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16화 (116/171)
  • 왕기, 일본 정벌을 시작하다 - 2

    일본 전역을 단숨에 석권한 후 기존의 천황 일가를 모조리 몰살시키고 자신이 천황 자리를 꿰차며 전국의 모든 다이묘들을 '이자나미'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을 이용해 만든 불사의 병사들로만 채운 요시아카라. 그런 이유로 전국에 퍼져있는 다이묘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있는 그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다미 양옆으로 길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신하들이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발언을 허락받은 이시하라 신타로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본 정벌을 목적으로 오는 고려군을 상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카타만 앞바다에서 건곤일척의 대해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상대는 멀리 원정을 나온 군대이고, 그들이 진격해올 해로(海路) 또한 이미 정해져 있사옵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쓰시마를 통과해 이키를 거친 후 하카타만으로 상륙해올 것이 불 보듯 뻔하지요.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본토 바로 앞바다에서 붙는 일전이기 때문에 일본 전역에서 배를 징발하면 4~5천 척도 무난히 징발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천척에 불과한 고려군을 압도적인 수적 우세로 밀어붙여 단 한 번의 해전으로 모든 것을 단숨에 정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큰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사옵니다."

    "그게 뭔가?"

    "수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만약 대해전에서 패퇴하게 되면 그 뒤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신이 보기에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것이지요. 고려군에게는 화약을 이용한 대포라는 신무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쪽에서도 최근 화약을 이용한 신무기를 연구하지 않았나?"

    "물론 일본에도 화약은 있고 그걸 이용한 대포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습니다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대포의 개발은 화약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려의 화약이나 일본의 화약이나 위력 면에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건 대포를 발사할 때 발생하는 폭압을 견딜 수 있는 쇠를 제련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일본에는 그런 제철 기술이 없사옵니다.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원나라조차도 얼마 전에 있었던 항주성의 공략 때 쇠가 아닌 청동으로 만든 대포를 사용했었습니다. 현재 고려에서만 가능한 철강 제련 기술은 시대를 뛰어넘은 기술입니다. 쉽게 모방하기가 불가능한 기술이지요."

    "그럼 다른 작전은 무엇인가?"

    "하카타만으로 상륙할 고려군과 육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지요. 하카타만에는 두 차례에 걸친 여몽연합군을 상대한 후 제3차 정벌을 대비하여 미리 축조해 놓은 7척 높이의 담장이 존재합니다. 하카타만을 완전히 빙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아직도 건재하지요. 그 담장을 성벽 삼아 '고세이큐(나무와 대나무를 조합한 일본의 합성궁)'를 든 일본의 병사들을 대량으로 배치하고 장기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하카타만 해안 곳곳에 미리 화약을 대량으로 묻어놓으면 효과가 더욱 좋을 테지요."

    "육지에서의 장기전이라... 그럼 우리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겠군."

    "양쪽의 병력이 맞부딪히면 십만 정도는 며칠 사이에 갈려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피해는 각오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적들의 보급선은 길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야만 합니다. 더욱이 봄에 쳐들어오면 육지에 먹을 것이라고는 들판의 풀밖에 없지요. 말은 굶주리지 않을지라도 사람이 먹을 것이 없사옵니다. 게다가 규슈에서 펼쳐질 전선에서 몇 달만 버티게 되면 고려군이 배에 싣고 온 수많은 대포들이 곧바로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가미카제가 불어올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바다로 나갈 수가 없으니 대포를 실은 전함은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좋다. 그럼 두 번째 작전으로 가도록 하지. 고려군이 출발하기 전에 규슈 쪽의 모든 병력을 하카타만 인근의 후쿠오카에 집결시킨다. 관서 지방의 모든 병력들은 적들이 혼슈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시모노세키 쪽에 집결시키고, 관동 지방의 모든 병력들은 고베로 집결시켜 교토를 방비하도록 한다. 그리고 일본 전역의 화약을 끌어모아 하카타만에 묻어두는 작업을 개시하도록. 적들이 대량으로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일제히 터뜨려 단숨에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야."

    "아주 뛰어난 판단이십니다."

