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7화 (107/171)
  • 공민 황제, 북방 민족과 담판을 짓다 - 2

    서기 1346년 1월 29일

    [장춘성 앞의 벌판]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각. 개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춥디추운 만주 벌판의 혹한을 헤치고 힘겹게 장거리를 달려온 고려군의 행렬이 징춘성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성문을 열고 마중을 나오는 여진족들의 중장기병 무리를 발견한 무장이 같이 선두에 서 있던 무지에게 물었다.

    "사형. 아무래도 저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하러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무지가 결의가 뚜렷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고려 제국의 정예병이며 황제께서 부리시는 칼이다. 황제 폐하께서 시킨 대로 하면 되는 것이야. 황제 폐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하고 있겠지?"

    "제가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본디 인간이란 의심이 많은 족속이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셨지요. 고려군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이긴 하지만 이번 회담에 참가할 북방 민족들의 부족장들은 고려군에 대해 들은 소문만으로 그들의 거취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반드시 시험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며 모든 것은 현장에 있는 지휘관이 알아서 결정을 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평화를 원하면 말로써 살갑게 대화를 나누고, 거래를 원하면 상거래를 적극적으로 트며, 무력 대결을 원하면 아낌없이 무력을 보여주라고 말이지. 필요하다면 회담에 나온 모든 부족과 전쟁을 벌여도 상관없다고 하셨어. 모든 판단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제법 거리가 가까워져 여진족이 자랑하는 기마 세필을 하나로 묶어 돌격시킨다는 괴자마가 무려 10개조나 된다는 것을 확인한 무장이 고개를 뒤로 돌려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기수는 앞으로 나오거라. 그리고 돌격대에서 나를 제외한 백인장(白人將) 1번부터 29번까지 모두 나선다. 죽기를 각오하고 각각 1 대 1로 붙어 고려군의 위용을 북방 민족에게 보여주는 것이야. 전투 도중 뒤로 물러서거나 1 대 1에서 패하는 놈은 내 손에 맞아 죽을 줄 알아라."

    - 존명!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 서있던 기마행렬에서 백인장 29명이 빠르게 앞으로 말을 몰고 나와 무장 옆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일렬횡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거대한 깃발을 든 기수까지 앞으로 나서자 무장이 기수들이 들고 있던 깃발 2개를 받아들었다. 전면에는 붉은 바탕에 새하얀 훈민정음으로 또렷이 고려라고 적혀 있고, 뒤에는 군이라 적혀있는 깃발을 안장에 묶은 무장이 날아갈 듯한 봉황이 전면에 그려져 있고, 뒤에는 돌격대라고 적혀있는 깃발을 끈으로 자신의 몸에 칭칭 묶었다.

    자신의 등 뒤에 돌격대의 깃발을 빳빳하게 세워 자신이 대장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나타낸 무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돌격대! 세워 창!"

    - 합!

    무장과 돌격대 백인장들이 묵색의 거무튀튀한 장창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높에 세워올렸다. 그러자 무장이 만주 평원이 떠나갈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내질렀다.

    "돌격 앞으로!"

    - 합!

    - 두두두두...

    경쾌하게 내딛는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올리며 30명의 돌격대가 만주 평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왕기가 팽가에서부터 일찌감치 심혈을 기울여 양성하던 전장을 지배할 무적의 돌격대가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왕기가 항상 강조했듯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고려에 대한 충성심만을 주입받은 돌격대가 자신들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여진족들의 중장기병을 향해 일제 돌격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먼지를 휘날리며 돌격대들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쳐나가며 장엄해 보이기까지 하는 기병 돌격을 선보이자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무지가 중얼거렸다.

    "어떠한 경우에도 저들은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무지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 황실에서 개마 무사와 관련하여 회의를 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촉박하여 3천밖에 만들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왕기를 보며 무지가 말했다.

