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 일본 정벌을 시작하다 - 3
[만월대의 격구장]
만월대 안은 입신양명을 꿈꾸는 자들의 열기로 후끈거리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묵을 갈며 문과의 과거 시험 문제가 출제되기만을 기다리는 자들도,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자신의 무술을 선보이기 위해 차분하게 칼을 갈고 있는 무과에 응시한 자들도,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된 재주가 있으면 중용하겠다는 황제의 말에 모여든 전국의 재주꾼들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확신과 함께 이 시대의 물살에 합류하여 출세해 보겠다는 의지들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열기 속에서 왕기의 명에 따라 무과시험장으로 지정된 격구장에서는 때아닌 나무 심기가 한창이었다. 가까운 강가에서 뿌리째 통째로 떠온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자잘한 관목(灌木) 하나 없는 격구장 한 편에 생뚱맞게 심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과는 삼정승에게, 무과는 무지와 무장에게, 무인과는 척무관에게 맡겨둔 채 직접 취재를 주관하기 위해 무과와 무인과가 열릴 격구장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왕기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뇌까렸다.
'내가 살아있는 한 무과는 계속 이곳 격구장에서 열릴 것이야.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을 만나려면 무과 시험장에 반드시 버드나무가 있어야 한다. 세종 대왕이야 이성계 쪽만 잘 지켜보고 있으면 30년쯤 뒤에 만나볼 수 있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아버지가 누군지 난 전혀 모른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이 시험을 치르던 도중 타고 있던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후 다시 일어나 버드나무의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시험 과정을 마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지. 이순신 장군은 당연히 그해의 무과에서 낙마했다. 하지만 난 바로 합격을 시켜줄 것이야. 그런 뛰어난 인재는 일 년이라도 더 일찍 부려먹여야 할 테니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과 세종 대왕은 반드시 만나보고 죽을 것이야. 세종 대왕이야 가능하겠지만 이순신 장군을 만나려면 앞으로 200년은 더 지나야만 한다. 현실로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역사 속의 위인 중에 위인인 두 사람을 만날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있던 왕기가 갑자기 옆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무인과의 총책임자인 척무관이 기척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하한다. 잠시 안 본 사이에 완벽한 화경의 경지에 올랐구나. 원나라에 철조망을 치러갔다가 영약이라도 구해서 먹고 온 것이더냐?"
"역시 페하의 눈은 못 속이겠습니다. 원나라에서 영약을 먹지는 못했지만 오늘 새벽에 깨달음을 조금 얻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네. 폐하. 새벽에 무지가 절 찾아왔더군요. 중력이란 것이 뭔지 이해가 잘 안된다며 소인과 의논을 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지도 이해하지 못한 걸 그대가 깨달았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소인의 머리가 무지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인에게는 몸으로 직접 익힌 것이 있잖습니까? 전하께서 전수해 주신 '비천운룡신법(飛天雲龍身法)' 말입니다. 소인은 전하를 옆에서 모시며 전자기력이 뭔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고, 비천운룡신법을 통해 양력이 뭔지를 몸으로 직접 깨달았사옵니다. 그런 상태에서 중력에 대한 풀이를 듣다 보니 불현듯이 깨달음이 찾아오더군요."
"보물에게는 정해진 주인이 있다더니... 무지를 위해 강의한 것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아무튼 축하한다. 그대가 강해질수록 내가 자리를 비워도 더욱 안심할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근데 무슨 일로 온 것이더냐?"
"폐하. 약조한 대로 고려의 오대무맥(五大武脈)들이 모두 무인과에 응시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소신이 직접 확인을 한 사항이니 틀림없습니다. 그들을 중용하겠다는 폐하의 말씀을 믿고서 대고려 제국에 충성을 다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옵니다."
왕기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나라에 전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세상에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오대무맥의 무인들이 모두 무인과에 응했다고?"
