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90화 (90/171)
  • #90. < 제국(帝國)의 선포 그리고 새로운 대적자 - 2 >

    프랑스 남부 지방인 프로방스에 위치한 대도시인 마르세유(Marseille)에서 출발하는 위고의 목표는 리옹(Lyon)을 거쳐 브루쥬(Bourges)와 오를레앙(Orléans)을 통과한 후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Paris)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아직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기 전인 시절이라 파리의 센 강변에 위치한 루브르(Louvre) 궁전에 머물고 있는 필립 6세를 만나는 것이 그의 최종 목적이었다.

    하지만 값비싼 안경을 살 정도의 재력이 있고, 고위 사제인 추기경의 신분에 있는 위고가 시종도 거느리지 않고 단독으로 말을 타고 무려 700km에 가까운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파리까지 가는 동안 그가 가진 신의 치유력을 시험해볼 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위고의 얼굴에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파리까지 가는 동안 대도시에 들려 고위 귀족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면서 가야 하겠어. 내가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면 나를 성인(聖人)이라 추앙할 것이야. 아니지. 난 성인을 뛰어넘은 신의 사도라고. 조만간 교황의 자리에 올라 이전의 교황들처럼 실질적으로 전 유럽을 다스리게 될 것이야. 신께서 원리를 알려주신 신무기까지 개발하면 전 세계를 다스리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려면 신무기를 개발할 자금과 날 지켜줄 세력이 필요하다. 내가 치료해 준 귀족들에게 재물을 잔뜩 뜯어내고 날 추종하도록 만들어야만 해.'

    신에 의해 왕기를 막을 대적자로 선택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고, 전 세계의 책을 모아 탐독하는 것이 취미라 눈이 나빠져 값비싼 안경을 써야만 할 정도로 박학다식한 위고였지만 중세적 사고방식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가진 것 없고 권력도 없는 백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우연한 기회에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질병을 치료해 준 백성들의 숫자는 채 열이 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믿기지 않는 능력이 프랑스 전역에 퍼져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죽어가는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장님의 눈을 뜨게 만든 그를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재림(再臨)이라고 부르는 백성들이 파리까지 가는 그의 뒤를 대규모 행렬을 이루며 따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위고가 대장정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밤이 깊어가고 있는 고려에서는 은밀한 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경의 송악반점]

    개경에서 알아주는 최고급 술집인 송악반점의 한 밀실. 중국에서 홍건적을 무찌르고 방금 전 개경으로 돌아온 척무관이 자신을 불러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속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하아... 내 집안인 척씨 집안과 최영 장군이 개경을 비운 틈을 타 최씨 집안 사람들까지 다 모였군. 이 사람들이 아주 작정을 했어.'

    그때였다. 윤관을 따라 여진 정벌에 나섰다가 혁혁한 공을 세우며 무신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척준경의 후예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무공까지 익히고 있는 척무관의 부친이 입을 열었다.

    "아들아. 왕이 정말로 제정신인 게 맞느냐? 혹시 광기에 빠졌거나 망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냐는 말이다."

    무례한 질문을 하는 자신의 아버지의 말에 척무관의 말투가 단박에 퉁명스러워졌다.

    "아버지. 말씀을 좀 가려서 하시지요? 소자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시며 고려의 지존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공민왕 전하께서는 당연히 제정신입니다. 왕위에 오르신지 단 며칠 만에 쌍성총관부를 격파하고 더 넓은 고구려의 옛 땅인 고토까지 되찾아온 그분께서 제정신이 아닐 리가 있겠습니까?"

    그 순간 척무관의 친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런 분이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형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옛말에 중국인들은 소인배라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는 것을 격언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그자들이라고요. 잠시 원나라가 약화된 틈을 타 고토를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그 땅의 넓이는 고려 땅의 몇 배가 되고,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흉포하기 짝이 없는 거란족과 여진족들입니다. 고려의 미약한 힘과 적은 병력으로 그 넓은 땅을 무슨 재주로 다스린단 말입니까? 형님. '전연의 맹약(澶淵之盟)'이 뭔지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잘 알고 있다. 한때 강성했던 거란족이 요(遼)나라를 세우며 송나라에게 굴욕적인 협약을 강요해서 맺었지. 송은 요에게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조공으로 바쳐야 하고, 송과 요의 황제는 형제 관계를 맺는데 지금 당장은 송의 진종이 요의 성종보다 나이가 많아서 송이 형님이 되나, 후대에는 나이로 따져서 형과 동생을 정한다는 내용의 맹약이야."

    "그렇습니다. 형님. 송의 황제가 요나라 황제의 동생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맹약이었지요. 그런 굴욕적인 맹약을 맺는 바람에 한족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고, 거란족은 한족에게 제대로 찍혔습니다. 결국 거란의 요나라는 망했고 지금은 제대로 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한족은 거란족이라면 이를 빡빡 갈고 있고 그 어떤 교역도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원나라가 망하고 중원에 한족의 나라가 들어서게 되면 제일 먼저 거란족부터 징벌하려고 들 것입니다."

