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벌 - 제1차 여일해전(麗日海戰) - 1
[대고려 제국의 '다 - 100호' 전열함]
제식형 '가', '나', '다'로 분류되어 각 제식형마다 100척씩 건조된 대고려 제국 해군의 전열함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제작된 기념비적인 다 - 100호 전열함의 하부 갑판.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최신형 장거리 대포가 무려 48대나 줄지어 설치되어 있는 다 - 100호의 하부 갑판은 목재로 제작된 목선의 하부 갑판이라기보다 현대의 최신식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갑판을 보는 듯했다.
공돌이 출신답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왕기의 지론에 따라 사찰이나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고려의 단청(丹靑)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갑판을 그 목적에 맞게 다양한 색으로 채색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막대한 재물을 쏟아붓다시피 하여 힘들게 양성한 정예 수병들을 그러한 분류 구분에 익숙하게 만들어 점차적으로 제작될 전 세계 바다로 진출할 각종 최신형 철선과 전력모함 등에 적응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 또한 있었다.
대부분의 갑판 바닥은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검은색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다. 목재 위에 발라서 목재를 보호하고 광택을 내는데 쓰이며, 완전히 건조하면 다른 것과 섞이지 않아 보존 기능이 매우 우수한 흑칠(黑漆)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판 정중앙에는 쇠로 된 바퀴가 달린 포탄 이송용 일륜차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단선의 철로가 길게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부분의 바닥은 온통 눈처럼 하얀 순백의 색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행여나 불량 포탄에서 흘러나온 화약이 바닥에 떨어질 경우 손쉽게 발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좌우 양측에 20문씩 그리고 앞뒤로 4문씩 설치되어 있는 대포 구역은 노란색 사각형 모양으로 칠해져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갑판 맨 앞쪽에 있는 포병장과 갑판 좌우에 있는 부포병장 자리는 바닥이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어디에서 바라봐도 명확하게 식별이 가능했다. 대포 발사 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포병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가 보고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왜앵. 왜앵. 왜앵...
적을 발견했다는 사이렌의 짧고 연속적인 긴박한 단락음이 하부 갑판까지 들려오고, 전열함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자 포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장에 고정되어 있는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배가 거친 파도를 타고 넘는 충격을 버티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
- 주목!
마치 100m 달리기 선상에 선 선수들처럼 긴장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포병들을 보며 포병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고려 제국의 해병이며, 언제나 최전선에 배치되어 적들을 가장 먼저 격파하는 임무를 맡는 용맹스러운 포병대원들이다. 우리는 살아도 함께 살며..."
그 순간 좌우에 줄지어 늘어서 있던 포병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외쳤다.
- 죽어도 함께 죽는다!
"좋아. 다들 정신을 용케 잘 붙잡고 있구나. 지금 들리는 사이렌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멍청한 놈은 이 배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상공에 떠있는 천리안에서 적들을 발견했다는 뜻이지. 지금 이 배는 적들의 배가 대포의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전속 항해를 할 것이며 곧바로 사격 명령이 떨어질 것이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대고려 제국 포병대의 '교전삼원칙(交戰三原則)'이 뭔지 모르는 놈이 혹시 있나?"
- 없습니다!
"그럼 다들 긴장도 풀 겸 해서 순서대로 힘차게 외쳐보도록 하자. 하나!"
- 하나. 초탄 필살! 적들을 먼저 발견하여 아군의 포격에 준비를 못 한 상태일 때 초탄에 정확히 명중시켜 적들의 피해를 최대화 시키는 동시에 포탄의 소비를 최소화한다.
"그래. 잠시 후면 공중에 떠있는 천리안에서 포사격을 위한 제원을 통보해 줄 것이야. 포신을 조종하는 조정병들은 포병장들이 불러주는 제원대로 대포를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지. 긴장을 풀고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둘!"
- 둘. 탄막 사격! 대포를 쏘아 적을 격파하는 것은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의 작살로는 힘들지만 그물을 치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듯이 최대한 촘촘하게 탄막을 형성하여 적들을 격파한다.
