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93화 (93/171)
  • #93. < 공민육헌(恭愍六憲)의 반포와 본격적인 기술 개발 - 1 >

    서기 1346년 1월 3일

    [개경의 만월대]

    신년을 맞아 사흘 전 당당하게 제국으로 선포한 고려의 황궁이 있는 만월대 쪽은 정초부터 난리법석이 나고 있었다. 특히 부원배총 앞은 복잡하기 그지없어 마치 러시아워에 걸려 꽉 막힌 도로를 보는 듯했다.

    왕기가 내린 '수레 징발령'에 의해 모여든 엄청난 숫자의 수레가 무언가를 잔뜩 싣고 와 부원배총 앞쪽에 짐을 내린 후 순서대로 길게 줄을 서서 만월대 앞에서 두 가지를 가득 싣고 각자 정해진 곳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레의 곁에는 십여 명의 병사들이 엄중하게 호위를 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짐을 내린 수천에 달하는 수레들이 전국 각지로 싣고 가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기가 참파까지 직접 날아가 비행선으로 싣고 온 막대한 식량의 일부였고, 다른 하나는 지난 열흘간 인쇄소에서 밤을 새우며 찍어낸 훈민정음해례본 책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원배총 앞에는 수레들이 부린 짐들이 점점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천지사방으로 진동을 하고 있었다.

    사대부를 빼고는 절대다수가 문맹인 고려 백성들에게 문자를 깨우치게 해 줄 혁신적인 책자인 훈민정음햬례본이 왕기가 부원배들을 척결하며 나눠준 식량에 이어 또 한 번 백성들에게 나눠줄 곡식들과 함께 고려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현장이었다. 한민족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한글 날이 10월 9일이 아니라 1월 3일로 바뀌게 될 이런 경사스러운 순간에 연경궁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달리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연경궁의 어전회의]

    어전회의에 참석한 모든 중신들의 손에는 황궁 밖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 책자가 한 권씩 들려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마치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왕기가 신기술 개발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에 계속 처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는 바람에 대신 참석한 노국공주와 평상시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던 배가 조금씩 불러가고 있는 여춘옹주(女春翁主)와 벽하옹주(霹夏翁主) 마저 어전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숫자에서 밀릴 수 없다는 듯 왕기의 모든 부인들이 총출동하였고, 그들의 얼굴에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척무관과 무지 그리고 무장까지 나와서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마치 일촉즉발과도 같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영의정인 이제현이 앞으로 나와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런 중요한 순간에 황제 폐하께서 자리에 안 계시면 소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그러자 노국공주가 즉답했다.

    "폐하께서는 당분간 자리를 계속 비우셔야 하기 때문에 황비인 내게 전권을 위임하고 가셨으니 영의정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주저 없이 말씀하세요. 나의 대답이 곧 황제 폐하의 대답일 테니까요."

    영의정인 이제현이 좌의정 이곡과 우의정 백문보를 할끗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를 힘차게 흔들며 목청껏 소리질렀다.

    - 파락. 파라락...

    "폐하께서는 소신들을 깜쪽같이 속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게 무슨 증거라는 것이죠? 그대들도 훈민정음 반포에 다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대신 폐하께서는 실학의 즉각적인 중흥을 연기하고 과거까지 개최하기로 합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황비마마의 말씀도 맞습니다만... 훈민정음 책자 맨 앞장에 '공민육헌(恭愍六憲)'이라는 것이 실릴 것이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민육헌이 뭐 어때서요? 고려를 건국하신 태조께서 고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훈요십조'를 만들었듯이 황제께서도 제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만든 것입니다. 공민육헌은 앞으로 대고려 제국의 초석이 될 것이며, 대고려 제국이 나아갈 길을 알려줄 나침반과도 같은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자신이 꿈꿔왔던 정치를 펼칠 때 신하들인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 자는 황제 폐하를 모독하는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 목을 쳐도 무방할 것입니다."

    노국공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당장이라도 영의정의 목을 칠 듯 척무관과 무지 그리고 무장이 눈을 부라리며 한걸음 성큼 앞으로 나서더니 진득한 살기를 뭉클하게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국공주가 다급히 손을 흔들며 말렸다.

    "죽이면 아니 됩니다. 여기 어전회의에 참석해 있는 신하들은 황제께서 고르고 고른 중신들입니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 분들이니 제 허락 없이 목을 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세요."

    - 존명!

    한편의 잘 짜인 연극처럼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가자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지는 아는지 영의정이 기세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공민육헌의 내용은 지나치게 파격적이며 고려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들입니다. 소신이 일일이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공민 1헌 : 태조께서 그리하셨듯 고려는 부처의 호위를 받아야 하므로 숭불 정책을 유지한다. 하지만 고려는 다른 종교 역시 차별을 두지 않으므로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보장하는 바이다. 단 교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뜯거나 교인들을 폭행 또는 성추행을 하며 인신공양을 하는 종교 그리고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들을 모두 부정하는 종교는 사이비로 규정해 포교활동을 금지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공민 1헌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로군요. 문제 될 것이 있나요?"

