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3화 (103/171)

천마 교주와의 혈투 - 5

[보계시 외각의 한 빠오]

9천에 달하는 마교의 본대가 머물고 있는 평원에는 수천 개에 달하는 몽골족의 임시 거주지인 빠오 같은 것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평원 한가운데 존재하며 다른 빠오와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의 거대한 빠오가 하나 서있었다.

사방에서 비스듬하게 세워 올린 나무 기둥들을 하나로 모은 다음 끈으로 묶고, 아래에서부터 가죽을 휘감아 올라간 그 빠오는 사면체의 형상을 하고 있어 원형에 가까운 빠오라기보다 차라리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거주 형태인 티피(Tipi)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빠오 윗부분은 아무런 가리개가 없어서 얽혀 있는 나무 기둥들이 훤히 보인다는 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마교 본산에 있던 마교의 상징인 성화(聖火)가 타오르는 휘황찬란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황금 쟁반이 빠오 한가운데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 쟁반 위에서는 캠프파이어처럼 거대한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그러한 불로 인해 발생한 매캐한 연기들이 지붕도 없이 뻥 뚫려있는 빠오 위로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빠오의 상석에는 인간이 아닌 인외(人外)의 마물(魔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눈이 있던 자리에는 무저갱(無底坑)처럼 뻥 뚫린 구멍만이 존재했고, 몸통과 팔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해파리의 촉수처럼 끊임없이 흐느적거리고 있는 100여 개의 칠흑처럼 새까만 안개가 살아서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교의 본거지인 십만대산을 출발할 때보다 더 강해져 있는 무쌍천마(無雙天魔) 갈중악(葛中岳)이었다.

- 타닥. 타다닥...

장작이 불에 타며 쪼개지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안개가 모여 있는 갈중악의 얼굴 부위 아래쪽이 일자로 쩍 갈라지며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나라 황제가 서신을 보내왔다고?"

갈중악의 물음에 성화 주위로 빙 둘러앉아 있던 팔마(八魔) 중에 뇌마(腦魔)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교주님.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결착을 지을 생각인가 봅니다. 1월 30일 오시(午時) 중에서 오정(午正 : 송나라 이후 12시진을 각각 초(初)와 정(正)으로 나누어 지금의 24시간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오시가 11~1시이니 지금의 12시 정도라고 보면 됨.)에 함양(咸陽) 앞에서 만나 일전을 펼치자고 서신이 왔습니다. 함양 앞쪽은 관중(關中) 평야에 속해있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으니 몽골군 전통의 기마병을 활용해 보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황제가 빨리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렇게 하겠다고 답신을 보내거라."

교주의 명에 잠시 고민을 하던 뇌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 이 정도에서 황제와 교섭을 하시고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마교의 1차 목표였던 감숙과 청해가 이미 본교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서역으로의 교역로를 확보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본교의 세력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증가할 것입니다. 같이 호응하기로 했던 홍건적의 우두머리들은 황하에 수장된 지 오래이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세력은 얼마 전에 있었던 항주에서의 전투에서 황제가 개발했다는 대포에 의해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지 오래입니다. 조그만 더 진군하면 원나라의 수도가 있는 하북성이옵니다. 황제가 더 이상의 진군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절 사자로 보내주시면 황제와 담판을 지어 청해와 감숙이 마교의 땅이라는 확답을 받아들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순간 지옥에서 울부짖는 마물의 포효처럼 갈중악의 분노한 목소리가 빠오 안에서 터져 나왔다.

"감히 교주인 나의 능력을 못 믿는 것이냐? 하늘에 계시는 천마의 능력을 이어받은 난 천하무적이다."

- 쿵. 쿵. 쿵...

그 순간 뇌마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피 끓는 목소리로 외쳤다.

"믿사옵니다! 교주께서 천하무적임을 당연히 믿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교주께서는 불멸(不滅)의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건 신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인간으로서는 달성할 수가 없는 경지입니다. 교주의 신체는 일반 병사들의 병장기로는 아무런 해를 끼칠 수가 없습니다. 십만 아니 백만, 천만의 병사들과도 싸워도 교주께서는 이기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공과 상극이 되는 무공에 적중되면 교주의 신체도 분명 해를 입으십니다.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지요. 교주께서 단신으로 곤륜파를 쓸어버릴 때도 그러했고 여기까지 진군하는 여러 번의 전투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걸 주변에 있는 무인들의 시체에서 정기를 흡수하여 다시 메꿨을 뿐이지요."

