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 제국(帝國)의 선포 그리고 새로운 대적자 - 1 >
서기 1345년 12월 23일
[만월대 연경전]
원나라 황제의 요청을 받아 물경 30만에 달하는 홍건적을 단숨에 황하에 수장시키고 도왕에 이어 사왕 중에 한 명인 팔비신장(八譬神掌)마저 간단하게 쳐죽인 왕기가 밤늦게 고려로 돌아오자마자 노국공주만을 대동한 채 어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들 짐이 또다시 거둔 승전보를 자세히 전해 들었을 것이오. 좀 전에 보여준 원나라 황제와의 협약서에 의해 고려는 이제 한민족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가지지 못했던 광활한 영토를 가지게 되었소. 이는 마땅히 제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오. 따라서 다가오는 신년 정월 초하루를 기해 고려의 국호를 '대고려제국'이라고 바꿀 것이며, 모든 제도와 군대, 정치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풍습과 관습 등을 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조금씩 바꾸어 나갈 것이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 짐은 대고려제국의 첫 번째 황제로 등극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길 바라오."
비행선을 밀며 고려까지 날아오면서 생각을 정리해둔 듯 왕기의 발언은 거칠 것이 없었고, 왕위에 등극한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쌍성총관부를 격파하고 더 넓은 만주 땅도 모자라 토번과 징더전의 땅까지 획득한 왕기의 말에 감히 시비를 거는 신하들은 없었다.
- 경하 드리옵니다. 황제 폐하.
허리를 깊숙이 숙인 신하들의 외침 속에서 왕기가 옥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대고려제국의 첫 번째 과제는 일본 정벌임을 절대 잊지 마시오. 자고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 하였소이다. 고려와 가까이 붙어서 끊임없이 괴롭히는 일본을 정벌해야만 아무런 걱정 없이 대고려제국이 세계로 진출할 것이외다. 정월 초하루까지 매일 진행될 어전회의에서는 제국의 기틀을 만들 각종 방책들을 논의할 것이고, 본격적인 일본 정벌을 위한 정책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 알겠사옵니다. 황제 폐하.
[연경전의 침실]
침실로 들어온 왕기가 곧바로 지필묵을 찾자 노국공주가 말렸다.
"폐하. 이제 막 전장에서 돌아오셨는데 휴식을 취함이 어떠하옵니까?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없지 않사옵니까?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실까 봐 소첩이 걱정이 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노국공주의 만류에 잡았던 붓을 내려놓으며 노국공주를 꼭 끌어안은 왕기가 대꾸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소이다. 잊지 마시오. 규모와 상관없이 하나의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새로운 정치의 장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오. 당장 새롭게 얻은 만주 땅과 토번 그리고 징더전을 누구에게 맡길지 운영은 어떻게 할지부터 결정해야만 하오. 그렇지 않으면 몇 안 되는 중신들끼리 또 정치 다툼을 할 테니까. 그리고 일본 정벌을 나서기 전에 개발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소이다. 너무 걱정 마시오. 잊으셨소? 본인이 화경에 달한 무공의 고수라는 것을 말이오. 이 정도로는 끄떡없소이다."
노국공주를 안심시킨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소이다. 그대가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미리미리 만들어둔 낙하산 덕분에 이번에 홍건적을 토벌하는 작전이 아주 전격적으로 끝났소이다. 원나라 황제가 닭 쫓던 개처럼 입을 헤 벌리고 떠나가는 비행선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는구려."
"사실은 그게 다 폐하 덕분이지요. 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원하시는 비행선의 제작과 군인들의 통일된 군복을 만들기 위해 심왕부에서부터 절 따르던 천명이 넘어가는 아낙네들은 이미 바느질에 도통해 있사옵니다. 비행선용 가죽도 거뜬히 꿰는데 비단으로 낙하산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요."
"그렇구려.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야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오. 근데 본인이 없는 동안 왕실을 그대가 지켰을 터인데 그동안 별일이 없었소?"
"두 가지 큰일이 있었사옵니다."
"그게 무슨 일이오?"
"하나는 전국의 도자기 장인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전하께서 제게 알려주신 도자기와 관련된 기술들을 알려 주는 한편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도자기 기술 특히 고려청자와 관련된 기술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문서로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지요. 도자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글을 보면 똑같이 만들 수 있도록 태토(胎土)부터 시작해서 도자기를 빚는 법, 굽는 법, 가마에 불 때는 법, 유약을 제조하고 바르는 법, 백토를 집어넣어 문양을 만드는 상감(象嵌) 기법까지 어떠한 기술도 빼놓지 말고 잘 정리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후세에 고려청자와 상감 청자의 제작 비법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제게 알려주신 환원 기법을 이용해 전하가 만족할 만한 백자를 만드는 자에게 포상금으로 은 1,000냥을 하사할 것이고, 그 관요의 책임자에게는 왕실의 이름으로 영전을 약속했으니 조만간 눈처럼 새하얀 백자가 구워질 것입니다."