    잠시 고민을 하던 영의정이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공민 2헌 :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인권을 받고 태어나므로 모두 평등하다. 따라서 고려 제국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신분의 차이가 없이 평등하며, 직업, 출신지, 성별, 피부 색깔, 종교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단 황제만은 특별하니 이는 고려 제국의 구심점이 되는 황제가 건재해야만 고려 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만백성들이 편히 살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 또한 문제가 없지 않나요? 그대들이 그렇게 존경하며 따르는 유학의 시조인 공자께서 논어(論語)의 계시(李氏) 편에서 말씀하셨어오. '불환빈이환불균 불환과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이라고 말이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러자 영의정이 자신의 학문을 자랑하듯 즉답했다.

    "백성이 가난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하며,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안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유학의 기본이 이런 평등사상 아닌가요? 설마... 영의정께서는 본인은 날 때부터 아주 존귀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보다 훨씬 미천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 그럼 아주 실망인데요. 공민육헌에 따라 황후인 나조차도 저잣거리에 있는 백성들과 똑같은 신분일 뿐이에요. 죄를 지으면 다른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대입해 먼저 선수를 치는 노국공주의 말에 잠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던 영의정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 문제는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들이 다음부터 줄줄이 나오니까요. [공민 3헌 : 모든 고려의 땅은 기본적으로 황실의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토지와 대지에 대해서는 그 소유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합당한 상속세만 황실에 납부하면 땅의 대물림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차후 진행될 토지조사에 있어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밝혀진 모든 토지와 대지는 황실로 귀속시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조만간 고려 전역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난리가 날 것이 무엇인가요? 합법적으로 취득한 모든 땅은 황제 폐하께서 그 권리를 전적으로 인정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불법적으로 취득한 땅까지 모두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본인이 도둑놈인 걸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설마 영의정께서도 불법적으로 취득한 땅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럼 최대한 빨리 황실에 납부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황제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엄히 다스릴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다음으로 넘어가시죠."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영의정이 약간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영민하심은 신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황후께서도 이리 영민하실 줄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공민 4헌 : 모든 고려 백성들은 자신의 수익 1할을 황실에 세금으로 바친다. 이 1할이라는 숫자는 고려 제국이 지속되는 한 영구불변이며 그 어떤 황제라도 세금을 그 이상 올릴 수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바이다. 단 본인이 직접 경작하며 땀을 흘리지 않고 소작농을 통해 얻은 수익은 8할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이게 공민육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입니다. 고려 전역에 퍼져 있는 모든 대지주들이 불만을 가지고 반발하고 나설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 전권을 위임받은 황후인 제가 명쾌하게 답변을 해드리지요. 황제께서는 제게 이리 말씀하셨어요. 공민육헌으로 반포한 조세안에 불만을 가지고 반발하는 대지주들의 숫자는 고려 전역에 많아봐야 1만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대지주 1만을 죽여서 수백만에 달하는 소작농들이 행복해진다면 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반발을 하는 자들이 있으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직접 목을 치실 것이라고 제게 말씀하셨으니... 영의정께서 그들을 잘 다독거려 주세요. 목이 잘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요. 황제 폐하께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피를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요?"

    말 안 듣고 까불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면전에다 대놓고 하는 협박성의 말에 영의정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지더니 답했다.

    "하지만... 자칫하면 대지주들이 손을 잡고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소신이 생각하기에도 8할은 지나치게 과한 세금입니다. 조금 낮추시는 게 어떠할는지요?"

    "영의정께서는 지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계십니다. 황제 폐하께서 대지주들에게 세금을 많이 뜯기 위해 그러한 내용을 넣으신 것이 아니에요. 고려에 살고 있는 만백성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한 대지주들이 평생을 편하게 먹고살 만한 땅만 가지고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매각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땅을 강제로 뺏겠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시중에 매각 물로 나온 대지주의 땅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폐하께서는 기준이 명확하신 분입니다. 대지주 1만보다는 그 땅을 부쳐먹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소작농 수백만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순간 잠자코 있던 여춘옹주가 부른 배를 내밀며 앞으로 나서서 한마디 보태었다.

    "조직적으로 반란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세요. 내가 맡고 있는 국가정보원에서 사전에 동향을 샅샅이 파악해 폐하께 단 한 명의 이름도 빠짐없이 즉각 보고를 올릴테니까. 그 명단에 행여나 여기 계신 분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 열심히 고려어를 익혔는지 벽하옹주도 나서서 유창한 고려어로 한마디 거들었다.

    "대지주 1만 따위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대고려 제국 정규군의 위력을 모르는 분이 여기 계신가요? 만약 난을 일으킨다면 폐하께서는 군대를 동원해 그들을 단숨에 격파해버리고 모두 죽여버리실 것입니다."

