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12화 (112/171)
  • 일본 정벌을 준비하다 - 3

    왕기의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몰락해가던 고려를 단 시간 내에 대제국으로 만든 장본인이자 자신이 모시고 있는 황제에게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직감한 듯 최영 장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최영은 뚝심 있게 자신의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폐하께서 직접 고토로 가셔서 북방 민족들과 담판을 짖고 오신 내용을 국방부 장관의 보고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소신이 보기에는 폐하께서 그들에게 아주 관대한 조건을 내 거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을 어떡하든 고려의 백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최영 장군의 말에 왕기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교섭이었을 것이야. 세금도 많지 않고 부역의 조건 또한 그들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지. 거기에 일본 정벌에 한 다리 걸쳐서 많은 것들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거기에는 일본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신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북방 민족에게는 더없이 관대하신 폐하께서 유독 일본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최영 장군의 질문이 뭔지 알겠다는 듯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똑같은 질문이로군. 일전에 그대가 물었던 일본에 대한 짐의 적개심에 대한 의문 말이야. 내가 세운 일본의 주된 곡물 생산지인 3대 평야를 초토화시키겠다는 계획 때문이겠지?"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러한 계획은 소신이 아는 폐하의 성정과 전혀 맞지를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필요하다면 사람 죽이는 걸 주저하지 않으시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언제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폐하의 자비로운 마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일본에게만은 그러한 마음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의 곡창지대인 3대 평야를 초토화하겠다는 건 일본 전역에 생지옥을 도래시키겠다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것이 불 보듯 뻔하지요. 전쟁을 직접적으로 치르는 병사들보다 일본에 살고 있는 힘없는 어린아이와 노약자 그리고 아녀자들의 피해가 더욱 극심할 것입니다. 왜 그러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현재 대고려 제국이 지닌 군사력으로는 왜구나 일본의 침략 따위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하께서는 일본 정벌을 지속적으로 고집하고 계시지요. 일본을 정벌하여 얻는 이득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소비하면서 말입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재물을 이용하여 고려를 발전시키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만..."

    "짐이 역대 고려의 왕들보다 제법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짐도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다. 단 기간에 고려의 인구 수를 늘리는 것이지. 최영 장군이 보기에 짐의 최종 목표가 뭐인 것으로 생각되는가?"

    "아마도 중원 대륙을 정복하는 것이겠지요."

    "맞느니라. 일본에 이어 대륙까지 점령하여 칭기즈칸 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던 거대한 대제국을 세우는 것이 짐의 꿈이지. 그리고 그러한 대고려 제국은 수륙병진을 통해 서역으로의 개척에도 나설 것이야.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바다에 진출하는 동시에 조만간 육로를 통해서도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갈 것이니라. 그러려면 한족(漢族)의 본거지인 중원 대륙을 대고려 제국이 영구적으로 점령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도 하지 못한 일이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도 하지 못한 일이며, 지금 대륙을 점령하고 있는 원나라도 불가능한 일이야. 만약 짐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지금쯤 북방의 초원으로 쫓겨났을 테니까 말이야. 잠시 잠깐 대륙을 점령할 수는 있지만 결국 한족에게 모두 밀려나고 만다.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족(漢族)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에 있지요."

    "정확하다. 3천만이 훌쩍 넘어 4천만에 가까운 한족의 본거지를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고려인의 숫자가 아무리 못해도 그 절반은 돼야 한다는 게 짐의 판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방 민족도 일본인도 다 고려인으로 받아들여야만 해. 그런 이유로 북방 민족을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짐이 직접 일본 정벌에 나서는 것이니라. 하지만 일본인은 그 민족성이 천박하여 표리가 부동할 뿐만 아니라 신의를 지키지 않기로 유명한 자들이지. 짐이 세운 초토화 작전은 일본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점령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일본인들을 선별하는 작업의 일종이다. 짐이 세운 기준을 통과한 자들만이 고려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게 될 것이니라. 그대가 생각하듯 일본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위한 계획이 아닌 것이야. 아무리 짐이 아끼는 그대라도 더 이상의 의문은 용납하지 않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왕기의 따끔한 경고에 화들짝 놀란 최영 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소신은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사흘 뒤 소신이 직접 훈련된 수병들을 데리고 오키나와를 점령하기 위해서 출발해야만 하기에..."

