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71화 (71/171)
  • #71. < 왕기, 마침내 고려(高麗)의 왕이 되다 - 1 >

    [심왕부의 가주전]

    "...그런 다음 벽란도에 있는 최무선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오."

    왕기가 요 며칠간의 행적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자 승의공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소첩이 심왕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전하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벽력가에서 새로운 여인을 하나 더 얻으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도 왕녀라는 것만 알뿐 이름조차도 모르는 그녀에게 서하라는 나라까지 건국해 주기로 약속까지 하고서 말이지요."

    그 순간 천하의 왕기도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게 말이오. 내가 절대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오.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풀려서..."

    승의공주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하. 그렇게까지 당황해하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소첩은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도 잘 알고 있고, 조만간 고려의 왕이 되실 전하의 왕권이 튼튼하게 유지되려면 슬하에 자식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TV에서 사극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전하께서 딱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시면 소첩은 전하께서 삼처사첩(三妻四妾)을 두시든 하렘(Harem)을 궁궐에 세우시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질투도 하지 않고 바가지도 긁지 않겠다고 약속드리지요."

    "그 두 가지가 무엇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의 적통(嫡統)은 소첩이 낳은 자식에게 있다는 것과 그런 적통을 낳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소첩의 침실로 찾아오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않겠사옵니까? 그리고 전하께서 소첩에게 자랑하셨잖습니까? 가장 장기로 삼는 것은 자기부상신법을 이용한 무시무시한 이동 속도라고 말입니다. 그런 전하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소첩의 침실로 오실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사옵니다."

    "내 그리하리라 약속하리다. 어차피 나의 적통은 현대의 방대한 과학지식을 물려받아야만 할 것이니까. 그래야만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할 고려를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오. 누가 뭐래도 자식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의 어미 아니겠소? 나 못지않은 현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대가 낳고 그대가 가르친 자식만이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이오."

    승의공주가 갑자기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막상 소첩이 왕의 여인들 중에 하나인 입장에 처해보니 사극에서 그녀들이 왜 그렇게 악다구니를 해대며 싸웠는지를 이해하겠사옵니다. 이건 여인의 본성 같습니다."

    "본인도 충분히 이해를 하오. 씨앗 싸움에는 부처도 돌아앉는다라는 말도 있지 않소? 내가 거듭 약속하리다. 나의 모든 것은 그대가 나은 자식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말이오."

    "감사하옵니다. 전하. 그럼 전하가 이번에 얻은 깨달음이란 무엇이옵니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한 유명한 말이 있소이다. 혹시 알고 있으시오?"

    "알고 있습니다. 소첩도 학부 시절에 전하와 함께 교양 과목으로 서양철학사를 같이 이수했으니까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라고 말하였지요. 눈으로 보기에는 어제와 똑같은 강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 다시 발을 담그는 강물은 이미 다른 강물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맞소이다. 그러한 이치로 우리는 두 번 다시 2020년의 한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계속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2020년이 되겠지. 이 시대에서 우리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든 역사적으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죽든 상관없이 말이오."

    씁쓸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은 승의공주가 대꾸했다.

    "아마도 그리되겠지요."

    "2020년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누구보다 그대가 잘 알 것 아니오?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난 채로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로 인한 전 세계적인 자원 갈등, 식량 갈등과 거기에 따른 극심한 환경 오염과 기상 이변, 그리고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는 각종 전쟁들과 테러, 종교 분쟁, 인종 차별 등등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한 세상이 바로 2020년이오. 난 이번에 내가 과거로 끌려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느꼈소이다. 단순히 고려를 강성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세상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신들의 의지로 말이오. 난 내 힘으로 미래에는 환경 오염도 없고, 전쟁도 없으며, 종교 분쟁이나 인종 차별도 없는 그런 멋들어진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하오."

    웅대한 포부를 설명하는 왕기의 말에 승의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유토피아가 세상에 도래하면 온 인류가 행복해지겠지요. 지상낙원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장 소첩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교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실 것입니까? 설마 전하께서 한 종교만을 택하여 밀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다 믿게 하실 것입니까? 가령 요즘 전하와 자주 엮인다는 불교를 밀어 주시려는 것입니까? 고려가 태조 왕건 때부터 숭불정책(崇佛政策)을 취하고 있고, 부처의 힘을 빌려 전쟁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제작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시려면 이 세상 사람들의 절반 이상을 죽이셔야만 가능할 테지요. 유럽과 중동 지역의 사람들부터 말살하셔야 할 테니까요. 정말로 그러할 마음이 있으신 것입니까?"

    승의공주의 말에 왕기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난 불교라는 특정 종교를 밀어서 전 세계인이 불교신도가 되게 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소이다. 그런 일은 부처 자신도 못한 일이오. 예수도 알라도 못한 일이고.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한단 말이오?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모든 종교 교리에서 유일신(唯一神)의 교리를 없애는 것이오."

    "종교에서 유일신의 교리를 없앤다고요?"

