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10화 (110/171)

일본 정벌을 준비하다 - 1

[고려군 진지 내의 사령부]

북방 민족과 성공적으로 담판을 끝마친 왕기가 고려군의 진지 중에서 가장 큰 조립식 건물인 사령부 건물 안에서 뿌듯한 표정으로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이 과거로 끌려온 뒤로 영혼을 갈아 넣다시피하여 어렵사리 제작한 각종 현대식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전기 히터였다.

- 우우웅...

밤이라 건물 밖에 설치되어 있는 조립식 앵글에 매달린 태양광 전지는 아직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 연결되어 있는 납축전지에 의해 골회자기로 제작된 순백색의 케이스가 안에 매립되어 있는 니크롬선이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벌떼가 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벌겋게 달아올라 건물 안을 봄날처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 뽀글뽀글...

그리고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 히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립식 앵글 맨 위에 올려져 있는 철판 위의 주전자에서는 건조한 내부의 공기를 촉촉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가습기처럼 연신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임시 사령부 건물답게 병사들이 머무는 각 내무반과 연결된 전통 장치들로부터 나온 선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최신 장비가 눈에 띄었다.

그건 또다른 납축전지로 작동되는 모터에 연결되어 있는 원판 위에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고, 비행기의 터빈 엔진처럼 주변에 소용돌이 형태의 나무들이 붙어 있는 드럼이 올라가 있는 장치였다. 그 장치의 정체는 전기 모터에 의해 원판이 회전할 때 상부의 나무판이 고속으로 같이 돌아가며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분사하는 원리로 날카로운 소리를 발생시켜 멀리 퍼뜨릴 수 있는 음향장치였다. 그 장치는 일전에 최영 장군이 바다 위에서는 파도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왕기가 간단하게 제작한 사이렌(Siren) 장치였다. 왕기가 사이렌 장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경보기는 효과가 있던가?"

왕기의 물음에 무지가 대답했다.

"네. 폐하. 통신으로 각 내무반에 일일이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경보기를 울리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병사들의 더 빠른 군사 행동을 가져옵니다. 사령부에서 경보기를 울리는 것은 적의 침입이나 도발의 징조가 있으니 모든 병사들은 완전무장 후 곧바로 집결을 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에만 작동하니까요. 북방으로 온 모든 고려 병사들이 숙지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시험을 한번 해볼까요?"

"되었다. 다들 먼 거리를 오느라 피곤할 텐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경보기와 관련된 연습은 훈련소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 정도 장비라면 고려의 군대가 추운 지역에서 전쟁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군."

"그렇습니다. 폐하. 이곳보다 더 추운 북방지역에서도 문제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입니다."

- 털썩.

자신만만한 무지의 대답을 들으며 왕기가 땅바닥의 찬 기운을 막기 위해 지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설치되어 있는 침상에 걸터앉으며 속으로 뇌까렸다.

'더운 지역에서의 전쟁은 선풍기를 보급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 에어컨을 만들어줄 수는 없어. 프레온 가스를 만들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고. 설사 만들 수 있어도 대기오염이 발생할 테고 말이야. 사이렌을 만들어 놨으니 이젠 전함 안에서 함장이 자신의 병사들에게 빠르게 전투 지시를 내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어차피 사이렌은 단순한 몇 가지 명령을 전달하는 것에만 쓰이는 장치이니까. 발포 준비와 전진 및 후퇴 등 사이렌 소리에 따른 몇 가지 규칙만 정해놓으면 되는 것이지. 그럼 남은 건 무선 통신뿐이다. 바다 위에서 유선 통신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어쩔 수 없어. 반드시 개발해야만 한다. 만약 무선 통신만 개발이 되면 내가 꿈꾸던 무적함대를 구성할 수가 있을 것이야. 단 시간 내에 각 전함들끼리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해 여러 척의 배가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해상 작전을 펼칠 수 있는 함대를 구성하는 것이지. 현대의 무선 통신처럼 뛰어난 성능을 가질 필요는 없어. 나 스스로도 그런 기술을 구현할 자신도 없고. 반경 1~2km 근방에 모여있는 함대끼리만 의사소통이 되면 되는 것이니 아주 기초적인 무선 통신 장치만 개발하면 된다.'

