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85화 (85/171)
  • #85. < 대고려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 1 >

    서기 1345년 12월 16일

    [개경의 만월대]

    병사들을 동원해 단 6일 만에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깔끔하게 정리까지 끝마친 후 개경으로 돌아온 왕기 일행을 수많은 백성들이 연도에 나와 환호하고 있었고, 만월대 입구에서는 노국공주와 조정 대신들이 모두 나와 공민왕의 입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정말 대단하시다. 불과 엿새 만에 쌍성총관부를 밀어버리고 돌아오시다니.

    - 당연하지. 공민왕 전하는 미륵의 화신이라고. 일전에 못 보았나? 하늘에서 나타난 대불이 전하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던 기철의 집을 박살 내는 것을 말이야.

    - 내가 듣기로는 불과 1천의 병력으로 4만에 달하는 적들을 박살 내는데 일각도 채 안 걸렸다고 하더군. 중앙군에 신무기로 무장한 포병대라는 새로운 병과가 생긴 모양이야.

    - 그 소문은 나도 들었네. 물론 과장이 섞여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로 대단한 병사들이 버티고 있다면 이 나라가 이제 예전처럼 타국의 침략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야. 태평성대가 눈앞에 와있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백성들의 칭송을 들으며 만월대 앞으로 진군한 왕기가 말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마중 나온 정비인 노국공주를 꼭 끌어안았다.

    - 우와아아...

    그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이 흥분했는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고함을 내지르자 노국공주가 조심스럽게 몸을 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하. 백성들이 흉봅니다."

    그러자 왕기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보라고 한 것인데 뭐 어떻소? 지금은 고려 시대라오. 조선 전기의 학자들이 고려가요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낮추어 부를 정도로 남녀 간의 사랑을 읊은 노래가 많은 시대이며, 과부의 재가도 가능한 시대요. 과부가 재가를 하지 않고 죽은 남편을 따라 스스로 자결을 하면 잘 했다며 열녀문(烈女門)을 세워주는 그런 시대가 아니란 말이오. 짐이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 백성들이 순풍순풍 자식을 낳아 고려의 인구수가 팍팍 늘어날 것이외다."

    그때였다. 문하시중 이제현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리옵니다. 게다가 전하와 정비마마의 금슬이 이렇게 좋으시니 조만간 정비마마께서 세자를 낳으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자신이 이전부터 걱정했던 문제를 들고 나온 이제현을 매섭게 노려본 왕기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세자를 보든 공주를 보든 짐이 알아서 할 것이니 그대는 신경 쓰지 마시오."

    예상치 못한 왕기의 반응에 이제현이 내가 뭘 잘못했냐는 표정으로 주변 중신들을 둘러볼 때 왕기가 정비를 양손으로 가볍게 들춰안고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에 백성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져갔다.

    [연경궁의 어전회의]

    "이번 쌍성총관부 탈환 작전에 참가한 자들에 대한 공을 치하하는 것이 모두 결정되었으니 새로운 안건으로 들어가 봅시다. 짐은 이번 기회에 고려의 관제를 개혁하고자 하오. 현재의 관제는 짐의 밑에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 따로 있고 그리고 정책을 심의하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정책을 집행하는 '상서성(尙書省)'이 있으며 상서성에는 이병예호형공의 육부가 또 있소이다. 그리고 왕명 전달과 군사기밀 단속 그리고 궁궐 숙위를 담당하는 '중추원(中樞院)'이 있으며 관리들의 감찰과 풍기 단속을 하는 '어사대(御史臺)'와 국가 전곡의 출납과 회계를 관장하는 '삼사(三司)'도 있소. 이렇게 관청이 많고 복잡하니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백성들 또한 어디가 무얼 하는 곳이지도 잘 모르고 있소이다."

    그러자 찬성사 이곡이 물었다.

    "전하.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 옵니다. 처리해야 할 많은 업무가 산재되어 있으며 그런 업무들이 각 관청끼리 서로 연관되어 있기에 관제 개편이란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요. 전하에게 어떤 심복(心腹)이 있으십니까?"

    "모든 걸 간소화할 것이며 중앙 집중식 행정체계를 구축할 생각이오. 이 시간부로 도병마사, 식목도감,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그리고 삼사를 모두 폐지하오. 앞으로 어전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는 문신으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인 3정승과 상서성의 이병예호형공의 육부 대신 세워질 6개의 부처의 장인 장관들일 것이오. 무인으로는 상령(常領)과 해령(海領) 그리고 육군을 다스리는 육군총장, 해군을 다스리는 해군총장, 공군을 다스리는 공군총장과 각 군의 군단장급들만 참석이 가능할 것이오."

    "전하. 육부 대실 세워질 6개의 부처에는 무엇이 있사옵니까?"

