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20화 (120/171)

일본 정벌 - 제1차 여일해전(麗日海戰) - 2

[거북선의 선장실]

왕기가 천리안이라고 불리는 전장 관측용 소형 비행선들 중에서도 거북선에 매달려 가장 높은 상공에 올라가 있는 천리안에서 무지가 직접 보내는 전통을 통해 전장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포탄이 터지는 위력 이상으로 적들의 배에서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고?"

왕기의 물음에 최영 장군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그런 현상이 모든 배에서 관찰되고 있다 하옵니다. 전통을 보내온 국방부 장관의 의견으로는 아무래도 배에 화약이 잔뜩 실려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걸로 미루어 보아 이번에 출전한 일본 쪽의 배들은 고려의 전함을 들이받은 후 같이 침몰할 목적으로 출전한 자폭용 배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무려 천척에 달하는 배들이 모두 화약을 탑재한 자폭용 배란 말이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사용한 가미카제 특공대와 똑같은 전술이로군. 하여간 사람 목숨 귀한 줄 모르는 족속들이라니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최영 장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최영 장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하겠어. 원나라에서는 비록 청동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대포가 개발되더니 이제는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화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화약을 이용한 적들의 공격이 들이닥칠지 몰라. 화약을 우리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페하.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들의 배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고려의 전열함과 쾌속일포정의 대포에 격중 되어 모조리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으니까요. 적들이 화약을 사용하는 능력은 고려와 비교조차 되지 않으며 원나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과의 초전은 대고려 제국의 대승으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화약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말이야. 앞으로 우리가 전투를 치르게 될 곳은 고려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니라. 우리들보다 적들이 지형지물에 더 익숙하다는 뜻이지. 고려군이 계곡을 지날 때 갑자기 산 위에서 화약을 담은 통을 아래로 집어던질 수도 있어. 따라서 앞으로의 모든 전투는 신속함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적들의 매복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먼저 조사한 후에 군사들을 이동시키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최영 장군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준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고려의 주변국에서 창이나 칼 같은 냉병기의 시대에서 화약을 이용하는 열병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개발한 박격포와 대포의 영향을 받은 탓이겠지.'

그 순간 왕기의 뇌리 속으로 반갑지 않은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리링. 화약을 이용한 열병기와 관련하여 긴급하게 공지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왕기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봐. 설마 또 새로운 대적자가 등장했다고 알려주려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대포를 개발해서 사용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말이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한 특정한 신이 신들의 협약을 깨고 당대의 인물에게 시대를 뛰어넘은 화약을 이용한 열병기 개발을 지시하여 전장에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놀란 표정의 왕기가 급하게 물었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열병기를 사용했다는 거야?'

[프랑스에서 카빈이라는 이름의 후장식 소총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신이라고 자기 맘대로 그래도 되는 거야? 군대가 대포를 운용하는 것과 병사 개개인이 소총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말이야. 내가 소총을 개발할 줄 몰라서 가만있는 게 아니잖아?'

[신들의 협의체에서는 그대의 그런 마인드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환경 오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또한 높이 사고 있지요. 선택된 자가 과거로 넘어오는 것은 인류를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신들의 자구책에 가까우니까요. 신이라고 해서 전지전능(全知全能) 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에 마음대로 간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손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대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그대가 개발하는 화약을 이용한 병기에 걸려있던 제약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대포나 다른 신이 협약을 깨고 개발한 소총 정도의 수준이라면 더 이상 대적자가 생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증기 엔진 같은 동력 개발은 여전히 세상의 비틀림을 가져오기 때문에 새로운 대적자의 탄생을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왕기가 속으로 물었다.

'후장식 소총을 개발한 것이 언제이지? 그리고 협약을 깨고 그걸 개발한 신은 또 누구이고?'

[후장식 소총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말부터였습니다.]

