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00화 (100/171)
  • 천마 교주와의 혈투 - 2

    [만월대의 격구장]

    단상에 우뚝 선 왕기가 내공을 끌어올렸는지 격구장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에 개성 일대를 지키는 고려의 자랑스러운 중앙군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리고 짐이 심왕부에서 직접 키운 포병대원들도 있지. 너희들은 고려 군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최정예 군사들이자 인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오늘 짐이 직접 전수할 칠성검을 배울 것이니라. 이 자리에서 황제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칠성검을 성공적으로 익힌 자는 모두 중앙군의 간부가 될 것이고, 멀지 않은 시기에 짐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죽을 때까지 부귀와 영화를 함께 누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야."

    - 우와아아...

    병사들이 환호에 가득 찬 함성을 내지르자 손을 들은 왕기가 말을 이었다.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본디 공짜가 없는 법. 칠성검을 익힌 자는 짐과 함께 조만간 극도로 위험한 임무에 투입될 것이니까 말이다. 짐이 너희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겠다. 사는 것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은 임무일 것이야. 쉽게 말해 결사대(決死隊)가 되는 것이니라. 목숨이 붙어 있어야 부귀도 영화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대고려 제국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만 도전하도록. 그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자들은 지금이라도 뒤로 빠지거라. 빠지는 자에게 그 어떤 처벌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황제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존명!

    단 한 명도 뒤로 빠지지 않는 병사들의 씩씩한 대답에 왕기가 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다. 다들 죽을힘을 다해 익혀보거라. 그리고 설사 칠성검을 익히지 못한 자라고 하더라고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체력을 보여주는 병사들은 짐이 만들 새로운 병과인 공병대(工兵隊)에 넣어주겠노라. 공병대는 일반 병사들보다 2배 많은 녹봉을 받을 것이야. 그러니 칠성검을 못 익히겠다고 금방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거라."

    처음 들어보는 병과에 병사들이 어수선해질 때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 중에서 칠성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있느냐? 고려의 무인들도 중원의 비급들을 참고삼아 많이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러자 계급이 높은 편인지 단상 바로 아래쪽에 서있던 장수 중에 비교적 젊은 장수 한 명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왕기가 그자를 지적하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폐하. 소신은 용호군(龍虎軍)의 도호제위장군(都護諸衛將軍)인 이부겸이라고 하옵니다. 상장군(上將軍)인 척노리 장군처럼 태백심법과 송학검법을 익혔사옵니다."

    "그 나이에 종 4품인 도호제위장군이라. 게다가 짐이 아끼는 상령과 동문인 사이로구나."

    말을 하며 이놈이 쓸만한 놈이냐는 뜻으로 왕기가 슬쩍 척 무관을 바라보자 이심전심인 듯 척무관이 왕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러자 왕기가 이부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칠성검이 어떤 무공인지 어디 한번 말해보거라."

    본격적인 칠성검의 전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격구장이 절간처럼 조용해질 때 이부겸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칠성검은 중원 무림의 3대 불가해무공 중에 하나이며 익히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무공입니다. 하지만 초식의 숫자가 발검술, 회전하며 베기,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 등의 5개의 공격 초식과 세워 막기, 올려 막기 등 2개의 수비 초식으로 이루어진 7개의 단순한 초식에 불과하며 구결 또한 각 초식당 4글자씩 해서 총합이 28자밖에 되지 않는 아주 단순한 무공입니다."

    그러자 왕기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넌 칠성검을 이미 익혔겠구나? 네가 한 말대로라면 개나 소나 다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니까. 초식이 7개 그것도 아주 기본적인 초식들이니 길게 잡아 하루면 충분할 것이고, 구결 또한 28자로 단순하니 일각이면 충분히 외울 테니 말이야."

    그러자 이부겸이 주저하며 대답했다.

    "소장이 초식도 다 시전할 수 있고 구결 또한 줄줄 외우고 있지만 제대로 익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익힌 칠성검은 시정잡배들이 익힌 검술보다 위력이 못하니까요."

