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94화 (94/171)
  • #94. < 공민육헌(恭愍六憲)의 반포와 본격적인 기술 개발 - 2 >

    서기 1346년 1월 4일

    [연경전의 침실]

    대고려 제국에서 훈민정음과 공민육헌이 공식적으로 반포된 역사적인 다음 날 밤이 깊어가는 황제의 침실인 연경전에서는 왕기의 부인들이 모두 모여 전날 연경궁에서 있었던 어전회의에서 신하들과 담판을 잘 지은 것을 자축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황후마마께서는 머리가 정말 보통이 아니십니다. 중신들이 그리 나올 것을 어떻게 그리 정확히 예측하셨는지... 덕분에 신첩들이 여인이라며 얕보던 중신들의 코가 지금쯤이면 납작해졌을 것이옵니다."

    '그거야 사극 드라마 몇 편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

    속으로 뇌까린 노국공주가 여춘옹주의 말에 술잔을 높이 들며 대꾸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워낙 바쁘신 분이시라 앞으로도 자리를 비우실 때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안 계실 때는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똘똘 뭉쳐 그 자리를 대신하여야만 합니다. 저 또한 그러할 테니 여러분들도 시기와 질투 따위는 하지 마시고 서로의 힘을 하나로 합쳐야만 중신들을 상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공민육헌은 황제 폐하께서 앞으로 대고려 제국을 다스릴 통치이념이라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것이지요. 다들 연습한 대로 아주 잘 하셨습니다."

    - 쨍.

    세 여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술잔을 높이 들며 잔을 부딪칠 때 밖에서 내시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후마마. 황제 폐하께서 입실하시옵니다."

    - 드르륵.

    말과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왕기의 손에는 지난 열흘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침식을 잊고 개발한 결과물인 특이한 물건 하나가 들려있었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황금으로 제작된 납축전지와 그 전지에 연결된 막대 그리고 그 막대 끝에는 팔랑개비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물건이었다.

    왕기가 연경전의 침실로 왔다는 것은 노국공주를 찾아왔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기에 각자 자신의 침실로 가기 위해 여춘공주와 함께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던 벽하옹주가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을 보며 물었다.

    "폐하.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일본을 손쉽게 정벌할 신무기라오. 그렇게만 아시오."

    두 명의 옹주가 침실을 나서자 혼자 남은 노국공주가 왕기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페하께서 들고 계신 것은 선풍기로군요. 드디어 전기 모터 개발에 성공하셨군요."

    - 딸칵.

    노국공주의 말에 납축전지와 막대 사이에 있는 단락 스위치를 누르자 팔랑개비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며 강력한 바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위이잉.

    "맞소이다. 어떻게 보면 전기로 돌아가는 선풍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전기로 돌아가는 소형 보트의 모터 엔진이라오. 막대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이 물속에 잠길 강철로 제작된 프로펠러(Propeller)이니까. 자동차나 선박에서 사용되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로 구동되는 모터 엔진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오. 내연기관에서 사용하는 실린더도 필요 없고 상하로 움직이는 실린더의 힘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주는 캠이나 커넥팅 로드 따위도 전혀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오. 회전 운동이 똑같은 형태의 회전 운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이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드디어 전기 모터와 전기 발전기를 개발했소이다. 둘 다 작동 구조 자체가 간단하고 원리 또한 유사하니 개발에 큰 어려움은 없었소이다. 안에 들어가는 세부적인 부품들을 만들기가 어려워서 시행착오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전기 모터가 개발되었으니 일본 정벌은 따놓은 당상이외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확신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내가 개발한 대포는 시대를 앞서가는 물건이오. 포신의 재질이 그러하고 기어를 이용해 포신의 각도를 조종하는 방식 또한 그러하며 초기의 대포와 달리 포탄 자체가 화약이 들어가 있는 작렬탄이기 때문이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사용하던 화승총의 쇠구슬과 현대의 군인들이 사용하는 총탄의 차이를 생각하시면 그게 얼마나 오버 테크놀로지인지 잘 아실 것이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소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옵니까?"

    "명중률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형편없다는 것이오. 이건 대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포를 운영하는 군사들의 문제라오.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삼각측량법과 포물선의 공식을 이용해 적들이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또는 적들이 진행하는 방향을 예측해서 재빠르게 계산을 끝마친 다음 포신의 각도를 조절한 후 발사하여야만 하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그러한 계산이 순간적으로 가능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나와 그대 그리고 무지뿐이오. 다른 포병들은 공식을 알려줘도 순간적인 계산이 불가능하외다. 이건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어릴 때부터 매를 맞아가며 구구단을 외우고 몇 십 년 동안 계속해서 암산(暗算)을 해가며 살아가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이 시대에서 컴퓨터나 계산기를 만들 재주가 나에게는 없소이다."