'근데 이제서야 알려준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일본을 정벌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협약을 깬 신의 힘이 비교적 강한 편이었고, 일본과 관련된 신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힘이 강한 신이라는 것이 혹시 내가 아는 그 신인가? 타 종교를 믿거나 전도하는 자들은 애처롭게 보지도 말고, 가엽게 생각하지도 말 것이며, 감싸줄 생각도 하지 말고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죽일 때는 네가 맨 먼저 치도록 하거라. 그러면 온 백성이 뒤따라 칠 것이니 돌로 쳐죽여라고 명했던 신 말이야. 적인 배교자는 아이는 물론 태중의 아이까지 모두 죽이라고 명했던 신이 있는 걸로 아는데 말이야.'

[그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이 맞습니다. 하지만 신계에서 그 신이 가진 힘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신의 힘은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의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니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은 하셨습니까?]

'결정? 일전에 내가 마교주를 처치했을 때 물어본 그것 말이지? 내가 죽인 대적자의 능력을 흡수할 것이냐고 물어봤던...'

[맞습니다. 대적자를 처치하면 상대방의 능력을 흡수할 수가 있게 되어 있으니까요. 흡수하시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그 능력을 흡수하면 그런 능력을 준 신의 영향을 받게 되겠지?'

[당연합니다.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럼 거절한다. 인간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능력도 마음에 안 들고, 그런 능력을 준 신의 영향 또한 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야.'

[띠리링. 과거로 넘어온 자가 대적자의 능력 흡수를 거부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대를 이 세계로 소환한 신의 능력을 한번 이용할 찬스권이 주어집니다. 단 인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사용기 가능합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좀 쉽게 설명을 해달라고.'

[그대를 이 세계로 소환한 환웅의 능력은 주로 농경과 관련된 능력들입니다. 풍백, 우사, 운사가 그러하지요. 찬스권을 사용하면 그들 중에 한 명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단 그 힘의 강도는 아주 미약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 한 번은 비, 바람, 구름을 자유롭게 부릴 수가 있는데, 아주 미약한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인간 세상에 심대하게 영향을 끼치는 홍수나 폭풍우 같은 것을 불러올 수는 없지만 구름을 이용해 잠시 해를 가리거나 짧은 시간 동안 원하는 지역에 이슬비를 내리게 하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이니까요.]

'별 도움도 안 되는 것을 주고서 생색은 엄청나게 내려고 드는군. 누구에게는 홍해를 둘로 가르는 능력도 주고 그러던데 말이야. 알았으니까 들어가 봐.'

더 이상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왕기가 최영 장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들의 배가 모두 대파되었으니 작전명 '반딧불'을 시전하라고 모든 함선에 통보하도록. 아군의 피해가 없도록 강철로 제작된 갑옷을 입은 병사들만 작전에 임하라고 거듭 당부하고."

"알겠사옵니다. 전하."

[거북선 인근 해역]

- 촤아. 촤악...

화약을 실은 배의 대폭발에 왼쪽 팔과 왼쪽 다리 그리고 머리통이 동시에 날아가며 잠깐 숨이 끊어졌다가 '이자나미'의 은총 덕분에 다시 멀쩡한 몸으로 되살아난 후지이 미스히코가 장군선으로 보이는 거북선을 향해 힘차게 수영을 하며 다가가다가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거북선을 호위하듯 앞쪽에 도열해 있는 몇 대의 배에서 어두운 숲속에서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처럼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산하여 규슈 앞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눈을 한 후지이 미스히코가 바다 위에 둥실 뜬 채로 중얼거렸다.

"저 빛은 무엇이지? 분명히 횃불로 밝힌 빛은 아닌데 말이야."