노국공주의 말에 왕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게 고작 열흘에 불과할 뿐인데 그것이 가능했단 말이오?"
"전하. 전 현대인입니다. 통신의 위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현재 고려의 뛰어난 도공들 대부분은 관요(官窯)에 소속되어 있고, 관요는 강진과 부안 일대에 모여져 있습니다. 또한 강진과 부여에는 이미 통신소가 설치되어 있지요. 제가 한 것은 왕실 통신소를 이용해 그들을 각 지방의 통신소에 모이도록 한 것뿐입니다. 물론 중간에 통신원들의 통역이 필요하긴 했습니다만 그들과 저간에 일종의 비대면 세미나가 개최된 것이지요. 게다가 관요에는 지방관장(地方官匠)인 도자기공과 행수대장(行首大匠), 행수부장(行首副匠) 등의 관리들이 조정의 녹을 먹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 고려의 정비인 제가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하는데 감히 그 누가 거역을 하겠사옵니까?"
- 쪼오옥.
왕기가 노국공주에게 길게 입맞춤을 한 후 말했다.
"아주 잘하셨소. 그대 때문에 내가 할 일이 많이 줄어드는 구려."
"소첩이 조금이라도 전하의 일을 덜어드려야지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이 궁금하오?"
"고려의 청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고려청자의 그 비색(翡色)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특히 상감으로 문양을 새긴 청자는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청자의 발원지인 송나라에서도 거꾸로 수입을 해갈 정도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굳이 백자를 개발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별 이유가 있겠소? 잘 팔아먹기 위해서이지. 이전에도 백자를 만드는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청자가 유행한 것은 송나라의 휘종이 '황제의 그릇은 모두 청자로 하라.'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오. 특히 휘종이 강조했던 우과청천(雨過靑天 : 비온 뒤의 맑게 갠 하늘)의 색은 오로지 고려청자만이 가능했던 색이라오. 그 반대로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은 전통적으로 우유와 양모를 귀하게 여겨 백색을 신성시했소. 우리가 웅녀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듯이 그들 스스로를 흰 사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니까 더욱 그러하지. 하지만 지금의 원나라 백자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오. 내가 원하는 백자가 만들어지면 원나라에 팔아먹기 아주 좋을 것이오. 거기에 유럽과 중동을 생각해 보시오. 고려의 도자기를 살 주 고객들은 유럽과 중동에 있는 왕족들과 귀족들일 것이오. 그들이 요구하는 도자기에 들어갈 가문의 문장이나 그림 등을 맞추려면 백자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소이다. 도공이 백토를 일일이 상감하는 고려청자는 생산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라오. 고려의 상감 청자는 명품으로 지정해 아주 고가에 팔아먹을 것이고. 백자에 그림을 그린 것은 맞춤으로 대량 생산해 전 세계 도자기 시장을 고려가 석권하도록 만들 것이오. 또 하나의 일은 무엇이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노국공주가 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십여 권의 책을 꺼내었다.
"금속활자를 이용해 찍은 훈민정음해례본 책자입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한글이 발음에 따른 구강구조를 상형화하여 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도판까지 담아 아주 깔끔하게 인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찍어낼 준비가 모두 끝났사옵니다. 똑같은 내용의 책자가 여러 권인 것은 안에 들어갈 그림을 찍어낼 판화를 만든 사람이 여러 명이기 때문이지요. 전하께서 보시고 가장 맘에 드는 것을 선정해 주시면 본격적으로 대량 인쇄에 들어가서 고려 전역에 뿌릴 계획이옵니다."
"고생이 아주 많으셨소이다."
- 촤르륵.
왕기가 십여 권의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를 살펴보더니 한 권의 책자를 선정했다.
"난 이 책이 마음에 드는구려. 판화로 찍은 그림이 아주 세밀하면서도 예술적인 품격이 있어 보이오. 전 세계 어딜 내놔도 귀한 대접을 받을 책이 될 것이외다."
"소첩도 그 책자가 마음에 들었사옵니다."
"이 자를 찾아 왕궁으로 데려 오시오. 내가 시킬 것이 있으니."
"무얼 시키실 생각이시옵니까?"
"1차 목표였던 고토의 회복을 통해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본격적인 내정 개혁에 착수해야 할 것이오. 실사구시가 국시인 고려답게 기술 개발을 통한 상공업을 융성시켜야 하겠지.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돈이라오. 돈이 제대로 돌아야 신기술도 개발되는 것이고 상공업이 발달하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처럼 고려의 중앙은행에서 제대로 된 지폐를 찍어내야만 할 것이오. 지금처럼 무거운 은화를 유통하는 것은 너무 불편한 시스템이오. 들고 다니기에도 가볍고 신뢰성이 있는 고려 지폐를 유통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만 하오. 현대에서 미국의 달러(Dollar)가 기축통화이듯이 지금 세상에서는 고려의 돈이 기축통화가 되도록 만들 생각이라오. 단 위조가 불가능한 최신식 기술로 지폐로 찍어내야만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제대로 된 지폐의 동판부터 먼저 만들어야만 할 것이오. 이 자에게 고려 지폐의 동판 제작을 맡길까 하오."
