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5화 (105/171)

천마 교주와의 혈투 - 7

[함양궁 앞의 벌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예정보다 일찍 개전이 된 벌판으로 비행선을 착륙시킨 왕기가 밖으로 나와 전장을 잠시 관망했다. 중원 무림과 천마 교도 간의 대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비행선 왼쪽에서는 피 터지는 육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장기에 잘린 사람의 머리통과 팔다리가 핏물을 내뿜으며 마치 로켓처럼 수시로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에 따른 지독한 피비린내와 함께 죽어가는 무인들의 비명이 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팽팽하긴 한데 중원 무림이 살짝 밀리는 형국이로군. 의외로 고수의 숫자가 저쪽이 더 많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이 모조리 총출동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오랜 세월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교의 저력이 장난이 아니로군.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팔마 몇 명만 정리해 주면 힘의 균형이 확 깨질 테니까.'

왕기의 눈이 중원 무림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척무관에게 향했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한 마리 학이라도 된 양 양팔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창궁일검의 반듯하게 잘린 머리통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 팔마 중 최강이라는 검마(劍魔)를 단신으로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있는 척무관을 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척무관이 일저에 내가 알려준 '비천운룡신법(飛天雲龍身法)'을 완전히 대성했군. 양력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미 깨달은 상태야. 이번 전장에서 죽을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도 되겠군.'

왕기가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바닥으로 내리쳤다.

- 푸우욱.

보통 때와 달리 일반적인 밧줄이 아니라 쇠사슬로 제작된 계류선을 땅바닥에 깊숙이 박아 넣어 비행선을 단단히 고정시킨 왕기의 시선이 비행선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왼쪽이 인간계의 전쟁이라면 오른쪽은 신계의 전쟁이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검은색의 안개 덩어리 하나와 푸르디푸른 강기 덩어리와 짙은 우윳빛의 강기 덩어리가 하늘에서 좌충우돌하며 격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푸른색은 도가의 강기 무공 중 최강이라고 일컫는 '태청강기(太淸罡氣)'로 일으킨 호신강기이다. 우윳빛의 강기 덩어리는 소림사 방장만이 익힐 수 있다는 '무상신공(無上神功)'이야. 위가 없다는 말처럼 옅은 하얀색의 얇은 강기를 페이스트리처럼 끝없이 겹겹이 쌓아올리는 무공이지. 색이 짙어질수록 강기의 층수가 많다는 뜻이다. 저 정도로 짙은 우유색이라면 무상신공을 대성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 거기에 회전력까지 가미되어 있는 것을 보니 공심이 나에게 배운 반야심공의 원리까지 결합시켰나 보군.'

뚫어져라 세 명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하나마 안개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천마 교주가 밀리고 있다는 뜻이야. 결정적인 원인은 안개의 촉수가 호신강기를 전혀 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게 쉽게 뚫릴 리가 없지. 명색이 마공과 상극이라는 도가(道家)와 불가(佛家)의 최고 절기를 평생에 걸쳐 극성까지 익힌 자들이라고. 내가 이 세상에 끌려와 깨달은 게 있지. 신(神)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계에 직접 힘을 투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엄격한 규정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겠지. 안 그랬다가는 인간계가 신들의 싸움터로 변해 난장판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매번 신의 아들이니, 신의 사자를 만났느니. 신의 계시를 받았느니 하는 인간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거야. 신에 의해 과거로 끌려온 나도 있고 말이야. 신이 뭔가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을 통해야만 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들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한계가 명확해. 나 또한 신의 선택을 받았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다고.'

그때였다. 마치 본인이 제갈량이라도 된 것처럼 새하얀 '학익선(鶴翼扇)'을 흔들며 좌측 후미에서 전장에 참여하지 않고 관망만 하고 있던 뇌마가 마교주의 열세를 느꼈는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천마강림(天魔降臨)!"

그러자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듯 좌측 후미에서 마교의 교도 하나가 뛰쳐나와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만인앙복(萬人仰伏)!"

힘차게 외친 교인이 오른쪽에 있는 신계의 싸움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했다.

- 스르륵.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마교 교주의 몸에서 한줄기 검은 안개의 촉수가 뻗어 나와 죽은 교인의 사체로 다가가 심장 부위에 힘차게 박혔다.

- 푸욱.

단숨에 마교 교도의 정기를 빨아먹은 마교주가 다시 힘을 내며 무당의 태청진인(太淸眞人)과 소림의 공심대사(空心大師)와 맞붙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뇌까렸다.