"그대의 말이 맞다. 마공과 상극이 되는 유불선(儒佛仙)의 무공과 파사(破邪)의 기운이 있는 뇌공(雷功)에 적중되면 그러하기도 하지. 그래서 뭐? 내가 황제와의 일전에서 지기라도 할 것 같단 말이냐? 웃기지 마라. 조만간 일전을 벌일 함양 땅에는 사방에 무인들의 시체가 넘쳐날 것이야. 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교주! 원나라 황제는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제국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전을 소홀히 준비할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정보에 의하면 구파일방을 비롯한 모든 중원 무림인들이 황제 아래로 집결해 있다고 합니다. 또한 화경에 달하여 사왕에 속한다는 무당의 태청진인(太淸眞人)과 소림의 공심대사(空心大師)마저 도착해 있다고 하옵니다. 그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들은 마공과 상성인 무공들이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황제가 고려로 떠난 고려검황에게도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교주께서 단신으로 화경에 달한 고수 셋을 동시에 상대해야만 한다는 뜻이옵니다.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덤벼들 리가 없으니까요. 또한 중원인들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라 교주를 상대하기 위해 무슨 대책을 준비해놨을지 모르는 상황이옵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도박을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청해와 감숙만 손에 넣으면 시간은 본교의 편이옵니다. 앞으로 십 년의 세월만 더 있으면 마교 혼자만의 힘으로 중원을 정복하여 왕조를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피를 토하는 듯한 뇌마의 충언에 갈중악이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뇌마 그대의 말처럼 화경에 달한 고수 3명과 일전을 벌이는 것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절대 지지는 않을 것이야.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날 쓰러뜨릴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에게는 그들과 붙어서 이길 비책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무공이 뛰어난 무인들일수록 정기가 강한 법이지. 그런 자들의 정기를 흡수하면 할수록 난 강해진다. 이 자리에는 나를 제외한 마교의 최고 고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구나. 그대들의 정기를 나에게 바치면 난 다음 전투에서 화경에 달한 고수들과 3 대 1로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

- 슬금슬금.

교주가 말을 하는 동안 안개로 이루어진 촉수 8개가 빙 둘러앉아 있는 팔마들을 향해 꿈틀거리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떠냐? 황제와 교섭을 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 그리하겠느냐?"

- 후다닥.

- 창. 촤창...

화들짝 놀란 팔마들이 자리에서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병장기를 뽑아들자 갈중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듯이 나에게도 강요하지 말거라. 교섭이나 후퇴 따위는 일절 없다. 황제에게 12월 30일 오정(午正)에 일전을 벌일 것이라고 전달하거라."

말을 하며 안개인 천마 교주의 몸이 빠오의 뻥 뚫린 지붕으로 연기처럼 흘러나가자 팔마 중에 최강이라는 검마가 뇌마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대로 황제와 알전을 벌려도 괜찮겠소? 청해와 감숙에 있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교도들에게도 소문이 자자하오. 교주께서 사람의 피와 정기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되었다고 말이오.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소. 보면 볼수록 교주는 사람이 아니외다."

뇌마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꾸했다.

"교주께서 원하시니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주의 광기가 날로 심해지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피아(彼我)의 구별이 가능한 상태이니까요. 본인이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 적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보겠소이다."

"흐음... 뇌마 그대만 믿고 있겠소이다. 황제와의 전투에서 이겨도 걱정이외다. 잘못하다가는 우리 모두 교주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오."

팔마들의 걱정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고려에서는 왕기가 북방민족들과 담판을 지을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연경전의 침실]

왕기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노국공주 쪽이었다.

"내가 말한 대로 준비가 되어가고 있소?"

"네. 폐하. 이번에 신라면과 앙리라 가져온 물품 중에서 향신료를 이용하여 전투 식량을 개선하는 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소첩이 직접 시식을 해보았으니 그 맛을 보증하옵니다. 그리고 통조림 제작 공장에 이미 지시를 내려놨으니 고토로 가실 때 충분한 양을 들고 가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하느라 고생하셨소이다."

노국공주를 치하한 왕기가 척무관을 바라보며 명했다.

"고토로 올라가 담판을 지을 때 따라갈 병력들을 선정하거라. 멀리 가야 하니 모두가 말을 탈 수 있는 병사로 선정해야만 할 것이야. 하지만 그 수자가 3천을 넘어서는 안된다."

그 순간 왕기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무장이 즉각 반발했다.

"폐하. 병력 3천은 너무 적은 숫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아직 북방민족의 특성을 잘 모르고 계시는 것 같사옵니다. 북방민족은 아직 미개하여 철저한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상입니다. 부족장이 멀리 자리를 비우면 부족 중의 누군가가 부족의 군사들을 회유하여 곧바로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사옵니다. 그래서 부족장이 자리를 비울 때는 그 부족의 정예 병사들을 모조리 이끌고 나갑니다. 그 숫자가 적으면 2~3천 많으면 4~5천에 달하지요. 그래야만 누군가가 반역을 저질러도 돌아와서 진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기에 모든 부족장들이 다 그러할 것입니다. 소관이 듣기로는 이번에 모일 부족의 수가 거란족 25개 부족 그리고 여진족 40개 부족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장춘시에 모일 북방민족의 병력 수가 최소가 일만 삼천이요 최대가 삼만이라는 소리입니다. 고려군 3천으로는 비벼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절대 불가하옵니다."

