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8화 (108/171)
  • 공민 황제, 북방 민족과 담판을 짓다 - 3

    [장춘성의 성내]

    - 다각. 다각.

    무지와 무장이 천천히 말을 몰고 장춘성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마중을 나와있던 거란과 여진의 부족장들 중에서 대표적인 친 고려파이자 건주여진의 부족장인 아합출이 가장 먼저 앞으로 뛰어나왔다.

    "어서 오시지요. 추운 날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마치 자신이 두 사람의 시종이라도 되는 듯 말의 고삐를 잡으며 상관을 마중 나온 듯한 아합출의 발언에 옆에 서있던 동북면병마사인 이자춘이 자신도 뒤질세라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개경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비교적 이쪽 사정에 밝은 본인이 이번 회담을 위해 참석한 부족장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해서여진의 부족장인 동휘호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민 황제와 더불어 대고려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공신이며 실세 중에 실세라고 불리시는 국방부장관께서 직접 오실 줄을 몰랐소이다. 거기에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비행선이라는 특이한 물건에 병사를 실어서 나른다는 고려 공군의 참모총장까지 오시다니... 이것 참 영광이외다. 본인은 해서여진의 부족장인 동호위라고 하오. 이렇게 신분이 높으신 분들이 황량한 이곳까지 어렵게 오셨으니 여기 계시는 부족장들과 같이 연회를 즐기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우리들도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니..."

    자신이 고려의 정세에 밝다는 것을 자랑하듯 동호위가 뭐라 떠들어 대고 있을 때 무심하게 손을 치켜든 무지가 한 겨울 북방의 날씨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연회는 되었소이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소. 대고려 군대는 장춘성에 살고 있는 고려 백성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백성들로부터 물 한 모금, 쌀 한 톨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엄명하셨으니, 우리는 성 밖에서 진을 치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폐하께서 도착하기 전까지 대기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러자 동호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이 한 겨울에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치시겠다는 소리요? 끌고 온 병사들의 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바람막이 하나 없는 이 평원에서 어느 세월에 그 많은 병사들이 머물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거요? 그러다 병사들이 동상 걸리기 십상일게요.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식량과 식수는 또 어떡하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대고려 제국의 군대는 날씨와 상관없이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소이다. 먹거리 또한 부족함이 없도록 보급체계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으니 그대가 걱정할 필요가 없소. 그전에 방금 전에 발생한 무력 충돌부터 확실히 집고 넘어갑시다. 난 고려의 모든 군사를 총괄하고 있는 국방부장관이오. 그리고 황제 폐하로부터 전권을 받고 이 자리에 왔소이다. 페하께서는 춥고 황량한 북방에 거주하고 계시는 그대들을 이미 모두 고려의 백성인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오. 하지만 당사자인 그대들이 싫다고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이까? 그러니 물어보겠소. 전쟁을 원하시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선전포고를 하시오. 난 폐하로부터 그대들과 개전(開戰)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몸이오. 대고려 제국과 전쟁을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말을 하시구려. 여기까지 온 김에 본인이 직접 상대해 드릴 테니까."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내뱉는 무지의 협박에 북방 민족의 부족장들이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고, 주전파의 대표격인 해서여진의 부족장이 좀 전에 자신 있게 내보낸 괴자마가 박살 난 것이 떠오른 듯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황제께서 우리들을 고려의 백성으로 여기고 계신다니 참으로 기쁜 말이외다. 하지만 고려의 윤관(尹瓘)이 왕의 명을 받고 무려 20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와 전쟁을 벌인 일을 우리 여진족은 아직 잊지 않고 있소이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지요. 그렇게 만나면 항상 칼부림을 하며 지내던 사이인데 어찌 하루아침에 친구처럼 친해질 수가 있겠소? 좀 전의 무력 충돌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종의 인사에 불과하니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면 국방부장관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일단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소이다. 하지만 또 한 번의 무력 도발이 있을 시에는... 그때는 이번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명심하시길 바라오. 공민 황제께서 다스리시는 대고려 제국의 군대는 걸어오는 시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기를 주저하지 않소이다."

    "알겠소이다. 근데... 황제께서는 언제 오시는 것이오?"

    "지금 서안의 일이 급해 가셨으니 아무리 늦어도 내일 중에는 오실 것이오. 진지가 구축되면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 하니 준비가 끝나면 본인이 그대들을 초대하리다. 고려의 군사들이 추운 북방으로 간다고 개경에 계시는 황후마마께서 특별히 신경 쓰셔서 새로 개발된 전투 식량을 많이 보급해 주셨소이다. 황후마마의 입맛에도 맞는다고 직접 평가하셨을 정도이니 그 맛이 제법 괜찮을 것이오."

    무지의 말에 기세가 한풀 꺾인듯한 모습의 동호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초대를 해주시면 우리들도 당연히 참석을 해야지요. 고맙소이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전령을 보내겠소이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섰다. 무지가 무장에게 다가가 명했다.