    "군사와 관련된 모든 걸 관할할 국방부, 국내에서의 모든 행정을 담당할 내무부, 다른 나라와의 교역과 외교 관계를 담당할 외무부, 실학을 융성시키기 위한 실학기술부, 나라의 세금과 재정과 관련된 것을 담당할 재정부 마지막으로 훈민정음과 고려학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교육부가 설치될 것이오. 그 외에 어사대는 감찰부로 이름을 바꿔 관리들의 비행을 세심하게 감찰할 것이며 국토관리청을 따로 설치하여 고려의 모든 땅에 대한 관리와 땅의 매매 및 임대 그리고 그에 관련된 세금 징수 등을 담당하게 할 것이오."

    급변한 관제 개편에 중신들이 웅성거릴 때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짐이 각 자리에 맞는 자들을 임명하겠소. 영의정으로는 문하시중 이제현을 임명할 것이고, 좌의정으로는 찬성사 이곡을 임명하오, 또한 우의정으로는 우상시 백문보를 임명하는 바이오. 이들 3정승은 아래에 속한 6개 부처에 대한 관리 감독과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하여 짐에게 직접 건의를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소이다. 맡을 자신이 없는 자들은 지금이라도 손을 드시오. 그럼 짐이 다른 자를 임명할 테니."

    그러자 세 명의 문신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자 왕기가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소. 어차피 숙청에서 살아남은 고위 문신들이 그대 셋뿐이니까. 앞으로 지켜보겠소이다. 그럼 마저 임명을 하겠소. 국방부 장관으로는 이번 쌍성총관부 탈환 작전에서 그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무지를 임명하오."

    그러자 무지가 왕기 앞으로 뛰어와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되었다는 듯 손을 저은 왕기가 계속 말을 이었다.

    "외무부 장관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벌써 외국으로 나가 교역관계를 개척하고 있는 신라면을 임명하는 바이며, 실학기술부 장관으로는 최무선을 임명하는 바이오. 재정부 장관으로는 조만간 고려로 돌아올 앙리라는 자에게 맡길 것이며 내무부 장관 자리는 아직 미정이라오. 그리고 교육부 장관 자리는 짐의 정비인 노국공주가 직접 맡을 것이오. 짐과 더불어 고려학에 가장 정통해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라오."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왕기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관들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짐은 역대의 그 어느 왕보다 해군을 중시하오. 바다를 통한 타국과의 교역을 통해 고려를 부강하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까. 최영 장군은 해군을 총괄하는 해군총장을 맡을 것이고 나머지 무관들은 짐이 차례대로 만들 막강한 고려의 군단을 지휘할 군단장의 지위를 맡을 것이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려. 최대한 빨리 그대들의 손에 막강한 위력을 지닌 대군단을 쥐여줄 테니까."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육군 참모총장은 상령(常領)인 척노리가 맡을 것이며, 공군 참모총장은 무장이 맡을 것이외다. 그리고 무장은 감찰부의 수장 자리도 겸임하게 될 것이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짐이 천명하는 바외다. 고려는 조만간 일본을 쳐서 영원한 고려의 속국으로 만들 생각이라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그리 만들 것이니 여기 계신 모든 대신들은 힘을 합쳐 일본 정벌에 최선을 다해 주시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해군총장인 최영 장군이 설 것이오."

    - 전하의 명을 받잡습니다.

    속전속결로 관제 개혁을 하고 사람들을 임명한 왕기가 최영 장군을 따로 불렀다.

    "해군총장은 지금 즉시 짐을 따라오시구려."

    [연경궁의 침전]

    자신을 따라온 최영 장군을 앞에 앉힌 왕기가 품속에서 설계도면을 하나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대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포병대의 시연을 본 후 고민하던 문제의 답이 여기 있소이다. 잘 살펴보시고 이대로 행하시구려."

    왕기의 말에 후다닥 설계도면을 펼쳐본 최영 장군이 신음성을 흘렸다.

    "흐음... 전하. 이 배는 옆구리에 대포를 쏠 수 있는 문이 다닥다닥 붙어서 설치되어 있군요?"

    "그렇소. 지금 고려의 전함은 대포를 실을 자리가 없소이다. 그런 식이면 곤란하지. 전함 옆구리에 여러 개의 창을 내어 만든 전함이라오. 일본 전함을 치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오."

    "하지만 전하. 이렇게 되면 전함의 옆구리에 노를 설치할 수가 없게 돼옵니다. 그럼 돛으로만 항해를 해야 하는데 속도가 느려 일본 전함에 따라 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포의 장점이 무엇이오? 적이 가까이 붙기 전에 선제 포격으로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겠소? 적들의 배보다 속도가 조금 느린 것은 큰 단점이 안 될 것이오. 그에 대한 해결책도 짐이 연구 중에 있으니 변산반도에서 제작하는 배들을 그런 형식으로 만드시오."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소신이 변산반도로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지금쯤 한창 배의 용골이 제작 중일 것이니 새로운 설계에 맞추어 소신이 지시를 내려야만 할 것이옵니다."