    최영 장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왕기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게. 그리고 최소한의 희생으로 병사들이 실전을 잘 치를 수 있도록 하게나. 이번 실전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원정 계획을 완벽하게 짜야만 할 테니까."

    두 가지 질문을 하기로 한 최영이 하나의 질문만을 던진 후 침전을 벗어나자 곧바로 앙리가 입을 열었다.

    "폐하. 재무부 장관인 소신도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하나는 폐하께서 소유하고 계신 재물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얻는 것도 없이 물 쓰듯 계속 쓰고만 계시니까요. 이제는 고려 황실이 보유하고 있는 재물을 사용하여야 할 때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기상조이니라. 설사 내가 가진 재물이 바닥이 나더라도 당분간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것이야.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막대한 재물이 소모되는 일본 정벌을 준비하면서도 조정이 조용하고 중신들이 군말 없이 내 말에 복종하고 있는 이유가 뭘 것 같은가? 배의 건조부터 시작해서 병사들의 훈련, 각종 무기의 개발 그리고 개마 무사의 양성까지 모든 준비를 내가 가진 재물을 사용해서 하고 있기 있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백성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사용하여 일본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고려 전역에서 벌써 난리가 났을 테지. 그리고 재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는 질 좋은 은광(銀鑛)들이 많을뿐더러 조만간 짐이 막대한 재물을 얻을 방법 또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막대한 재물을 얻을 방법이 무엇이옵니까?"

    앙리의 질문에 왕기가 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짐이 원나라 황제와 협약하여 서안 인근에 고려 황실의 별장 부지를 얻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네. 폐하. 화청지 인근인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화청지 인근에는 여산(廬山)이 있다."

    "소신도 알고 있사옵니다. 예로부터 여산의 경치는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며, 이백(李白)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에 등장하는 '향로봉(香爐峯)'이 있는 곳이지요. 학문을 좀 익혔다는 사람들 중에서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이란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백의 망여산폭포만 알고 사마천의 사기는 읽어보지 않았느냐? 분명히 거기에 [기기진괴사장만지(奇器珍怪徙臧滿之)]라고 적혀 있을 텐데 말이야. 기이한 물건들과 진귀하고 괴이한 것들을 잔뜩 옮겨서 숨겨놓았다는 뜻이지."

    그 순간 안색이 딱딱하게 굳은 무지가 눈을 형형히 빛내며 물었다.

    "폐하. 지금.. 진시황릉(秦始皇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난 진시황릉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사마천이 사기에 떡하니 적어놓지 않았느냐? [장시황여산(葬始皇酈山)]이라고 말이다. 시황을 여산에 묻었다고 사마천이 밝혀놓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사기에 따르면 항우(項羽)가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을 점령한 후 진나라 왕들의 무덤을 도굴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항우는 진시황릉을 찾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며, 짐 또한 그렇게 믿고 있느니라. 항우가 정말로 진시황릉을 찾았다면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와 진귀한 기물들을 잔뜩 얻었을 테니까. 그런 막대한 보물을 손에 넣은 항우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졌을 리가 없지 않겠느냐? 고려 황실의 별장은 진시황릉이 있는 곳 위에 지어질 것이니라. 엄밀히 말하면 별장이 아니라 진사황릉을 도굴하기 위한 곳이지."

    그 순간 무지가 강한 어조로 의문을 표시했다.

    "폐하! 진시황릉이 여산 쪽에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넓디넓은 여산 어디쯤 있을지 알고 찾는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지난 1,500년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산 쪽을 뒤져보았지만 그 누구도 진시황릉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난 가능하지. 나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여산 일대를 둘러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말을 하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인터넷에서도 봤다고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여산 상공에서 내가 발견한 그곳이 분명히 맞을 거야.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으니까 틀릴 리가 없어. 현대의 진시황릉은 병마용갱(兵馬俑坑)으로 유명하지만 분명 수많은 금은보화가 같이 묻혀 있을 것이야. 지금 이 시대라면 아직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왕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무지를 외면한 채 앙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더 이상의 질문이 있느냐?"