"그렇사옵니다. 폐하. 몸놀림이 그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함경도의 비천(飛天) 무맥, 무공을 익히게 되면 역발산(力拔山)의 힘을 자랑한다는 경상도의 장사(壯士) 무맥, 창의 날카로움이 한 겨울 남도의 해풍과 같다는 남해(南海) 무맥,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내공이 뛰어나고 칼을 잘 쓴다는 백두(白頭) 무맥 그리고 소인이 속해있는 검의 최고봉이라는 송도(松都) 무맥까지 모조리 출동을 하였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짐의 목표가 뭔지 잘 알고 있겠지?"
"모를 리가 있겠사옵니까? 일본을 정벌한 후 곧바로 대륙을 집어삼키는 것이잖습니까?"
"그러하다. 3천만이라는 머리수를 자랑하는 한족의 터전인 대륙을 완전히 수중에 넣어야만 이 나라 고려가 천년을 갈 수 있을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조만간 중국의 무인들과 일전을 벌여야만 한다. 그대도 알다시피 중원 무림 무인들의 무공은 만만치가 않아.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리 쪽에도 뛰어난 무인들이 있어야만 한다. 일반 병사들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국을 정복하려면 이 나라 고려의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줘야만 해."
"그런 폐하의 마음과 고려의 미래를 위해 일본과 중국을 정복하겠다는 폐하의 정복 정신을 그들이 알아준 듯 하옵니다. 이 모든 것은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폐하의 위대함 때문이지요."
느닷없이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척무관의 말에 왕기가 쑥스러움을 느꼈는지 빙긋 웃으며 농담조로 대꾸했다.
"몰랐느냐? 난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천자(天子)라고 부르지 않느냐?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고려에 내려주신 신의 아들인 게야. 고려의 만백성들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지 않느냐? 짐이 미륵의 화신이라고 말이다."
"정말... 이시옵니까?"
"그럼. 정말이고 말고. 내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뭐 따지고 보면 거짓도 아니지. 신적인 존재가 날 과거로 끌고 온 것이니까.'
왕기가 속으로 뇌까릴 때 만월대 일대에 장엄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둥. 둥. 둥...
마침내 대고려 제국의 과거가 시작된 것이었다. 북소리에 척무관이 자신이 맡은 자리로 돌아가자, 왕기도 취재를 주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재주꾼들을 만나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왕기는 감히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척무관에게 농으로 했던 말이 추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를 말이다.
북소리와 함께 문관들을 뽑는 시험장에서는 새하얀 천에 커다랗게 쓰인 과거의 시험 문제가 내걸렸고, 무인들의 시험장에서는 말을 탄 첫 번째 시험자가 격구장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말의 고삐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활을 잡고 뒤쪽의 과녁을 향해 쏘는 배사(背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고대 파르티아 왕조의 궁기병들이 로마군에 맞서 싸우며 즐겨 활용하던 장기인 '파르티안 샷(Parthian Shot)'이었다. 몽골족과 훈족도 즐겨 사용하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 등에 그려져 있듯이 고구려도 즐겨 사용하던 배사를 고려 무인이 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고려 무인이 배사를 선보이며 달려나갈 때 문과의 시험장에서는 출제된 문제를 보며 문사들이 단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험 문항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 오상지도(五常之道) 중에 3개를 자유롭게 선정한 후 그에 대해 논하시오.
2. 대학(大學)의 8조목 중에 3개를 자유롭게 선정한 후 그에 대해 논하시오.
3. 황제께서 반포하신 공민육헌 중에 3개를 자유롭게 선정한 후 그에 대해 논하시오.
무려 9개 문항을 선정하여 정해진 시간 내에 답안지를 작성하게 만든 것은 왕기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모든 답안은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작성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훈민정음을 익숙하게 사용할 정도로 숙달된 학자들로만 합격자를 뽑기 위한 왕기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깔려있었던 것이었다.
훗날 목은 이색이 쓴 '대고려제국사'에 이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 개벽 2년 물오름 달 엿새(3월 6일).
