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1화 (101/171)
  • 천마 교주와의 혈투 - 3

    [국방과학연구소의 회의실]

    격구장에서 곧바로 연구소 쪽으로 날아온 왕기가 서양에서 데려온 기술자들과 고려의 기술자들이 함께 있는 회의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었다.

    "직접 검토를 해보니 어떠하오? 짐이 말한 것들을 만들 수 있겠소?"

    고려어는 물론 영어도 알지 못하는 가장 연장자인 걸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탈러리가 앙리의 통역을 통해 왕기의 말을 알아듣자 손에 들고 있던 설계도면을 보며 답했고, 앙리가 고려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물건들은 도면상으로는 충분히 제작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이전이라면 제법 애를 먹을 것이라 자신 있게 확답을 못 드리겠지만 지금 이곳이라면 사정이 전혀 다르지요. 유리 판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전하는 돌판 위에 부은 유리 용액을 균질한 두께로 성형시키는 것입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만 황제께서 직접 개발하셨다는 모터를 이용하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회전 속도와 좌우와 상하의 흔들림이 전혀 없는 돌판을 구현할 수가 있게 되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황제께서 직접 개발하셨다는 산소 용접기라는 것의 위력도 이미 보았습니다. 그 정도의 불꽃이라면 유리 성형이 자유자재로 손쉽게 될 것이니 폐하께서 주문하신 물건들은 제작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주신 설계도만으로는 그 용도를 짐작하기가 어렵사옵니다. 다들 처음 보는 물건들이라서요."

    - 휘리릭.

    크리스탈러리의 말에 왕기가 설계도면을 한 장씩 넘기며 설명해 주었다.

    "첫 장에 있는 설계도는 의술과 관련된 것들이오. '주사기'와 '엠플' 그리고 '링거병'이리고 부르는 것이지. 그걸 개발하기만 하면 호역이나 온역 같은 전염병으로 죽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가 있소. 그들 대부분이 장이 제 역할을 못해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몸으로 흡수가 되지 않아 탈수로 인해 죽는 것이니까. 두 번째 장에 있는 '비이커', '샤레', '스포이드' 등은 의학 뿐만이 아니라 화학 실험에도 널리 사용될 것들이라오. 세 번째 장에 있는 것은 유리의 굴절을 이용하는 물건들로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망원경'과 밖으로 몸을 내밀지 않고서도 사방을 볼 수 있는 '잠망경' 그리고 아주 작은 것들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현미경'이라는 것들이지. 마지막 장에 있는 것이 가장 제작이 어려울 것이오.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형광등'이라는 것은 유리관 안에 공기를 뽑아내어 진공 상태로 만든 후 수은 증기를 집어넣고 형광도료를 내부에 입혀야만 제대로 작동이 가능한 것이니까. 하지만 모터를 이용하면 그것도 충분히 제작이 가능할 것이오. 형광들을 제작하려면 그 외에도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야 하니 짐이 틈나는 대로 개발을 도와주겠소이다. 그것까지만 성공적으로 제작해 주면 그대들의 임무는 모두 끝난 것으로 하고 앙리가 약속한 대로 짐이 막대한 보상을 내릴 것이오."

    왕기의 말에 나이가 지긋한 크리스탈러리가 다시 물었다.

    "황제께서 내려주실 보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물건들을 다 만들어 드리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까지 확립한 후에 저희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실 것입니까? 비록 많은 돈을 선불로 받아 가족들에게 주고 왔지만 고향에 있는 가족이란 더없이 소중한 것이지요."

    행여 자신들이 고려에 영영 묶이는 몸이 될까 하는 걱정에 왕기가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5년! 딱 5년 후에는 그대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드리겠소. 하지만 그대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오. 그때쯤이면 이 고려 제국이 전 세계의 중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되어 있을 테니까. 오히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고려로 불러오고 싶어 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자 하는 자들은 절대 막지 않을 것이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대들을 죽이는 일 따위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대고려 제국 황제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는 바이오. 어차피 그때쯤이면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고려의 장인들이 다 배운 후여서 그대들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하지만 내가 개발한 기술들을 그대들이 훔쳐 배우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오."