'철저하게 대비를 해놨군. 장기전으로 가면 천마 교주가 이길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한계를 뛰어넘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태청진인과 공심대사는 세수가 이미 백 살에 가까운 늙어빠진 노인들이야. 그에 비하면 마교 교주는 무인으로서 한창의 나이인 사십 대라고. 그리고 정기만 계속 흡수할 수 있으면 절대 지치지를 않는 마물이다. 이대로 가면 필패(必敗)의 형국이야.'

마음이 급해진 왕기가 비행선을 보며 외쳤다.

"칠성대는 지금 즉시 출진해라!"

- 존명!

- 철컹. 철컹.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행선에서 120명의 사람들이 빠르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왕기로부터 칠성검을 전수받은 자들이며, 그들 모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강철로 된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었다. 왕기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으라는 듯 또렷한 중국어로 힘차게 외쳤다.

"대고려 제국의 병사들은 이번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임무는 마교 교주와 태청진인과 공심대사가 대결하는 곳을 빙 둘러싸고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것이야.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니라. 알겠느냐?"

- 와아아...

왕기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뛰쳐나간 칠성대원들이 멀찍한 곳에서 세 사람이 격돌하는 곳을 빙둘러싼 채 일제히 천추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천추세와 가슴팍에 있는 팔만대장경 목판이 마교 교주의 정기 흡입을 막아줄 것이야. 아무쪼록 부디 많이 살아남기를..."

- 쉬이잉.

자기부상신법을 극성으로 발휘한 왕기가 좌측에 있는 중원 무림인들과 천마 교도의 싸움장으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아래를 잠시 내려다 본 왕기가 중원 무림인들의 피해가 가장 극심한 쪽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짙은 독기로 인해 가까이 접근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중독이 되어 픽픽 죽어나자빠지고 있는 곳이었다.

왕기가 허공에서 오색찬란한 검강을 씌운 검을 들고 독마(毒魔)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지자 독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입가에 비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말로만 듣던 고려검황이로군, 하지만 넌 첫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뿜어내는 진신독기(眞身毒氣)에 스치면 화경의 고수도 견딜 수 없어. 호신강기도 없이 덤벼들다니. 설사 날 죽인다고 해도 너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야. 서로 양패구상할 뿐이다."

- 화아악.

마치 연막탄을 터뜨린 듯 초록색의 독기가 순식간에 피어오르며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주변의 사람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칠 때, 뒤늦게 아차 한 왕기가 호신강기를 일으킨 다음 독기의 연기를 뚫고 들어가 독마의 몸통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 쫘아악.

단칼에 독마를 반으로 갈라 죽인 왕기가 자신의 신체에 닿은 독기의 영향을 걱정할 때 머릿속으로 이전의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띠리링. 각종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상승하여 병사(病死)할 위험이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독에 대한 내성이 크게 증가하여 독살(毒殺)의 위험성이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신에게 특별한 능력을 하나 부여받긴 했군.'

독마의 진신독기에 닿았음에도 중독의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왕기가 팔마 중에 서 중원 무림인들에게 마치 사신과도 같은 패마(覇魔)를 향해 날아갔다. 온몸이 강철처럼 단단하여 그 어떤 무기도 먹히지 않아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고 패마에게 날아가자 패마가 포효성을 터뜨리며 두 주먹을 같이 내뻗었다.

- 쉭. 쉭. 쉭.

무언가가 바람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가 세 번 연이어 들려왔다. 삼삼이를 휘둘러 첫 번째 칼질에 패마의 양쪽 손목을 날린 왕기가 칠칠이를 휘둘러 패마의 목을 절반쯤 베고 또다시 삼삼이로 나머지 목을 베어 단 세 번의 칼질만에 패마를 목이 달아난 시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후 곧바로 검마가 있는 쪽으로 날아간 왕기가 척무관을 향해 외쳤다.

"모든 게 다 끝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어떡하든 죽지 말고 버텨라. 위험하다면 도망쳐도 좋다. 이건 짐의 명령이다."

그러자 척무관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외쳤다.

"존명!"

- 쾅!

그때였다. 독마에 이어 패마까지 순식간에 죽어버리자 마음이 다급해진 장마(掌魔)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날린 장풍이 왕기의 등에 정확히 적중되었다. 마치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입에서 핏물을 길쭉하게 내뿜으며 왕기가 하늘을 훨훨 날아가자 화들짝 놀란 척무관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폐~하!"