    "하지만 쌍성총관부를 수복할 때 포탄의 명중률이 대단했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그 자리에 무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소. 무지가 정확히 계산하여 내린 명령에 포병대가 일제 발포를 했고, 대포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오. 하지만 일본 정벌 때에는 사정이 전혀 달라지지.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서 포를 쏴야만 하고, 무지가 모든 선박에 배치되어 있는 대포들을 다 통제할 수가 없소이다. 고려군의 배와 일본군의 배가 넓은 바다 위에서 흩어져 각각의 배가 알아서 전투를 벌여야 한단 말이오. 그래서 고민에 빠졌소이다. 최소한의 군비와 전력 소모로 일본군들의 배를 바다에서 대파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말이오. 포탄 한 발 한 발이 다 돈이니까. 포탄 한 발을 제작하는 것에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가오. 그래서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 전기 모터의 개발이오."

    "모터가 있으면 명중률이 올라갑니까?"

    "모터 자체가 명중률을 올리지는 못하오. 하지만 제아무리 활을 못 쏘는 사람도 과녁 바로 앞에서 쏘면 백발백중인 것과 똑같은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지."

    말을 하며 왕기가 품에서 설계도 한 장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내가 직접 설계한 '고려 해군용 고속일포정(高速一砲艇)'의 설계도요."

    잠시 설계도를 살펴보던 노국공주가 말했다.

    "이건 그냥 철판으로 된 지붕을 얹은 모터보트에 대포를 하나 실은 것이로군요."

    "그렇소이다. 바다 위에서 대포의 명줄률을 높이려면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쏘면 그만이오. 적들의 무기는 기껏해야 화살에 불과할 것이니 지붕을 철판으로 덮으면 우리 편이 다칠 일도 전혀 없소이다. 적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모터가 달린 쾌속정으로 순식간에 가까이 접근한 후 실려있는 대포 단 1문으로 적들의 배를 단숨에 격침시킬 수 있을 것이오. 포탄이 작렬탄이니까 말이외다. 그리고 크기가 조그마한 배이니 건조비 또한 아주 저렴하고 제작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오. 고려 해군에게 이런 배가 100척만 있으면 바다에서 일본군을 모조리 수장시킬 자신이 있소이다."

    "하지만 소첩은 갑자기 이런 걱정이 드옵니다. 납축전지로 작동하는 모터보트가 기름을 태워서 달리는 현대의 모터보트처럼 그렇게 빠른 속도가 날 것인가 하는 것과 납축전지를 제작하는 것에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는 걱정 말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질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 문제는 걱정할 것이 없소이다. 현대의 모터보트 엔진도 보통 15마력짜리를 달고 다니니까. 물론 40마력짜리 엔진도 있고 80마력짜리도 있지만 그런 건 최고급 최고속 모터보트에나 다는 것이라오. 그리고 납축전지의 힘을 얕보지 마시오. 1마력은 764W(와트)라오. 와트가 뭔지는 아시오?"

    "W = V(전압)  X I(전류) 아닙니까? 그런 건 공대를 나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상식이지요."

    "그렇소. 내가 제작한 납축전지는 대형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기준으로 해서 제작한 것이라오. 흔히들 80AH라고 부르는 것이지. AH 그러니까 암페어 아워라고 부르는 것은 25도의 온도에서 20시간 동안 전압이 10.5V로 내려갈 때까지 공급할 수 있는 전류의 양을 말하는 것이오. 납축전지 전압은 12V이오, 전류는 80 암페어이고. 그럼 W는 얼마가 되오?"

    왕기의 말에 노국공주가 곧바로 암산을 끝내며 즉답했다.

    "960W 이지요."

    "역시... 지금 이 시대에서 암산을 그리 빨리할 수 있는 자는 그대와 무지뿐일 것이오. 960W면 1마력이 훌쩍 넘소이다. 쾌속일포정에 납축전지 십여 개만 실으면 어지간한 현대의 모터보트 성능에 육박한다는 뜻이지. 쾌속일포정에는 사람이 단 두 명만 탈 것이니 무게에 대한 부담도 그리 없을 것이오. 조타수와 포수 두 명만으로도 충분히 작동 가능하니까. 그리고 납축전지의 제작비용도 염려할 것이 없소이다. 그대라면 내가 소뼈를 긁어모은 이유를 잘 알고 있을 텐데?"

    "고려 전역에서 소뼈를 모은 것은 '본차이나(Bone china)'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 옵니까?"

