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벌 -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정벌 - 2
[하카타 만의 상륙지점]
- 두두두두...
가장 먼저 수송선에서 쏟아져 나온 7천의 개마 무사들이 탄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을 때 맨 앞에 서있는 무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다들 100열 종대로 선 다음 내가 돌격 신호를 내릴 때까지 기다려라.
그때였다. 개마 무사의 뒤를 이어 상륙한 숫자가 불과 700에 불과한 몽골 기병 연대가 땅을 밟자마자 흙먼지를 휘날리며 일본군들이 모여 있는 진영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적들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는 영광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개마 무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나자 무장이 다시 한번 우렁차게 외쳤다.
- 동요하지 말아라. 대고려 제국의 기병들답게 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개마 무사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무장의 머릿속으로 일본 정벌을 나서기 이전에 왕기와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무장아. 네가 돌격대 대장 겸 개마 무사들을 인솔하는 사령관직을 맡았으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무인과 무인의 싸움과 대규모 부대가 서로 맞붙는 전쟁은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의 승패는 무인 개개인의 능력에 좌우되지만 후자의 승패는 철저하게 조직력과 협동심에 의해 갈라지기 때문이니라. 특히 보병보다 기동력이 월등히 빨라 아차 하는 순간에 우위가 갈라지는 기병끼리의 전투는 그 차이가 더욱 심하지. 기병은 위력은 말의 기동력과 동료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급자의 돌격 명령에 내가 적진을 향해 뛰어갈 때 다른 동료들도 나와 같이 옆에서 달려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적진에 갇혀 위험에 처했을 때 다른 동료가 날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병의 위력이 나오는 것이야. 죽는 건 그 누구라도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적진 중앙을 가르며 뛰어 들어가는 기병이라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니라."
"폐하. 고려의 개마 무사들은 오랜 시간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받아 용맹무쌍하며 두려움을 모릅니다."
"개마 무사들의 용맹함은 짐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이야. 개마 무사들은 더없이 소중한 자원이다. 그리고 일본은 적지라는 것을 명심해라. 축차적으로 개마 무사가 소모되면 보충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니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실전 경험을 축적하게 되면 고려의 개마 무사들은 세계 제일의 기병대가 될 것이야. 그러니... 몽골 기병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도록 하거라."
"황후마마께서 지참금으로 데려왔다는 몽골 기병 연대를 본받으라는 뜻입니까?"
볼만이 가득한 무장의 물음에 왕기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몽골 기병들의 전술은 무섭니라. 원나라가 머나먼 서역까지 진출하면서 수십 국가의 다양한 기병대들과 맞붙어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몽골 기병들의 기본 전술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만약 모른다면 짐이 네게 크게 실망할 것이야."
"기병대의 기본 전술인 '치고 빠지기'와 '망구다이' 전술이지요. 치고 빠지기란 아주 간단한 전술입니다. 몽골의 활은 고려 못지않은 성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작 방법이 거의 비슷하니까요. 사거리가 긴 활을 이용해 멀리서 활을 쏘아 적들을 죽이고, 적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멀찌감치 도망을 갔다가 다시 습격을 하는 방식입니다."
"망구다이 전술이란?"
"고도로 발전된 유인 전술이지요. 소수의 기병들이 적진으로 침투해 허세로 전투를 벌인 뒤 패한 척하며 도망을 갑니다. 그럼 사기가 잔뜩 오른 적들이 추격에 나서게 되지요. 그때 기병들이 적들에게 잡힐 듯 말 듯 한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도망을 쳐 본진이 매복해 있는 곳까지 끌어들인 후 한 번에 적들을 섬멸해버리는 전술입니다. 말로는 쉽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전술이며 목숨이 위험한 전술입니다. 적들과의 정확한 거리 유지와 적들의 지닌 활의 사거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작전이고, 연기력 또한 뛰어나야만 합니다. 연기력이 떨어지면 적들이 유인되지 않고, 거리 조절에 실패하면 죽기 딱 좋은 전술이지요."
"그게 하루아침에 가능해진 전술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수많은 전장에서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단련된 기병들만이 수행 가능한 작전이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그럴 것이야. 망구다이는 몽골 기병들이 오랜 시간 동안 목숨을 내걸고 갈고닦은 전술인 것이야. 무장아. 내가 원나라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고려의 병사들 중에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하는 병사가 없으며..."
