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70화 (70/171)
  • #70. < 대혼돈(大混沌)의 시대가 도래하다 - 2 >

    고려의 충목왕이 피를 토하며 붕어하던 그때 일본에서도 급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 교토의 하나노고쇼(花の御所)]

    어두컴컴한 새벽 당대의 일본 최고 권력자이자 이시카가 막부의 지배자인 이시카가 다카우지가 머물고 있는 하나노고쇼에 칼을 찬 사무라이 수십 명이 쳐들어와 다카우지를 지키고 있는 호위대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쇼군! 피하셔야 합니다. 적이 침입했습니다."

    애첩을 끼고 자신의 방 다다미 위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이시카가 다카우지가 자신을 경호하던 경호대 대장의 외침에 벌떡 깨어나 물었다.

    "어디서 누가 쳐들어왔다는 건가?"

    세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찾아온 호위대 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쇼군의 장자이신 요시아키라가 자신의 직속 무사들 이십여 명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크게 놀란 다카우지가 갑자기 뭔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호위대가 고작 이십 명을 못 막아서 이 난리가 났다는 건가? 하나노고쇼에 못해도 100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머물고 있을 텐데 말이야."

    "그것이... 요시아키라가 끌고 온 사무라이들이 다들 불사신(不死身)이라서 말입니다. 칼로 목을 베어도 죽지를 않습니다."

    "그게 뭔 헛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시카가 다카우지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함을  칠때였다. 밖에서 칼부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시츠(和室)의 방문이 부서지며 3명의 사무라이들이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를 호위하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자신의 아들을 보며 물었다.

    "아들아.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가만히 기다려도 쇼군의 자리는 결국 네 것이 될 텐데 말이다."

    그러자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라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아버지. 이자나미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둘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뭘 서두른다는 것인가?"

    "지금 이 시대에는 천황이 두 명이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스스로를 세이타이쇼균(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칭한 후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과 화의를 맺고 산슈노신키(三種의 神器)를 건네받아서 고묘 천황을 옹립하셨지요. 일반 백성들이 이를 북조(北朝)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다이고 천황은 교토를 탈출하여 요시노로 달아나 “북조에 넘긴 신기는 가짜이며 고묘 천황의 황위는 정통성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요시노에 남조(南朝)를 열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의 힘은 남북조(南北朝)로 나누어 분리되어 있지요.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무엇이 곤란하다는 것인가?"

    "명부를 다스리시며 제게 불사의 능력을 주신 이자나미께서 일본의 힘을 하나로 모아 어서 빨리 고려를 쳐야만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전 아버지를 죽인 후 쇼군에 오른 후 칸파쿠(관백(関白) : 어전의 정무를 총괄하는 섭정의 지위)에 오를 뿐만 아니라 다이죠다이진(태정대신(太政大臣) : 조정 관리들의 우두머리)에도 오를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무관과 무관의 최고 직위를 모두 가질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남북에 있는 천황들을 모두 죽여 천황의 자리 역시 제가 차지할 생각입니다. 이 땅의 모든 권력을 제 한 몸에 모두 집중시킨 다음 불사의 군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고려를 쳐서 복속시킨 후 대륙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저의 원대한 계획에 아버지는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 순간 이시카가 다카우지의 경호대장이 자신이 끌고 온 경호대원들과 눈짓을 하다니 방안으로 쳐들어온 아시카가 요시아키라 일행을 덮쳐갔다. 자신의 심장을 찔러오는 경호대장의 칼을 보며 아차 하는 눈빛이었지만 요시아키라의 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쥐고 있던 칼로 경호대장의 목을 찔러갔다.

    - 푸욱.

    분명히 경호대장의 칼이 먼저 요시아키라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요시아카라는 쓰러지지 않았고 심장에 칼이 꼽힌 상태에서도 경호대장의 목을 계속해서 찔러갔다.

    - 푹.

