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 왕기, 마침내 고려(高麗)의 왕이 되다 - 4 >
[심왕부의 가주전]
일전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비행선이라는 것을 일주일 만에 제작하라는 왕기의 명에 며칠을 피똥을 싸면서 고생했던 삼돌이가 왕기로부터 재물을 넉넉하게 받은 덕분에 비행선 제작에 사용하고도 남은 재물을 집에 가져다 주자 마누라에게 잘했다며 칭찬을 듬뿍 받았고 요 며칠 꿈같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금일도 밤이 깊어 으슥해지자 부부지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분위기를 한껏 잡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척무관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혀 단숨에 심왕부로 끌려온 삼돌이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전... 전하. 소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혹시 소인이 만든 비행선이라는 것에 문제라도 발생한 것입니까?"
왕기가 삼돌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아주 잘 만들었더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품질이 훨씬 더 뛰어났어."
그제서야 안심을 하는 삼돌이에게 왕기가 새로운 설계도면을 내밀었다.
"네놈이 급히 하나 더 만들어줘야 할 것이 있어서 밤늦은 시간에 부른 것이다. 비행선을 제작한 경험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만드는 방식 자체는 비행선과 똑같으니까. 단지 부위별로 분리와 결합이 되는 것만이 다를 뿐이지."
도면을 뚫어지게 살펴보던 삼돌이가 한번 해본 일이라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소인에게는 자식이 있어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라고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근데... 여기 적혀있는 수치가 정말로 맞는 것입니까? 이 수치대로라면 크기가 지난 비행선보다 100배는 더 커질 텐데요? 그리고 각 부품마다 끝에 철판을 붙이면 무게가 확 올라갈 것입니다."
"철판은 내가 조종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붙이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리고 적혀있는 수치도 다 맞느니라. 이번 것은 이전과 달리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니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지.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 늦어도 이틀 이내로 만들어야만 하니까."
'사신단이 모두 선정되어서 경창부원군을 왕으로 올리겠으니 허락해달라는 서신을 가지고 원나라로 출발하는 것은 불과 사흘 뒤이다. 그전에 이번 작전을 모두 끝내야만 해.'
왕기가 속으로 뇌까릴 때 삼돌이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전하.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재물만 충분하다면 크기가 크더라도 이틀 내에 골격을 세우고 가죽을 입히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크기가 큰 만큼 임금을 주고 사람들을 많이 동원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아교가 굳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면 소인이 고려촌에서 남몰래 조용히 비행선이라는 것을 만들 때와는 달리 소문이 금방 퍼질 것입니다."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승의공주가 대꾸했다.
"사람은 왕부에서 최대한 지원을 할 것이니 걱정 말거라. 제작을 고려촌이 아니라 심왕부의 연병장에서 할 것이고, 그 작업에 심왕부의 군사들인 장정 2천 명과 그의 부인들이 모조리 동원될 계획이니까. 그리고 비밀이 좀 새어나가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러한 소문이 고려에까지 도착할 때쯤이면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일 테니까 말이야."
그 말에 왕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재화가 가득 든 가죽 주머니 두 개를 하나 삼돌이 앞에 던지며 말했다.
- 툭. 툭.
"왕비의 말이 다 맞느니라. 이번에는 아교가 다 굳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1회용으로 한번 쓰고 버릴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넌 이틀 이내에 사람들을 감독해서 내가 말한 것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야. 이번에도 재물을 넉넉하게 넣었으니 한번 만들어 보거라. 가능하겠지?"
그러자 삼돌이가 방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대답했다.
- 쿵.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 정도의 인력과 재물이라면 이틀 내에 충분히 제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소인이 지금 당장 고려촌으로 가서 관련된 재료들과 기술자들을 깡그리 끌고 오겠습니다. 재물이 충분하면 못하는 것이 없는 법이지요."
"이번 일마저 잘 해내면 본 왕이 널 고려로 데려가 제법 높은 관직을 줄 것이야. 그러니 한치의 차질도 없이 진행하도록 하거라."
