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87화 (87/171)
  • #87. < 대고려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 3 >

    서기 1345년 12월 17일

    [연경전의 침실]

    왕기가 쌍성총관부를 수복한 이후 처음으로 간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전날 있었던 원나라 황제와의 일을 자세히 들려주자 무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하. 제가 원나라 황제라면 절대 전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주야 어차피 옛 고려의 땅이기도 하고 원나라에게 중요한 땅도 아니며 세수가 많이 걷히는 지역도 아니라서 넘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징더전과 토번을 내놓으라 하는 것은 원나라 고유의 땅을 침범하는 일입니다. 원나라 황실의 자존심상 그런 조건을 들어줄 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자 무지가 즉각적으로 반대 발언을 하였다.

    "아닙니다. 소인이 보기에는 충분히 협상 가능한 항목들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홍건적이 대규모로 황하를 넘어 하북으로 입성하게 되면 원나라는 이미 멸망했다고 봐야 합니다. 황실이 보따리를 싸고 그들의 근원이었던 대초원으로 도망을 가야 하겠지요. 당장 원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그까짓 징더전과 토번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둘째 이유로는 징더전은 강남의 한복판에 있고, 토번은 원나라 서쪽 끝에 있으며 바다와도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징더전과 토번을 가기 위해서는 원나라 땅을 반드시 가로질러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원나라에서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자가 있다면 징더전과 토번 쪽의 길을 막아 고려인의 출입을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러니 문서상으로 고려에게 넘기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과 똑같지요. 소인이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무지의 말에 왕기가 물었다.

    "그럼 무엇이 궁금하더냐?"

    "난데없는 토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전부터 전하께서는 징더전을 간절히 원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전하께서 고려 백성들에게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땅, 그것도 비옥한 농지로 유명하지도 않은 땅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역시 머리가 좋아. 그런 그대라면 그 이유도 짐작하고 있을 텐데?"

    "전하. 혹시 도자기 때문입니까? 그곳에 원나라 황실의 도요(陶窯)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답이다. 징더전 인근에서는 세상에서 도자기를 만들기 가장 좋은 흙을 캐낼 수 있다. 고려의 도공들은 징더전 근처에 있는 '고령산(高嶺山)'의 이름을 따 그 흙을 '고령토(高嶺土)'라고 부르고 있지. 고령토를 서역에서 부르는 '카올린(Kaolin)'이라는 이름도 징더전 인근의 '가오링(高陵)'이란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야. 난 징더전의 흙을 이용한 최상품 도자기를 고려에서 생산해 전 세계 교역망을 구축할 생각이다."

    "왜 꼭 도자기여만 하는 것입니까? 교역할 상품은 그것 말고도 많이 있을 것인데요."

    "이 시대의 주요 교역품으로는 비단, 면, 도자기, 후추, 설탕, 커피, 차 등을 들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중국의 주요 교역품인 비단은 조만간 그 독점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을 뽑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대단한 비밀이 아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누에고치의 타국 반출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면을 생산하는 목화씨도 마찬가지이고. 지금쯤 중동과 서역에서도 중국에서 빼돌린 누에고치와 목화를 자국의 땅에서 키우고 있을 것이야. 단지 아직 대량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후추와 설탕, 커피, 차 등은 아직 세계적인 유행이 되지 않고 있어서 시기상조이니라. 하지만 도자기는 다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도자기의 유행이 퍼져 있어. 특히 평민들과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서역의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지. 하지만 도자기는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비단이나 면처럼 간단히 모방을 할 수가 없는 상품이란 뜻이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은 흙이 있어야만 하고 뛰어난 도공이 있어야만 한다. 가마를 만드는 기술과 불 조절 하는 기술 그리고 유약을 만드는 기술 또한 필요하지. 마지막으로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전에 네게 알려준 산소의 '산화작용(酸化作用)'와 '환원작용(還元作用)'을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중동과 서역이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려면 앞으로도 몇 백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야. 그래서 내가 도자기에 집착하는 것이니라. 고려를 몇 백 년간 풍요롭게 먹여살릴 가장 중요한 상품이니까."

    왕기의 말에 놀랍다는 표정의 무지가 반문했다.