    목을 찔린 경호대장이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비틀대며 물러나자 요시아키라의 심장에 꼽혀 있던 칼이 빠지며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아났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피가 순식간에 멈추더니 가슴에 뚫린 구멍이 자연스럽게 메꾸어져서 칼에 찔렸던 흔적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시아카라가 데리고 왔던 사무라이들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대주면서 경호대의 목을 간단히 쳐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쇼군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불사신이란 말인가?"

    - 쉬이웅.

    아시카가 요시아키라가 휘두른 칼이 공기를 가르며 자신의 아버지인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 데구루루.

    눈을 부릅뜨고 핏줄기를 뿜으며 다다미를 구르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의 머리통을 보며 요시아키라가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이 아들은 불사신이 되었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이실 테니 목이 잘리면 살 수가 없으실 겁니다."

    잠시 자신의 아버지인 머리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나노고쇼의 정리가 끝나는 대로 군사들을 집결시켜라. 투항한 자들 중에 능력이 쓸만한 자들은 내게 보내도록 하고. 그들을 내가 불사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 너희들은 불사신이 된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곧바로 북조의 고묘 천황을 잡으러 가야 할 것이다. 난 나머지 병력들을 이끌고 남조를 치러갈 테니까. 최대한 빨리 일본을 내 손아귀에 넣어야만 한다."

    - 하이.

    사무라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칠 때 벽란도를 떠난 왕기가 두 개의 검 위에 앉아 느린 속도로 대도를 향해 날아가며 벽력가의 초대 가주가 작성한 연구 일지를 처음부터 다시 꼼꼼히 재검토하고 있었다. 요 며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뭔가가 자신의 머리를 계속 간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도가 멀지 않았을 때 하늘을 날고 있던 왕기가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것의 정체를 마침내 알아차렸다.

    '반도체였군. 반도체라고 하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연관이 되어버리니까 반도체의 다른 특성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야. 하긴 난 전자공학과 출신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난 뇌전벽력수를 익혀 전기와 전자에 대해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 반도체만 잘 활용하면 내가 상상으로만 꿈꿔왔던 것을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겠어.'

    목욕을 하는 도중 부력을 이용해 왕관이 순금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을 발견하고서는 발가벗은 채 뛰쳐나가 유레카(Eureka)를 외쳐댔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처럼 환희에 가득 찬 왕기가 연구 일지를 덮고서 대도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기 1345년 11월 14일

    [대도의 심왕부]

    하루 사이에 고려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대도에 위치한 심왕부는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왕부의 상공에서 바라본 연병장은 지난 며칠 사이에 큰 변화가 발생해 있었다.

    - 척. 척. 척...

    - 하나. 둘. 하나. 둘...

    물경 2천에 달하는 장정들이 이른 아침부터 더넓은 연병장을 발맞추어 뛰어가고 있었고, 그런 연병장 곳곳에 한글로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심왕에게 충성하는 자 복되리라], [고려에 충성하는 군사가 되자],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와 같은 구호가 적인 깃발과 함께 연병장, 왕부 정문, 식당 등을 한글로 적어놓은 안내 팻말이 곳곳에 박혀 있었으며 연병장 한편에는 대형 천막들이 쳐져 있었다.

    하늘에서 내랴다 보던 왕기는 자신이 보는 광경이 너무나 익숙했다. 군대에 입대했을 때 훈련을 받던 신병훈련소와 분위기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왕기를 더 놀라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병사들이 자신들과 함께 뛰던 지휘관의 명령에 맞추어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왕기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훈련소에서 수도 없이 불렀던 군가가 또렷한 한글 가사로 연병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더 가까이 내려간 왕기가 연병장의 상황을 자세히 관찰했다.

    통신, 돌격, 근위 등 각 중대별로 시다바리와 무장 그리고 척무관이 옆에서 같이 발을 맞춰 구보를 하며 군가를 부르고 있었고, 연병장의 다른 한쪽에서는 수많은 아녀자들이 대형 천막 아래에서 병사들에게 먹일 밥을 지으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 내 남편 멋지다.