"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서기 1345년 11월 16일
[심왕부의 연병장]
폭풍과도 같았던 하룻밤이 지나가고 심왕부의 연병장에서는 2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삼돌이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연병장 한쪽의 대형 천막에서는 천명이 넘어가는 여인들이 조형물에 씌울 가죽을 바느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편 그때 음식 솜씨가 좋은 몇 십 명의 여인들은 전을 부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으니, 마치 잔치라도 벌어진 듯 고소한 기름 냄새가 연병장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가주전의 앞마당]
청명한 겨울 하늘에 뜬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오랜 세월 권세를 누려왔던 팽가답게 포석이 잔뜩 깔려 단정하게 꾸며져 있는 심왕부의 가주전 앞마당에서는 왕기와 승의공주 그리고 밤사이 연락을 받아 아침 일찍 심왕부를 찾아온 춘향각주의 결혼식이 열릴 채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돌을 깎은 석판들을 빈틈없이 잘 깔아 흙 한줌 보이지 않는 가주전 앞마당 양옆에는 악사(樂士)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하객들이 위치할 자리에 깔려있는 상에는 연병장에서 만든 음식들이 바리바리 옮겨져 오고 있었다. 준비가 모두 끝나자 간부들이 연병장에서 일하던 군사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악사들 중에서 큰 북을 담당하고 있는 고수(鼓手)가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북채를 힘차게 휘둘렀다.
- 두~우~웅!
첫 번째 북소리에 맞춰 동일한 군복을 맞춰 입은 정예 병사들이 각 중대별로 열을 지어 마당 안으로 절도 있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맹훈련 덕분인지 병사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을 맞추어 걸어들어와 악사 뒤쪽에 일렬로 도열하자 고수가 또다시 북채를 휘둘렀다.
- 두~우~웅!
두 번째 북소리에 맞춰 척 무관과 무지, 무장을 비롯한 심왕부의 간부들과 승의공주 휘하에 있는 몰골 병사들의 백인장들 그리고 춘향각주 휘하에 있는 간부들이 순서대로 입장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뒤에 용이 수놓아진 비단으로 된 황금 의복을 걸친 왕기가 보무도 당당하게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왕기가 앞마당 앞쪽에 우뚝서자 고수가 또다시 북채를 휘둘렀다.
- 두~우~웅!
세 번째 북소리에 맞춰 화려한 궁장을 걸친 승의공주와 춘향각주가 사뿐사뿐 걸어들어와 왕기의 양옆에 섰다. 그러자 악사들이 일제히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새벽에 왕기의 방문을 받아 아침 일찍 황궁에 들어갔다 온 고용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고려의 강릉부원대군이며 심왕이신 왕기 전하와 원나라 위왕(魏王)의 딸인 승의공주와 춘향각주의 결혼식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지엄하신 원나라 황제이신 혜종 황제의 성지(聖旨)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릎을 꿇어주시길 바랍니다."
- 부스럭. 쿵. 쿵...
각종 하객들과 신랑 신부가 무릎을 꿇자 고용보가 아침 일찍 혜종에게 받아온 칙서(勅書)를 펼쳐 우렁찬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고려의 강릉부원대군이자 심왕인 왕기는 여태껏 본 황제가 보아왔던 그 어떤 고려의 왕족보다 백성들을 공경하고 불쌍히 여기는 성품을 가진 자이다. 따라서 그에게 '공민왕(恭愍王)'이라는 호를 내리는 바이다. 또한 공민왕의 정실이자 왕비가 될 승의공주에게는 그의 아비인 위왕이 다스리는 땅이 과거에 노(魯)나라가 있던 땅이었기에 '노국공주(魯國公主)'라는 호를 내리는 바이니라. 또한 공민왕의 첫 번째 빈(嬪)이 된 여진족 출신의 춘향각주에게는 '여춘옹주(女春翁主)' 라는 호를 내리는 바이다.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공민왕이 정식으로 원나라의 부마가 되었음을 황제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 우와아아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으로 가주전 앞마당이 떠나갈 듯했다.
