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80화 (80/171)
  • #80. < 쌍성총관부를 박살내고 고토를 회복하다 - 1 >

    [만월대 연경전]

    충목왕이 타고난 병약한 몸으로 병세를 달고 살아 언제나 누워서만 지낸 탓에 절간처럼 조용하던 연경전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서자 왕의 침전(寢殿)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고려의 왕으로 즉위한지 불과 단 하루 만에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간부들을 소집한 왕기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노국공주와 자신의 앞에 공손하게 서있는 무지, 무장, 척무관, 신라면 그리고 통신을 받고서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온 최무선 등을 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중국 강남에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마교가 중원으로 침공했다는 이야기를 다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지. 중국은 고려의 정복 대상이지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도, 전통적인 한족도 고려의 적이며 마교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지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전하. 고려 입장에서는 그들끼리 신나게 치고받으면서 최대한 중국의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오히려 그런 내전이 길어질수록 고려에게는 더 유리하다는 뜻이지요. 고려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이 우위를 잡아 내전을 일찍 끝내지 못하도록 뒤에서 힘의 균형을 조종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한 그 틈에 고려를 최대한 강성하게 만들어야만 하겠지요."

    "무지가 정확히 집어주었다. 우리는 적들이 내전을 벌이느라 정신없는 동안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챙겨야만 한다. 하지만 중국 쪽의 정보 수집을 강화하며 예의주시해야만 할 것이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내전을 일찍 종료해버리면 곧바로 그 칼날이 고려 쪽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형세가 불리한 쪽에 군수물자를 보급해 주고 병력 지원까지 해주며 내전을 최대한 오래 끌도록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 짐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당장 걱정할 문제가 아니야. 중국은 워낙 땅이 넓기 때문에 우세가 정해지려면 최하 몇 년은 걸릴 것이기 때문이지. 그런 대전제 아래에서 고려가 최대한의 이익을 챙길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왕기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가장 첫 번째는 고려의 옛 영토인 고토(故土)를 수복하는 일이다. 당장 쌍성총관부를 쳐서 함경도 땅을 다시 돌려받아야만 하겠지."

    왕기가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둘째는 일본 정벌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해서 중국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일본 정벌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것이다."

    손가락을 하나 더 접으며 왕기가 말했다.

    "마지막은 일본 정벌이 끝난 후 중국의 상황에 따라 고려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전을 최대한 오래 끌게 만들어 그에 대한 대가를 최대한 뜯어내야 한다는 것이지. 각각에 대한 나의 계획은 이미 다 수립되어 있지만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부른 것이니라."

    그 순간 무장이 물었다.

    "전하. 소인이 일본에 대해서 잘은 모르나 그 땅의 넓이가 고려보다 더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라고 부르는 무사들도 많이 있고요. 중국의 내전이 길어진다고 해도 그 사이에 일본을 정벌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해. 짐의 계획대로라면 짧으면 6개월, 길면 8개월이면 정벌이 모두 끝날 것이다. 짐이 약속하지. 내년 여름에는 일본 교토에서 천황을 발아래 꿇리고 승전의 축제를 열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지금은 쌍성총관부를 치는 것에 대해서 토론을 해보자. 쌍성총관부를 쳐서 함경도를 돌려받는 것은 신속해야만 하며 고려인의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왕인 나에 대한 신망이 올라갈 테니까. 고려의 만백성들과 조정의 신하들 그리고 전국 각지의 사대부들에게 본 왕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제대로 보여줘야만 다음 단계인 일본 정벌 준비가 쉬워진다는 뜻이다. 병력이 2만에 불과한 쌍성총관부 하나 제대로 격파 못하면서 일본 정벌을 하겠다고 나서면 누가 믿고 도움을 주겠는가? 압도적인 전쟁 능력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란 말이다. 짐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단 한 명의 고려인 사상자도 내지 않으면서 쌍성총관부의 2만 병력을 단 하루 만에 격파하는 것이니라."

    왕기의 호언장담에 척 무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관이 전하의 뛰어난 능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나 2만의 몽골군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하루 만에 격파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입니다."

    왕기가 부정의 표시로 강하게 도리질을 하였다.

    "그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하루가 아니라 어쩌면 한 시진만에 끝날지도 몰라. 이는 몽골군의 특성 때문이지.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면서 세운 총관부가 어디 어디인지 아느냐?"

    "탐라총관부와 쌍성총관부이지요. 지금은 탐라총관부는 없어지고 쌍성총관부만 남아있고요."

    "왜 원나라가 그 두 곳에만 총관부를 세웠을까? 비옥하기로 유명한 나주평야가 있는 전라도 땅도 있고, 낙동강이 흐르며 김해평야가 있는 경상도 땅도 있는데 말이야."

    척무관이 대답을 못하자 왕기가 몽골족 출신인 자신의 옆에 있는 노국공주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국공주가 입을 열었다.

