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63화 (63/171)
  • #63. < 어디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 - 2(3권 끝) >

    [심왕부 가주전]

    아침부터 설계도면을 들고서 황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가더니 난데없이 손에 양철판을 들고서 방으로 되돌아온 왕기를 맞이한 승의공주가 물었다.

    "오빠... 아니 이제부터는 전하라고 불러드려야 하겠지요. 현재도 심왕의 위치에 있으실 뿐만 아니라 조만간 고려의 국왕으로 오르실 분이시니까요."

    그러자 왕기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유나야. 둘이 있을 때는 이전처럼 편하게 부르도록 해. 나와 같은 눈높이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내가 거둔 시다발이의 머리가 총명하다고는 하나 현대식 교육을 받은 너만 한 조언자가 될 수는 없어."

    "하지만 전하. 소첩은 조만간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전하의 정비(正妃)가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고려의 왕이 되시면 전 고려의 국모(國母)가 되는 셈이지요. 비록 제 영혼이 2020년 대한민국에 살았던 이유나라는 현대인이라고 해도 남들이 보기에는 엄연히 몽골족 출신의 한낱 아녀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제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하의 호칭을 함부로 하거나 의견을 개진했다가는 전하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고 반드시 뒷말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때로는 허례허식도 필요한 법입니다. 물론 소첩은 죽는 그날까지 전하를 옆에서 보필할 것이고, 제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도움을 드릴 것이며, 고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의논할 수 있는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드리겠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설혹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지금부터 행동거지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할 것입니다."

    유나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걸 알아챈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시구려. 부인.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나에게 물어볼 것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려?"

    그러자 승의공주가 눈을 빛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전하. 전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입니까? 밤새 전하가 그렸던 설계도를 소첩도 옆에서 다 지켜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 설계도를 보고도 용도를 잘 모르겠지만 전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비록 공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이과 출신이고 현대 의학은 수많은 공학 기술들이 집약된 의료 장비를 다루니까요. 모든 설계도면들이 대규모 전쟁을 대비한 것들이더군요. 통조림에서부터 시작해서 박격포, 대포, 비행선, 철선에 시계까지 말입니다.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일으키실 작정이십니까? 그렇게 되면 아무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맞소이다. 내가 개발한 대포의 포화에 비행선의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테지. 처음에는 나도 고민을 좀 했소이다. 한민족의 국가인 고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여도 되느냐라는 인도적인 문제 때문에 말이외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소."

    "어떻게 말이옵니까?"

    "난 현대 과학의 위대함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공학도라오. 하지만 과학이라는 학문이 그렇게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았던 현대에서도 전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었소. 그 이유는 간단하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궁금한 사실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왕기의 말에 승의공주가 즉답했다.

    "인간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지 그리고 죽은 후 과연 어디로 가는지를 과학이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이나 예수, 알라, 부처 등을 믿는 종교가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요."

    "맞소이다. 그래서 2020년 현대의 세상에서도 종교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오. 현대 과학에서 아직 밝혀내지를 못했으니까 말이외다. 하지만 난 신이라 자처하는 자를 직접 만났소. 그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설혹 내가 만난 자가 신이 아니어도 상관없소. 나와 그대를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로 보낼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라면 신이라 불러도 무방할 테니까. 그리곤 깨달았지. 나로 인해 죽어갈 인간들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오. 그런 자들은 나와 그대를 과거로 불러들인 신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책임이고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일 테니까."

    "소첩이 듣기에도 일리가 있사옵니다. 전하를 과거로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니 전하를 이 시대로 데리고 온 신 또는 신들의 협의체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겠지요."

    "아마도 그래서 세상의 반발력이라는 것과 그에 따른 대적자의 탄생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둔 것이겠지.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 지려고 말이오."

    "전하. 그래서 어떠한 세상을 꿈꾸고 계십니까? 그걸 알아야 소첩도 전하의 목표에 맞춰 행동하지 않겠사옵니까?"

    "난 고려가 중심인 거대한 문화 제국을 세울 것이오. 다른 말로는 기술 제국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간들을 대단위로 뭉치게 만드는 것은 인류 역사상 3가지가 있었소."