"알겠사옵니다. 소첩이 내일부터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한편 판화를 제작한 자를 왕실로 불러들이겠사옵니다."
"그렇게 해주시구려. 짐은 고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백성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기본 정책을 수립하겠소이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남겨 고려의 정체성을 확립했듯이 대고려제국의 기본이 되는 황제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공민십헌(恭愍十憲)'을 만들 생각이라오. 현대의 헌법과도 같은 것이지."
그 순간 용건이 모두 끝났다는 듯 왕기가 다시 붓을 들려고 하자 노국공주가 왕기의 품 안으로 강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폐하. 일전에 춘향각주를 빈으로 받아들일 때 소첩과 한 약속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소첩을 안아주신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소첩과 관계를 하신지 벌써 열흘이 지났사옵니다. 공민십훈 따위는 내일 하시지요."
"이런... 내가 한 약속은 지켜야지."
왕기가 못 이기는 척 붓을 내려놓고 노국공주의 옷고름을 풀며 쾌락의 바다로 몸을 던지려는 그 시각 이제 막 새벽 동이 트는 머나먼 서역에서는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서역의 프로방스(Provence)]
이 시대의 교황인 '클레멘스 6세(Clemens Ⅵ)'는 이탈리아 로마가 아니라 남프랑스의 론 강변에 있는 아비뇽 교황청에 머물고 있었다. 막강했던 교황의 힘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세속 권력이 강해지자 1305년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교황권을 지배하기 위해 당대의 교황이었던 보니파시오 8세와 싸워 이긴 후 새로이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를 성벽 높이 50m, 두께 4m의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아비뇽의 교황청 건물에 감금시키다시피 하며 계속 붙잡아두었다. 1377년 클레멘스 6세의 조카인 새로운 교황인 '그레고리오 11'세에 의해 본격적인 로마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7명의 교황은 프랑스의 아비뇽에 계속 머물게 되었는데 이를 '아비뇽 유수(幽囚 : 유배되어 갇히다)'라고 부른다.
프랑스가 교황권을 장악하다시피 한 이 시기에 교황인 클레멘스 6세는 재임 중에 25명의 추기경을 임명하였는데 대부분의 추기경들은 프랑스 출신이었고, 단지 4명만이 프랑스 출신이 아니었으며 그런 추기경 가운데에는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친척이 무려 4명이나 포함되어 있었고, 나중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아비뇽 유수를 끝낸 그레고리오 11세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교황이 프랑스 국왕의 요청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던 이 시기에 남프랑스의 옛 지명인 프로방스 지역의 추기경인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자 손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협탁 위를 더듬었다.
- 더듬더듬. 턱.
자신이 원하는 안경을 찾자 곧바로 착용한 남자가 밤사이 자신이 꾼 꿈이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로방스 추기경인 이 남자의 이름은 위고라 하며, 1352년 '토마소 다 모네나(Tomaso da Modena)'라는 화가가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시킨 안경을 쓴 사람이기도 했다. 이 당시 안경은 베네치아 북쪽의 작은 섬 무라노(Murano)에서 ‘크리스탈러리(cristalleri)’라고 불리는 유리 제조 전문 기술 장인들만이 제작 가능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런 고가의 안경을 찾아 쓴 추기경 위고가 밤새 꾼 꿈을 떠올리며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동방에서 다가올 자를 막기 위한 대적자로 선정되었고, 그런 내게 신의 힘과 함께 새로운 무기를 제작할 기술이 주어졌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하지만 위고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의 머릿속에는 방아쇠를 이용한 신형 화승총의 원리와 그에 따른 설계 도면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위고의 머릿속에서 신의 음성과도 같은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리링. 귀하는 대적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의 치유력''이 부여되며, 신형 무기에 대한 기술이 전수되었습니다.]
- 화아악...
메시지를 들은 위고가 자신이 치유력을 발휘하겠다는 마음을 먹자 새벽 통이 막 터 아직은 어두운 방안이 환해지며 자신의 손에서 성광(聖光)이 터져 나와 방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자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신한 위고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일단 교황부터... 아니지. 지금은 교황보다 왕의 힘이 더 강력하니 프랑스의 국왕부터 만나봐야 하겠군."
위고가 당대의 프랑스 왕인 '필립 6세(Philippe VI)'를 만나기 위해 옷을 갖춰 입고 수도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