    "도자기에도 전하께서 알려주신 음의 원소인 산소가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세상 만물은 그렇게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것이지. 고령토에는 미량의 철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장작을 땐 가마 안에서 흙 속에 있는 철이 산화하게 되면 푸른빛의 초록색을 띠게 되지. 이것이 바로 '청자(靑磁)'이니라. 여기에 신비로운 푸른색을 내는 비밀스러운 제조법의 유약을 덧칠해서 구은 것이 고려청자이고. 하지만 눈처럼 새하얀 '백자(白瓷)'를 얻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하느니라. 흙 속에 있는 철 성분이 산소와 반응을 못 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지. 산소를 차단해 가마 속의 불을 불완전 연소시키면 불꽃이 끊임없이 산소를 갈구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불꽃이 흙 속에 담겨 있는 산소까지 빨아들이게 되는 것이지. 그러면 흙 속의 철이 산소와 반응을 하지 못해 청자처럼 발색현상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것이 바로 백자를 만드는 비법이니라. 짐은 도자기와 관련해 보다 많은 비법을 알고 있다. 고려의 도자기는 몇 백 년간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며 전 세계에 고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줄 상품이 될 것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지가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소인에게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사옵니다. 다름 아닌 '토사구팽(兎死狗烹)'이지요. 박격포 포대를 보내어 황하를 건널 예정인 홍건적을 막아내게 되면 원나라에서 반드시 딴마음을 먹을 것이고 포병대를 고이 돌려보내 줄리가 없습니다. 제가 원나라 황제라면 그들을 사로잡아 박격포의 비밀을 캐내려고 들것이니까요. 물론 포병대원들이 그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게 되고, 압수한 박격포와 포탄을 분해해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되면 원나라도 박격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테니까요."

    "포병대원과 박격포를 압수해도 실질적인 생산은 무리야. 그 정도로 쉽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니까. 하지만 나도 너와 똑같은 걱정을 했다. 똥 싸러 갈 때 마음과 똥 사고 난 후의 마음이 다른 게 인간이니까. 그래서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간부 회의를 소집한 것이야. 일단은 홍건적이 어디를 통해 도강(渡江)을 할 건지부터 알아보자."

    - 촤아악.

    말을 하며 왕기가 중국 지도를 넓게 펼치자 무지가 망설임없이 두 곳을 집었다.

    "항주에서 봉기해 세를 키우며 하남성까지 밀고 올라온 홍건적이 황하를 도강하려면 제남(濟南)과 정주(鄭州) 이 두 도시를 잇는 강변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황하를 오가는 어지간한 배들은 그 두 곳을 정박지로 사용하고 있고, 30만이라는 숫자가 모일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니까요. 정주 위쪽으로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삼문협(三門峽)이 버티고 있어서 도강이 불가능합니다. 홍건적이 도강을 하려면 단체로 한꺼번에 일제히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테지요. 조금씩 넘어갔다가는 도중에 대규모 화살 세레를 받을 것이고, 기껏 살아서 넘어가 봐야 각개격파를 당할 테니까요. 이쪽 강변에 수천 척의 배를 댄 상태에서 한꺼번에 승선을 한 후 일제히 도강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무지의 말에 왕기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

    "자신하느냐?"

    "전하. 소인은 하남성에 위치해 있는 소림사 출신입니다. 방금 전 제가 한 말은 하남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에 불과하지요. 틀릴 리가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반대쪽 강변에서 박격포를 방열하기에는 문제가 없겠군. 황하의 강폭은 어떤가? 박격포 사정거리에 해당하겠는가?"

    "강폭은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전하께서는 홍건적들이 탄 배들이 오도 가도 못하게 강 중앙쯤 왔을 때 포격을 하실 테니까요. 황하의 강폭이 아무리 넓어도 그 정도면 충분히 거리가 닿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맘만 먹으시면 홍건적들은 황하에 모조리 수장(水葬)이 될 것입니다."