    "동생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형님. 지금 공민왕이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은 훗날 큰 복수를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형국은 고려의 왕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홍건적을 황하에 수장시켜 한족에게 원한을 사게 되었고, 그 도움을 빌미로 강제로 땅을 빼앗은 원나라의 몽골족에게도 원한을 사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원나라에게 돌려받은 고토를 다스리겠다고 나서면 그곳에 살고 있는 거란과 여진족에게도 원한을 사게 되겠지요.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공민왕이 조만간 일본 정벌에 나설 거라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파다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고려가 피로 물들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고려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서 여러 민족들의 합공에 의해 몰살을 당할지도 모른다고요. 공민왕은 고려인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원흉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 쾅!

    잠자코 듣고 있다가 분을 참지 못한 척무관이 주먹으로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며 말했다.

    "닥치거라! 어렸을 때는 제발 죽여달라고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울던 놈이 머리 좀 컸다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런 일은 고려의 지존이신 전하께서 고민하여 알아서 잘 풀어나가실 일이지 우리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하의 뛰어난 능력이라면 네놈이 우려하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전하께서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잣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니라."

    그 순간 누군가가 나서며 말했다.

    "그렇게 뛰어나신 분이 본인이 한 약속은 왜 안 지키시는 것이오?"

    척 무관이 방금 전 입을 연 최씨 집안의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약속을 안 지키신다는 것이 무슨 말이오?"

    "척씨와 최씨 가문이 대도에 계셨던 전하를 고려의 왕으로 밀어주는 대신 전하께서도 양쪽 가문을 적극적으로 우대하기로 약속하셨잖소? 쌍성총관부와 고토를 회복하는 그런 엄청난 일에 양 가문이 무엇을 했단 말이오? 그냥 멀뚱멀뚱 구경만 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소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이자춘이라는 자를 '동북면병마사'라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하지를 않나... 그나마 척씨 집안에 속한 척노리 상장군은 그런 업적에 한몫 끼기라도 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그런 큰 업적에 최씨 가문은 아무것도 담당한 것이 없단 말이외다. 최씨 집안의 큰 어르신인 최영 장군께서는 계속 개경에만 머물러 계시다가 지금은 미천한 것들과 함께 변산반도에 처박혀 하루 종일 배만 만들고 있소. 이러고도 전하께서 약속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겠소이까?"

    "일본 원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배이외다. 최영 장군께서 하시는 일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오."

    "그래봤자 막상 원정에 실패하게 되면 헛일밖에 더 되겠소? 잊었소이까? 여몽 연합군이 2번이나 일본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말이오. 1차 정벌 때야 잘 몰라서 그랬다지만 2차 정벌 때에는 무려 15만에 달하는 병력과 2천 척에 달하는 배를 띄웠소이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한 평의 땅도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오. 일본은 정벌하기가 만만한 나라가 절대 아니외다. 두 나라가 힘을 합쳐도 못했던 일을 고려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겠소?"

    "전하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실 것이오."

    "뭐 지금이야 전하께서 워낙 잘나가시니까 아무도 감히 거역을 못하고 있지만... 잊지 마시오. 고려의 국력을 쏟아부은 일본 정벌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전국 각지에서 반항의 불길이 치솟아 오를 것이라는 것을 말이오. 전하께서 전통적인 유학을 버리시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실학을 중시하는 바람에 돌아서 사대부들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전하께서는 그 책임을 지셔야 할 것이외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척무관이 속으로 뇌까렸다.

    '고려를 전하께서 꿈꾸는 나라로 만들려면 일본 정벌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만약 실패하게 되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야. 양쪽 집안에서 내게 대놓고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전국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뜻이니까.'

    척 무관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렇게 또 하루의 밤이 흘러가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왔다.

    서기 1345년 12월 24일

    [연경전의 침실]

    밤새 운우지정을 나눈 노국공주가 어전회의에 나가기 위해 차비를 하는 왕기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며 물었다.

    "폐하. 무엇이 그리 폐하를 기쁘게 하나이까?"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사랑하던 그대와 결혼하여 이렇게 아침을 맞이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이까?"

    욍기가 양손으로 자신이 허리를 붙잡으며 하는 말에 노국공주가 간지럽다는 듯 몸을 비틀며 대꾸했다.

    "전하. 소첩의 말이 그 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잖습니까?"

    "별다른 이유가 있겠소? 한민족의 염원이었던 만주를 마침내 내 손에 넣었기 때문이지.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만주는 동양의 발칸반도라고 말한 적이 있었소이다. 그만큼 여러 민족과 국가들의 이익이 얽혀있는 땅이라는 뜻이지.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만주라는 지명조차도 모를 것이오. 청나라 이후에 생긴 지명이니까. 하지만 만주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땅이라오. 철광석을 비롯한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한 땅이기 때문이지. 흑룡강이 왜 흑룡강이라 불리는 줄 아시오?"

    "각종 부유물들이 많아 강의 색깔이 검게 보여서 흑룡강이라고 불리는 것이잖습니까?"