    "돈과 군사력을 앞세운 제국주의 그리고 종교이지요."

    왕기가 놀랍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승의공주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피엔스 신드롬’을 일으킨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 정도는 소첩도 읽어보았습니다. 잊으셨습니까? 소첩도 제법 머리가 좋고 독서를 즐겨 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히 전하께서 그 책을 유달리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소첩도 서점에서 한 권 사서 한번 읽어보았지요."

    "그대의 말이 맞소이다. 돈과 군사 제국주의 그리고 종교가 인류를 국가 단위를 초월한 대단위로 뭉치게 만들었소이다. 난 거기에 새로운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하오. 월등한 과학과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더 높은 문화를 지닌 고려를 중심으로 그런 고려를 섬기며 속국으로 들어와 발전된 기술들의 과실을 같이 향유할 수 있는 여러 나라들로 합쳐진 거대한 제국을 말이오. 물론 그 제국에 속한 국가들의 유사성은 한글이라는 같은 언어와 글을 쓰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오. 높은 문화 수준을 향유하던 자들은 결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소. 고려의 뛰어난 문화와 기술을 맞본 나라들은 절대 고려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뜻이오. 설령 나와 그대가 죽더라도 말이오. 죽기 전에 그런 터전을 제대로 닦아놔야만 하겠지. 그게 내가 꿈꾸는 문화와 기술력을 앞세운 대고려제국이라오. 모든 세상의 중심은 고려가 될 것이고, 모든 문화의 정점은 고려 문화가 되는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한글로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하는 세상. 난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소이다. 물론 그 이전에 대규모 정복전쟁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오."

    원대한 꿈을 꾸는 왕기의 말에 승의공주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전하의 생각보다 피를 덜 흘릴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일정 이상으로 제국의 덩치를 키우고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아득히 높은 문화를 향유하는 제국을 세우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항복을 하고 자진해서 대고려제국 밑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편리하고 삶의 여유가 있는 행복한 인생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대도 한몫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시도 때도 없이 전 세계적으로 발병한는 역병을 막고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테니까 말이오. 변변찮은 약하나 없는 이 시대에서 말이오."

    "전하께서 도와주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옵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소?"

    "당장은 주사기부터 만들어 주셔야 하겠지요. 대부분의 역병들은 수인성 전염병이며 탈수로 인해 사망을 하는 것이니까요. 주사기와 링거만 개발되어도 그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소독약과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겠지요. 당장은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천연두 예방접종부터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대가 자세한 계획을 세워보시구려.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줄 테니까."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렇게 두 사람이 미래를 꿈꾸며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방 밖에서 척무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대도에서 가장 뛰어난 숙수와 대나무로 소쿠리를 만드는 장인을 데려왔습니다."

    "들라 하거라."

    -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오체복지(五體伏地)를 하며 아뢰었다.

    - 존귀하신 주군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 소인이 이렇게 전하를 뵈어서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두 사람의 예가 과한 듯하자 왕기가 척무관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네가 강제로 시켰냐는 듯이 물어보듯 말이다. 그러자 사전에 교감이 있었는지 척무관이 즉답했다.

    "대도 제일의 숙수는 춘향각에 있사옵니다. 그래서 전하를 주군이라고 부르는 듯 하옵니다. 아마도 춘향각주의 명령을 따른 것이겠지요. 그리고 소쿠리를 만드는 장인은 고려촌에서 데려온 자로 본디 강화도 출신으로 고려에서 화문석을 짜던 자입니다. 소관이 보기에는 전하를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척무관의 말이 끝나자 고려촌에서 온 삼돌이라는 자가 방바닥에 머리를 연속적으로 찧어대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 쿵. 쿵. 쿵...

    "전하께서 고려촌에 베풀어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를 소인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납치되었던 자들을 구해주시고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에게는 몇 년을 먹고 살 재물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하의 위명이 널리 퍼진 후 그 누구도 감히 고려촌에 와서 행패를 부리거나 돈을 뜯어가지 않고 있사오며, 고려촌에 온 그 누구도 감히 오랑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전하의 은덕이옵니다. 소인을 비롯한 고려촌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고려에 있는 만백성들까지도 어서 빨리 전하께서 고려의 왕이 되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소인에게 시킬 것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하명만 하시옵소서. 소인이 밤을 새워 만들어 올리겠사옵니다."