    "폐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오기를 동천왕 20년(246년)에 철기(鐵騎) 5천을 거느리고 위(魏)의 대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기록에 남길 정도라면 아마도 그것이 최대 숫자였을 테지요. 그 말인즉슨 고구려의 전성기 시절에도 개마 무사의 숫자는 불과 5천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십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어렵게 양성한 것일 테지요. 폐하처럼 이렇게 단기간에 3천의 개마 무사를 무장시킨다는 것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제작하신 갑옷들은 고구려의 개마 무사를 뛰어넘고 있사옵니다. 고구려의 개마 무사들은 물고기 비늘 모양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일종의 찰갑(札甲)이지만 전하께서 만드신 갑옷은 통짜로 된 쇠 갑옷입니다."

    무지가 쇠로 제작된 말에게 씌울 마면갑, 마갑옷, 마구 등 삼종 세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말에게도 이런 통짜 쇠 갑옷을 입히는 것은 그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저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말에게 어떻게 입힐까라는 의구심과 저렇게 무겁게 만들면 과연 말이 잘 달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당연히 그 해결책이 있으시겠지요."

    "맞느니라. 다 해결책이 있지. 모든 갑옷은 똑딱이라는 결합방식으로 입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덩치에 걸맞게 갑옷의 크기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도 있고. 병사 혼자서도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입을 수 있고, 말에게도 간단히 입힐 수 있는 아주 간편한 방식이지. 처음에는 지퍼라는 것을 달고 싶었지만 그게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더군. 그렇다고 적들이 손쉽게 벗길 수도 없게 설계되어 있느니라. 그리고... 갑옷의 무게는 보기보다 그렇게 무겁지 않아. 한번 들어보거라."

    왕기의 말에 무지가 쇠로 된 두께가 제법 두꺼워 보이는 갑옷을 집어 들어 보았다.

    - 번쩍.

    한 손으로 가볍게 들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무지를 보며 왕기가 말했다.

    "의외로 가볍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야. 겉으로 보기에는 통짜로 만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러 장의 단단한 얇은 강판을 층층이 겹친 다음 용접을 했고, 중간에는 벌집 모양으로 제작된 격벽을 세웠으며 맨 마지막에는 스프링까지 안에 집어넣어 용접을 한 것이야. 쉽게 말해 갑옷의 상당 부분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쇠로 된 갑옷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이다. 알고 있느냐?"

    "네. 폐하. 갑옷의 무게가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화살이나 창에는 쉽게 뚫리지는 않지만 망치나 해머 같은 것에 맞아 찌그러지면 갑옷 안에 있는 사람이 쉽게 다친다는 것입니다. 보기보다 타격 무기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요. 마지막 약점으로는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더운 곳이나 추운 곳에서는 사람이 입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네 말이 맞다. 저 멀리 서역에 있는 아테나라는 곳에서 중장보병이 주력인 스파르타라는 곳과 싸울 때 사용했던 전법이 있었지. 경기병으로 스파르타 군의 중장보병 주위를 뱅뱅 돌며 괴롭혔더니 스파르타 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해버렸다. 중장갑을 입은 스파르타군을 더운 땡볕에 오랜 시간 세워뒀더니 더위를 먹고 지쳐서 스스로 자멸해버린 것이지. 이 갑옷은 그 모든 것을 고려해 제작된 것이니라. 적의 화살과 창을 막기 위해 짐이 알고 있는 가장 단단한 강판을 복합 다층 구조로 제작해 만들었다."

    "화살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묶음은 부러지지 않는다는 원리를 이용하신 것이군요?"

