 떨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대포만 없다면 고려군도 그다지 무서울 것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지요. 수전이든 육전이든 어느 쪽이나 붙어 볼만해질 것입니다. 물론 농사를 지을 백성들을 포탄받이로 다 동원하게 되면 조만간 일본 전역에서 생지옥이 벌어질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요. 그들이 먹을 식량이 없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천황 폐하께서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교토에는 제법 많은 식량이 비축되어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책이 있사옵니다."
"그게 뭔가?"
"고려군이 포로로 잡은 3천의 병사들을 자신들의 배에 태워 본국으로 보냈다고 하옵니다. 이는 군량미를 아끼려는 생각에서 한 일이며, 성품이 잔인하지 못한 고려군이 어설픈 자비를 베푼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시모노세키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일본군에게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몇십만에서 몇백만에 달하는 포로들을 먹이기 위해 고려군의 군량미가 급속도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수송선에 태워서 고려로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사옵니다."
신타로의 말에 요시아카라가 맞장구를 쳤다.
"농민들을 방패로 사용하여 정예 병사들은 최대한 아끼자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병사들은 뒤에서 농민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최후의 순간까지 아꼈다가 고려군들의 포탄이 떨어지고, 식량이 바닥이 날 때쯤 본격적인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수백만에 달하는 자국 농민들의 안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요시하카라가 재차 확인을 하기 위해 물었다.
"교토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냐?"
"그렇습니다. 천황 폐하. 교토에는 천황폐하께서 머물고 게시는 황성이 있고, 고려군이 넘어오기 전 모여든 다이묘들의 가족들과 지방의 명문 귀족들이 모조리 집결해 있사오며, 재력이 넘쳐나는 상인들도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들만 무사하면 일본을 다시 재건할 수가 있지요. 비천한 아랫것들이야 얼마가 죽어나가든 상관없사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다시 늘어날 테니까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요시하카라가 명했다.
"천황인 나의 명령이다. 다들 신타로의 작전을 따르도록 하거라."
- 존명.
관서와 관동 그리고 교토 사령관까지 천황에게 고개를 조아리자 숙였던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들은 신타로가 관서 사령관에게 물었다.
"농민들을 시모노세키 쪽으로 밀어 넣는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요?"
"그대가 사전에 당부한 말처럼 천황 폐하를 위한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진행하고 있소이다. 관서 지방을 쥐잡듯이 뒤져 거역하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목을 치고 말을 듣는 자들로 밀어놓고 있지요. 지금쯤이면 백만이 훌쩍 넘었을 것이오. 아마도 이백만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이오. 하지만 문제가 있소이다."
"어떤 문제가 있지요?"
"그들을 먹일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오. 그대의 말처럼 올봄에 파종할 종자까지 모조리 들고 이동하라고 말을 했지만 굵어죽는 자가 속출하고 있소이다. 그나마 시모노세키에서 가까운 오카야마에서 출발한 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고베와 오사카에서 출발한 농민들은 그 피해가 막심하오. 그럴 만도 하지 않겠소? 오사카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천리가 넘는 길이니까 말이오."
"그건 제가 책임질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존귀하신 천황 폐하를 위해 그 정도 희생은 당연히 감수해야만 합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한 신타로가 관동 지방 총사령관인 스즈키 젠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야스오 사령관의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관동 지역 농민들을 이동시키는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말을 해주세요. 굶어죽지 않으려면 알아서 식량들을 잘 챙기라고 말입니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그럴 만한 식량 비축분이 있을 리가 없지 않소? 말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걸로 보이긴 하지만... 일단 그대의 말처럼 진행을 하지요."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요. 바깥의 정원에 여러분들을 위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 사령관들께서는 정원 쪽으로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배가 아파서 뒷간을 갔다가 나중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천황이 자신의 계획대로 잘 따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함을 느끼는지 표정이 밝은 신타로가 정원 반대쪽에 있는 뒷간으로 막 도착했을 때였다.
- 쉬이잉...
무언가가 대기를 가르며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소리보다 더 빨리 도착한 무언가가 신타로의 목젖 아래를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고려군을 상대하기 위해 공민 황제가 배포했다는 훈민정음해례본까지 숙지하고 있는 신타로가 자신의 눈앞에 둥실 떠있는 검의 손잡이에 적혀 있는 고려어를 보며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공민 황제가 나타났다! 내가 보고 있는 검의 이름이 삼삼이라고. 이건 틀림없는 공민 황제의 애검이야."
하지만 산타로의 잘린 목젖 아래에서 피거품만 부글부글 끓어오를 뿐 그의 외침은 목구멍 밖으로 울려 퍼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신타로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신타로의 귀청을 때렸다.
"고려어를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난 대고려 제국의 공민 황제이니라. 보아하니 제법 높은 간부인 것 같은데 네놈들에게 본 황제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잡아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이번에 불사의 병사들을 상대하면서 알아낸 정보들이 있지. 죽지 않으면 건강한 신체로의 부활도 없다는 것과 그들이 불사이기는 하지만 무통(無痛)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목숨을 살려둔 상태에서 얼마든지 고문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
- 쉭쉬시식...
날카로운 칼바람 소리와 함께 신타로의 사지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 버렸다.
- 찌지지직...
그리고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신타로의 사지를 지혈하기 위해 왕기가 전기를 이용해 지져버렸다. 그런 후 하늘 높이 상승하며 중얼거렸다.
"공기를 흡입 못해 죽으려면 최소 3분은 걸릴 것이야. 그때쯤이면 교토를 충분히 벗어났을 테니 얼마든지 다시 부활을 시켜주마. 부활하는 즉시 사지를 또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시하라 신타로를 포로로 잡은 왕기가 빠르게 하늘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기타큐슈의 고려 진지]
- 끄아아악...
왕기가 심문을 끝마친 이시하라 신타로가 화염방사병에 의해 불타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최영 장군에게 명했다.
"짐은 최후의 작전을 시행하기 위해 잠시 고려를 다녀올 것이오. 그대와 무지는 지금의 위치에서 농성을 하고 계시구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하루면 충분할 것이니까."
최영 장군이 살짝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폐하. 정말로 작전명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시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너무 잔인한 작전이라고 보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행해야만 할 것 같소. 제대로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테니까 말이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소장이 적당히 농성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겠사옵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고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