    "몽골군의 생명과도 같은 말 때문이지요. 몽골군은 유목 민족이면서 기마 민족입니다. 몽골군에게 보병이란 개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옥한 농지 따위가 아닙니다. 말을 배불리 먹일 목초지가 필요한 것이지요. 탈 말이 없으면 몽골군도 없는 것입니다."

    "왕비가 정확하게 집어주었다. 몽골인은 세 살 때부터 말을 타며 일곱 살이면 말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말위에서 활을 쏘면서 놀이를 하고 자라서는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선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기마병으로 성장하는 것이지. 그런 이유로 노국공주처럼 몽골 병사들은 모두 안짱다리야. 평지에서는 빠르게 잘 달리지도 못한다는 소리다. 보병대 보병으로 싸우면 몽골군은 백전백패할 것이야. 몽골군이 그 두 곳에 총관부를 세운 것은 말에게 먹일 대규모 목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제주도가 그러하고 쌍성총관부가 있는 곳 인근에 위치한 개마고원이 그러하다."

    왕기가 무지를 슬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수하에 있는 기마병과 고려의 기마병을 끌어모아 성을 함락시킬 보병과 함께 철령을 통해 쌍성총관부에 있는 화주로 북진해 쳐들어 가겠다는 무지가 세워온 전략을 내가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때문이야. 지금 내 수하에 있는 왕비가 지참금으로 데려온 천명의 기마병은 쌍성총관부와의 싸움에 동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같은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에는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기 때문이지. 둘째는 고려의 기마병과 몽골의 기마병이 싸우면 몽골군이 이긴다고 봐야 한다. 기마병대 기마병의 싸움은 무조건 우리가 불리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함경도의 땅은 함경산맥, 낭림산맥. 마천령산맥 등이 있는 곳이라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기에는 너무 험준한 지형이야."

    그러자 무지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전하의 전략은 어떤 것이옵니까?"

    왕기가 펼쳐놓은 고려의 지도를 집으며 말했다.

    "신병기를 사용해 기마대를 초전박살 내야만 하겠지. 기존의 고려 병사들은 단 한 명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야. 오로지 내 밑에 있던 심왕부에서 훈련시킨 단 천명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전쟁을 치를 것이야. 물론 통신대와 보급대는 당연히 같이 이동해야겠지만. 그들을 이끌고 비교적 평탄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입한다. 평양을 거쳐 순천을 지나 개천을 통과한 다음 개마고원과 가까운 진천읍까지 진군한다. 그런 다음 개마고원에 신무기를 넓게 펼친 후 적들의 기마대를 그곳으로 불러들여 승부를 본다. 그래야만 고려 조정 및 사대부들이 다음 단계인 일본 정벌에 대해서 입도 벙끗 못 할 것이니라."

    "신무기라면 전하께서 개발하신 비행선이라는 것을 사용하실 것입니까?"

    "아니다. 비행선을 동원하면 화들짝 놀란 몽골군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성안에 틀어박혀 농성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이번 전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오로지 박격포만을 사용할 것이야."

    "하지만 적들의 기마대가 순순히 그리로 와준다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몽골군의 기병대가 사용하는 말을 먹일 목초지가 거기라고 말이야. 그리고 기병은 넓은 평지지역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병과야. 주변이 온통 험한 산지로 둘러싸인 함경도에서 기병대가 자신들 마음대로 전술을 펼칠 수 있는 곳은 개마고원밖에 없다. 개마고원에 진을 치고 있으면 알아서 달려들 것이야. 이건 내기를 해도 좋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무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남은 문제는 단 하나로군요. 천명의 병력으로 2만의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 정도로 신무기의 위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전하께서 힘들게 기른 천명의 병사들 목이 덧없이 잘려 나갈 것입니다."

    빙긋 웃은 왕기가 최무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말한 대로 박격포 포탄을 대량으로 제작해놨느냐?"

    "네. 전하. 어차피 당장은 할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일전에 전하가 말씀하신 대로 꼬리에 날개를 단 박격포탄을 대량으로 비축해 놓았습니다."

    "그럼 남은 건 두 가지로군. 내가 강철을 개발해 포신을 제작하는 것과 천명의 병사들을 뛰어난 포병대로 육성하는 일."

    왕기가 미리 준비한 듯 두 장의 서철을 품속에서 꺼내어 각각 최무선과 무장에게 내밀었다. 최무선이 서찰을 받아들며 물었다.