하지만 날아가는 왕기가 눈을 찡긋하는 것을 발견한 척무관이 일전에 자신이 당한 수법이라는 것을 눈치채고서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검마를 재차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한편 장풍에 적중되어 날아가고 있던 왕기의 눈에 장병기(長兵器)의 장점을 십분 살려 삼장이 넘어가는 넓은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 편마(鞭魔)가 눈에 들어왔다. 편마 쪽으로 방향을 틀은 왕기가 오색찬란한 검강을 씌운 쌍검을 연거푸 휘둘러 편마의 채찍을 마치 썩은 동아줄인 것처럼 토막을 내며 단숨에 짓쳐들어가더니 편마의 허리를 비스듬하게 잘라버렸다. 그러자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 손잡이만 남은 채찍을 들고 있던 편마의 상체가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등장하자마자 단숨에 마교의 최고 고수인 팔마 중에 셋을 처단한 왕기의 주변으로는 그 누구도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한숨 돌린 왕기의 귓가로 악에 받친 뇌마의 고함이 들려왔다.

"천마강림(天魔降臨)!"

그러자 자실 특공대인 마교 교인 하나가 검을 들고 오른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칠성대 중에 한 명이 교인을 마중 나가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하며 땅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는 교인의 몸통을 위에서 완전히 덮쳐버렸다.

- 스르륵.

마교 교주의 몸에서 꿈틀거리며 나온 안개 줄기가 강철 갑옷을 입은 칠성대의 심장 부위를 고치처럼 꿰뚫어 마교 교인의 정기를 흡수하려고 들었다.

- 파바박...

하지만 천추세의 기운이 머물러 있는 칠성대원의 몸에서 불꽃이 튀었고, 힘들게 불꽃을 이겨내고 나아간 안개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전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이미 몇 번 발생한 듯 오른쪽 전장에는 마교 교인들의 시체를 꼭 껴안고 죽어 있는 칠성대원들의 숫자가 이미 열을 넘어가고 있었다.

"크아악... 이것들은 하나같이 부처의 보패(寶貝)를 몸에 지니고 있구나. 고려에는 부처의 보패가 이리도 흔하단 말이냐?"

- 무량수불

- 아미타불.

그사이 도호와 불호를 외치며 다가온 태청진인과 공심대사의 공격에 정기 흡수를 포기한 마교 교주가 다시 접전을 벌이기 시작할 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아무렴. 흔하고 말고. 고려에는 무려 8만 1,258판에 달하는 팔만대장경이란 것이 있다고."

왕기가 하늘로 치솟아 좌측의 전세를 살펴보았다. 그런 왕기의 눈에 시종일관 몰아붙이던 검마의 머리통 위에서 척무관이 어깨를 튕기면서 그 힘을 이용해 팔꿈치를 최대한 빨리 펴는 모습이 잡혔다.

'척무관이 자랑하는 송학검법의 학취습어(鶴嘴襲魚) 초식이로군. 저건 나도 무섭지.'

- 푹.

마치 잘 익은 수박 통에 쇠젓가락을 강하게 찔러 넣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통 위쪽에서 아래턱까지 일직선으로 관통된 검마의 손에서 평생을 함께 해온 검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교의 최고 고수인 팔마 중에 무려 넷이나 죽었어. 이제는 중원 무림인들도 할만할 것이야. 내가 도와주면 좀 더 쉽게 이기겠지만... 그럴 필요는 전혀 없지. 나로서는 천마 교도와 중원 무림이 양패구상하는 것이 최고의 결과니까. 둘 다 나에게는 언제가 적이 될 세력이라고. 남은 건...'

하늘에 떠있던 왕기가 동루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원나라 황제와 눈을 맞추며 손을 들어 소매로 입가에 묻어있는 피를 힘차게 닦았다. 황제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왕기가 천마가 있는 쪽으로 질풍처럼 날아갔다.

'이 정도면 생색을 낼만큼 내었어. 남은 건 마교주뿐이다. 작전대로만 되면 쉽게 처치할 수가 있을 것이야.'

마교 교주를 향해 날아가던 왕기의 손에 들려 있던 칠칠이의 검극이 비행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쇠사슬을 슬쩍 치고 지나갔다.

- 파바박.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쇠사슬에서 순간적으로 스파크가 튀었고, 오색찬란한 호신강기에 뒤덮인 왕기의 몸이 마교주를 향해 짖쳐들어갔다. 최후의 결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 쐐애액.

- 쐐애액.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이중으로 내며 전력을 끌어올린 강기에 씐 삼삼이와 칠칠이가 어검술의 수법으로 검은색 안개 덩어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텅 빈 허공을 날아가듯 아무런 격타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되돌아온 쌍검을 받아든 왕기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분명히 타격이 있다. 검이 관통한 자리의 안개가 일순간 사라졌어. 마치 떠오르는 아침 해에 자욱했던 안개가 녹아없어지듯 말이야. 이 승부는 이겼다.'

"어서 오시오. 고려검황. 다시 만나서 반갑소이다."