    왕기의 부인들이 차례로 나서며 수틀리면 모조리 다 죽여버린다는 식의 말을 하자 아연실색한 영의정 이제현이 헛기침을 하며 공민육헌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크흠... [공민 5헌 : 모든 고려 제국의 백성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16세에서 30세 사이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본인이 편한 기간을 택해 3개월간의 군사 훈련을 받아야만 하며, 남자의 경우에는 그 이후 21개월의 복무 기간을 더 가진다. 단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피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군사 1,000명이 군 복무를 끝마칠 때까지의 재정을 지원하는 자에게는 3개월간의 군사 훈련만으로 복무를 인정한다. 그리고 자식을 군대에 보낸 집안에게는 자식이 군 복무 중인 동안 한 명당 세금의 2할을 감면해 주며, 그 숫자의 합이 네 명이 될 시에는 8할이 아니라 세금을 전액 감면해 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주국방이 뭔지 모르세요?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피로 물든 게 몇 년이나 지났다고 불만을 가진다는 건가요?"

    "소신도 이 내용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이미 늙을 대로 늙은 소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고려 제국에 강력한 군대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돈이 있는 자들에게도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피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 주고 있으니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재정의 확보 또한 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에게까지 3개월의 군사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그러자 노국공주가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물 흐르듯 줄줄 답했다.

    "영의정께서는 또다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군요. 이건 군사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고려 백성들의 삶은 험난하고 고달픕니다.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이지요. 그렇다고 전국에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를 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단기간에 재정이 너무 많이 소모될 뿐만 아니라 당장은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막상 학교를 지어도 백성들이 삶에 쫓기어 등교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할 테니까요. 그런 백성들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황실에서 3개월간 무료로 먹이고 재워주며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겠다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이에요. 3개월간의 훈련과정에는 훈민정음을 배우고 기본적인 산수를 배우는 과정이 포함될 것입니다. 고려 백성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양성하는 것이지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모든 고려 백성들이 훈민정음을 모두 깨우치게 될 것이에요. 이제 그만 마지막으로 넘어가시지요?"

    노국공주의 말에 영의정이 자신이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공민 6헌 : 고려는 해상제국임을 선포하고 모든 백성들이 바다로 진출하여 전 세계와 교역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교역할 물건들이 천지사방에 널려있다. 따라서 모든 배의 건조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을 것이며 고려는 세계와의 교역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이러한 개방정책은 고려 제국의 국시이니 그 어떤 황제도 이를 거역해 쇄국 정책을 펴지 못한다는 것을 초대 황제의 이름으로 못 박는 바이다.]"

    영의정이 마지막 육헌을 읽자 노국공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문제가 없다고 하시니 어전회의는 이것으로 끝마치도록 하죠."

    그 순간 우의정 백문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황후마마. 소신에게 하나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물어보세요."

    "황제께서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은 소신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수레 징발령을 내려 또다시 고려 전역에 식량을 나누어주는 것은 환영할 바이나... 소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수레에 싣고 온 소뼈들은 어디에 사용하실 것입니까? 전국에 있는 모든 소뼈를 수레에 실어서 보내라고 명하는 바람에 만백성들이 사골로 우려낸 곰탕을 먹지 못하고 있다 하옵니다. 시중에 소뼈가 사라져 소신도 집에서 즐겨 먹던 국밥을 먹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백문보의 농이 섞인 발언에 공민육헌을 두고 신하들과의 담판이 어느 정도 끝났다는 생각에 노국공주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건 황제 폐하께서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끌어모으신 것이니 나중에 폐하께 직접 여쭈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어전회의는 이것으로 끝마치도록 하겠어요."

    노국공주와 그 일행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가자 신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이오. 황후마마께서는 이 일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것 같소이다. 안 그래도 사대부들의 불만이 큰 상태인데 여기에 대지주까지 가세하면 정말로 고려 전역에서 난이 일어날지도 모르오."

    영의정의 발언에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좌의정 이곡이 답했다.

    "소신은 그리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지금 고려의 만백성들은 황제 폐하 때문에 그 어느 시대보다 배불리 먹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고토까지 별다른 피해 없이 단숨에 회복한 황제 폐하를 성군을 뛰어넘어 거의 신격화하다시피 하고 있지요. 저잣거리에서 황제의 욕을 했다가는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 죽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예요. 사대부나 대지주가 난을 일으키려면 기본적으로 거기에 따르는 백성들이 있어야만 하는데... 지금의 고려 백성들은 절대로 난에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화가 나서 죽창을 쥐고 사대부와 대지주들을 죽이려고 들지도 모르지요.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합니다. 흥분한 사대부들과 대지주들을 다독거려 함부로 난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일 것입니다."

    한편 그 시각 국방과학연구소에 있던 왕기는 자신이 발명해 놓은 것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위이잉...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좋았어. 이것으로 일본과의 전쟁은 이미 이긴 것과 다름없다.'

    그때였다. 최무선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날아온 전통을 읽으며 보고했다.

    "폐하. 만월대 앞에 소뼈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다고 하옵니다. 어떡할까요?"

    "계획한 대로 지금 즉시 이리로 가지고 오라고 하거라. 일단 소뼈들을 푹 삶아야 할테니까 말이야."

    잠시 후 소의 사골을 삶을 때 발생하는 특유의 구수한 향이 연구소 일대를 뒤덮는 가운데 왕기가 주도하는 기술 개발의 시대가 본격적인 막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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