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88화 (88/171)
  • #88. < 대고려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 4 >

    [황하 상공에 떠있는 비행선 아래의 화물칸]

    비행선 아래에 매달려 있던 단순한 바구니 형태에 불과하던 화물칸을 손봤는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방이 강철 벽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안에는 기다란 소파까지 줄이어 놓여 있는 거대한 비행선의 겉에는 일전에 노국공주가 명명한 '고려 공군용 수송선 제1식'이라는 제식명과 함께 '개벽 1호'라는 비행선의 선명까지 고려어로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특이한 것은 내부의 양옆으로 쇠로 된 1장 남짓한 짧은 철로(鐵路)가 십여 개 깔려져 있었으며 그 철로 위에는 쇠로 제작된 바퀴가 올려져 있었는데 그 쇠바퀴 위에는 얼핏 보기에도 포경(砲徑)이 박격포보다 몇 배는 크며 박격포보다 훨씬 두껍고 길쭉한 포신을 지닌 신형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왕기가 새로 개발한 '공군용 고려 대포 제1식'이라고 명명된 평사포(平射砲)였다. 긴 사정거리를 가지는 본격적인 장대형(長大形) 대포 개발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포였디.

    - 쒸이이잉...

    지난 10일 동안 비단으로 제작된 값비싼 낙하산을 매고 죽어라 공수훈련을 받은 포병대원들이 지상으로 낙하하기 위해 화물칸의 한쪽 문이 열리자 상공의 매서운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닥치고 있는 가운데 포병대원들이 지상으로 하나둘씩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입구에서는 공수 강하부대의 대장으로 임명된 무장이 독기가 잔뜩 서린 눈빛으로 그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잘 들어라. 착지를 하다가 실수하여 발목이 접질리거나 다리가 부러지면 꾹 참고 그 자리에서 짐을 풀고 포를 설치하란 말이다. 그러면 자신의 조에 속한 동료들이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야. 수많은 몽골족과 원나라 황제가 보는 앞에서 아프다고 바닥을 뒹굴거나 비명을 지르는 놈들은 공민왕 전하와 대고려국의 명성에 똥칠을 하는 것이야. 다리 하나 부러졌다고 안 죽는다. 하지만 그런 놈이 있으면 내 손으로 직접 모가지를 따버릴 것이니라. 알겠느냐?"

    - 네. 대장님.

    "전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번 작전만 끝나고 나면 고려 전역에서 병사들을 징집해 본격적인 고려군을 대규모로 양성하실 거라고 말이야. 그때 너희들은 고급 장교가 되어 그런 병사들을 이끌게 될 것이야. 너희들은 병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며 고려 백성들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그러니 다들 목숨을 걸고 이번 작전만 잘 수행하면 된다......"

    낙하하는 병사들을 향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무장을 힐끗 쳐다본 왕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기보다 영 떠버리란 말이야. 덩치는 산만한 놈이...'

    왕기가 자신의 옆에 서있는 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

    "네. 전하. 천명의 포병대원들 중에 가장 명중률이 높은 병사들 40명을 비행선에 남겨둘 것입니다. 언제든지 신호만 보내시면 됩니다."

    한 손에는 비행선과의 통신을 위한 전선 묶음과 다른 한 손에는 비행선을 상공에 고정시키기 위해 커다란 정처럼 생긴 쇠뭉치를 밧줄에 감아 놓은 계류선(繫留線)을 든 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고려 신호를 보내는 것을 잘 지켜보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도록. 그리고... 다음 간부 회의 때 잊지 말고 내게 건의하거라. 비행선에 산소호흡기의 설치가 필수라고 말이야."

    "산소호흡기 말입니까?"

    "그래. 원으로부터 토번을 이양(移讓) 받으면 멀지 않은 시기에 인도 정벌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사들을 태운 대규모 비행선단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가야만 해. 히말라야산맥을 걸어서 넘으라는 것은 병사들 보고 죽으라는 소리와 같으니까. 하지만 히말라야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도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비행선 안의 산소가 부족해 다들 숨을 못 쉴 것이야."

    "알겠습니다. 전하."

    왕기가 이번에는 한 곳에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척무관을 보며 말했다.

    "상령(常領). 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겠지?"

    명경지수처럼 가라앉은 눈빛을 한 척무관이 답했다.