    "맞소이다. 모든 종교 분쟁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 내가 믿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다른 종교의 신들은 모두 가짜이고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만큼 위험한 교리는 없다고 보오. 내가 지배력을 발휘하는 곳에서는 서로 믿는 종교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상을 널리 퍼뜨릴 것이오. 말로 안 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런 교리를 반드시 없애고자 하오. 종교 분쟁을 없애는 것의 출발은 거기서부터 일 것이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환경 오염은 어떻게 막으실 것입니까?"

    "내가 가장 고민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오. 발달된 문명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소.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혁명을 통해 석탄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다시 석유 문명으로 넘어가면서 환경 오염이 극심해졌소이다. 그렇다고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서 에너지를 쓰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되오. 그럼 문명의 발전이 없을 테니까. 석탄과 석유의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하지만 벽력가 초대 가주의 연구 일지를 보면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소이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태양광을 이용하는 것이라오. 어느 정도의 과장은 있지만 현대 인류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부터 왔다는 말이 있소이다. 아득한 과거부터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 그 에너지를 이용해 발아를 하고 광합성을 하며 성장을 해왔소이다. 그러한 식물들이 땅에 묻힌 것이 바로 석탄(石炭)이고, 그런 식물들을 먹이로 해 자란 동물들이 땅에 묻힌 것이 바로 석유(石油)이지. 현대의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에너지의 원천은 태양이고, 오랜 세월 태양이 뿜어낸 에너지를 식물과 동물들이 몸속에 축적해온 것을 뽑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단 말이외다. 그것도 거의 한계에 도달한 2020년에는 태양빛을 이용한 전기 발전이 활발해지고 있었소. 하지만 석탄과 석유를 이용하는 기존의 인프라가 워낙 강력해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힘든 상태였지. 하지만 석탄과 석유가 전혀 개발되지 않은 지금이라면 어떻겠소? 처음부터 태양을 이용한 에너지를 전 세계가 사용한다면 환경 오염은 극도로 줄어들지 않겠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겠사옵니까?"

    "나 스스로도 얼마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소이다. 내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이 시대에서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방법이 생겼소. 벽력가의 초대 가주가 반도체와 관련된 연구를 착실히 잘 해놨으니까 말이외다. 반도체는 단순히 컴퓨터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 전지(Solar Cell)'의 주재료이기도 하오.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발전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오. P-형 타입의 반도체와 N-형 타입의 반도체를 연결해 태양빛을 받았을 때 서로의 전위차로 인해 발생하는 '광기전효과(光起電效果)'를 이용하는 것이지. 지금 바로 개발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내가 작심하고 연구하면 분명히 개발이 가능할 것이오. 내가 익힌 뇌전벽력신공이 전기와 전자의 흐름을 그 무엇보다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외다. 그리고 재료 또한 별다른 환경 오염 없이 무한정으로 구할 수 있소. 반도체는 규소(Si) 즉 모래이니까 말이외다."

    "전하께서 혼자서 많은 고심을 한 것은 소첩도 알겠사옵니다. 그럼 전쟁이 없는 세상은 어떻게 만드실 것입니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간단한 문제이지. 고려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전쟁을 하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그 누구도 감히 반항할 수 없는 막강한 화력을 지닌 대고려제국이 전 세계인들의 전쟁을 억누르게 될 것이오. 그 정도의 화력은 지금 당장이라도 개발이 가능하니까. 이미 박격포와 대포의 설계도 끝났고 재료 준비도 끝났으니 곧 실질적인 제작 단계에 들어갈 것이오."

    "총은 만들지 않는 것이옵니까? 소첩은 전하의 능력을 믿고 있사옵니다만 전하께서 왠지 멀리 둘러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내가 일전에 밤을 새워가며 각종 기술과 관련된 반발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소이다. 그때 가장 큰 반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두 가지였소. 그것이 바로 총과 증기기관이었지. 왜 그런 것일까라고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소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소. 개개인이 총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각종 분쟁과 테러를 유발하기 십상이외다. 전쟁이 없는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총이 없는 세상이 통제가 더 쉽소이다. 증기기관은 환경 오염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니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그러한 이유로 신들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두 가지를 배제하라는 뜻으로 난 받아들였소이다. 총도 증기기관도 없지만 전쟁과 환경오염이 없으면서도 태양을 이용한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높은 문명을 구가하는 세상.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라고 보면 될 것이오."

    왕기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과 관련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그때 방문이 열리며 품에 이상한 물건을 안고 있는 척무관이 들어왔다.

    "전하. 잘 다녀오셨습니까?"

    "잘 다녀왔소이다. 내가 없는 동안 병사들을 훈련시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소. 품에 안고 있는 것은 무엇이오?"

    "일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비행선이라는 것이옵니다. 안에 아무것도 넣지를 않았더니 보시는 것처럼 납작해져 버려서요. 그리고..."

    척무관이 품에서 곱게 접힌 서찰 두 개를 꺼내어 내밀었다.