    "거기에 하나의 작전을 더 추가하도록 하지. 적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손쉽게 바다를 건너오게 되면 우리를 우습게 보고 덤벼들 것이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바다를 건너오는 적들을 괴롭히기 위해 불사의 무사들을 동원해 대규모 자살 공격을 감행하도록 한다. 속도가 빠른 배에 화약을 싣고 곧바로 적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야. 대포를 개발할 수 없다면 배로 들이받으면 그만인 것이지. 일본 전역에서 가장 빠른 배들로만 천척을 징발하도록 하거라. 이 작전이 성공하면 장기전이 필요 없어질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천황 폐하. 그리고 고려의 공민왕에게도 허점이 있사오니 이를 충분히 이용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전쟁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과거를 실시하여 새로운 인재를 충원한다고 하옵니다.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겠지만 그에 따른 혼란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지금도 고려 전역에서 공민왕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최대한 많은 자들을 우리 쪽으로 회유를 시켜서 적들의 본진에서 분열이 발생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그대가 알아서 하도록 해. 다들 잘 듣거라. 여몽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두 번이나 왔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은 가미카제의 도움도 있었지만 몽골족 병사들이 일본에 관심이 없었다는 이유 또한 적지 않다.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야. 몽골족은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음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요. 생선은 가장 천한 자들이나 먹는 걸로 생각하는 민족입니다."

    "원나라 황제의 마음속에서야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욕심이 있었겠지만... 실제로 정벌에 나선 몽골족의 병사들과 장수들은 일본을 정벌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황제의 명에 의해 강제로 떠밀려 온 자들이다 보니 건성으로 정벌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실제로 1차 정벌 때 하카다만으로 상륙해 초전에서 대승을 거둔 그들이 육지에 진지를 구축하지 않고 배 안에서 잠을 청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니라. 아마도 다음날 이 정도면 되었다고 하면서 곧바로 철수를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러다 바다 위에서 가미카제를 만나 대규모로 수장을 당하고 말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 오는 고려군은 여몽연합군과 입장이 전혀 다를 것이야. 몽골족과의 연합군도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왜구들에게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정벌에 대한 목적의식이 확실할 것이니라. 이전의 여몽연합군처럼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우리 역시 절대 물러날 수 없고 질 수도 없는 전쟁이니 다들 고려군과의 전쟁에 만전의 대비를 가하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나?"

    - 알겠습니다. 천황 폐하.

    고려와 일본 양국 간에 전쟁의 기운이 점점 더 무르익어 가고, 각자의 나라에서 이에 대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열흘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1346년 3월 5일

    [연경전의 침실]

    밤이 깊어가는 침실 안에서 왕기와 노국공주가 지필묵을 든 채 서탁에 앉아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것 참 쉬운 일이 아니로군."

    불평 어린 왕기의 중얼거림을 들은 노국공주가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현대의 지식을 전달할 책을 쓴다는 것이 예삿일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이해를 할 수 있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제법 높은 수준까지 집필을 한 다음 머리 좋은 놈에게 한번 테스트를 해봅시다.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말이오. 그런 후 수위를 적절히 조절한 다음 과거에 합격한 자들을 대상으로 집필한 책을 뿌리면 자연스럽게 지식의 전파가 이루어질 것이오. 이는 일조일석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조바심을 가져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하지만 실학의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반드시 전파하여야만 하니 생략할 수도 없는 과정이지요. 장기적인 안목으로 차분하게 진행하는 수밖에 없을..."

    말을 하던 왕기가 침실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 순간 문밖에서 내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제 폐하. 국방부 장관이 도착하였사옵니다."

    "들라 하여라."

    -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무지가 들어오자 왕기가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냐?"

    "폐하께 몇 가지 급히 전달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말해보거라."

    "최영 장군이 탄 배가 방금 전 전라도를 막 지나갔다고 하옵니다. 늦어도 내일 중으로 개경에 도착할 것입니다."

    "최영 장군이 도착하는 대로 비상회의를 소집하거라. 일본 정벌 이전에 최영 장군의 실전 경험을 통해 마지막으로 작전을 보완해야 할 것이야. 그 이후로는 곧바로 정벌에 나설 천척의 전함에 보급품을 탑재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니라. 실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야. 포탄, 식량, 식수, 납축전지, 화살. 산소통과 수소통, 의료품, 생필품 등등... 그 모든 것들을 적재하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갈 것이야. 그다음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본과의 전쟁이다."