    "비슷한 원리이다. 그리고 들어봐야 잘 모르겠지만 갑옷 제작에 들어간 강판은 짐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마르텐사이트(Martensite : 탄소와 철 합금에서 담금질을 할 때 생기는 준 안정한 상태이며 강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조직을 상온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열처리 기술이 있어야만 한다.) 조직'을 가지고 있는 강판이지, 이 시대에서 사용하는 창과 활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야. 중간에 들어가 있는 '벌집 구조(Honeycomb structure)'의 격벽은 수직 방향의 힘을 가장 잘 견디는 역학구조이니라.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쉽게 찌그러지지 않는다는 뜻이야. 또한 투구에는 머리통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외부로 방출하기 위해 미세한 땀구멍처럼 작은 구멍들이 뚫어져 있어. 마지막으로 벌집 구조 부위와 스프링이 들어가 있는 부위에는 공기가 대량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항온 효과를 발휘한다. 더위와 추위에도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는 갑옷이라는 뜻이니라. 기본적으로 무게 자체가 그렇게 무겁지 않으니 체력적인 부담이 적어서 병사들이 날씨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 입고 싸울 수 있을 것이야. 그리고 갑옷 표면에 나있는 물결무늬는 적의 칼이나 창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니라. 서역의 갑옷에서 주로 사용하는 '플루팅(fluting)' 방법을 그대로 따온 것이지. 짐이 새롭게 탄생시킨 개마 무사 한 명을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중형 전함 한 대를 제작하는 재물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만큼 제작 공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자신의 공학 지식을 총동원해 제작한 갑옷을 자랑하는 것에 신이 나서 한참을 떠들어 대던 왕기의 말이 끝나자 무지가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폐하! 개마 무사를 양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재물의 양이 너무 과합니다. 폐하께서 가지신 재물의 양이 적지 않음을 소인이 어찌 모르겠습니까만 그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아직 서역과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재물을 아끼심이 마땅할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짐이 이렇게 재물을 쏟아부어가며 개마 무사를 만드는 것에는 다른 세 가지 이유가 더 있기 때문이니라."

    "그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첫째,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는 갑옷과 장창을 제작함으로써 국방과학연구소에 있는 철장들의 기술력이 급격하게 올라가게 된다. 둘째, 갑옷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고용한 다수의 인부들을 '용접공(鎔接工)'이라는 특수한 기술을 지닌 인재로 육성할 수가 있다. 첫째와 둘째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짐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쇠로 된 거대한 전함을 만들 수가 있느니라. 짐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주가 있어도 거대한 철선을 혼자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야. 혼자 만들다가는 짐이 죽을 때까지 철선 한 대를 제작하지 못할 수도 있어. 짐의 설계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철장과 용접공들이 반드시 먼저 육성되어야만 가능한다는 뜻이다. 셋째, 재물로 고려 병사의 목숨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는 짐의 각오가 있기 때문이니라."

    말을 마친 왕기가 무지 앞으로 뭔가를 던졌다.

    - 툭.

    "무지 너도 한번 살펴보거라. 최영 장군이 파견한 밀정이 일본에 가서 직접 조사해온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보고서이니까."

    무지가 보고서에 나와 있는 일본 병사들의 무장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을 준 다음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 나와 있는 일본 병사들의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게 없느냐?"

    "그림만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무라이들의 무장이 아니니라. 사무라이들이 차고 있는 칼이 '타치'이든 '카타나'이든 상관없다. 카타나와 '와키자시(일본도의 일종으로 큰 칼에 곁들여 허리에 차는 작은 칼. 골목 등에서 싸울 때 유용함.)'를 쌍으로 차고 있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사무라이들은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고 짐이 만든 갑옷이 그들의 칼날을 버티게 해줄 것이야. 카타나가 제아무리 날카로워도 짐이 만든 갑옷을 쉽게 벨 수는 없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일본 병사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시가루'의 무장이니라. 이시가루란 '족병(足兵)' 즉 말 그대로 보병인 것이야. 그들이 쓰고 있는 삿갓 모양의 검은색 투구가 보이지?"

    "네. 보입니다."

    "그건 삿갓 모양의 나무판위에 얇은 철판으로 만든 판을 덧댄 후 그 위에 옻칠을 '진가사'라고 불리는 전립(戰笠)이다. 그게 뭘 의미하는 것인 줄 아느냐? 현재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자가 가장 적은 양의 철을 소모하면서도 대량으로 제작이 가능한 철로 된 투구를 미친 듯이 찍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일본 전역을 제패한 그자가 왜 그리하겠느냐? 그들이 들고 있는 창을 한번 보거라. '가마야리'라고 불리는 것으로 나무로 된 창대에 창날 부분에만 쇠로 된 낫이 달려 있는 창이야. 흔히 '겸창(鎌倉)'이라고 불리는 것이지. 그러한 창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아느냐?"