    "네. 전하. 지금 개벽 1호는 적이 쏘는 화살의 사정거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떠있습니다. 행여 경공이 뛰어난 무인이 하늘을 날아 달려들 경우를 대비해 소관이 비행선을 지키겠습니다. 전하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염려 마시옵소서. 마교 교주가 달려들어도 비행선을 지켜내도록 하겠습니다."

    "마교 교주의 그 기묘한 무공과 곤륜파를 단신으로 멸문시킨 위용을 듣지 못했나?"

    "그래봐야 전하의 발끝에도 못 미칠 것입니다. 마교 교주가 시체에서 정기를 흡수한다고요? 그럼 정기를 흡수할 시체가 없는 곳에서 일대일로 붙으면 그만이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능력이 아닐 것이야. 명색이 신이 내린 능력일 테니까.'

    속으로 뇌까린 왕기가 어느새 다 낙하를 했는지 텅 빈 비행선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튼... 개벽 1호를 잘 부탁하네. 비행선이 무사해야 고려군이 무사히 철수할 수 있을 테니까."

    왕기가 문을 통해 하늘을 밟으며 땅으로 내려가자 척무관이 새처럼 하늘을 날아 화물칸 위로 올라가 사주경계에 돌입했다.

    -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황하 강변에 계류선에 달린 쇠로 된 거대한 정을 힘차게 박아 넣은 왕기가 원나라 황제를 발견하자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그러자 혜종이 집 나간 서방이 삼 년 만에 돌아온 듯 활짝 웃으며 양팔을 활짝 벌리더니 왕기를 와락 껴안았다.

    "반갑소이다. 공민왕이여. 이렇게 짐의 원나라를 도와주기 위해서 직접 와주다니..."

    그러자 왕기가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찌 폐하와의 옛정을 잊겠사옵니까? 회포는 잠시 후에 푸시기로 하시고 일단은 이것부터..."

    왕기가 건네주는 서류를 펼쳐보며 혜종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홍건적이 반각도 안되어 도강을 시작할 것이오. 이 긴급한 상황에 이것이 다 무엇이란 말이오?"

    "폐하께서 고려에 하신 약속이 어떤 것인지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만인이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달라는 것이옵니다. 거기 적힌 내용을 읽으신 다음 자필로 서명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반각이면 고려의 포병대가 준비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오니 걱정 마시옵소서. 꽁꽁 얼어붙은 개마고원과 달리 이곳은 황하의 강변이라 땅이 물러 순식간에 방열이 가능할 테니까요. 폐하께서 서류를 다 읽고 서명을 하는 즉시 홍건적을 토벌할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알겠다는 듯 다급히 고개를 끄덕인 혜종이 우렁찬 목소리로 왕기가 건네준 서류를 빠른 속도로 읽기 시작했다.

    "원나라 황제인 혜종이 이 자리에 있는 만인에게 고한다. 짐이 고려국에게 도움을 요청한 대가로 옛 토번의 땅과 징더전 일대를 고려에게 이양하기로 약속한바 이를 모든 사람들이 듣는 앞에서 확약하는 바이다. 만일 짐이 이를 어길 시에는......"

    혜종이 훗날 '개벽협정서'라고 불리게 될 서류를 다 읽자 왕기가 미리 준비한 듯 먹을 듬뿍 찍은 붓을 내밀었다.

    "페하께서 자필로 직접 서명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이 서류는 고려와 원과의 정식 협정서로 채택될 것이고, 홍건적을 이 자리에서 물리치고 난 이후 곧바로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리하지."

    혜종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명을 끝내자 서류를 돌돌 말아 품속으로 집어넣은 왕기가 황하 강변에 서서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포병대를 보며 외쳤다.

    "고려의 포병대 대장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병사들 중에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포병대 전원 공민왕 전하께 군례(軍禮)"

    - 충성!

    포병대원들이 절도 있게 오른팔을 가슴에 올리며 군례를 하자 왕기도 똑같은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

    "충성. 보고를 시작하도록."

    "포병대 대장이며 국방부 장관인 무지 장관은 현재 비행선에 있기에 부대장인 제가 대신 보고드립니다. 전하. 총원 960명 사고 무 현재원 960명 무사히 강하하였고 방열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상 보고 끝."

    "좋아. 즉시 방렬하도록."

    "네. 전하. 전 포병 방렬 시작."

    - 방렬!