    "지금부터 페하께서 말씀하신 작전명 '돈맛'을 실시한다. 공병대원들에게 말해 지금부터 성 밖에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진지 앞에 대규모 요리 시설과 임시 시장도 함께 설치하라고 명해라. 기존에 열심히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야. 단 북방 민족들이 이쪽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서 군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시키도록 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무장이 병사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공병대는 지금 즉시 성 밖에 고려 제국 군사 진지 'ㅁ'식을 치도록 하고, 그 앞에는 'ㅡ'자형 배식 시설과 야외형 조리시설을 설치하는 동시에 'ㅇ'자형 간이 시장을 건설하도록 해라."

    - 존명!

    무장의 명령에 공병대원들이 일제히 수레로 뛰어가 진지 구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왕기는 원나라 황제와 담판을 짓고 있었다.

    [함양궁의 동루(東樓)]

    척 무관이 고생했다면 원나라에서 내어준 말과 수레에 병사들과 죽은 시체들을 싣고서 멀리 떠나간 것을 확인한 왕기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원나라 황제에게 물었다.

    "왜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개전을 하신 것이오? 그 바람에 고려군의 피해와 고려 보물들의 피해가 예상보다 더 막심해졌소이다."

    - 탁. 탁.

    왕기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구멍이 나있고 금이 쩍쩍 가있는 팔만대장경 목판을 두드리며 말하자 혜종이 곧바로 물어왔다.

    "미안하오. 내가 기습의 묘를 살리기 위해 공격을 일찍 시작했소이다. 혹시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시오?"

    '이 양반이 나에게 영토를 계속 뜯기더니 아주 습관이 들었군. 그렇다고 이럴 때 또다시 중국 영토를 뜯어냈다가는 원한을 품게 된다. 처음 목적한 대로...'

    속으로 뇌까린 왕기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의 한 점을 찍었다.

    "고려는 원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유지하고 싶소이다. 황제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부인들이 모두 원나라 출신이오. 그러다 보니 다들 향수병이 생기더군. 그래서 원나라의 땅에 고려 제국의 별장을 하나 지을 생각이오."

    생각보다 단순한 요구에 얼굴이 활짝 펴진 원나라 황제가 왕기기 찍은 곳을 유심히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안 외곽에 있는 화청지(華淸池) 인근에 대고려 제국의 별장을 짓겠다라. 좋소이다. 화청지는 고대로부터 수려한 풍경으로 유명했던 곳이며, 특히 온천수가 뛰어나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인 곳이오. 역대 중국 황제들의 별장지로도 유명한 곳이니 고려 황실의 별장이 지어진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소이다. 황제 대 황제로, 원나라 황실 대 고려 황실이 서로의 교류를 늘리면 두 제국 간의 사이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오."

    "그럼 허락을 하신 것으로 알고 일간 제가 별장 부지를 선정해서 공사에 들어가도록 하겠소이다. 별장 지역은 고려 황실의 땅이니 그 안에서는 고려의 법도를 따를 것이고, 원나라 백성들의 출입이 금지될 것이니 이점도 양해 부탁드리오."

    "당연히 그리해야 하지 않겠소? 아무튼 짐의 골치를 썩이던 홍건적에 이어 천마 교주까지 처치해 주어서 감사하오. 그대의 말처럼 황제 대 황제끼리 막역하게 친교를 나눠봅시다."

    "화청지 쪽에 별장이 지어지면 제가 한 번씩 들리겠소이다. 그때마다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시면서 황제로서의 고달픔을 서로 달래보도록 하지요."

    "원하는 바이오. 황제의 고달픔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되겠소이까? 언제라도 짐을 초대해 주시오."

    "그리하지요. 그럼 전 이만 다시 고려로 돌아가 보겠소이다."

    "황제가 황실을 오래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조만간 화청지에서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겠소."

    원나라에 온 목적을 모두 달성한 왕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북방 민족과의 회담이 준비되고 있는 장춘성을 목표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장춘성의 성 밖]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황무지에서는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왕기가 개발한 현대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조립식 앵글로 고려군의 진지가 순식간에 세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웅성웅성...

    뭐에 홀린 것처럼 모여든 부족장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려 군대의 진지 주변에 모여 떠들어대고 있을 때였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해서여진의 부족장인 동휘호가 진지를 세우고 있는 한 공병대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밖에 쳐진 울타리는 어떻게 세워진 곳이오?"

    "아. 저건 철조망이라는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북방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하신 것이지요. 유목을 하는 분들에게는 가축들이 머물 우리를 짓는 것이 큰일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를 허술하게 지었다가는 늑대나 호랑이 등의 습격을 받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철조망을 이용하면 아주 간단하게 사람과 짐승의 출입을 통제할 수가 있습니다."

    "철조망이라... 이렇게 가시가 돋아나 있으면 그대 말처럼 금방 우리를 지을 수가 있을 것이오. 기둥 몇 개만 박고 철조망을 둘러쳐버리면 될 테니까 말이오. 근데 철조망 안에 지어지고 있는 저것들은 무엇이오? 빠오는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빠오가 아니라 고려 병사들이 머물 내무반이라는 건물입니다. 조립식으로 지어지는 것이라 금방 세워지지요."