    "창이니 당연히 보병끼리의 전투에도 유용하지만 기병을 상대할 때 더욱 유용하게 쓰이지요. 낫으로 말위에 있는 병사를 걸어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기가 용이하니까요."

    "이래도 내가 말한 뜻을 이해 못 하겠느냐?"

    그 순간 무지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지르며 입을 열었다.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현재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자는 고려군과의 전면적인 지상전을 대비한 육군을 대량으로 양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립과 겸창으로 무장을 시킨다는 것은 농사를 짓던 일반 백성들을 가장 빠르게 병사로 양성시키는 방법이니까요. 겸창을 사용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낫이라는 무기는 농민들도 곡식을 추수할 때 자주 쓰는 도구이니까요. 더욱이 이러한 방식은 철을 가장 적게 소모하는 방식이니 병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재물 또한 적을 테지요."

    "그게 다인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일본 정벌을 여러 번 천명하셨습니다.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자가 그런 정보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지요. 일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이러한 육군을 대량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것은 설사 자신들이 해전에서 패하더라도 지상전에서 끝까지 버티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놈들이 입버릇처럼 자주 말하는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제야 좀 무지답군.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고려군과의 해전 그리고 육전을 모두 방비하고 있는 중이며, 설사 해전에서 지더라도 지상전에서 버텨 자신들의 땅을 절대로 고려에게 내어주지 않겠다는 심산이니라. 이제는 내가 막대한 재물을 들여 개마 무사를 대량으로 양성하려는 뜻을 이해하겠구나?"

    "네. 폐하. 폐하께서는 일본군과의 해상전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해상전이란 본디 지는 쪽에서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는 반면 이긴 쪽에서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법이지요. 진 쪽만이 바다에 수장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상전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요. 병사들끼리 대규모로 접전을 벌이다 보면 이기는 쪽도 제법 많은 피해를 입기 마련입니다. 폐하께서는 수하 병사들을 목숨처럼 아끼시는 분이시지요. 해상전에서 단숨에 승기를 틀어쥔 후 일본 땅에 상륙을 한 고려 병사들이 지상전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개마 무사들을 대량으로 양성하시려는 것이지요. 적들의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철갑옷을 입은 무적의 사들을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니라. 일본 정벌에서 많은 고려 백성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만 한다. 짐에게는 단 한명의 백성도 소중하기 때문이니라."

    회상을 끝마친 무지가 눈을 빛내며 어느새 서로 가까이 접근해가고 있는 양쪽 기마병들의 격돌 장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전하께서 막대한 재물을 쏟아부어 만든 개마 무사가 한낱 여진족 따위의 기마병에게 질리가 없어. 이건 내 목을 걸고 내기를 해도 좋다고."

    - 콰과광!

    양측의 중장기병들이 일제히 격돌하자 마치 덤프트럭 아니 탱크가 담벼락을 부시고 들어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여진족 30명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말위에서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탱크처럼 밀고 들어간 단 한 번의 격돌에 절대적인 우위를 거머쥔 고려의 개마 무사들이 장춘성 쪽으로 내쳐 달려가자 지켜보고 있던 무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진군! 다들 멈추지 않고 장춘성까지 곧장 달려간다!"

    - 존명!

    - 두두두두...

    3천에 달하는 개마 무사와 그 일행들이 일제히 진격을 개시하자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해서여진의 부족장인 동휘호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진족의 자랑인 괴자마가 단 한 명도 버텨내지 못하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고려군 개마 무사의 위력이 엄청나. 전설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 지금 당장은 이쪽이 굽히고 나가야 하겠어."

    씁쓸한 표정을 지은 동휘호를 선두로 북방 민족의 부족장들이 연회장에서 일어나 일제히 성벽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무도 당당히 장춘성으로 입성하는 고려군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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