    "며칠 전에 도착한 일전에 말씀하신 척씨와 최씨 가문에서 각각 작성한 살생부이옵니다. 소관이 미리 단단히 주의를 줬으니 조작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살생부와 시험적인 비행선의 껍데기를 받아든 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고려에 갔다가 듣기로는 충목왕 전하의 병세가 생각보다 위중하다고 들었소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고려로 돌아가 왕위에 등극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오. 내일 아침 일찍 모든 간부들을 소집하시오. 고려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군사 훈련에 들어가 각 특성별로 정예 병사들을 양성해야만 할 테니까 말이오. 모든 것을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서기 1345년 11월 15일

    새날이 밝아옴에 따라 고려에서는 문무백관이 조정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만월대의 연경궁(延慶宮]

    충목왕이 훙(薨 : 왕이 붕어했음을 뜻함)함에 따라 연경궁의 넓은 대전에서는 거친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고 흰 신발을 신은 문무백관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어의에 의해 촉광례(觸纊禮 : 부드러운 솜을 왕의 코에 대고 숨이 확실하게 끊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방금 전 끝났사옵니다."

    한 신하의 말에 다른 신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해 장례 절차를 진행함이 마땅할 것이오."

    그러자 다른 신하가 반발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태조께서 남기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잊으셨소? 중국의 풍습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고 거란의 풍습은 아예 본받지 말라고 하셨소이다. 근데 난데없는 중국의 주자가례라니. 태조의 지엄하신 훈요십조의 첫 번쨰가 무엇이오? 고려는 부처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까닭으로 사원을 짓고 승려를 파견하여 불도를 닦도록 하여라 아니겠소이까? 당연히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그러자 또 다른 신하가 반발하였다.

    "훈요십조가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이오? 고려에 있는 사대부들은 유교를 따른지 오래이외다. 당연히 주자가례에 맞추어 장례를 치러야만 할 것이오."

    그러자 문무백관들 중에 체격이 뛰어나고 기세가 삼엄한 장수 하나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라도로 급히 파견 나가 성공적으로 왜구를 토벌한 후 개경으로 돌아와 있던 최영 장군이었다.

    "지금 장례절차를 뭘로 할지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이오? 충목왕 전하께서 붕어하셔서 지엄하신 이 나라 지존의 자리가 비었소이다.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왕을 모셔야만 할 것이오."

    그러자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기철이 입을 열었다.

    "최영 장군의 말이 맞소이다. 장례절차야 돌아가신 충목왕의 모후이신 덕녕공주 대비마마께서 원하시는 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외다. 하지만 왕의 자리는 한시라도 비워둘 수가 없는 법이지요. 중요한 것은 차기 왕을 어느 분으로 모실 것인가 일 것이오. 붕어하신 충목왕 전하께는 뒤를 이을 후사가 없으시니 서열에 따라 마땅히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이신 왕저(王㫝) 저하를 추대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외다."

    그러자 최영 장군이 강하게 반발했다.

    "부당하외다. 잊으셨소? 경창부원군 저하께서는 서자(庶子)이외다. 적자(嫡子)를 놔두고 서자를 왕위에 올리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이오?  그뿐만이 아니라 경창부원군 저하의 보령이 이제 겨우 9세이시고 병약하시기로 널리 소문이 나 있으시오. 또다시 충목왕 전하처럼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럼 최영 장군께서는 누구를 왕위에 올리자는 말이오?"

    "당연히 원에 계시는 강릉부원대군 저하를 왕위로 올려야 마땅하지요. 충숙왕의 둘째 아들이신 적자 출신이시니 자격이 충분하고, 올해로 16세이시니 보령 또한 충분하시며 소문에 타고난 영특함에 원나라에 계시면서 무공까지 익혀 신체 또한 강건하시다고 하니 차기 왕으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오."

    그러자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방금 전 최영 장군의 하신 말씀을 듣자 하니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큰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모양이구려. 그 말씀을 곤성전(坤成殿)에 계시는 충목왕 전하의 모후이신 대비마마(大妃媽媽)와 경창부원군 저하의 모후이신 희비(禧妃)마마 앞에서 직접 말씀드려 보시구려. 그분들께서 뭐라 답하실지 궁금하니까. 그분들과 강릉부원대군 저하와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강릉부원대군 저하께서 원나라에 가신지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오. 그동안 얼굴 한번 못 봤으니 남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외다."

    그 순간 기철이 나서서 정리를 했다.

    "자자. 다들 이렇게 싸우지 마시고 본인이 직접 곤성전을 다녀오겠소이다. 덕녕공주이신 대비마마와 희비마마의 의중이 어떤지 물어본 다음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도록 합시다. 지금 왕실의 최고 어른이 그분들이시니 그러면 되지 않겠소이까? 그동안 여러분들은 돌아가신 충목왕 전하의 장례절차를 의논하고 계시구려."

    - 잘 알겠사옵니다. 그리하시지요.

    기철의 말에 조정에 있는 문무백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최영 장군이 이를 악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원배들이 보령이 어린 경창부원군 저하를 왕으로 추대한 다음 충목왕 전하 때처럼 또다시 고려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를 심산이로군.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 막을 힘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로다. 강릉부원대군 저하께 이러한 사태를 막을 묘책이 있으셔야 할 텐데 말이야.'

    고려의 차기 왕위를 놓고 신하들이 갑론을박을 하는 동안 심왕부의 가주전에서도 간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