속으로 뇌까린 왕기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더듬었다.

'무선 통신의 아버지라는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의 출발도 결국은 전기 스파크였다. 전기 스파크가 튄다는 것은 주입한 전기 에너지의 다른 형태의 발현이고, 빛과 열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계산해 봤을 때 또 다른 무언가가 반드시 발생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끝에 찾아낸 것이 전파(電波)이니까 말이야. 지금 이 시대에서 난 전기 스파크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무선 통신을 개발 못할 이유가 없어. 전기 스파크가 튀기며 발생하는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장치만 개발하면 되는 것이지. 현대처럼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도 없다. '지직'거리는 잡음만으로도 충분해. 그런 잡음을 단락적으로 보내어 고려 부호 형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되니까. 최초의 무선 통신도 그 거리가 2.5km 정도에 불과했어. 그 정도 성능이면 충분하다고.'

왕기가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을 때 무지와 무장 그리고 이자춘과 왕기가 특별히 참석을 허용한 어린 나이의 이성계까지 있는 사령부 건물 안에서 이자춘이 상념에 빠져있는 왕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대륙에 있는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진족이 군사 10만을 모을 수 있으면 대륙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여진족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금(金)나라를 건국하며 증명했지요. 해서여진의 부족장이 언급했던 것처럼 고려가 윤관으로 하여금 동북 구성을 쌓게 하자, 여진족이 고려에 조공을 약속하며 동북구성 지역을 반환해 달라고 애걸복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려는 이를 수락하였지요. 그 이후 여진족은 부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며 급속도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금나라를 건국하고 중국의 화북지역을 점령하기까지 딱 12년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요. 동북 구성을 돌려달라며 고려에 애원하던 여진족이 불과 20여 년 만에 거꾸로 고려에게 사대의 예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페하. 여진족을 키워주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이자춘의 말에 왕기가 부정의 표시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대의 걱정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여진족을 키워주면 역으로 고려를 침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짐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여진족을 격파할 수 있기 때문이야. 여진족이 살고 있는 고토는 고려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바라를 건너야 하는 일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쉬운 일이니라."

이자춘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단한 자신감이십니다. 역대 고려의 왕들 중에 그 누구도 이런 식의 작전을 펼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대담한 작전은 오직 폐하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날이 풀려 일본을 정벌하기 전에 그대가 해줘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폐하. 말씀만 하시지요."

"짐이 고토의 상공에서 한번 쭉 둘러보았는데 짐이 고토를 광개도, 부여도, 발해도로 3분할하며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땅이 있더구나. 북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대라면 알 수 있을 것이야. 그 옛날 흑룡강의 다른 이름인 흑수(黑水)를 따서 흑수말갈이라 부르던 자들이 살고 있던 땅을 짐이 실수로 빠트렸다."

"아... 어디를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지요? 몽골어로 야만인이라는 뜻의 '우랑카이'라고 부르는 곳 말입니다."

"맞아. 짐이 그곳을 빠트렸어. 그곳을 고려의 땅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흑룡강이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는 곳이니 연해도(沿海道)라고 부를 것이야. 광개도, 부여도, 발해도로 파견될 1, 2, 3 군단은 이미 국방부에서 조직 중이지만 그곳으로 파견할 군대는 편성되고 있지 않아. 그러니 당분간 그곳으로 동북면병마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가야 하겠어. 지금 그대가 머물고 있는 곳은 동북면이라고 부르기 힘들어졌으니까 말이야. 그대가 가족과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머물만한 곳이 있겠느냐?"

말을 하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아직은 러시아가 동진정책(定策東進)을 실시하기 전이라는 것을 깜박했어. 현대에서는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서 내가 빠트린 것이지. 비록 내가 조심을 하고 있지만 역사란 어찌 될지 모르니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저 멀리 변방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몰라.'

그 순간 이자춘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페하께서 명명하신 연해도는 가장 문명이 뒤떨어지는 여진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들은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처럼 유목도 하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만큼 춥고 황량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연해도에서 그나마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고는 두 군데뿐이지요. 한 곳은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우수리강 하류에 있는 바닷가 쪽이지요."

왕기가 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곳은 현대의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행정 중심 도시인 '하바롭스크(Khabarovsk)'일 것이야. 우수리강 하류에 있는 곳은 부동항(不凍港)인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일 테고.'