후지이 미스히코가 놀랄 만도 했다. 그건 불과 며칠 전에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에 성공하여 대고려 제국의 함대가 출항하기 직전에 다급히 뱃전에 여러 개를 매달아 놓은 형광등의 불빛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대의 형광등처럼 효율적으로 밝은 빛을 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형광등의 등장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유리 기술이 뛰어난 서역의 기술자들과 전지와 전기 모터를 개발한 왕기의 기술이 합쳐진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전기 모터를 이용하여 내부를 진공으로 만든 유리관에 수은 기체를 넣은 다음 전기를 통전시켜 수은의 방전 현상으로 발생한 자외선을 유리관 안에 바른 형광물질을 이용해 가시광선으로 바꾸어 조명하는 장치인 형광등은 아직 초창기 제품이라 그런지 안에 발린 형광 물질의 종류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배들의 갑판 위에서는 고위 장교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 다들 조심해라. 지금부터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들은 강시처럼 죽어도 다시 되살아나는 놈들이야.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들을 절대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 전신에 강철 갑옷을 입은 개마 무사 병력들만 갑판 위에 남고 일반 수병들은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 갑옷이 없는 자들은 빨리 갑판을 떠나란 말이다.

- 그놈들은 모두 사무라이들이다. 옆구리에 타치와 카타나를 찬 놈들이 바다 위를 헤엄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곧바로 주위에 알려라. 절대 혼자 상대하지 말란 말이다.

고려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후지이 미스히코가 멍하니 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바다 위에 떠있는 그를 발견한 배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황한 미스히코가 미처 도망치기도 전에 갑판 위에서 화살촉이 갈고리처럼 생겼고, 뒤에는 기다란 밧줄을 매달은 화살들이 무더기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 피슉. 피슉...

맨살이 노출된 부위에 적중한 화살들이 후지이 미스히코의 몸을 가볍게 꿰뚫고 지나갈 때 갑판 위에서 고위 장교의 명령이 떨어졌다.

- 화살을 당겨서 적을 갑판 위로 끌어올려라.

- 영차. 영차...

수십 명이 동시에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공중에 붕 뜬 후지이 미스히코가 고려 전함의 갑판 쪽으로 끌려가자 장창을 쥐고 대기하고 있던 고려의 무사들이 합세해 힘차게 창을 찔러 후지이 미스히코의 몸을 고치처럼 꿰뚫은 다음 갑판 위쪽 허공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처럼 무력하게 갑판 위에 둥실 떠오른 후지이 미스히코가 온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내뱉을 때 갑판 위에서 또다시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 파벳! 페하께서 특별히 명명하신 파벳들은 어디 갔느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강시 같은 놈이 한 놈 잡혀서 올라왔다.

- 화염방사병들은 적을 불태워서 죽여라. 목이 잘려도, 심장에 구멍이 나도 되살아나지만 불로 태워서 정화시키면 죽을 것이라고 폐하께서 말씀하셨다.

명이 떨어지자 곧바로 갑옷에 피처럼 붉은 칠을 하고서 등에는 이상한 통들을 맨 철갑 무사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화염방사기의 입구를 후지이 미스히코를 향한 다음 산소와 수소 그리고 기름이 함유된 뜨거운 불길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 크아아악...

산 채로 공중에 뜬 상태에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피부에서부터 조금씩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던 후지이 미스히코는 발작적으로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불에 타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자신의 몸에 깃든 '이자나미'의 은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곧 자신의 영원한 죽음을 의미했기에 온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편 거북선 밖으로 나와 여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화염방사병들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활활 잘도 타는군. 그럴 만도 하지. 불을 붙인 산소와 수소 가스에 기름까지 함께 뒤집어쓰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비록 땅을 파서 석유를 채취하지도 않았고, 야자수에서 팜유(Palm oil)를 채취하지도 않았지만 '테레빈유(Turpentine oil)'도 엄연한 기름의 일종이라고."

잠시 후 천척의 배를 이끌고 고려군을 요격하러 나왔던 자살 특공대의 대장인 후지이 미스히코가 개경에서 채집한 송진을 수증기로 증류한 테레빈유을 뒤집어쓴 채 한 줌의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고, 그와 같은 죽음이 고려군의 전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제1차 여일해전은 고려군의 대승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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