이날 치러진 과거로 인해 대고려 제국은 완벽하게 공민 대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훗날 '신진훈정부(新進訓正夫)'라 불리는 훈민정음을 익힌 자들이 대거 중앙 관료직에 진출하여 언제나 대국인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며 사대(事大)에 빠져있던 낡아빠진 과거의 관료 세력들을 수적으로 완전히 압도하게 되었고, 고려 전역에 흩어져 있던 지방의 뛰어난 모든 무맥들이 무인과에 일제히 응시하는 바람에 지방의 토호 세력들이 군사력을 이용한 반란 자체를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권문세족들과 부원배들을 단칼에 숙청하고, 고토를 단숨에 회복하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 공민 대제가 최후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관료들과 지방 토호들마저 제압하며 마침내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된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공민 대제는 한 달 후인 잎새 달 열하루(4월 11일)에 자신이 그렇게 고대해 마지않던 일본 정벌에 나서게 된다. 특이한 사항은 이날 공민 대제가 신의 아들이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논쟁이 있긴 하지만 그의 믿기지 않는 능력으로 미루어 보아 학계에서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공민 대제를 교주로 하는 공민교에서는 이날을 '강림의 날'로 인정하여 매년 기념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연경전의 침실]
이날 밤 엄숙하고 조용해야 할 연경전의 침실 앞에서는 때아닌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문관들의 최고 우두머리들인 삼정승들이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느라 정신이 없는 시간 무관의 최고 지위에 올라가 있는 척무관이 무인과에 응시한 고려의 무인들을 환대하기 위한 잔치를 거하게 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바깥의 분위기와 달리 간부 회의가 열리고 있는 연경전의 침실 안에서는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오키나와 정벌에 나서던 최영 장군이 황실로 돌아와 황제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정벌은 성공하였으며 상중하로 나뉘어 있던 세 개의 부족장들이 모두 고려에 복속하기로 결정을 내렸사옵니다."
최영 장군이 왕기에게 몇 장의 서류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들과의 협약서들입니다. 그들 모두 매년 고려에 조공과 세금을 바치기로 하였고, 그들의 말과 문자를 훈민정음에 맞추어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왕기가 서류를 받아들며 물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고려가 베풀어줘야 할 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지속적인 안전 보장, 고려와의 교역을 통한 고려의 뛰어난 문화 전수, 마지막으로 부족장들의 자식들을 고려에 유학을 보낼 테니 받아달라고 한 것입니다. 소장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그런 조건들을 모두 수용하였으며 그들 부족장들에게 앞에는 봉황이, 뒤에는 고려라고 쓰인 깃발들을 각각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깃발들을 단 배들은 안전하게 고려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최영 장군이 잘 처리해 주었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키나와 따위가 아니야. 실전에서의 시험 결과이지. 최신식 고려 전함들의 성능이 어떠하던가?"
"폐하. 전통적인 노꾼을 사용하여 바다를 항해하는 고려 해군식 제1전함이자 전열함인 '가'형은 폐기를 해도 무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소장이 어찌 폐하에게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가로 세로가 10장에 달하는 태양광 전지 갑판을 부착한 '나'식 전열함과 태양광 전지 갑판 대신 인간 충전기인 뇌정공을 익힌 무인들 3인을 배치한 '다'식 전열함도 오키나와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도착을 하였사옵니다. 납축전지가 오키나와까지 방전 없이 충분히 다 버티더군요. 전기의 힘으로 구동하는 '나'와 '다'의 전열함을 이용하여 일본 정벌에 나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소장의 목을 걸고 장담할 수 있사옵니다. 하지만 서역까지의 항해가 가능할지는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소장도 아직 잘 모르겠사옵니다."
최영 장군의 보고에 한숨 돌렸다는 표정의 왕기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아... 걱정하지 말게. 일본 정벌이 끝난 후 서역으로 항해를 떠날 배들은 충전모함과 함께 떠날 것이니까. 참으로 잘 되었군. 사람들이 해군에 입대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노꾼들 때문이니라. 행여 자신이 노꾼이 되어 고생을 할까 봐 주저하는 것이지. 하지만 지금 이 시간부로 고려의 배에서는 노꾼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야. 모든 전함들이 노를 젓는 인력도, 돛을 이용한 풍력도 아닌 오로지 전기의 힘만으로 항해를 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모든 배에 순수한 병력으로만 가득 채워서 일본 정벌을 갈 수가 있어. 일본의 인구는 고려의 2배에 달하는 6백만에 가깝다. 존망의 위기에 처하면 백만, 이백만이라는 병력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걸 상대하려면 한 번에 최대한 많은 병력을 실어 날라야만 한다고."