    "맞소이다. 강의 색깔이 검은 것은 강물에 철분이 대량으로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오. 근처에 대량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뜻이지. 그뿐만이 아니오.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겠지만 만주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 묻혀 있소이다. 현대의 중국이 공산화가 되면서 어려워진 경제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만주의 '대경유전(大慶油田)'에서 나는 석유 때문이었소. 풍부한 철광석과 석유가 있기 때문에 만주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공업지대로 발전되었지. 2020년 경에는 과거에 비해 비록 좀 쇠락했지만 만주에게 붙여진 이름이 중국의 장자(長子)라는 명칭이었소. 그만큼 대단한 땅이라는 뜻이지."

    "전하께서 왜 기뻐하시는지 알겠사옵니다. 드디어 한민족에게도 석유가 묻혀있는 땅이 있게 되었군요. 언젠가 그곳에서 석유를 캐게 되면 중국이 붙인 큰 경사라는 뜻의 대경유전이라는 이름 대신 제7광구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노국공주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은 왕기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만주에는 북미의 프레리(Prairie), 남미의 팜파스(Pampas)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지대라고 불리며 유럽의 빵 바구니(Berad basket of Europe)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흑토(Chemowem : 체르노젬. 작물이 자르는데 필요한 토양 유기물이 풍부해 비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비옥한 검은빛을 띠는 땅을 뜻함) 지대에 비견될 만한 비옥한 땅이 존재하오. 요하강과 흑룡강의 퇴적물이 오랜 시간 쌓여서 만들어진 남북 길이 약 1000km, 동서 너비 약 400km에 달하는 한반도 보다 넓은 평야 지대이자 전 세계에서도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동북평원(東北平遠)'이 바로 만주에 있소이다. 아직 개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개간이 되기만 하면 한민족이 영원히 자급자족할 식량을 그곳에서 키울 수 있을 것이오. 이러니 내가 어찌 아니 기쁘겠소?"

    "폐하. 조정 대신들의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내시의 목소리에 왕기가 노국공주와 알콩 거리던 시간을 끝내고 아침 일찍 열리는 어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침실을 나섰다.

    [연경궁의 어전회의]

    어전회의에 참석한 왕기가 조정의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을 열었다.

    "어제 말한 것처럼 짐은 고려를 제국에 맞게 새로이 편성할 것이오. 그 첫 번째로 지역의 편성이오. 고려는 이전처럼 한반도에만 국한된 좁은 땅을 지닌 나라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라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이까?"

    - 네. 폐하. 세이경청하겠습니다.

    신하들의 대답에 왕기가 미리 준비를 한 듯 즉각적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다가오는 신년을 맞이해 고려를 제국에 걸맞게 기존의 5도 3경 2계의 체제를 바꾼다. 단 백성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는 선에서 바꾸노라. 5도 3경 2계 체제상에서 5도로 불리던 양광도, 서해도, 교주도, 전라도, 경상도를 그대로 두고 북계와 동계를 전격적으로 폐지한다. 이는 쌍성총관부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군사 편제 목적의 양계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계를 강원도로 바꾸고, 동계를 함경도로 바꾼다. 또한 새로이 얻은 북쪽의 옛 고구려 땅을 3분할하여 나누노니, 요하강 동쪽 일대를 고구려의 위대한 정복왕이었던 광개토 대왕의 이름을 따 광개도라 하고, 심양시(瀋陽市)에 광개도를 다스리는 광개목을 둔다, 고토의 가운데 부분인 송하강 일대를 그 지역에서 발흥했던 옛 부여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부여도라 부르며, 길림시에 부여목을 둔다. 맨 서쪽인 우수리강 유역은 발해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발해도라 부르고, 목단강시(牡丹江市)에 발해목을 둔다. 또한 제주국을 제주도로 부르며 서귀포에 제주목을 둔다. 토번 지역을 토번도라 부르고, 토번에 있는 샹그릴라시(香格里拉市)에 토번목을 둔다. 즉 기존의 5도에 새로운 5도를 더해 총 10도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승상들은 짐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소?"

    왕기의 물음에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던 영의정 이제현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네. 전하. 제주도와 토번도는 쉽게 이해를 하겠으나 옛 고토를 삼분한 광개도, 부여도, 발해도는 보다 정확한 지역 구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짐이 조만간 병사들을 데리고 그곳을 다녀와서 자세한 경계 구분을 지도상에서 해줄 것이니 그리 아시오. 그리고... 고려의 도읍이 있는 개경을 특별한 도시라 하여 특경(特京)이라 부르고, 평양을 서경(西京), 한양을 중경(中京), 경주를 동경(東京) 그리고 고토에 있는 장춘시를 북경(北京)이라 한다. 이들 4곳의 도시를 황실에서 직접 다스린다는 뜻에서 직경(直京)이라 칭한다. 기존의 3경에 중경과 북경 두 곳을 추가해 5경으로 바꾼다는 뜻이오."

    왕기가 알아들었냐는 듯이 바라보자 영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왕기가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제국에 걸맞게 변경된 군사 편제를 알려드리겠소이다..."

    왕기의 염원처럼 고려를 강대한 제국으로 키우기 위한 본격적인 내정 개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들 또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힘을 규합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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