    - 우리 서방이 최고야.

    - 다들 너무너무 듬직해요.

    [심왕부의 가주전]

    왕기가 승의공주와 단독 회담을 하고 있었다.

    "그대의 아이디어라고?"

    "네, 전하. 소첩의 지참금이었던 몽골 병사들이 심왕부에 도착하자 그냥 이대로 놔둬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고려인 병사들 천명에 몽골 병사들 천명이 같이 지내게 되면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낼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까요. 그래서 같은 집단이라는 소속감을 주기 위해 대도에 있는 포목점 여러 곳에 제가 디자인 한 군복을 주문했습니다. 재물이야 충분하니까요. 동일한 유니폼이 주는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똑같은 군복을 해 입히고 어깨와 가슴에는 각 중대에 해당하는 특정한 마크를 달아주었지요. 같은 집단이라는 소속감을 주는 동시에 각 중대만의 특별함을 부여한 것이지요. 그런 후 몽골 병사들에게 훈민정음을 익히게 한 후 군가를 외우게 한 다음 매일 다 같이 구보를 시켰지요. 무릇 군대라 함은 발끝을 맞추는 것에서 시작해서 손끝을 맞추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허어... 그대가 군대의 특성에 대해서 어찌 그리 잘 안단 말이오? 군가 가사는 또 어떻게 외우고 있는 것이고?"

    "이래 봬도 제가 심왕 전하께서 군대에 가있는 2년 동안 꿋꿋하게 변심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고무신 출신 아니겠습니까?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 친구는 어지간한 미필 남자들보다 군대 사정을 더 잘 알게 됩니다. TV에서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도 많이 봤었고요. 군가 가사는 소첩이 기억하는 부분만 똑같이 적고 나머지는 적당히 작사를 한 것입니다. 제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니겠지요?"

    "실수라니! 그럴 리가 있겠소? 안 그래도 병사들의 단합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주 잘 하셨소. 근데 연병장에서 밥을 짓고 있던 아녀자들은 어디서 온 것이오?"

    "그건 척무관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병사들이 훈민정음을 교육받아야 하는데 자꾸 꾀를 부리려고 한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모든 병사들에게 고(告)했지요. 훈민정음을 다 뗀 자들은 고려촌에 있는 미혼 여성들과 단체로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지요. 그랬더니 다들 눈에 불을 켜고 훈민정음을 외우더군요. 연병장에서 밥을 짓던 아녀자들은 그러한 만남에서 서로 눈이 맞아 부부의 연을 맺은 여자들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부부의 연을 맺었지요. 당직제로 병사들의 밥을 짓고 있기 때문에 오늘 연병장에서 본 아녀자들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먹고살기 힘든 이 시대에 심왕부의 정식 군사 정도면 괜찮은 남편감 아니겠습니까? 다들 신체가 건장하고 매달 받는 녹봉이 적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언젠가 자신의 남자가 출세하여 대장군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고요."

    "잘하셨소. 아주 잘하셨소. 그대가 내 걱정거리를 크게 덜어주었구려. 연병장에 나부끼던 깃발과 팻말들은 또 무엇이오?"

    "훈민정음을 배운 어린아이가 한글을 떼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길을 지나다니며 간판의 글자를 읽거나 동요를 배우는 것이지요. 그걸 응용했을 뿐입니다. 전하와 고려에 대한 충성심도 고취시킬 겸 해서요. 몽골족 병사들은 아직 많이 서툴긴 하지만 심왕부에 있는 고려족 출신의 병사들은 어지간한 한글은 다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까라면 까야지요."

    말을 하며 왕기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숭의공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안 본 사이에 전하의 표정이 아주 밝아지셨습니다. 소첩이 모르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왕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라오. 내 머릿속에서 완벽한 계획이 수립되었소이다. 남은 건 실천뿐이지."

    "그것이 과연 무엇이옵니까?"

    왕기가 입을 열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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