"명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힘을 합쳐 이 마물을 처치합시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공심대사와 초면인 태청진인의 인사에 왕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분노한 마교주의 노성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비겁한 중원 놈들. 3 대 1로 덤벼들다니. 네놈들은 양심도 없단 말이냐?"

그러자 왕기가 입가에 비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착각하지 말라고. 난 엄연히 자랑스러운 한민족인 사람이라고. 대고려 제국의 황제이지 난 중원인이 아니야."

"말장난을 하고 있구나. 근데... 네놈이 익힌 무공이 무엇이기에 이리 강력하단 말이냐? 파사(破邪)와 멸마(滅魔)의 기운이 그득하구나."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익힌 무공은 파사의 기운이 가득한 뇌전벽력신공에 불가의 반야심공 그리고 도가의 양의신공과 칠성검이니까. 어찌 보면 그대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럼 네놈부터 죽여야만 하겠구나."

안개 덩어리에서 일시에 뿜어져 나온 백여 개의 안개 줄기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자 왕기의 몸이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허공에서 방향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안개 줄기 사이를 헤쳐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교주가 혀를 내둘렀다.

"네놈의 경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구나. 하늘을 나는 새도 그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야."

"내가 가진 장기가 경공이라서 말이야. 말이 너무 길어지는군. 이제 그만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그대가 믿고 따르는 천마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왕기의 쌍검이 천선세(天旋勢)에 의해 빙글 회전하며 마교주의 안개 덩어리를 향해 날아갔다. 길고 지루한 장기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밀리는 것은 마교주였다. 지루한 공방전이 진행되며 세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겨울 해가 서산으로 줄기차게 달려가더니 조금씩 노을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 화아악.

최후의 힘을 뿜어내었는지 마교주의 안개 덩어리가 대폭발하며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마교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세 방향에서 둘러싸고 있던 세 사람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마교주가 찰나의 틈이 벌어진 곳으로 몸을 빼더니 허공에서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들이 아무리 그래봐야 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정기를 흡수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니 기다리거라."

대폭발 이후 절반가량으로 쪼그라들은 안개 덩어리가 시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좌측의 전쟁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자를 반드시 막아야만 하오."

"마물이 정기를 흡수하면 큰일이오."

다급한 공심대사와 태청진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 중에서 경공이 가장 빠른 왕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왕기의 안색은 평온했고, 그의 매서운 눈초리는 날아가는 마교주의 신형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칠성대가 마교 교도들을 껴안고 죽은 곳에는 눈길도 두지 않은 마교주가 좌측의 전장으로 날아가기 위해 비행선을 막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지금이다!'

- 딱.

경쾌한 핑거 스냅의 소리와 함께 특별히 준비한 쇠사슬에 가득 심어놓았던 전기들이 왕기의 명에 따라 단숨에 쇠사슬을 타고 올라가 비행선에 도달했다.

- 파파박.

- 쿠과과광!

전기 스파크가 튀더니 비행선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소 가스가 거대한 불꽃을 하늘 높이 피어 올리며 폭발했다. 그리고 그 폭발에 휩쓸린 마교주의 비명이 전장 가득히 울려 퍼졌다.

"크아악!"

그 순간 왕기의 쌍검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칠성검 최후의 초식인 요광세(搖光勢)였다. 대폭발에 휩싸여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은 안개 덩어리를 향해 어검술을 이용해 쌍검을 던지려던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마교주가 정기를 흡수하면 다시 또 원상 회복될 테니까. 여태껏 공들인 것이 말짱 도루묵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왕기가 움찔했다. 처음에 칠성검을 익힐 때 느꼈던 신기와 다른 종류의 신기가 자신의 검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었다.

'이건 내가 칠성검을 익히며 처음으로 신기강검을 할 때 내려받은 환인(桓因)의 기운이 아니다. 이건 더없이 따사하고 자비로운 기운이야. 설마... 부처의 기운인 것인가?'

- 쐐애액.

그 순간 한쪽에는 환인의 기운이. 다른 한쪽에는 부처의 기운이 담긴 쌍검이 눈부신 빛을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 비틀거리고 있는 안개 덩어리를 뚫고 지나갔다. 그러자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안개가 천지사방으로 삽시간에 흩어져 버렸다.

"끄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처치한 것인가? 하긴.. 안개란 것은 본디 열과 빛에 약한 법이지. 태양이 뜨면 사라져야만 하는 숙명인 것이야."

한편 그 시각, 대고려 제국의 북경(北京)에 해당하는 장춘시에는 제국의 황제인 왕기와 담판을 짓기 위해 거란족 25개 부족과 여진족 40개 부족의 부족장들이 자신의 정예 병사들을 거느리고 장춘시에 입성해서 왕기가 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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