"명궁이 아닌 장수 또한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것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이며 고구려의 시조이신 신궁(神弓)이라 불리던 동명왕(東明王) 주몽(朱蒙)의 뜻을 이어 받아 모든 병사들이 활쏘기에 능숙하니까요. 폐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소장이 알겠습니다. 그 어떤 민족보다 활에 능숙한 고려의 기병들이 몽골족 특유의 기병 전술까지 습득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거로군요?"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가까운 일본 원정에 나서고 있지만 조만간 대고려 제국은 머나먼 서역으로까지 진출할 것이야. 그 선봉에 설 것은 포병도 아니고, 해병도 아니다. 적들의 심장부에 봉황이 비상하는 대고려 제국의 깃발을 꼽을 자들은 다름 아닌 그대가 이끄는 철갑 기병들이지. 짐에게는 대고려 제국의 기병대를 세계 최강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니 공을 세우는 것에 욕심을 내지 말고 이번 일본 원정에서 개마 무사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는 동시에 그들의 전술 능력을 한껏 끌어올려야만 한다. 기병의 전술 능력은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야.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들도 학습을 통해 발전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라. 몽골 기병은 은신과 매복에 능하다. 사람 허리만 한 높이의 수풀에서 일개 연대가 은신을 해도 적들에게 들키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간단해. 은신 상태에서 제멋대로 울음소리를 내거나 참지 못하고 함부로 움직이는 말들은 모두 죽여버려 잡아먹어버리기 때문이지. 고려 기병이 타고 다니는 말들에게도 그런 혹독한 실전 훈련이 필요해. 이번 일본 원정이 더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니라."
"무슨 말씀이시진 잘 알겠사옵니다."
"잘 들어라. 일본 원정의 승패는 기병대 기병의 전투로 판가름 날 것이야. 전열함의 대포가 아무리 막강해도 바닷가에서만 힘을 쓸 뿐이야. 사거리가 제법 길긴 하지만 일본의 본토를 타격할 수는 없어. 대규모의 기병을 보병으로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결국 일본에서도 대규모 기병단을 출전시킬 것이야. 몽골 기병들의 숫자는 너무 적기 때문에 기병끼리의 접전에서는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야. 결국 승패는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 개마 무사의 장점을 잊지 말아라. 철갑 갑옷으로 무장된 개마 무사는 몽골 기병들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돌파력을 가지고 있다. 적들의 기병을 밟아버릴 주인공은 결국 그대이니라."
회상을 끝마친 무장이 백열 종대로 그림처럼 줄을 지어있는 7천의 개마 무사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 모두 몽골 기병 연대의 뒤를 따라 그들처럼 치고 빠지기를 시작한다. 뒤처지는 놈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전군 돌격!
- 우와아아...
- 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개마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후 사정거리가 짧은 일본의 활 사거리 밖에서 강강술래를 돌듯 끊임없이 회전을 하며 치고 빠지기를 시전하고 있는 몽골 기병 연대의 꼬리를 고려의 개마 무사가 물었다. 그러고는 달려드는 일본 보병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몽골 기병 300에 이어 7천에 달하는 고려 기병들이 달라붙어 활을 쏴 대며 치고 빠지기를 시작하자 무려 6만에 달하는 일본의 보병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올 엄두도 못 내고 지리멸렬하기 시작했고, 2만에 달하는 궁병들은 사거리가 짧아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수송선에서 질서 있게 순차적으로 내린 6만의 고려의 보병들이 30발 들이 화살 통을 양팔 가득 안고서 해안가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해안가 곳곳에 산더미처럼 화살 통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살이 떨어진 기병들이 달려와 말위에서 몸을 잔뜩 기울인 채로 팔을 뻗어 화살 통을 낚아챈 다음 다시 치고 빠지기에 합류했다.
6만의 보병들이 모두 상륙에 성공하고 제대로 위치를 잡자 해안가에 직접 상륙한 최영 장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연이어 명령을 내렸다.
- 전군 발사 준비!
- 준비된 사수부터 발사!
- 쏴사사사사...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활시위가 튕겨지는 소리가 해안가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수만 발에 달하는 화살 비에 해가 가려 해안가가 일시적으로 어두워졌다. 명궁의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한(韓)민족 답게 모든 화살들이 정확히 일본 본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8만에 달하는 일본군 보병과 창병들이 말 그대로 학살을 당하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진지 불과 반시진만에 모든 병력들이 전멸이 되고 있는 그 순간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상공에 높이 떠서 고려군의 대승으로 끝나가고 있는 전황을 바라보며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쪽바리의 민족성은 여전하군. 이쯤 되면 항복을 할 만도 한데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어. 하긴 2차 여몽 연합군들도 첫날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계속 달려드는 일본 병사들에게 기가 질렸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지. 태평양 전쟁 때도 그 짓을 계속 반복하다가 결국 원폭을 두발이나 처맞았고.'