"바다에서의 포격은 출렁이는 파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육지에서도 하기 힘든 것이 탄막 사격이니 바다에서는 더더욱 쉽지가 않지. 따라서 대고려 제국 해군 포병은 배가 파도를 타고 올라갈 때가 아니라 파도에서 내려와 잠시 잠깐 안정을 취하는 순간에 발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지만 사람마다 그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포병장인 본인이 직접 북을 두들겨 발사 신호를 내려줄 것이야. 발사병들은 그 신호에 맞춰 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셋!"
- 셋. 안전 포격! 대포를 발사하면 그 반동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부상을 입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야만 한다. 포격 시 병사들끼리의 잡담은 일체 금지하며, 이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부상자가 발생하면 즉각 지휘관에게 보고한다.
"대고려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여러분들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대포가 발사되면 자동적으로 뒤로 후퇴하였다가 용수철의 힘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설계해 놓으셨다.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야. 대포가 후퇴 또는 전진할 때 딴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다치기 십상이다. 다들 멀쩡한 몸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알겠습니다!
한바탕 병사들의 정신을 단단히 재무장시킨 포병장이 다시 자리에 앉아 우측에 있는 부포병장에게 말했다.
"포탄보급장에게 전하도록. 아마도 한바탕 지속적인 포격이 계속될 것이야. 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미리 탄약고에서 포탄 상자들을 챙겨놓으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포병장님."
포병장이 좌측에 있는 부포병장에게 말했다.
"좀 전에 적들이 5천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거리인 3천장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야. 포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대한 적들과 가까이 붙을 수도 있으니까 통신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포병장님."
모든 준비를 끝마친 포병장이 자신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날아갈 듯한 은색의 봉황 모양의 훈장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폐하를 모시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한 포병대원들 중에 한 명이 바로 나다. 그걸로 대고려 제국의 은색 무공 훈장까지 받았지. 대고려 제국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다들 나만 믿고 따라와라. 전원이 살아서 그대들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하부 갑판에 있는 포병대원들이 어느 정도 긴장감이 풀렸는지 대포와 포탄을 점검하며 결전의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천척의 배를 이끌고 이키섬을 향해 운항을 하고 있던 결사대의 대장인 '후지이 미스히코(藤井實彦)'가 상자 모양의 갑판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함 히젠노쿠니 히데오(肥前国英雄)의 선상]
자신의 고향인 나가사키의 옛 지명인 히젠국과 고려 해군을 물리칠 영웅이 되겠다는 야심을 합쳐 작명한 '히젠노쿠니 히데오'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닌 대장선. 15세기 중반인 센코쿠 시대나 되어야 등장할 '아타케부네(安宅船 : 안택선이라 불리며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이 사용하던 대형 전투함 )'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대장선은 당시의 일본에서는 시대를 가장 앞서가고 있는 전함이었으며. 선체는 뾰족한 첨저선이고 배 위에 나무로 집(누각)을 지어놓은 형태인 일본 전통의 화선(和船)치고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그 이유는 선수에 물을 가르는 모기사키가 달려 있었고, 2인 1조로 되어 있는 노잡이를 4인 1조로 증원하는 동시에 노의 크기 또한 두 배로 키웠기 때문이었다. 요시아카라의 명에 의해 오로지 빠른 속도로 고려 해군의 전함에 달려들어 자폭(自爆)만을 목적으로 개조된 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촤악. 촤악...
320명의 노꾼이 달라붙은 무려 80개에 달하는 노들이 일제히 바다를 가르고 나가고 있는 대장선의 누각에서 후지이 미스히코가 이키 섬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노꾼들을 채찍질해서 속도를 더욱 올려라. 고려의 전함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대포 소리는 들려왔다. 적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러자 수하인 부장이 대꾸했다.
"하지만 대장님. 지금 노를 젓고 있는 노꾼들은 전문적인 노꾼들이 아니라 규슈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잡아와서 부려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상으로 배의 속도를 올리다가는 노꾼들이 버티지 못하고 탈진하거나 죽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막상 적들을 만났을 때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해져 백병전을 벌이기가 힘들어집니다."
"상관없으니 명령을 전달해."
"알겠습니다."