    "없사옵니다. 폐하. 폐하의 말씀처럼 진시황릉을 몰래 발굴할 수 있다면 막대한 재물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내가 질문을 하도록 하지. 일본 원정에 사용할 군량미는 충분한가?"

    "병사 10만을 2년 동안 먹일 수 있는 군량미가 준비 중에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참파에서 구매하여 가져오신 막대한 양의 쌀이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조리를 하여 폐하께서 개발하신 통조림이란 것에 담기고 있기 때문에 상하거나 변질될 염려도 없지요. 하지만 쌀에 비해 고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병사들에게 먹일 고기도 충분할 것이니라. 조만간 북방 민족이 세금으로 바칠 양과 염소들이 고려 쪽으로 대거 들어올 것이니까. 앙리 넌 봄이 올 때까지 전투 식량 제조에 전력을 기울이도록 하거라."

    "존명!"

    이번에는 왕기가 척무관을 보며 명했다.

    "상령. 넌 두 가지 일을 해춰야 하겠다. 하나는 고려 전역에 퍼져 있는 고려 무인들을 조만간 있을 무인과에 지원하도록 독려하는 일이다. 가능하겠느냐?"

    "가능하옵니다. 폐하."

    "나머지 하나는 며칠 내로 나와 함께 비행선을 타고 여산으로 가서 짐이 알려주는 별장 부지에 철조망을 치는 일이니라. 공병대원들을 제법 많이 대동해야 할 것이야. 산 하나를 통째로 둘러싸다시피 해야 할 테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왕기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무지를 보며 말했다.

    "국방부장관은 그만 정신을 차리거라. 어차피 진시황릉은 지금 당장 발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네가 급하게 해줘야 할 일은 따로 있느니라."

    "무엇이옵니까?"

    왕기가 품 안에서 설계도면을 하나 꺼내어 건네주며 말했다.

    "국방과학연구소에 있는 최무선과 함께 인조석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예성강 하류에 최대한 빨리 조선소를 지어줘야만 하겠다. 그래야 짐이 거북선을 건조할 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존명!"

    왕기가 신라면을 보며 말했다.

    "신라면은 개경에 있는 향도들을 모조리 동원해 지속적으로 수집해 줘야 할 게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폐하. 명령만 내리시지요."

    "개경에 있는 백성들이 밤이 되면 무엇으로 불을 지펴 어둠을 밝히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고 있사옵니다. 소나무의 송진으로 만든 '송화(松火)'를 이용해서 밤을 밝히고 있지요. 달리 관솔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개경을 송도(松都) 또는 송악(松岳)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는 뜻이옵니다. 사방에 널린 것이 송진이지요."

    "향도들을 동원해 송진을 꾸준히 모으도록 하거라. 내가 충분하다고 할 때까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폐하. 한데... 그렇게 많이 모은 송진을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

    "다 쓸 곳이 있느니라."

    왕기가 이번에는 자신 차례라는 듯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무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장 그대도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빠른 시간 내에 돌격대원들을 조련시켜줘야 하겠어."

    "그들을 무엇으로 조련시켜야 하는 것입니까?"

    왕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독사 같은 조교로 조련시켜야지. 짐이 조만간 고려 전역에 10만을 훈련시킬 신병교육대를 만들 것이니라. 인조석과 조립식 앵글로 제작하면 금방이지. 그들을 교육할 전문적인 조교가 필요하다. 그대가 책임지고해줘야 하겠어."

    "알겠사옵니다. 폐하."

    왕기가 간부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된 것 같군. 그대들의 손에 일본 정벌의 성공이 달려 있으니 다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 존명!

    씩씩하게 대답하는 간부들을 보며 왕기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머나먼 유럽에서는 기존의 역사와 전혀 다른 형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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