[심왕부의 가주전]
결혼식을 끝낸 왕기가 노국공주니 여춘옹주니 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신의 부인들을 힐끗 쳐다본 다음 자신의 앞에 있는 고용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웠을 텐데 이렇게 내 부탁을 들어주어서 고맙소. 아침부터 옥쇄가 찍혀있는 황제의 칙서를 받아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오."
그러자 고용보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의 부탁인데 소인이 무엇을 못하겠사옵니까? 공민왕 전하. 이번 일에는 황후마마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침부터 황제에게 달려가 매달려 이번 칙서를 받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으니까요.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황후마마께서는 전하와 척을 질 생각이 추호도 없으십니다. 단지 자신의 피붙이를 걱정하는 마음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내 이번의 공을 봐서 손끝에 자비를 둬 고려에 있는 기씨 일족을 완전히 몰살시키지는 않을 테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감사하옵니다. 전하. 황후마마께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고용보가 물러가자 여춘옹주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노국공주가 왕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 정말로 기씨 일족을 멸문시키지 않을 것이옵니까?"
"어젯밤 척씨와 최씨 가문이 작성한 살생부를 비교해가며 면밀히 읽어보았소. 살생부에 적혀 있는 기씨 일족의 명단에 기철의 친손자인 두 살배기 남아(男兒)가 하나 있더군. 기씨 집안의 적손(嫡孫)인 그놈 하나쯤은 살려줄 생각이라오. 어차피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나에게 위협이 될 존재는 아니니 본 왕의 자비를 보일 겸 해서 말이외다. 그놈을 제외한 모든 기씨 일족은 목을 칠 것이니 걱정 마시오. 지은 죄가 크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그 정도면 왕의 권위를 세우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오. 두 분은 왕부에 남아 작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를 해 주시오. 난 빠르게 고려를 다녀와야 하겠으니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가주전을 나선 왕기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하늘로 솟구쳐 고려의 개경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천마산 인근의 국방과학연구소]
최무선과 함께 왕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신라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전하. 단지 소문을 퍼뜨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전하께서 명하시면 이 신라면이 향도들을 이끌고 난이라도 일으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필요 없느니라. 괜히 난을 일으켰다가는 죄 없는 애꿎은 백성들만 희생될 뿐이야. 자고로 공자가 말하길 '군주인수(君舟人水)'라고 하였느니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법이지. 또한 사마천이 사기에 이르기를 '중노여수화 불가구야(衆怒如水火 不可救也)'라고 하였느니라. 백성의 분노는 물, 불과 같아서 일단 폭발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군주라고 해도 수습할 길이 없는 법이지. 자신의 이속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부원배들이라고 해도 백성들이 화가 나서 폭발할 지경이 되면 자신들의 목이 온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합심한 백성들의 힘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알겠사옵니다. 전하. 지금 당장 개경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전하께서 말씀하신 소문을 퍼뜨리겠사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지요. 소문이 퍼지는 데에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럼 사흘 뒤에 보도록 하자. 백성들이 피를 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고."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빠르게 사흘이 흘렀다.
서기 1345년 11월 19일
[개경의 영안왕부(榮安王府)]
지난 사흘간 자신에게 바친 뇌물의 액수에 따라 원나라에 보낼 사신단의 선정을 모두 끝낸 기철이 머물고 있는 집 앞쪽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기철이 자신의 왕부를 관리하고 있는 집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내 집 앞에 이렇게 백성들이 모여드는 것이나? 날 죽이고 감히 반역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이더냐?"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이미 군사들이 왕부 내에 배치되어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있사오니 감히 안으로 쳐들어오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손에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난을 일으키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것입니다."
"내가 물은 것이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 백성들이 모여든 연유를 물었다."
"개경 시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사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백성들이 모여든 것일 겁니다."
"소문? 어떤 소문?"
집사가 미적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기철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백성들 사이에 무슨 소문이 돌고 있단 말이냐? 썩 말하지 못할까!"
그러자 집사가 입을 열었다.
