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14화 (114/171)
  • 대불 제국의 태동(胎動)이 시작되다 - 2

    서기 1346년 2월 12일

    [아미앵의 야산]

    솜강이 흐르고 있는 아미앵 지역의 이름 모를 야산 위에 1만에 달하는 장궁병들을 배치하고, 산 아래에는 2만의 병력을 넷으로 나누어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프랑스 기병대의 기습 돌격을 대비하고 있던 흑태자가 강 건너에 도착한 5천의 경기병과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3천의 기사 병력을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이쪽의 병력 숫자를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프랑스군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어. 그리고 언제부터 프랑스 기사들이 저렇게 큰 방패를 가지고 다녔지?"

    흑태자의 말에 강 건너에 넓게 포진을 하고 있는 프랑스군을 살펴보던 장군 중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하. 저건 '파비스(Pavise)'라고 부르는 대형 방패입니다."

    "파비스? 그건 제노바 석궁병들이 사용하는 방패가 아니오?"

    "맞습니다. 저하. 아마도 프랑스 측에서 얼마 전 제노바 석궁병들과의 용병 계약을 해지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던 방패를 일괄적으로 구입한 것 같습니다. 제노바 용병단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었겠지요. 길이가 5피트(약 1.5m)가 넘어가고, 무게가 17파운드(약 8kg)가 넘을 정도로 무거운 방패이니 철수를 할 때 다시 들고 가기에는 걸리적거렸을 테니까요. 차라리 적당한 가격에 프랑스로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제작을 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때 또 다른 장군이 입을 열었다.

    "저하. 방금 들으신 것처럼 저건 사람이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방패가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무게가 너무 무겁지요. 방패 가운데 아래쪽에 툭 튀어나온 뾰쪽한 부분이 보이시지요? 저걸 말뚝 삼아 땅에 박아 쉽게 고정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방패입니다. 저걸 땅에 박은 후 석궁수들이 그 뒤에 숨어서 석궁을 재장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요."

    "방패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동형 장벽에 가까운 것이로군. 아마도 우리 쪽 장궁병들을 의식해서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장궁으로 방패를 뚫을 수 있겠소?"

    "불가능합니다. 장궁이 가까운 거리에서는 얇은 철판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관통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궁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어떤 활보다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도로 숙련된 영국의 장궁수들은 하늘로 비스듬히 화살을 쏘아 올리는 곡사(曲射) 능력을 익히고 있게 때문에 그 어떤 활보다 긴 사정거리를 보여주지요. 적들이 강을 건너 평야 지역을 절반 정도 지나면 장궁의 사정거리에 들어올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쯤 방패를 땅에 박고 이쪽과 대치를 할 생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흑태자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그건 자살행위로 보이는데... 장궁이 비록 파비스라는 방패를 뚫지는 못하겠지만 그 거리에서 프랑스군이 이쪽을 어떻게 공격한단 말이오? 기병 돌격 따위를 하다가는 장궁에 맞아 죽을 것이고, 같이 활로 승부를 하면 장궁의 사정거리에 미치지 못해 이쪽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 아니겠소? 그 무엇보다 지상에 있는 영국 병사들을 먼저 제압해야 가능한 작전일 텐데 말이오. 저들이 무슨 꿍꿍이속인 줄 모르겠구려."

    한편 그때 필립 6세의 명을 받아 자신이 개발한 카빈으로 무장한 8천의 병력을 직접 이끌고 온 위고가 프랑스군의 장군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장군. 이번 전투의 총사령관은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비록 내가 전투에 문외한인 추기경이기는 하지만 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자는 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작전을 벌였다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시종들이 피마자기름으로 얼마나 광을 내어놨는지 장거리를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광택이 번쩍이고 있고,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줄줄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는 은색의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장군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주님의 명령을 받은 사도이시자 몇 주 후면 교황으로 등극하실 추기경님의 명령을 누가 감히 무시하겠습니까? 그런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좋소이다. 이번 기회에 주님께서 내게 알려준 신성한 무기인 카빈의 성능을 저 더러운 영국 놈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것이오. 탄환은 충분하겠지요?"