    "하지만 저렇게 금방 지으며 이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가 있겠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국방부 장관께서 직접 내무반을 공개해서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내무반 안에는 전기 히터란 것이 설치되어 있어서 병사들이 이 정도 추위쯤은 거뜬히 버틸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소인이 설명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알겠소이다."

    이해하겠다는 듯 동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물러날 때였다.

    - 화륵. 화르륵.

    - 지글지글...

    어디선가 불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불에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소한 향기가 진지 일대를 휘감기 시작했다. 동휘호가 고개를 돌려보니 진지 앞쪽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철판 위에서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철판 아래에서는 거대한 쇠통에 연결된 둥그런 화덕에서 나무장작도 없는데 텅 빈 허공에서 불꽃이 피어나 철판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저건 또 무엇이지?"

    "고려 병사들의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산소 통과 수소 통으로 불을 피워 철판에 고기를 굽는 것이지요. 이번에 들고 온 전투 식량은 고려 병사 사이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삼겹살 통조림이 포함되어 있지요.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 돼지고기인데 철판에 구우며 그 맛이 끝내줍니다. 소인이 듣기로는 거기에 추운 북방으로 간다고 황후마마께서 특별히 내려주신 수유(酥油 : 고려식 버터)로 기름을 내어서 굽는다고 하더군요. 그 맛이 얼마나 굉장할지 소인도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병대원의 친절한 설명에 동휘호가 버터로 기름을 바른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굽혀지고 있는 삼겹살 쪽으로 뭐에 홀린 듯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일자로 늘어져 있는 요리 시설 옆쪽에 설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점포들 여러 개가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는 곳에서 병사 하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임시 시장을 개장합니다. 다들 오셔서 필요하거나 사실 물건이 있는지 보세요."

    연신 코를 자극하는 삼겹살 굽는 냄새를 간신히 참은 동휘호가 시장이 열렸다는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북방 쪽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질 좋은 각종 생필품과 조리도구들 그리고 농사도구들과 의복 등이 가게마다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동휘호가 의복이 전시되어 있는 가게로 가서 물어보았다.

    "저기 걸쳐져 있는 것은 무엇이오?"

    그러자 가게를 담당하고 있던 병사가 대답했다.

    "좋은 걸 고르셨군요. 상품을 보시는 눈이 아주 뛰어나십니다. 이건 황후마마께서 고려의 아녀자들을 데리고 직접 제작하신 '오리 털 두루마기'라는 것입니다. 저희 고려 병사들에게도 두당 한 벌씩 밖에 지급되지 않는 최고급 의복이지요. 이것 한 벌이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거뜬히 날 수가 있습니다. 한번 입어보시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입어보고 싶구려."

    잠시 후 동휘호가 머리를 덮는 모자까지 달려있는 현대식 패딩과 비슷한 오리털 두루마기를 입고서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정말 따뜻하구려. 이 한 겨울에 땀이 날 정도라니. 이걸 사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오?"

    "거기 종이쪽지에 제품의 가격표가 적혀있지 않습니까? 쪽지에 그려져 있는 말 그림은 상품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말의 마리 수이고, 종이쪽지에 적혀 있는 숫자는 상품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군표(軍票)'의 숫자입니다."

    병사의 말에 가격표를 살펴본 동휘호가 중얼거렸다.

    "그럼 말 두 마리를 주거나 군표 5장을 주어야 살수 있다는 뜻이로군. 군표는 어떻게 구하는 것이오?"

    "군표는 고려 제국의 국방부 장관께서 발행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황제 폐하의 허락을 받아야만 발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고려군이 필요한 노역(勞役)을 하루 제공하면 그 대가로 한 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장이면 5일간 노역에 임하셔야 이 옷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노역? 어떤 노역을 해야 한단 말이오?"

    당장이라도 노역을 하러 떠날 사람처럼 다급히 묻는 동휘호를 보며 병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소인도 정확히 모르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오셔서 여러분들과 회담을 하며 결정할 문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은 말로만 구입이 가능한 것이지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동휘호가 다른 상점을 향해 떠나며 자꾸 뒤로 돌아 옷 가게를 바라보았다.

    '저런 옷 몇 벌만 구해서 돌아가면 자식들과 부인들이 올겨울을 편안히 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농기구나 조리도구들도 아주 품질이 좋아. 옆에서 들리는 말로는 대포를 만들었던 강철로 제작한 것들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부러지거나 휘는 일이 없을 것이야.'

    왕기가 계획한 대로 여진족 부족장들이 최신식 상품과 맛이 뛰어난 음식들에 넋이 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고려군 진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인 무지가 진지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고려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오시고 계십니다."

    - 쿠콰앙...

    점점 가까워지는 폭음과 함께 밤이 깊어 깜깜한 장춘성 밤하늘에서 왕기가 발끝에서 불꽃을 피워올리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서안에서 다급히 날아와 북방 민족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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