    무지의 말에 왕기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내 맘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는군. 맞아. 이번에 황하를 도강하고자 하는 자들은 홍건적들 중에서도 가장 정예이며 원을 무너뜨리고 한족만의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고자 하는 자들일 것이야. 홍건적이 된 한족 중에서도 중화라는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자들이지. 그런 자들은 살려둬봐야 고려의 미래에 짐이 될 뿐이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깡그리 수장시켜 한족의 힘을 대폭 줄여놓을 생각이니라. 남은 건 포병대를 무사히 살려서 박격포 장비들을 챙겨 고려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지."

    "그에 대한 대책이 전하에게 이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책은 있느니라. 단지... 고려의 힘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이지."

    "전하. 당분간 원과 싸울 계획이 없으시다면 이번 기회에 고려의 힘을 최대치로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곧 있을 일본 정벌 때 전하가 고려에 안 계신 틈을 타 원나라가 감히 딴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리가 있군. 아끼다 똥 되는 수가 있지. 좋아. 이번 작전에 고려의 전력을 투구한다. 앞으로는 대륙 쪽에서 감히 고려 쪽으로 기침도 제대로 못하게 만들어 주도록 하지. 정비. 내가 말한 것은 준비가 되어 있으시오?"

    왕기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노국공주를 바라보며 묻자 노국공주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전하. 일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틈나는 대로 바느질에 능한 여인들을 동원해 낙하산 천여 벌을 제작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제작 단가가 장난이 아닙니다. 낙하산용 천으로 비단을 사용했고, 무게가 무거운 포신 등을 안고 같이 뛰어내릴 포병들의 안전을 위해서 일반 낙하산보다 크기를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지요. 그리고 성능은 아직 장담을 못 합니다. 제작된 낙하산을 매고 하늘에서 뛰어내려본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기 때문이지요."

    "걱정 마시오. 척무관과 무지, 무장 등은 낙하산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 뛰어난 경공을 가지고 있소이다. 그들이 직접 시험비행을 해본 후에 수정할 것은 수정한 다음 포병대원들에게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줄 것이니까 말이오."

    말을 끝낸 왕기가 앉아있는 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척무관과 무지는 정비와 긴밀이 의논해 남은 열흘 동안 포병대에게 낙하산 훈련을 숙지시키도록 하거라. 난 지금 즉시 새로운 대포를 개발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로 갈 것이다. 그런 후 며칠간 고려를 떠날 것이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참파(cham pa)로 떠났던 신라면을 데려와야 하니까 말이다."

    왕기의 말에 무지가 말렸다.

    "전하. 새로운 대포 개발이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인데 참파까지 다녀오시려면 그 기일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홍건적의 도강을 못 막을 가능성도 있으니 재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새로이 제작되는 대포는 그 개수가 30문을 안 넘어갈 것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테니까 짐을 믿고 기다리거라."

    마음이 급한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왕기가 간부들을 뒤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서기 1345년 12월 19일

    [참파의 왕궁]

    참파는 베트남인들과는 다른 민족인 말레이계 참족이 세운 나라이다. 참파 왕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인물이라 불리는 위대한 정복자인 '제봉아(制蓬峨)'의 집권이 끝나고 새로운 참파의 왕으로 등극한 '마하사잔' 왕이 다스리고 있는 참파는 풍부한 쌀 생산량과 비옥한 중부 지대를 점유하고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참파 왕국을 유지하던 참족이 결국 다수 민족인 베트남족에 밀려 왕국이 망하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이 시대는 아직 제봉아의 영화가 남아 있는 국가였다.

    심왕부에서 재물을 가득 싣고 고려로 날아갔던 비행선을 몰고 참파까지 날아온 왕기가 참파의 국왕을 만난 뒤 신라면이 감금되어 있다는 감옥을 향했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던 신라면이 왕기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전하. 왜 이리...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며칠... 며칠만 늦었어도 소인의 목이 잘릴 뻔했사옵니다."

    "무슨 연유로 그런 것이더냐?"

    "처음에는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고려의 외교 사신이며 원나라의 중통보초를 이용해 기존 가격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남아도는 엄청난 양의 쌀을 사고 덤으로 고려까지 쌀을 싣고 운반할 범선까지 여러 척 구입하다 보니 손이 큰 귀빈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요. 하지만 며칠 전 원나라에서 내전이 터졌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퍼지면서 참파의 왕이 자신을 속였다며 제 목을 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데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더냐?"