    장군이 자신의 갑옷에 주렁주렁 매달린 5개의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머니 하나당 20발씩, 총 100발을 들고 왔으니 모자라지는 않을 겁니다."

    "8천 병력이 모두?"

    "네. 그렇습니다. 다 합쳐서 80만 발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그동안 죽어라 제작해 놓은 탄환을 거의 다 들고 온 셈이로군. 명심하시오. 여기서 영국군을 전멸시키지 못하면 탄환이 부족해서 당분간 신의 무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병 돌격 중에도 사격이 가능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지난 한 달간 죽어라 그것만 연습했으니까요. 신의 무기는 참으로 대단하더군요. 검을 익히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지만 카빈은 그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보일 정도로 연습이 가능했습니다."

    장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위고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명령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강 건너 평원에 있는 영국 군들은 신의 무기인 카빈의 위력을 몰라서 카빈의 사정거리에 태평하게 포진해 있으니 50발을 사용할 때까지 일제 발사를 계속해서 그들부터 정리를 합시다. 그런 다음 도강을 하도록 하지요. 가능하겠지요?"

    "네. 강의 깊이가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아 말을 타고서도 충분히 도강이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도강을 한 다음 언덕 위에 있는 장궁병들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런 후 갑옷을 입지 않아 화살에 취약한 경기병들은 파비스 뒤에 숨어서 언덕으로 일제히 사격을 하며 기선을 제압합니다. 그런 후 적들이 놀라 정신이 없을 때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 병력이 일제히 기병 돌격을 하며 사격을 하여 적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으로 합시다."

    "나쁘지 않은 작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강을 하게 되면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주지시키시오. 영국의 황태자인 흑태자는 산 채로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오. 그래야 영국과의 협상이 쉬워질 테니까."

    "그렇게 하지요."

    대답을 한 장군이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전군 일제사격 준비!"

    그러자 작은북을 목에 걸고 있던 고수들이 빠른 리듬으로 작은북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고위 기사들이 사방으로 말을 몰고 달리며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 전군 일제사격 준비!

    - 두루루루...

    8천에 달하는 병력들이 다닥다닥 붙어 일제히 일렬로 강변에 늘어서더니 카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태자가 중얼거렸다.

    "설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불화살을 쏘겠다는 것인가? 제정신이 아니로군. 날아오기도 전에 불이 꺼질 것이야."

    하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어 평상시보다 어두운 강변을 밝히고 있는 8천 개에 달하는 그리스의 불은 빗속에서도 꺼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군 50발 연속 발포!"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큰 북을 땅에 내려놓은 고수가 북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둥. 둥. 둥...

    오랜 시간 같이 연습을 했는지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는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8천 개의 카빈 총구에서 일제히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천둥이 치는듯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 탕. 탕. 탕...

    그러자 이제나저제나 기병들이 도강하길 기다리며 병력 수의 우세를 이용해 기병들을 사방에서 포위한 후 말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배틀 훅과 할베르트를 들고 있던 영국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동시에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했다.

    - 탕. 탕. 탕...

    2만의 병력을 향해 쏟아진 50만 발의 총탄에 영국 병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30분 가까운 일제사격에 강 건너에 서있는 영국 병사가 손에 꼽을 듯 적었다. 많은 숫자의 영국 병사들이 죽기도 했지만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땅에 엎어져서 감히 일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위고의 위엄에 가득 찬 명령이 떨어졌다.

    "전군 일제 돌격! 영국 놈들을 쳐죽여라."

    - 두두두두...

    카빈을 들고 솜강을 도하하기 위해 달려가는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유럽을 제패하여 대제국으로 성장할 프랑스를 축하하는 폭죽처럼 천지사방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서기 1346년 2월 15일

    [파리의 루브르 궁전]

    영국군을 대파하고 흑태자를 포로로 잡은 위고가 파리로 돌아가 필립 6세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전하. 영국은 더 이상 프랑스의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가 무엇이오?"