    우렁차게 복명복창한 포병대들이 삽을 꺼내어 강변에 박격포를 방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 건너에 있던 수천 척의 배들이 일제히 황하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달이 났는지 혜종이 왕기에게 다가와 말했다.

    "적들이 도강을 시작했소이다. 격퇴할 수 있겠소? 개마고원에서 보여준 포병대의 위력은 짐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지만 수전에서도 그런 뛰어난 위력을 보일지 걱정이라오."

    "걱정 마시고 가만히 지켜보시지요."

    왕기가 혜종을 달래고 있을 때 포병대의 부대장이라는 자가 다가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방렬 끝!"

    "좋아. 적들이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최대한 강 중앙으로 끌어들인 후 포격을 시작한다. 짐의 신호를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부대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전하의 발포 명령을 기다린다. 관측수들은 관측을 지속적으로 하여 포신의 발사 각도를 계속 조절하도록."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홍건적이 탄 배들이 황하를 절반 정도 건넜을 때쯤 왕기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군 발포!"

    - 전군 발포!

    포병대들의 단합된 외침과 함께 강변에 설치되어 있던 240문의 박격포에서 포탄이 일제히 튀어나와 황하 상공으로 날아가 포물선을 그리며 적의 선단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려군의 명성을 중국 대륙을 넘어 전 세계에 떨치게 될 제1차 황하대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 쾅. 콰광. 콰과광...

    수상 한가운데서 작열하는 거대한 불꽃과 폭음과 함께 단 한 번의 포격에 나무로 제작된 조그마한 목선들이 포탄의 폭발력을 이기지 못해 200여 척의 배가 단숨에 두 동강이 나버렸고, 비교적 크기가 큰 배들은 벳전에 큼지막한 구멍이 나며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포격에 대응하기 위해 적들의 배에서 단체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으나 사거리가 미치지 못해 모두 헛되이 강물에 빠져버렸다.

    일각에 가까운 줄기찬 포격 끝에 수천 척의 배들이 모두 강에 수장되어 버렸지만 대장선으로 보이는 가장 크기가 큰 범선 한 대가 용케도 살아남아 계속 황하를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냉정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날아오는 박격포의 포탄을 배에 탑승한 선원들이 무공을 이용해 배 밖으로 쳐내고 있어. 아마도 팔비신장과 그의 일행들이 타고 있는 배인 모양이로군.'

    그때 원나라 혜종이 욍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공민왕이여. 저 배가 이쪽 강변에 무사히 도착하면 짐이 한 약속은 없었던 것이 될 것이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고려 쪽이니까."

    억지에 가까운 혜종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은 왕기가 즉답했다.

    "그리하시지요. 분명히 포격으로 홍건적의 배들을 황하에 모두 수장시키기로 약속을 했으니까요."

    태연하게 대꾸한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포격 중지!"

    - 포격 중지.

    '박격포를 모두 대장선에 집결시켜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무지의 주장처럼 이번 기회에 고려군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감히 덤빌 엄두조차 안 나게 말이야.'

    갑작스럽게 포격을 중지하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웅성거리는 가운데 왕기가 왼쪽 손에 쥐고 있던 통신 장치를 이용해 비행선에 있는 무지에게 전통을 날려보냈다.

    '강 위에 떠있는 대장선을 날려버려라.'

    그 순간 비행선의 화물칸에서 조그마한 문들이 열리더니 기다란 포신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박격포는 곡사포라 포탄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니 화경에 달한 팔비신장과 그의 일행들이 포탄을 쳐낼 수가 있었던 것이지. 배의 크기로 봐서 저 배에는 최절정 고수가 최하 삼십여 명 넘게 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도 팔비신장과 한산동이 이끄는 홍건적 세력의 간부급들일 테지. 하지만 새로 개발된 평사포는 곡사포가 아닌 직사포라 포탄의 속도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공중에서 아래로 쏘게 되면 중력 가속도까지 붙게 되지. 어디 한번 막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 콰과광!

    그때였다. 비행선의 화물칸에서 빼꼼히 지상을 향해 머리를 내민 '공군용 고려 대포 제1식'의 화구에서 일제히 포탄이 발사되었다.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에서 강 위에 떠있는 대장선까지 빛으로 한줄기 줄을 긋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포탄이 대장선에 정확히 명중되며 거대한 불꽃을 일으켰고, 단숨에 전파된 대장선이 힘없이 황하의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혜종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늘에서도... 대포를 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저걸 무슨 재주로 막지?"