    "다급해서 전하의 위명을 팔았지요. 이곳 참파에도 고려검황의 위명은 자자하게 퍼져있으니까요. 절 죽이면 고려검황이 이곳으로 날아와 참파의 모든 왕족을 쳐죽일 거라고 협박을 해서 겨우 버틴 것이옵니다."

    "잘 했다. 짐이 직접 만나보니 참파 국왕이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더구나. 원나라 소식에 항상 귀를 기울여서 그런 것이겠지. 그런 기지를 발휘하라고 널 보낸 것이야. 범선까지 구입을 했다고? 아주 잘 되었구나."

    "전하께서 비행선을 직접 끌고 오셨다면 배는 필요가 없지 않겠사옵니까? 건조한지 얼마 안 된 신형 범선으로 구입을 했으니 손해를 좀 보고 팔면 금방 되팔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다. 범선을 이용해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구입한 쌀은 짐이 모두 비행선에 싣고 갈 것이니 넌 범선을 타고 이탈리아로 떠나거라. 가서 앙리와 그 일행을 태우고 고려로 돌아와야 할 것이야. 짐이 직접 가고 싶으나 고려의 일들이 복잡하고 여유가 없어서 그럴 짬이 안 나는구나."

    겨우 죽다 살아났는데 또다시 멀리 여행을 떠나라는 말에 풀이 죽은 신라면을 왕기가 달랬다.

    "이번에 맡은 일만 끝나면 네가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 것이고, 조만간 어딜 가나 대고려국의 칙사로 대접을 받으며 즐겁게 세상을 떠돌아다닐 수가 있을 것이야. 그러니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더 고생하거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소신이 서역에 가서 앙리와 그 일행을 무사히 고려로 데려오겠습니다."

    서기 1345년 12월 20일

    막대한 양의 쌀을 비행선에 달린 바구니에 싣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그 많은 양의 쌀을 실은 비행선을 묶고 있던 계류선(繫留線)이 풀리며 비행선이 공중으로 가볍게 두둥실 떠오르자 참파의 국왕을 포함해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후 비행선의 맨 뒤에서 로켓 불꽃을 뿜어내며 있는 힘껏 밀고 있는 왕기의 힘에 떠밀려 고려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기 1345년 12월 22일

    왕기가 고려로 돌아오자 압록 제1통신소를 통해 원나라 황제의 서찰이 또다시 도착했다. 왕기가 내건 모든 조건을 들어줄 테니 홍건적의 도강을 막아달라는 서찰이었다.

    어전회의를 연 왕기가 원나라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을 통보하고서는 비행선에 포병대와 장비들을 싣고서 원나라로 출병했다.

    서기 1345년 12월 23일

    정주와 제남을 잇는 황하 강변에 머리에 붉은 띠를 맨 홍건적들이 받디딜 틈도 없이 새까맣게 모여있었고, 강에는 그들을 태워 나를 수천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홍건적들을 막아내기 위해 직접 친정을 나온 원나라 황제인 혜종이 건너편 강변에 진을 치고서는 초조한 표정으로 수하들을 다그쳤다.

    "어떻게 된 것이냐? 왜 고려의 포병대는 오지 않는 것이야? 잠시 후면 홍건적들이 도강을 시작할 것이다."

    "전하. 고려의 포병대가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고려의 왕인 고려검황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자이니 늦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각도 채 안 되어서 적들이 도강을 시작할 것이야."

    혜종이 그렇게 불안감에 떨며 강 건너편 홍건적의 동태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을 때였다. 황제 주위에 모여있던 근위병들 중에 누군가가 경악에 가득 찬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하늘이다. 하늘에서 큼지막한 배가 날아오고 있어."

    화들짝 놀란 혜종이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정말로 배가 하늘을 날고 있었고, 그 배의 아래쪽에서 마치 날아가는 새가 똥을 싸듯 뭔가가 줄줄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대륙에 있는 중국이 두 번 다시 고려 쪽을 넘보지 못하게 되는 역사적인 '제1차 황하 대전'이 임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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