그 순간 기계적으로 치고 빠지기를 계속하고 있던 무장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페하께서 틀림없이 일본 기병대가 출격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야? 보병과 궁병이 모두 전멸할 때까지 기병이 숨어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왕기의 판단은 정확했지만 무장의 판단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본 기병이 계속 숨어 있었던 것은 그들의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려줄 고위 장교들이 뇌제의 포격에 모두 몰살을 해버린 탓이었다. 결국 참다 참다 못 견딘 2만에 달하는 일본 기병들이 저 멀리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기병을 발견한 무장이 내공을 최대한 끌러 올려 외쳤다.
- 기병대 사령관의 명령이다. 몽골 기병 연대는 모두 뒤로 빠져라. 기병대 기병의 싸움은 우리 고려 기병이 전담한다.
- 합!
무장의 명령에 알겠다고 일제히 기합을 내지른 몽골 기병들이 신속하게 뒤로 빠져나가자 무장이 소리 높여 외쳤다.
- 개마 무사들 전원 거창!
- 돌격 앞으로!
왕기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강철 갑옷으로 말과 병사들의 전신을 철통같이 감싼 개마 무사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일본군 기병대를 향해 장엄한 기병 돌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비단을 가르고 나가는 칼처럼 종심 돌파를 선보이며 적들 기병대의 중심부를 가볍게 뚫고 지나갔다. 단 한 번의 기병 돌격에 본진 중심부를 뻥 뚫려버린 일본 기병들이 전의를 상실하며 앞으로 몇 발짝 더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을 가득 매운 고려 군의 화살들이 그들을 맹렬히 타격하기 시작했다.
야심 차게 등장을 하였지만 제대로 창질 한번 못 해본 일본 기병대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는 그때 해안가로 상륙한 공병대가 고려군의 진지를 빠르게 구축하기 시작했고, 무지가 이끄는 제2진은 규슈 서부 해안가를 따라 빠른 속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훗날 기록된 일본 정벌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하루 고려군은 몽골 기병 15명과 철갑 기병 7명을 잃었고, 일본군 9만 7천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으며, 포로로 3천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믿기 힘들 정도의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하카타 만의 고려 진지]
공병대에 의해 순식간에 지어진 조립식 건물 안에서 왕기가 간부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포로로 잡은 일본군 3천은 지금 즉시 수송선에 태워서 부산포 쪽으로 보내도록 하거라. 그들을 먹이기 위해 일본 원정군의 식량을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리고 내일 아침 해가 밝는 대로 본진은 '후쿠오카시(福岡市)'를 점령하러 출발한다. 그런 다음 본래의 계획대로 온가 강이 흐르는 '나카마시(中間市)'를 거쳐 '기타큐슈시(北九州市)'로 진격을 한다. 진격 속도는 짐이 조절해 주겠노라. 제2진과 보조를 맞춰야 할 테니까 말이야."
- 존명!
"좋아. 다들 오늘 하루 고생이 많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려의 정벌군이 하카타만으로 무사히 상륙을 했고, 10만에 달하는 적들을 손쉽게 대파한 이상 일본 정벌의 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특별히 오늘 밤은 짐이 직접 상공에서 경계를 서줄 테니 다들 마음 놓고 병사들에게 음식과 술을 듬뿍 내려주도록 하거라. 단 여기에 있는 간부들은 긴장을 늦추면 절대 안 될 것이야."
- 존명.
1346년 4월 20일
첫날의 대승으로 고려군을 막을 군대가 규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쿠오카를 아무런 저항 없이 무혈입성한 고려군이 불과 14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기타큐슈시에 도착하기 까지는 무려 6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제2진과의 진격 속도를 맞추기 위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진격을 천천히 한 것도 있었지만, 일본이 대고려 제국에 속하게 되면 백성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으며, 고려의 문화가 일본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지를 직접 보여주기 위해 고려군이 대도시에 주둔할 때마다 북방민족과 담판을 지을 때처럼 대규모 잔치를 벌이고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익힐 수 있도록 지어진 훈민정음해례본도 적극적으로 퍼뜨렸다.
[간몬 해협 상공]
최영 장군의 제1진이 규슈를 성공적으로 점령하고, 무지가 이끄는 제2진이 시코쿠를 완전히 관통해 나루토 해협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규슈와 혼슈 사이에 있는 폭이 불과 2km 정도에 불과한 좁디좁은 간몬 해협 상공에 떠있는 왕기가 혼슈의 입구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후우... 결국 나로 하여금 최후의 작전을 꺼내게 만드는군. 제 버릇 개 못 주고,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