    이부겸이 자신이 외우고 있다는 것을 왕기에게 증명하듯 칠성검의 구결을 큰 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신신지신(信信之信), 당위신선(當爲神山), 여천추지(如天樞地), 양기합일(兩氣合一), 지기수신(地氣秀身), 신기강검(神氣降劍), 자강불식(自强不息). 칠성검의 구결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러한 짧은 구결로는 제대로 된 유력을 발휘할 수가 없지요. 소장의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누락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순간 왕기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칠성검의 구결은 그 자체로 완벽한 무공이다. 내용이 누락된 것이 전혀 없어. 단지 칠성검의 비급을 작성한 자가 두가지 속임수를 심어놓았을 뿐이지. 그리고 칠성검은 도가의 무공이고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공이다 보니 사람들이 익히 할고 있는 무공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지독히도 사람을 가린다는 뜻이지. 그래서 여태껏 불가해무공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야."

    왕기의 말에 이부겸이 다급히 물었다.

    "그 두 가지 속임수란 무엇이옵니까?"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한 것이지. 칠성의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

    왕기의 물음에 이부겸이 숨도 쉬지 않고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천추(天樞), 천선(天旋), 천기(天機),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이지요."

    그러자 왕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몸으로 시험해가며 제대로 된 초식의 순서를 알아내지 않고 단순히 기존에 알고 있는 북두칠성의 순서대로 달달 외워서 시전해서는 칠성검을 위력을 절대로 발휘할 수가 없다. 칠성검의 순서는 천추, 천선, 천기, 개양, 옥형, 천권 그리고 요광 순이다. 비급을 쓴 자가 교묘히 순서를 바꿔놓은 것이니라."

    "으음..."

    이부겸이 신음성을 흘리며 왕기가 말한 순서를 머릿속으로 외우고 있을 때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결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칠성검의 구결은 네가 말했던 것처럼 신신지신(信信之信), 당위신선(當爲神山), 여천추지(如天樞地), 양기합일(兩氣合一), 지기수신(地氣秀身), 신기강검(神氣降劍),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순이 아니니라. 신신지신, 신기강검, 지기수신, 양기합일, 여천추지, 자강불식, 당위신선이지. 이래야 제대로 된 구결이 되는 것이야. 칠성검 표지에 친절하게 적어 놓았지 않느냐? [간견적불일정시진실(看見的不一定是眞實)]이라고 말이야.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뜻처럼 비급에 적혀있는 것만을 달달 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궁리하고 또 궁리하여 과감하게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자만이 익힐 수가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야."

    이부겸이 왕기가 알려준 구결의 순서를 미친 듯이 암송하고 있을 때 왕기가 명령했다.

    "이제 칠성검의 속임수를 짐이 다 알려줬으니 직접 몸으로 익혀봐야 하겠지? 제일 처음이 무엇이라고?"

    "신신지신이며 발검술의 초식입니다."

    본인의 말처럼 칠성검의 초식을 익힌 적이 있는지 이부겸이 비급에 나와있는 그림과 똑같이 왼발을 슬쩍 뒤로 빼며 오른 어깨를 앞으로 깊숙이 집어넣고 왼쪽 손으로 검집을, 오른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쾌속하게 잡아가자 왕기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신신지신의 진정한 의미는 발검술 따위가 아니니라. 검을 뽑기 전의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인 것이지. 발검술 따위는 잊어버리고 구결에 집중하거라. 신신지신(信信之信)이 무슨 뜻이더냐?"

    "믿음으로 믿고 또 믿어야 한다는 뜻이옵니다."

    "맞느니라.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검을 뽑을 수 있다는 뜻인 거야. 그럼 무엇을 믿어야 하겠느냐?"

    "당연히 다음에 나오는 구결의 내용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본래의 비급이라면 당위신선(當爲神山), 즉 당연히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되겠지만 폐하의 말씀대로라면 신기강검(神氣降劍)을 믿어야 하겠지요."