    "맞소이다. 본은 소뼈를 뜻하고 차이나는 중국이 아니라 도자기를 뜻하오. 소뼈를 태운 가루를 고령토에 섞어서 구우면 현대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본차이나 도자기가 탄생하지. 도자기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골회자기(骨灰磁器)를 뜻하는 것이오. 본디라면 고려의 청자와 백자를 전 세계에 팔아먹다가 타국에서도 유사한 백자가 개발되면 '짜잔'하고 본차이나 도자기를 생산해서 팔아먹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소이다. 납축전지의 개발과 상용화가 더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으니까. 황산 수용액이 들어가는 납축전지의 케이스를 뭘로 할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골회자기를 떠올린 것이라오. 지금처럼 황금을 사용하는 것은 제작 단가가 너무 비싸지오. 전부를 황금으로 하지 않더라도 도금 과정을 거쳐야만 하니까 제작방법도 복잡해질 테지. 하지만 골회자기로 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단가가 저렴해지오. 일반적인 도자기는 충격에 너무 약해 사용이 힘들지만 골회자기는 유백색의 아름다운 광택과 투광성이 높다는 장점 외에도 강성이 일반 도자기의 3배나 달해 잘 깨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나무로 만든 케이스에 골회자기로 제작한 케이스를 겹치면 저가의 납축전지를 대량으로 제작할 수가 있게 될 것이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앙리가 유럽에서 가지고 올 젖소들의 뼈를 이용할 생각이었으나 유럽과 고려의 소뼈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소? 현대의 한국에서도 밀양에 있는 본차이나 도자기가 유명하지 않소이까?"

    왕기의 긴 설명에 이해가 되었다는 듯 노국공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일단 변산반도로 날아가 최영 장군을 만나 지금 즉시 쾌속일포정을 대량으로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이오, 그런 다음 앙리와 신라면을 유럽에서 데려올 것이오.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해줄 것이 있소이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폐하."

    "그대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보관 중인 소뼈를 태운 가루를 관요에 보내어 비밀리에 납축전지 케이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겠소.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만 할 것이외다. 본차이나 제작 방법과 케이스 규격은 내가 정해두었으니 규격에 맞추어 대량으로 찍어만 내면 될 것이오."

    "소첩이 그리하겠사옵니다."

    "제작된 케이스를 국방과학연구소에 보내면 최무선이 납축전지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쾌속일포정에 들어갈 모터를 만들어 변산반도로 보낼 것이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모든 것들을 끝내주시오. 그러면 짐이 고려로 돌아오는 즉시 북쪽에 있는 거란과 여진족들과 담판을 지은 다음 곧바로 일본 정벌에 나설 것이오."

    "알겠습니다. 폐하. 소첩이 그리하지요.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엄중히 단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해줄 것이 있소이다."

    "무엇이옵니까?"

    "원에서 귀국할 때 끝까지 날 따르던 3천에 달하던 장정들을 기억하시오?"

    "네. 전하. 소첩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충성심이 대단한 자들이었지요. 소첩이 듣기로는 모처에서 그들을 군사로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만..."

    "맞소이다. 그들을 변산반도로 보내어 배를 제작하는 인부로 사용하는 한편 틈틈이 훈련을 시켜 대고려 제국의 정예 해군으로 육성 중이라오, 그들에게 입힐 해군복을 지어주시오. 일전에 그대가 만든 포병들의 군복처럼 해군만의 군복이 필요하오. 그대가 디자인하여 아녀자들과 함께 바느질을 해서 제작을 해주시오. 변산반도에 내려가 있는 최영 장군과 의논을 하면 될 것이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소첩이 책임지고 제작을 해놓을 테니까요. 폐하께서는 다치지 않고 몸성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품에서 골회자기의 제작법과 납축전지 케이스 규격이 적혀있는 서류를 꺼낸 왕기가 노국공주에게 전한 후 최영 장군을 만나기 위해 쾌속일포정의 설계도를 들고 변산반도를 향해 날아갔다.

    한편 그 시각, 경상북도 영천에서는 공민육헌의 반포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은밀한 회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북 영천에 있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 집안]

    대구와 경주가 인근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인 영천에서 알아주는 갑부 집안인 영천 이씨 집안에서는 같은 고을에 있는 알아주는 유학자 가문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집안은 고려 인종과 의종 때 강직한 충신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까지 지낸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인 가문이었다.

    상다리가 휠 듯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는 안방에서 이씨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자 가지고 있는 재력을 이용해 영천에서 개경에서 지내는 제사와 연회의 음식을 조달하여 보내는 관청인 선관서의 정 6품 직위인 '선관서승(膳官署丞)'을 맡고 있던 '이약(李約)'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사돈어른. 어서 오시오. 이리 밤늦게 초대해서 죄송하외다. 이리 앉으시지요."

    그러자 밤늦게 초대를 받은 영천 지방의 관리직을 맡고 있는 '직장동정(直長同正)' '정유(鄭裕)'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사돈께서 부르시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야지요. 무슨 일로 부르신 것이옵니까?"

    "공민육헌에 대해서 의논하고자 하오."

    밤이 깊어가듯 영천에서 알아주는 대지주와 사대부 간의 만남이자 공민육헌에 불만을 가진 두 사람의 대화도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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