    자신만만한 왕기의 발언에 크리스탈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황제 폐하의 약속을 믿고 황제 폐하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소인들이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그 이후에도 유럽에서 온 기술자들과 방직기 제작과 조선, 건축, 농경 분야 등 폭넓은 다양한 기술 등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한 왕기가 최무선을 보며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말한 대로 준비가 되었느냐?"

    그러자 최무선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품에서 몇 개의 금속 덩어리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힘차게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 텅. 텅. 텅...

    "네. 폐하.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철장들을 총동원하여 서역에서 대량으로 가져온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것에 색깔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염료들을 녹여서 추출해낸 것들이옵니다."

    왕기가 최무선이 올려놓은 금속 덩어리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건 구리이니 필요 없고, 이건 철이로군. 이것도 필요 없어."

    몇 개의 금속 덩어리들을 바닥으로 가차 없이 쓸어내버린 왕기가 살짝 떨리는 손길로 금색이 조금 가미된 은백색 광택의 금속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누런 금색을 살짝 띠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내가 찾고 있던 크롬이로군. 이걸 어떻게 녹여내었지? 절대 쉽지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왕기의 물음에 최무선이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황제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니 어떻게든 해내야지요. 거기 있는 금속 덩어리 중에 그놈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쇠가 펄펄 끓는 온도에서도 도통 녹지를 않아서요."

    '그럴 만도 하지 . 크롬의 녹는 점은 무려 1,907도이니까. 1,538도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아버리는 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고.'

    왕기가 속으로 뇌까리고 있을 때 최무선이 말을 이었다.

    "용광로에서도 녹지를 않아 수십 명의 철장들이 산소용접기를 울러매고 용광로 위로 올라가 가열을 해서 겨우 녹여냈습니다. 전하께서 개발하신 산소용접기는 용광로보다 더 높은 온도를 내니까요. 그렇게 작업을 했더니 그때야 비로소 녹아내리더군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목숨이 위험해 보이는 살벌한 작업 끝에 녹여냈다는 말에 왕기가 장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뇌까렸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개발한 것은 산소 가스를 산화제로 하고, 일정한 함량으로 들어가 있는 수소 가스를 연료로 하는 현대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최고 온도가 무려 3,000도 가까이 올라가는 최신식 용접기라고. 제트 엔진의 불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 일전에 노국공주가 그리 말했었지? 기술을 개발한 개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술의 특성이라고 말이야. 장차 철판을 용접하여 거대한 철선을 제작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둔 용접기가 여러모로 다양하게 사용되는구나.'

    그 순간 왕기가 뭔가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작업에 참여했던 철장들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내가 분명히 경고를 했을 텐데 말이야. 염료에 들어가 있는 금속을 녹여내는 것은 몸에 해로운 유독 기체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작업이니까 최대한 조심하라고 말이야."

    그러자 최무선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거야 사전에 충분히 주지를 하고 있었으니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워서 작업하였지요."

    "대책이 있다고? 어떤 대책?"

    "폐하께서 일전에 황하 대전을 치르실 때 무지를 통해 개발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산소호흡기 말입니다. 비행선이 높은 고도로 올라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인들도 이제는 산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수소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제법 잘 알고 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철장들은 모두 다 산소호흡기를 차고 작업을 하였으니 몸이 아픈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안심하시옵소서."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의 왕기가 금색이 언뜻 언뜻 비치는 크롬 덩어리를 들고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크롬이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떻게 손에 넣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빈센트 반 고흐가 노란색의 해바라기 연작을 그릴 때 사용한 안료가 크롬-황 안료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사실이지. 스테인드글라스에 사용된 노란색의 안료에 크롬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측이 정확히 적중했어. 남은 건 이제 원나라 황실에서 보았던 푸른색의 늑대에 들어가 있는...'