    "이베리아반도부터 완전히 점령하셔야지요."

    "이베리아반도를?"

    "그렇습니다. 전하. 저 불손한 이단의 무리들이 점령하고 있는 에스파냐부터 점령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게 명령을 내리신 주님께서는 이교도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니까요. '레콩키스타(Reconquista : 711~1492년까지 780년 동안 에스파냐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을 상대하여 벌인 실지 회복운동.)'를 마무리해서 유럽에서 이슬람교도들을 완전히 축출하는 동시에 에스파냐를 정복해 후방의 걱정을 완전히 없애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유럽 정복에 나서야 하겠지요."

    살짝 광기(狂氣) 마저 느껴지는 위고의 말에 필립 6세가 주저 없아 고개를 끄덕였다.

    "일겠소이다. 차기 교황이자 주님의 사자인 그대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겠지. 근데... 걱정이 하나 있소. 영국군과의 교전으로 주변에서 긁어모은 화약이 바닥을 보이고 있소이다. 해결책이 있겠소?"

    "주님께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그 시각 고려에서는 왕기가 황실 통신소에서 전라도 강진 통신소와 교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황실 통신소]

    "폐하. 제주도는 영원히 고려에 복속될 것을 약속드리며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제주도를 출발해 강진 통신소에 도착한 제주도의 성주가 보낸 전통문을 읽어주던 통신병의 말에 왕기가 입을 열었다.

    "별다른 저항 없이 대고려 제국에 항복한 성주의 결단을 치하 드리겠소. 그런 의미로 앞으로 백 년간 제주도의 세금을 1할 감면해 주겠소이다. 또한 짐이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의 특성을 고려해 곡물이나 포목 대신 특산품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드리겠소."

    "감사하옵니다. 폐하."

    "제주도에는 지금도 감귤이 나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하긴... 고려사에 의하면 백제 문주왕 2년 (서기 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고려 태조 천수 8년 (서기 925년) 11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다”라는 기록도 남아있고.'

    속으로 뇌까린 왕기가 제주도의 성주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감귤로 1년의 세금을 내도록 하시오. 그 대신 제주에는 대고려 제국 해군의 보급기지와 선박 수리기지가 들어설 것이오. 제주 입장에서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니 그리 아시오."

    "폐하. 제주도에 보급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가능하오나 선박 수리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힘들 것이옵니다."

    "왜 그런 것이오?"

    "제주도에는 선박을 수리할만한 목재가 나고 있지 않사옵니다. 감귤 나무는 선박에 사용하기에 부적합하고요."

    "제주도에는 한라산이 있지 않소? 그 정도 높이의 산이 있으면 제법 괜찮은 목재들도 날 텐데?"

    "폐하. 제주에는 한때 원나라가 세운 '탐라총관부'가 있었던 적이 있사옵니다. 그 당시 원나라 병사들이 제주로 와서 한라산 중턱까지 올라가 모든 나무들을 베어버렸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재가 아니라 말에게 먹일 초원이었으니까요. 현재도 한라산에는 정상 인근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나무가 없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알겠소이다. 그럼 제주도에는 보급기지만 건설하는 것으로 하겠소."

    "알겠사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제대로 된 목재가 없으면 수리기지는 무리야. 제주도에서 쌕쌕이나 만들어야 하겠군.'

    왕기가 속으로 뇌까리며 원나라가 고려 전역에 끼친 피해를 새삼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또 다른 통신병이 가까이 다가와 보고했다.

    "폐하. 예성강 통신소에서 전통이 막 도착했사옵니다."

    "뭐라고 되어 있더냐?"

    "거북선을 건조할 조선소의 제1선거(船渠) 건설이 끝났다고 하옵니다."

    "그래? 회신을 바로 보내거라. 짐이 곧 그리가겠다고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폐하."

    황실 통신소를 나온 왕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북선 건조가 끝나면 곧바로 일본 정벌에 나서야만 한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태풍이 올라오는 여름이 금방 닥칠 것이야. 서둘러야만 한다.'

    왕기의 신영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예성강 하구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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