    "네놈의 머리가 나쁘지는 않구나. 신기강검과 관련된 초식이 무엇이더냐?'

    "검을 몸 앞에 곧게 세우는 '천추세(天樞勢)'이옵니다. 일종의 세워 막기 초식이지요."

    "그럼 특별히 시전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당장 시작해보려무나."

    말을 끝냄과 동시에 단상에 서있던 왕기가 시범을 보이듯 가볍게 검을 뽑은 다음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은 후 자신의 몸 앞에 일직선으로 곧추세우자, 왕기와 이부겸의 대화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이만의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어 일제히 천추세를 취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소리쳤다.

    "천추세는 칠성검의 시작이자 칠성검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추세만 제대로 시전할 수 있으면 칠성검을 이미 익힌 거나 다름없다. 신신지신(信信之信)과 신기강검(神氣降劍)을 기억해라. 하나 된 마음으로 믿고 또 믿어란 말이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신이 누구던 상관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 빌고 또 빌어라. 하늘에서 내려주는 신의 기운이 자신의 검에 내려앉게 해달라고... 그것만 되면 나머지는 너무나도 손쉽게 익힐 수가 있게 된다."

    - 풀쩍.

    단상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린 왕기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굳건히 천추세를 취하고 있는 이부겸의 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 까앙.

    강렬한 쇠소리와 함께 이부겸의 검이 가볍게 밀려나며 몸이 휘청거리자 왕기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정신 차려라! 신의 기운이 깃든 검이 이리도 쉽게 흔들린단 말이냐? 평상시에 믿고 있는 신이 누구이더냐?"

    "부처이옵니다."

    "그럼 부처께서 네놈의 검에 신의 기운을 내려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또 믿으란 말이다. 그것이 칠성검의 전부인 것이야."

    "존명!"

    이부겸이 황급히 자세를 다 잡을 때 왕기가 어느새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온 척무관과 무지, 무장을 보며 병사들이 들어라는 듯 말했다.

    "난 연구소에 잠시 다녀오겠다. 새롭게 뽑을 공병대의 병사들이 사용할 장비를 몇 개 만들어야 하니까. 반 시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 사이에 자세를 계속 흩뜨리거나 포기하고 땅바닥에 주저앉는 자들은 망설이지 말고 목을 치거라. 그렇게 의지가 나약한 병사들은 짐에게는 필요 없으니 말이다."

    - 존명!

    목을 치라는 왕기의 말을 들었는지 격구장에 갑자기 살벌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 척무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소인들도 칠성검을 익혀봐도 되겠사옵니까?

    "불가하다. 칠성검은 본인의 믿음과 노력 그리고 익히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야. 오랜 세월 칠성검을 익히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신은 아무에게나 그런 특혜를 내려줄 정도로 자비롭지 않다. 게다가 짐은 인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운명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칠성검을 익힌 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짐의 명령이 아니라 신의 명령을 더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야.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니 절대 익히지 말거라."

    "알겠사옵니다."

    "이건 짐의 예상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칠성검을 익힌 자들은 천마 교주의 정기 흡입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야. 천마 교주가 신에 의해 믿기지 않는 능력을 받았듯이 그들 역시도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니 말이야. 짐이 연구소에 다녀온 후 그런 자들로 뽑아 천마 교주와 싸울 결사대를 조직할 것이니라. 어차피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나 쉽게 다 될 것 같았으면 칠성검이 불가해무공으로 선정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칠성검을 익히지 못하더라고 체력이 좋고 의지가 뛰어난 자들로 공병대원을 뽑을 것이다. 결사대도 공병대도 절대 허투루 뽑아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 다들 인정을 버리고 엄격하게 감시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 끄응. 끄으응...

    천추세를 시작한 지 일각의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힘든지 격구장 곳곳에서 병사들의 앓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왕기가 국방과학연구소를 향하여 번개처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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