    왕기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탁자에 올라가 있는 또 다른 금속 덩어리에 닿았다. 은백색의 아름다운 금속광택이 나는 이주 단단해 보이는 금속 덩어리였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왕기가 양쪽을 잡고 힘을 가하자 부드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기의 얼굴이 환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기보다 잘 늘어나는 것을 보니 니켈이 확실하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류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철-니켈 합금을 이용해 동전을 찍어내었지. 마침내 내 손에 니켈과 크롬이 다 들어왔어. 남은 건 지속적으로 안정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고려 땅에는 그러한 광산이 없으니까."

    그때 왕기의 중얼거림을 들은 최무선이 입을 열었다.

    "폐하. 크롬이란 것은 몰라도 니켈이라는 것은 철장들도 이미 알고 있는 금속이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백동(白銅)의 재료라고 하더군요."

    화들짝 놀란 왕기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느니라. 니켈은 백동의 재료이지. 니켈을 2~3할 정도 집어넣은 구리 합금을 백동이라 부르니까. 백동 광산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철장이 있단 말이냐?"

    "네. 폐하. 고려 땅에는 없고 중국 땅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고 하옵니다."

    "끄응... 중국 땅 이곳저곳이라. 당장은 그림의 떡이로군."

    왕기가 안타까운 신음성을 내뱉자 최무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크롬이라는 것이 나는 광산은 철장들 중에서 아무도 모르고 있더군요."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왕기가 앙리를 보며 명령했다.

    "앙리. 넌 이번에 가지고 온 염료가 어디서 나는지, 그런 광물을 채광하고 있는 곳이 어디 광산인지 자세히 알아보거라. 제일 좋은 방법은 돈으로 그 광산을 사는 것이지만... 만약 소유자가 팔지 않는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정복해야만 할 테니까 말이다."

    말을 하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내가 알고 있는 매장량이 많고 질이 좋은 크롬 광산은 터키에 있다. 2차 대전 당시 터키에서의 크롬 광석 수입이 중단되자 다급해진 히틀러가 궁여지책으로 발칸반도에 있는 소규모의 크롬 광산을 돌리려다 빨치산에 의해 광산과 철도가 습격을 받자 '광산 대대(Bergbau-batallion)'까지 창설했던 건 아주 유명한 일화이지. 그만큼 현대식 전쟁에서 필수적인 금속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내가 아는 질 좋은 니켈 광산은 남아프리카에 있다. 특히 이명박 전직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한다며 구입했던 남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암바토비 니켈 광산은 매장량이 많기로 유명하지. 게다가 지금 이 시대라면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매장량이 넘쳐날 거야. 하지만 당장은 무리다. 지금 당장 터키와 남아프리카까지 가서 광석을 캐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야. 대고려 제국이 해상제국으로 발전해서 배로 안정적으로 실어 올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만 해. 아니면 최대한 빨리 터키와 남아프리카까지 모조리 다 정복을 하던가...'

    "존명!"

    씩씩한 앙리의 대답이 왕기의 귀청을 때릴 때 최무선이 물었다.

    "폐하. 크롬과 니켈이라는 것이 무력을 동원해서 광산을 정복할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까?"

    "그래. 그만큼 중요한 금속이다. 크롬과 니켈이 있으면 당장 네 가지가 가능해진다. 첫째, 보다 튼튼하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대포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둘째, 일전에 말한 것처럼 녹이 슬지 않는 쇠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셋째, 초고온에도 견딜 수 있는 내열합금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들어봐야 모르겠지만 '슈퍼 알로이(Super-alloy)'라고 부르는 것이지. 내열합금의 개발이 가능해지면 제트 엔진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크롬과 니켈이 있으면 본격적으로 히터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것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히터란 것은 무엇입니까?"

    "장작을 불태우면 뭐가 발생하지?"