왕기가 말을 끝내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흡족한 표정을 지은 상태로 최무선을 바라보며 물었다.
"최무선은 내일 당장 '가'형 전함을 '나'형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시작하도록 해라.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다'형으로 바꾸고 싶지만 뇌전공을 익힌 무인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찍어낼 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보다는 재물을 투자하여 태양광 전지 갑판을 찍어내는 것이 더 쉬워."
"알겠사옵니다. 폐하. 소인이 직접 장인들을 이끌고 변산반도로 내려가 변경 작업을 진두지휘하겠사옵니다."
"그래. 그대가 고생을 좀 해줘야 하겠다.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거북선을 제작하는 것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충전모함 제작은... 아직은 어렵습니다. 인조석을 이용한 선거 제작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요."
"상관없다. 일본 정벌이 하루아침에 끝날 건 아니니까. 제법 오래 걸릴 것이야. 그 시간 동안 충전모함을 제작하여 본격적인 서역으로 진출할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니라. '천리안'과 '반딧불' 작전은 문제가 없고?"
"네. 폐하.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왕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라. 짐이 몇 번이나 천명한 것처럼 한 달 후인 4월 11일에 일본 정벌에 나설 것이니라. 그 이전에 과거에 합격한 자들을 교육해 전국에 내려보내 행정망을 튼튼하게 만들 것이니라.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병사들의 훈련이 끝나면 천척의 배에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 일본 정벌을 시작한다. 그때까지 다들 최선을 다하도록."
- 존명!
그리고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1346년 4월 11일
[변산반도 앞바다]
들은여와 소미여가 있는 변산반도 아래쪽의 바다에는 천척에 달하는 배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바다를 가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 둥. 둥. 둥...
그런 배들의 가장 앞쪽에 서있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창날들이 가득 꼽혀 있는 거북선의 등껍질 위에 고수가 용케 올라가 큰 북을 치며 대장정의 출발을 기념하고 있었다.
[거북선의 선장실]
직접 친정을 나선 왕기가 장군선인 거북선의 선장실에서 일본 정벌의 총사령관인 최영 장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히 용대가리인데 페하께서 왜 거북선이라고 이름을 붙이셨는지 알겠사옵니다. 앞쪽과 뒤쪽에 설치되어 있는 날개 같기도 하고 거북이의 앞발과 뒷발과도 같은 부분 때문이로군요."
"맞네. 거북이의 발처럼 평편한 판으로 출렁이는 파도를 눌러 배의 움직임을 최대한 안정시키며 좌우로의 선회를 재빨리 하기 위해서이지. 그리고 실제로 날개의 역할도 한다네."
왕기의 말에 화들짝 놀란 최영 장군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물었다.
"폐하. 그럼... 전체가 쇠로 제작된 이 철선이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이십니까?"
"그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짐이 말한 뜻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야. 운항 계획이 어떻게 되는가?"
왕기의 물음에 사방이 철판으로 꽉 막혀 있어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거북선의 선장실에서 천장에 여러 대 설치되어 있는 잠망경 같은 것에 눈을 댄 최영 장군이 잠망경을 이리저리 돌려서 외부를 살펴보며 답했다.
"내일 오후까지는 전군이 마산 앞바다까지 시험 운항을 할 것입니다. 제작된 배들에 행여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각 전함들끼리의 전술 훈련을 계속 실시하면서요. 그런 후 곧바로 쓰시마를 향해 나아가야 하겠지요. 쓰시마에서 실전에서의 포격 훈련을 실시한 다음 일본 본토를 향해 곧바로 진격할 것입니다."
최영 장군의 대답에 비장한 표정을 지은 왕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고려 제국이 마침내 영원한 숙적인 일본 정벌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