"부처께서 점지하신 차기 왕인 강릉부원대군을 놔두고 자신들의 이속을 챙기기 위해 어리디 어린 경창부원군을 왕으로 미는 못된 부원배들에게 오늘 중으로 부처님의 천벌이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요 며칠 들불처럼 퍼져서 돌고 있습니다. 워낙 황당한 소문이라 제가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운집한 것을 보니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이 그 소문을 믿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부처께서 나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단 말이지?"
"네,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허... 믿을 것이 따로 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단 말인가?"
"배운 것이 없는 무지렁이들이라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에 다른 이상한 움직임은 없고?"
"네. 없습니다. 군사들이 동원된 흔적도 없고 무기를 장착한 반란군들로 보이는 자들도 전혀 없사옵니다."
"그럼 그냥 놔두거라.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직접 겪어보도록 말이야."
한편 그 시각. 천마산에 위치한 박연폭포 앞에서는 왕기가 한참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박연폭포 아래의 고모담(姑母潭)]
박연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옛날에 박진사(朴進士)란 자가 이 폭포에 놀러 왔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폭포 밑 못 속에 사는 용녀(龍女)에게 홀려 백년가약을 맺었고, 그 진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 폭포에서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하고 비탄에 빠져 자신도 폭포 밑 담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고모담이라는 슬픈 이름이 붙어진 못 속에 손을 담근 왕기가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물을 끊임없이 전기분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왕부에서 짊어지고 날아온 여러 개의 거대한 주머니 중 하나를 열어 바닥에 펼쳐놓은 왕기가 전기분해하여 발생한 수소를 열심히 주입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나무로 골조를 새우고 가죽을 씌워놓은 사람 몸뚱이의 열 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손이 점점 부피를 키우가며 제 형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소 가스가 가득 차자 자연스럽게 하늘로 상승하려는 거대한 손을 근처에 있는 나무에 밧줄을 매어 떠오르지 못하게 만든 왕기가 차례차례 가죽 주머니를 열어 하나씩 완성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통처럼 보이는 길이가 30장이 넘어가는 거대한 몸통에 완성된 팔을 끼우자 '뽁'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장착되었고, 똑같은 방법으로 사지(四肢)와 머리통까지 장착이 되자 길이가 70장(200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불상(佛像)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불상 꼭대기로 단숨에 날아오른 왕기가 거대한 팔의 양쪽 끝에 장착되어 있는 철판에 자기장을 걸어 조종했다. 그러자 거대한 불상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왕기가 등에 매고 있던 마지막 주머니에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쪽자 두 폭을 부처의 양손에 각각 쥐여주었다. 하나는 왕기가 향도들에게 배우게 하라고 한 고려어로 쓰여 있었고 하나는 한자로 적혀있었다.
- 고려의 차기 왕은 미륵의 화신인 강릉부원대군이 될 것이다. 이는 지엄하신 부처의 명이다.
- 대고려차기왕위지필강릉부원대군승야(大高麗次期王位之必江陵府院大君承也)
마지막 준비까지 끝마친 왕기가 대불의 머리통 위에 움푹 팬 곳에 앉아 대불을 떠오르지 못하게 막고 있던 밧줄들을 어검술로 잘라내었다. 그런 후 하늘로 솟구치며 자세를 못 잡고 자기 맘대로 회전하려는 대불을 제어하기 위해 대불 곳곳에 매달려 있는 철판들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자세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꼿꼿이 서도록 만든 다음 개경시내를 목표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비행선을 알 리가 없고 로봇을 알리가 만무하지. 비록 대나무에 가죽을 씌운 다음 수소 가스를 채운 대불에 불과하지만 백성들이 보기에는 부처의 현신과 다름이 없을 것이야. 원나라에 갈 사신들이 떠나기 전에 부원배들과 백성들을 최대한 동요시켜 나를 왕으로 추대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이야. 이것으로도 안 되면... 어쩔 수없이 고려 조정을 피로 씻을 수밖에 없다.'
- 씨이잉.
거대한 대불이 공중에서 양발을 앞뒤로 움직이며 마치 하늘을 걷는 것 같은 마이클 조단의 에어워크(Air Walk) 같기도 하고, 경공의 최절정 경지인 능공허도(凌空虛道) 같기도 한 모습을 선보이며 개경 시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