    "전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이전에 내가 설계한 육분의(六分儀)라는 것의 설계도면이다. 목표물과의 각도를 계산해 적과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장비이지. 넌 지금 즉시 돌아가 이 육분의를 300여 개 정도 제작하거라. 이건 기존의 철로도 충분히 제작 가능하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철장들이 만들 수 있을 것이야. 포병은 기본적으로 관측병이 필수적이다. 포탄을 원하는 목적지로 정확히 쏴야만 그 효력이 극대화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무장은 지금 당장 심왕부에서 데려온 천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최무선을 따라가거라. 그런 후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대로 병사들을 정예 포병으로 훈련시킨다. 천명의 병사들을 4인 1조로 구성해서 사수, 부사수, 탄약수 그리고 관측병으로 훈련시키면 되는 것이야. 그럼 총 250조로 이루어진 박격포대가 되는 것이지. 육분의를 사용할 관측병들의 훈련은 무지가 따라가서 도와주도록 하고. 난 잠시 후 국방과학연구소로 가서 강철을 제련할 것이니라. 박격포 250문 정도면 일주일이면 제작하고 남을 것이니 너희들도 1주일 이내에 병사들의 훈련을 모두 끝마치도록 해. 그런 후 곧바로 쌍성총관부를 치러 갈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존명.

    최무선과 무지 무장이 힘차게 대답한 후 침전을 나서자 왕기가 척 무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앙군의 점령은 잘 끝났느냐?"

    '네. 전하. 큰 싸움없이 소관의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럼 중앙군들도 훈련을 시켜야겠지? 심왕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 방식으로 훈련을 시키도록 하거라. 단 훈민정음을 익히지 못하는 군사는 중앙군에서 자른다는 내 말을 반드시 전달하고."

    "네. 전하. 잘 알겠습니다. 근데... 훈민정음 책자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필사를 한 책자들의 대부분이 소진되어서요."

    "흠... 금속활자를 만들어 대량으로 책을 찍어내는 인쇄기술 개발이 필요하겠어. 매일 아침 신문을 찍어내는 조판 기술을 활용해야만 하겠군."

    왕기가 노국공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이 무슨 뜻이지 잘 알고 계시지요?"

    "네. 전하.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며 그 조합이 가능한 글자의 개수는 정해져 있지요. 가, 갸, 거, 겨, 고, 교....처럼 말이지요. 이 말의 뜻은 가능한 모든 조합의 글자를 금속활자로 미리 만들어 두면 새로운 내용의 책을 찍을 때마다 거기에 맞는 목판을 힘들게 깎을 필요가 없어질 뿐만이 아니라 대량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기존의 활자를 책의 내용에 맞게 순서대로 배열한 후 밀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믿고 맡겨주신다면 소첩이 한번 개발을 해보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왕비. 그대를 믿고 전적으로 맡기겠소"

    왕기가 노국공주와 잠시 눈을 마주친 다음 멀뚱멀뚱 서있는 신라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라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전하."

    "그대의 잘 생긴 얼굴을 써먹어야지. 고려의 왕이 임명한 정식 외교 사신으로 발령을 내줄 테니 쌀농사가 주업인 남만(南蠻)으로 가서 식량을 구입하거라. 벽란도에 가면 남만으로 가는 배가 있을 것이야. 남만에 가면 참파(cham pa : 지금의 베트남) 왕국이 있을 것이다. 배를 타고 가서 재주껏 국왕을 만나 남는 쌀을 모두 구입하겠다는 계약을 맺도록 해. 시가보다 비싼 값을 줘도 되니 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야. 단 대가는 원나라의 화폐로 지불한다고 말하고. 원나라에서 본격적인 내전이 터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원나라 화폐를 다 소모해야만 한다. 가지고 있어봐야 휴지조각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소문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야만 할 것이야. 그리하고 있으면 쌍성총관부를 밀어버린 후 내가 쌀을 실을 비행선을 타고 날아갈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신라면마저 명을 받고 나가자 왕기가 옆에 앉은 노국공주를 보며 말했다.

    "간부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하나 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소이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쌍성총관부에 천호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이자춘(李子春)이 있을 것이요. 그자를 몰래 빼돌려야만 하오."

    "이자춘이라 하면...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맞소이다. 이성계의 나이 이제 겨우 11살일 것이오. 이번 전쟁에서 죽지 않도록 어떻게든 살려놔야만 하오. 그래야 세종대왕이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 일을 누구에게 시키실 것이옵니까?"

    "나말고 누가 그 일을 하겠소? 전쟁 시작 직전에 몰래 잠입해 납치해올 생각이라오. 막상 고려의 왕이 되니 할일이 끝이 없소이다. 그럼 난 이만 박격포 개발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로 날아가 보겠소이다. 아...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찬성사 이곡이 자신의 아들을 보낼 것이오. 그대가 훗날 목은 이색이 될 자에게 훈민정음을 좀 가르쳐 주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소첩이 그리하지요. 소첩이 잘 지키고 있을 테니 왕실 일은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시지요."

    - 쪽.

    고맙다는 듯 노국공주의 얼굴을 부여잡고 가볍게 입맞춤을 한 왕기가 연졍전의 침실을 나와 하늘로 빠르게 솟아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