부장이 갑판 아래로 황급히 달려가자 후지이 미스히코가 갑판 위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원형의 나무 통들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어차피 노꾼들은 소모품에 불과해. 노꾼들을 관리하기 위해 배에 타고 있는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야. 백병전 따위를 벌일 생각은 전혀 없다. 고려 전함에 다가가는 즉시 화약을 터뜨려 자폭을 할 것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이 배에서 살아남는 것은 나 하나뿐일 것이다. 천황 폐하께서 지니고 계신 '이자나미'의 은총을 입은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선택받은 자라는 뿌듯함 속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후지이 미스히코의 눈에 특이한 것이 보였다. 거리가 멀고 파도가 높은 편이라 바다 위에 떠있는 고려 전함은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두워져가고 있는 밤바다 상공에 두둥실 떠있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십 개의 이상한 비행 물체였다.
"저게 뭐지? 갈매기치고는 너무 큰 거 같은데..."
그때였다. 대고려 제국의 '다 - 100호' 전열함의 하부 갑판은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천척에 달하는 결사대인 일본 전함이 대포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천리안의 총책임자인 무지가 빠르게 계산을 하여 각 전열함에 사격 제원을 통보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적들이 사정거리에 들아왔다. 포격 준비! 포격 준비!"
- 포격 준비.
포병장의 명령에 포병대원들의 복명복창과 함께 포탄이 포신에 장착되는 금속음이 하부 갑판을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 철컹. 컬컹...
그리고 곧바로 부포병장이 숫자를 헛갈리지 않도록 기수와 서수를 혼용하는 포병대 특유의 방식으로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천리안으로부터의 사격 제원은 다음과 같다. 위로 공, 넷, 여섯, 좌측 포대의 1번 포수부터 20번 포수까지 좌로 각각 공, 둘, 삼에서 공, 둘, 둘, 삼까지 조종한다."
조종병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대포를 조종하기 위해 대포가 설치되어 있는 포대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붙들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외치기 시작했다.
- 조종 완료!
잠시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북채를 들고 있던 포병장이 북채를 힘차게 휘두르며 외쳤다.
- 둥.
"발포하라!"
- 발포.
복명복창과 함께 전열함 좌현에 있는 대포에서 일제히 불꽃이 튀며 귀가 먹먹할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 콰과광!
연기가 많이 나는 흑색화약을 사용한 탓에 하부 갑판이 연기로 자욱해질 때 일정한 리듬으로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300척의 전열함에서 순차적으로 연속 발사된 수만 발의 포탄들이 천척에 달하는 자살특공대를 향해 아름다운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히젠노쿠니 히데오 전함에 타있던 후지이 미스히코가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자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을 목표로 날아오는 포탄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30초 정도가 지난 뒤였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무려 3천장이라는 거리를 뛰어넘어 정확히 날아드는 포탄의 무리를 발견한 후지이 미스히코가 그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
"칙쇼!"
그리고 곧바로 대장함에 포탄이 떨어지며 갑판에 있던 화약통들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밤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천척에 달하는 자살특공대의 배들이 고려 해군의 포격에 순식간에 절반이 날아갔고, 나머지들도 그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고려 전함과 일본 배들과의 거리가 1천장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살아남은 자살특공대의 배는 50여 척이 채 못되었다. 그리고 그때 최영 장군이 타고 있는 장군함에서 새로운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열함 뒤쪽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던 100여 척의 보급함이 전선 앞쪽으로 튀어나오더니 마치 뱃멀미를 하는 사람처럼 뭔가를 바다 위에 울컥울컥 토해내기 시작했다.
- 부아아앙...
보급선 옆쪽에 매달려 있다가 밧줄을 풀고 바다로 떨어진 쾌속일포정 100대가 호쾌한 엔진 소리를 터뜨리더니 선수가 위로 들릴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내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50여 척에 불과한 적들의 배로 가까이 접근하여 근접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콰과광.
명중시키지 못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라는 걸 증명하던 남은 배들마저 순식간에 대폭발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대고려 제국과 일본 간에 벌어진 '제1차 여일해전'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먼저 발견하고 원거리에서 먼저 타격한다는 대고려 제국 해군의 기본 전술대로 진행된 그 해전의 결과는 대고려 제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단 한 척의 배도 자폭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새로운 제2라운드가 대고려 제국 해군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