    마음이 급한지 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왕기가 말렸다.

    "서두르지 마시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천척의 배를 다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보급선과 병력을 실어 나를 수송선도 필요하오. 어차피 배에 장착할 대포를 단시간 내에 그렇게 많이 만들 재주가 짐에게도 없소이다. 대포를 실은 배는 백 척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오. 그러니 짐의 말을 잘 들으시오."

    "네. 전하. 말씀하시지요."

    "짐은 전쟁이란 보급과 정보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변산반도로 가는 즉시 일본에 밀자를 보내어 일본 쪽의 정보를 자세히 수집하시구려. 그리고 일본을 영원히 종속시키기 위해서는 고려의 함대를 계속 주둔시킬 확실한 보급선(補給線)이 먼저 건설되어야만 하오. 보급선이란 것은 단계별로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제일 먼저 제주(濟州)를 장악하고 있는 성주(星主 : 오래전부터 제주의 어부들이 별자리를 보고 항해를 하는 것에서 유래된 말)를 폐위시키고 확실하게 고려의 땅으로 복속시키시오. 그곳이 1차 보급기지가 될 것이오. 그런 후 규슈를 먼저 치길 바라오. 지금쯤이면 규슈는 통일된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북산, 중산, 남산으로 나누어진 삼국시대를 구가하고 있을 것이니 점령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오. 그곳을 2차 보급기지로 삼을 것이오. 그런 다음 대마도를 치시오. 3차 보급기지가 되는 것이지. 남해를 에워싸 일본을 빙둘러 포위하며 다양한 보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외다. 그래야만 일본을 영원히 고려의 땅으로 종속시킬 수가 있소. 그 모든 것들을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 완료하시오. 그럼 내년 봄에 짐이 직접 일본으로 친정을 가겠소이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소신이 반드시 그리 만들어놓겠습니다."

    최영이 떠나가자 옆에서 쭉 듣고 있던 노국공주가 입을 열었다.

    "제주, 규슈, 대마도를 선점한 포위작전이라. 아주 작정을 하셨군요?"

    "어설프게 밟으면 안 밟는만 못한 법이지. 고려에 대해서 두 번 다시 고개를 못 쳐들 정도로 확실하게 밟아줄 생각이라오."

    "하지만 거기에 소모되는 전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옵니다. 수천 척의 배와 대포를 건조하는 비용과 제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타국인 대마도와 규슈 지역을 점령해 보급기지를 만들었다가 적에게 행여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손실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통조림, 대포, 통신 등과 관련된 기술들을 그들이 훔쳐 배울 가능성도 아주 높습니다."

    "전비는 걱정할 필요 없소. 지금 내가 지닌 재물의 양이 적지 아니하고 일본에는 질 좋은 은광(銀鑛)이 있기로 유명하니까. 점령만 하면 전비를 충분히 뽑아내고도 남을 것이오. 더 중요한 것은 고려의 해군이 일본에 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오.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가미카제(新風)가 없을 때 칠 것이니까. 잊었소? 내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는 것을. 일기예보와 관련된 현대의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오지 않을 때를 적절하게 고를 수가 있단 말이외다. 그리고 지식 또한 마찬가지외다. 내가 이 세상에서 구현한 지식들은 그 원리를 안다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이 아니라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노국공주가 다시 물었다.

    "최영 장군에게 어떤 배를 설계해 주신 것입니까?'

    "내가 비록 공돌이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오. 포병 출신이지 해군을 나온 것도 아니고 해서 말이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것을 빌려왔지. 최영 장군에게 설계해 준 배는 저 멀리 서역에 있는 포르투갈에서 제작하는 캬라크(Carrack) 선을 흉내 낸 것이라오. 일종의 전열함(戰列艦)이지. 왜 캐러비안의 해적이나 명량 같은 영화들을 보면 배들이 서로 종렬로 마주 보고 서서 대포를 쾅쾅 쏴대지 않소? 전열함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힘들 뿐이지 실제로 제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가 이 카라크 선이었으니 장거리 항해에도 무난할 것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 포르투갈이 옆구리에 노를 설치한 갤리 선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적이 있으니 일본을 치기에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오."

    그 순간 밖에서 내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원나라에서 급하게 전통이 날아왔다고 하옵니다."

    "사신이 온 것이 아니라 전통이 날아왔다고 하더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사신이 개경까지 도착할 시간이 아깝다며 압록강에 있는 통신소에 들러 원나라 황제의 서신을 넘겨 전통을 보내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들고 오너라."

    왕기의 예측대로 대륙을 점령하고 있는 원나라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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