    그러자 왕기가 혜종을 직시하며 마치 협박을 하듯 내뱉었다.

    "페하. 저건 아무도 못 막습니다. 그러니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시지요. 만약 약속을 어기시면 고려의 비행선이 언제 원나라 황궁 상공으로 날아가 포격을 할지 모릅니다."

    간담이 서늘한 듯 손으로 닭살이 돋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혜종이 즉답했다.

    "지켜야지. 아무렴.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소이다."

    그 순간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적이 강을 날아오고 있다!"

    그 소리에 황하를 바라본 왕기의 눈에 무인 하나가 절정의 경공술을 뽐내며 연속적으로 강물을 찍고 하늘을 날아올라 이쪽 강변을 향해 질주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팔비신장이로군. 화경에 달한 고수가 아니라면 그 포격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지.'

    유선 통신을 이용해 비행선에서 팔비신장을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왕기의 옆구리에서 삼삼이와 칠칠이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런 후 오색찬란한 강기를 뒤덮어 쓰고 팔비신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쒸이잉.

    마치 유도탄을 쏜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황하를 가로지르며 날아간 왕기의 쌍검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팔비신장의 몸통을 정확히 꿰뚫어 버렸다.

    - 우와아. 역시 천하제일 고수라는 고려검황이야.

    - 홍건적의 정예들을 모두 황하에 수장시켜버렸어. 이것으로 난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 고려군 포병대의 위력이 듣던 대로 무시무시하군. 원나라도 저런 엄청난 병기를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이 뭐라 웅성거리고 있을 때 왕기가 발을 들어 강하게 땅을 밟았다.

    - 쾅.

    진각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강변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 힘을 이용해 바닥에 깊숙이 박힌 계류선에 달린 쇠로 된 정을 단숨에 뽑아버린 왕기가 비행선에 다시 명령을 내렸다.

    '원나라에서 딴 맘을 먹기 전에 게획대로 재빨리 빠져나간다. 사다리를 내리도록.'

    - 촤르륵...

    길이가 수백 장에 달하는 밧줄로 된 사다리가 비행선에서 내려지자 게류선을 붙잡고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을 잡아당겨 강변 쪽으로 이동시킨 왕기가 외쳤다.

    "전군 철수!"

    - 전군 철수.

    후다닥 짐을 꾸리고 있던 포병대원들이 어느새 강변에 내려져 있는 사다리를 타고 비행선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앞을 지키는 수문장인 양 오색찬란한 강기를 두른 쌍검을 들고서 엄중하게 경호를 하고 있던 왕기가 병사들의 대부분이 비행선에 탑승하자 혜종을 보며 말했다.

    "폐하. 고려는 약속을 지켰사옵니다. 제 손으로 폐하를 죽이는 망측한 일이 없도록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포병들이 장비를 꾸려 철수를 해버린 비행선을 마치 닭 쫓든 개가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혜종이 긴 탄식과 함께 대꾸했다.

    "하아아... 그리하리다. 이렇게 신속하게 전개와 후퇴가 가능한 포병을 상대할 방법이 짐에게는 없으니까 말이오. 감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니 어쩔 도리가 없구려."

    "그럼 폐하의 약속을 믿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왕기가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라 비행선 쪽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제1차 황하대전은 끝이 났고, 고려는 약속대로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와 함께 토번의 땅과 징더전을 원으로부터 이양 받았다.

    광활한 만주 땅을 수복함과 동시에 대륙에도 거점을 마련해 대고려 제국의 기틀을 다지게 된 왕기가 비행선을 고려 쪽으로 밀며 본격적인 고려의 내정 관리와 일본 정벌을 위한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리링. 반발력이 임곗값을 넘어가 대적자가 또 한 명 탄생하였습니다.]

    달갑지 않은 새로운 메시지에 이를 악문 왕기가 비행선을 더 힘껏 밀며 뇌까렸다.

    '빌어먹을... 아직 한 놈도 처치하지 못했는데 대적자가 또 하나 탄생했군. 아마도 비행선과 평사포를 개발한 것 때문이겠지. 하지만 난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며, 신들의 장난 따위에 결단코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공돌이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본격적으로 보여주도록 하지.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왕기의 다짐과 함께 비행선이 고려를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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