무장의 걱정 어린 말에 왕기가 대답했다.

"괜찮다. 나는 그들과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니라. 고려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를 보여주고 그들을 고려의 백성으로 회유하러 가는 것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넌 내가 명령한 대로 공병대들을 열심히 훈련시키는 것에만 주력하거라. 그들 중에서도 몇 백 명을 데려갈 생각이니까 말이다."

왕기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무장이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폐하. 단 명심해 두실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소관이 말갈족(靺鞨族) 출신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 거란족을 통합해 요(遼)나라를 건국한 황제)가 요나라를 어떻게 건국할 수 있는지를 절대 잊지 마시옵소서. 그가 8개의 부족장을 초대해 모두 독살한 이후로 부족장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며 그 어느 때보다 호전적이 되옵니다. 부족장들이 모여서 평화롭게 일이 끝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옵소서."

"짐이 명심하도록 하지."

그때 걱정스러운 표정의 척무관이 입을 열었다.

"폐하. 소관은 무장처럼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사옵니다. 폐하께서 그 자리를 피하고자 마음먹으시면 하늘을 날아다니시는 뛰어난 경공 때문에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3천은 너무 적사옵니다. 숫자가 너무 적으면 담판을 지을 북방민족들이 폐하를 얕볼 수도 있사옵니다. 이쪽의 힘이 약해 보이면 담판을 짓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숫자를 좀 더 늘리는 것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짐이 3천으로 숫자를 제약한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이야. 짐이 고려를 떠나기 전에 연구소에 있는 철장들에게 명을 내려놓았지만 제작에는 한계가 있더군. 그래서 3천의 기마병들에게만 지급이 가능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3천의 병사에게 무얼 지급하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척무관의 반문에 왕기가 방 밖을 바라보며 외쳤다.

"준비한 것을 가지고 들어오너라."

- 네이. 폐하.

- 철컥. 철컥...

중성적인 내시의 목소리와 함께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드르륵.

침실의 문이 열리며 여러 명의 내시들의 손에 의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갑옷과 투구, 마갑(馬甲) 그리고 길이가 일장 가까이 되는 새까만 장창(長槍)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폐하. 이것들이 다 무엇이옵니까?"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척무관의 물음에 왕기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위대했던 고구려의 전설을 짐이 직접 재현한 것이지. '개마 무사(鎧馬武士)'라고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에게도 갑옷을 씌운 고구려의 철갑 기병을 말하는 것이잖습니까?"

"바로 그거다. 삼천 명의 기병을 무장시킬 갑옷과 투구 그리고 마갑이 준비되어 있다. 그들이 들 창도 준비되어 있지. 이 모든 것들은 짐이 직접 개발한 강철로 제작된 것들이야. 짐이 장담하지. 북방민족의 어떠한 무기로도 갑옷과 마갑을 뚫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장춘에 최대 삼만이 모인다고? 어떠한 무기도 통하지 않는 개마 무사 삼천이면 삼만 정도는 가볍게 격퇴할 것이야."

그때였다. 밖의 복도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내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황실 통신소의 전통이 막 도착하였습니다. 원나라 황제의 서신이 압록강 통신소에 도착하였다고 하옵니다."

"가지고 오너라."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천마 교주의 처치를 도와달라는 전통이 고려검황이자 대고려 제국의 황제인 왕기에게 전달된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서기 1346년 1월 29일

[장안의 대흥성]

원나라 황제와 천마 교주와의 일전이 내일로 다가온 탓에 대흥성 주변의 경비가 그 어느 때보다 삼엄했고, 성안 곳곳에 화톳불이 밝혀져 있어 대낮처럼 환했지만 그 누구도 대흥성 상공에 높이 떠있는 아주 조그마한 비행선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외부에 옻칠을 한 듯 새까만 비행선이었기에 설사 누군가가 밤하늘을 올려보아도 발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정확히 122명 만을 태우면 되고 식량이나 포탄 같은 보급품이 전혀 필요 없었기에 지난 일주일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작게 만든 비행선 안에서 왕기가 척무관에게 가죽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명령을 내렸다.

"이걸 들고 먼저 내려가거라. 어차피 이 높이에서 뛰어내려 살수 있는 자는 나를 제외하고는 너뿐이니까."

"폐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재물이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다."

"재물 말씀이십니까? 이 재물로 무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가 혜종 수하에 있는 장수들을 좀 구워삶아줘야 하겠다. 대만 일대와 해남도를 넘겨받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를 않아. 좀 더 뜯어먹어야 하겠어. 그러니 그들을 구워삶아......"

잠시 후 왕기의 설명을 차분하게 다 들은 척무관이 가죽 주머니를 울러매고 비행선에서 뛰어내렸다.

- 쉬이익.

빼어난 경공을 시전하여 대흥성 내부로 단숨에 뛰어내리는 척무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왕기와 대적자 간의 일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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