    "폐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전쟁은 보급으로 한다는 개념으로 소신을 비롯한 모든 중신들이 미리 사전 작업을 철저히 해두었으니 보급품을 싣는 것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오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전통이 도착했사옵니다. 마침내 형광등과 현미경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이옵니다. 그리고 무선 통신에서도 제법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장하군. 날이 갈수록 기술 개발의 시간이 단축되고 있어. 이제 본격적으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겠군. 의술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가 있을 테고 말이야. 조만간 짐이 시간을 내어 한번 들리겠다고 전하거라."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마지막으로 삼정승들이 내일 있을 과거시험에 낼 문제지를 방금 전 작성 완료했다고 하옵니다. 문제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 모두 오늘 밤은 황궁에서 잘 것이라고 하옵니다."

    왕기가 무지가 내민 시험지의 문항을 읽어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중국의 사서오경을 중요시하는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나의 통치이념과는 적합지가 않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번 솎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시험문제지를 돌려주며 왕기가 말을 이었다.

    "큰 문제가 보이지 않으니 이대로 과거를 치르도록 하거라. 그 대신 삼정승에게 이 말을 꼭 전달하거라. 과거에 합격한 자들을 대상으로 짐이 직접 주관하는 보충 교육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시험 성적이 아니라 교육의 성적에 따라 직급과 근무지가 배정될 것이라는 말도 꼭 전하고."

    말을 끝낸 왕기가 무지에게 집필하고 있던 책을 내밀며 말했다.

    "어디 한번 네가 먼저 읽어보겠느냐? 보충 교육에 사용될 책자 중에 하나이니까."

    '물리(物理)'라고 표지가 적혀있는 책을 받아든 무지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첫 장을 넘기자마자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폐하. 중력(重力)이라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소신이 태어나서 처음 들어봅니다."

    "거기 설명되어 있지 않느냐?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폐하와 소신 사이에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가 않사옵니다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지구와 비교했을 때 질량이 너무 가벼워서 그런 것이야. 하지만 그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전에 네게 반야심공을 알려줄 때 설명해 주지 않았느냐? [대력반일(大力反日) 지회여동(地回如動)]의 의미를 말이야.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을 회전시키는 미증유의 힘이자 대력반일에서의 대력이 그 중력을 일컫는 것이니라."

    "으음..."

    무지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신음성을 흘리자 왕기가 내처 설명을 해주었다.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노자(老子)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무슨 뜻이냐?"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아니하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기를 주저하지 않기에 지극히 선하다는 뜻이옵니다."

    "물은 왜 언제나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더냐?"

    "그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렇지. 그건 자연의 이치이지. 노자가 말하기를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이라고 하였다. 그게 무슨 뜻이더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도는 스스로 그리되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볼 때 노자가 말한 도(道)는 아마도 중력일 가능성이 높다. 하늘과 땅이 스스로 그리 작동하도록 만드는 태초부터 존재하던 강력한 힘. 그것이 바로 중력이니라."

    왕기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무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순간에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 더 이상 하지. 계속 공부를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야. 다음을 넘겨보거라."

    왕기의 말에 책장을 넘긴 무지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왕기의 운동 3법칙이라는 것이로군요. 1. 관성의 법칙, 2. 가속도의 법칙, 3. 작용. 반작용의 법칙? 이 모든 것을 폐하께서 직접 다 만드신 것이옵니까?"

    "그렇지. 내가 다 만들었느니라."

    왕기가 뉴턴의 업적을 갈취하면서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후 침실에서는 때아닌 열공의 시간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과거 시험이 있는 아침이 밝아왔다.

    1346년 3월 6일

    [개경의 만월대]

    만월대 전경전 앞의 더 넓은 광장에서는 과거를 보기 위해 고려 전역에서 몰려든 학자들이 자리를 잡고서 시험 문제가 출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격구장이 있는 공터에서는 무과와 무안과를 보기 위한 무인들이 자신들이 몰고 온 말을 타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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