생각을 정리한 왕기가 명령했다.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곳은 강 두 개가 합쳐지는 두물머리인 곳이니 양수(兩水)시라고 명하겠다. 그곳에 연해도를 다스리는 연해목을 둘것이니 동북면병마사가 직접 관리를 하거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우수리강 하류에 있는 바닷가 쪽 도시를 고려가 정복한 동쪽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동정(東征)시라고 명하겠노라. 동북면병마사가 급히 해줘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페하."

러시아어로 '동쪽을 지배하라'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를 동정시라고 명명한 왕기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정시 바로 아래에는 제법 큰 섬이 존재한다. 일본의 북해도와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이지. 그대가 군대를 동원해 그 곳을 정복해 줘야 하겠어. 그 섬의 이름을 포위망을 완성했다는 뜻을 지닌 '포성도(包成島)'라고 명명한다."

현대의 사할린섬을 포성도라고 명명한 왕기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그곳마저 고려가 먹으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포위할 수가 있게 된다. 동쪽으로는 포성도를, 서쪽으로는 오키나와를, 북쪽으로는 얼마 전 원나라로부터 넘겨받은 대만과 해남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포위망을 말이야. 남쪽으로는 망망대해이니 일본은 그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그 모든 작업을 일본 정벌이 시작되기 전에 끝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폐하. 이 이자춘이 그리하겠습니다. 어려울 것도 없지요. 연해도와 포성도에는 제대로 된 군대도 없을 테니 동북면병마사에 소속된 군사만으로도 충분히 점령이 가능할 것입니다. 유일한 문제점은 추위인데..."

이자춘이 건물 내부를 후끈하게 데우고 있는 전기 히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개발하신 전기 히터란 것만 공급해 주시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보급은 짐이 책임질 테니까 말이다. 히터가 부족하면 히터를, 식량이 부족하면 통조림을, 군사가 부족하면 군사를 얼마든지 공급해 줄 것이니라."

말을 끝마친 왕기가 아직 어린 나이인 이성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잘 지켜보거라. 짐이 고려 제국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말이야."

"네. 폐하. 폐하께서는 군신(軍神)이시며 황제 중에 황제인 대제(大帝)이십니다."

눈빛에서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이성계를 바라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이 정도면 나에 대한 반역은 이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나이를 먹어 장성하면 제대로 써먹어야 하겠어.'

서기 1346년 1월 30일

장춘성 앞에 조립식 진지를 치고 있던 고려군이 순식간에 진지를 해체한 후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서기 1346년 2월 6일

[연경전의 어전회의]

고토로 떠났던 무지와 무장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자 변산반도에 내려가 있던 최영 장군마저 소환한 왕기가 어전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대고려 제국은 일본 정벌이 끝날 때까지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모든 물자와 인력은 일본 정벌군에 우선적으로 투입될 것이고, 이곳에 있는 모든 중신들은 원정군이 돌아올 때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일본 정벌군을 지원하는 것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니라."

- 존명.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구동성으로 외친 후 최영 장군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폐하께서 북방 민족들과 담판을 짓고 온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거란족과 여진족은 믿을 수가 없는 종족입니다. 그들이 진정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짐도 그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자신의 이익을 쫓아 행동하는 법. 대고려 제국의 일본 원정에 한발 걸쳐 이득을 보려면 짐과 한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야. 남의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 먹으려면 식탁보 차리는 거라도 도와줘야 하는 법이지."

왕기가 히틀러가 했던 말을 인용하여 대답하자 최영 장군이 다시 물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소신이 그들을 포함한 원정군을 조직하여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그전에 페하께 여쭤볼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폐하께서 일본을 완벽하게 정벌해서 영원히 고려에 종속시키려는 것을 모르는 신하는 아무도 없사옵니다. 하지만 본디 전쟁이란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수시로 발생하는 법이지요. 지금 이 회의에서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원정군들의 최소 목표를 정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야 정벌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회군할 명분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최소 목표라. 짐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로군. 일단은 나루토를 정복하는 것을 최소 목표로 정하도록 하지."

문무백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일본 정벌군 총사령관인 최영만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루토 말씀이십니까?"

"맞아. 그 정도만 해도 왜구를 토벌한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완성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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