    "불꽃과 함께 유독한 연기가 발생합니다. 한 겨울이 되면 깨진 구들장으로 아궁이에서 때운 장작의 연기가 방안으로 스며들어 자다가 찍소리도 못 내고 죽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요."

    "맞아. 아궁이에 때운 장작으로 요리도 하면서 동시에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뛰어난 발명품인 온돌의 위험성이지. 수리만 제때 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발생하는 불상사이다. 하지만 히터는 달라. 유독한 연기가 나지 않으면서도 장작불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물건이니까."

    "연기가 나지 않는 아궁이와 같은 것이로군요?"

    "뭐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열기가 그냥 발생하지는 않는다. 전기를 공급해야만 가능한 것이지. 고려 황실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기를 무상으로 또는 아주 싼 가격에 공급해 줄 수만 있다면 만백성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최무선 네가 급히 만들어줘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폐하. 명령만 내리소서."

    "북방민족과 담판을 지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어. 약속 장소인 장춘시까지 가려면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전에는 출발해야만 하니까. 그전에 히터에 들어갈 열선을 만들어줘야 하겠다. 열선을 제조하는 방법은......"

    잠시 후 연구소를 떠난 왕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관요가 있는 부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진보다는 부안이 좀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부안을 향해 마치 비행기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왕기가 뇌까렸다.

    '전기 히터를 만들려면 열선을 담을 수 있는 내화벽돌이 필요해. 당장은 도자기로 그걸 만들 수밖에 없다. 부안으로 가서 설계도면대로 도자기를 굽게 만들어야 한다. 아쉽게 되었군. 알루미늄만 수중에 있으면 값싼 철과 크롬 그리고 알루미늄으로 제작이 가능한 '칸탈선(Kanthan Wire : 철 70프로 크롬 20~30프로 알루미늄 4~7프로)'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당장 알루미늄을 제련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무리야. 알루미늄은 제작 과정이 크롬과 니켈보다 훨씬 복잡하다. 알루미늄이 함유된 보크사이트에서 먼저 산화알루미늄을 분리하고, 그런 후 산화알루미늄을 다시 또 전기 분해를 해야만 하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지. 당장은 손해가 크더라도 크롬 80프로에 니켈 20프로인' 니크롬선(Nichrome Wire)'을 사용하는 수밖에.'

    당장은 자신도 구하기가 힘든 크롬과 니켈을 사용해야 한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왕기의 신형이 부안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격구장에서 천추세를 계속 취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병사들에게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한눈에 보아도 백여 개는 훌쩍 넘을 듯한 올림 가마(경사면에 지어 열기가 위쪽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가도록 지은 가마)들이 줄지어 설치되어 있는 부안에 도착한 왕기의 입가에 자본주의적인 미소가 피어났다.

    하늘 높이 연기를 뭉클뭉클 피어 올리는 가마들이 대다수였지만, 몇 개의 가마에서는 충분히 식은 도자기들을 대량으로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신비로운 옥빛의 고려청자, 새하얀 눈 같은 백자, 납축전지에 들어갈 골회자기들이 엄격히 감시하는 군사들의 호위 속에서 가마 옆쪽에 지어놓은 거대한 창고 속으로 속속들이 입고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가 다 보석과도 같은 것들이야. 서역과의 교역만 제대로 되면 나에게 화수분처럼 끊기지 않는 재물을 안겨줄 것들이지.'

    부안 상공 위에서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듯 관요를 뿌듯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왕기의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 국방과학연구소 상공에서 느꼈던 기묘한 감각이 또다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번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 뭔가가 있어.'

    부안 상공에서 가부좌를 튼 왕기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여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장안에서는 대만 일대의 섬들을 통째로 넘겨줄 테니 천마 교주의 처치를 도와 달라는 원나라 황제의 간곡한 부탁을 담은 서신을 지닌 전령이 고려와의 국경인 압록강을 목표로 말을 타고 질풍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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