    "되었으니 그만 일어나거라. 그러다 내가 말한 것을 만들기도 전에 머리통이 깨지겠다."

    잠시 후 장내가 정리되고 왕기의 설명을 들은 숙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빠르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충분한 식사가 될 만한 것을 미리 조리를 해서 담아두시겠다는 것이지요?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통조림이라는 것에 말입니다."

    "맞느니라. 전쟁을 치르려면 힘을 내기 위해 고기도 섭취해야 할 것이고 곡물도 충분히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옆에 있던 승의공주가 나지막하게 한마디 거들었다.

    "장기간의 항해에서도 식량으로 사용하려면 반드시 야채도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야채라. 괴혈병(壞血病)을 막기 위해서로군.'

    그러자 듣고 있던 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와 곡물 그리고 야채까지 들어가 있는 음식이면서 식어도 그냥 먹을 수 있고 맛까지 있는 음식이라. 소인의 생각으로는 볶음밥이 제격일 것 같사옵니다."

    시식용으로 다양한 종류의 볶음밥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명령을 내린 뒤 숙수를 내보낸 왕기가 삼돌이에게 설계도면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넌 이것을 만들어줘야 하겠다."

    "전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비행선(飛行船)이라는 것이다. 당장은 시험적으로 운행하기 위해 작은 크기로 만들 것이야. 대나무로 골격을 만든 뒤 그 위에 흠이 없는 양가죽을 덧씌워 바느질을 촘촘히 해서 완전히 감싸야만 할 것이다. 그런 후 가죽과 바느질 구멍이 있는 곳에 빈틈없이 아교(阿膠)를 바르거라. 바람 한 점 연기 한 줄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제작에 필요한 돈은 본 왕이 내어주도록 하마. 만들 수 있겠느냐? 만드는데 시간은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으냐?"

    왕기의 물음에 설계도면에 있는 그림을 자세하게 살펴본 삼돌이가 대답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대나무로 뼈대를 만드는 것은 하루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가죽과 아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제작에는 문제가 없습지요. 하지만 바느질을 하고 아교를 발라서 굳히려면 사나흘은 주셔야 할 것입니다."

    "일주일을 주마. 돌아가는 길에 돈을 받아서 가거라. 단 이런 것을 만든다는 것을 비밀에 부쳐야 할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전하. 소인이 목을 걸고 비밀을 지킬 것이옵니다. 근데... 대나무에 가죽을 씌우고 아교까지 바르면 무게가 제법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무거운 비행선이라는 것이 연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겠사옵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나에겐 다 생각이 있으니까."

    왕기가 속으로 빠르게 뇌까렸다.

    '비행선 안에 물을 전기분해하며 얻은 수소 가스를 채우면 비행선은 반드시 뜨게 되어 있다. 소형으로 제작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단위 체적 당 얼마나 많은 무게를 실을 수 있는지 등의 기본적이 데이터부터 확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비행선의 제작은 성공할 수밖에 없어. 무려 60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독일의 비행선인 '힌덴부르크(Hindenburg)'는 승객과 화물을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까지 성공적으로 날아갔으니까.. 2차대전 당시 최대급의 폭격기인 B-29가 9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비행선의 적재량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재료기술과 가공 기술로는 현대의 비행기를 제작하는 건 무리야. 하지만 공중 폭격만큼 유용한 공격 법도 없지.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들을 제압하려면 비행선은 필수야. 빠르게 군수물자를 대량으로 보급하기에도 유용하고. 조만간 공수 강하부대도 따로 육성을 해야 하겠군.'

    숙수에 이어 삼돌이까지 내보낸 왕기가 척무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 춘향각과 고려촌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도록 해.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말이야. 난 며칠 시간을 내어 고려를 다녀와야 하겠다. 그러니 재물을 듬뿍 담은 가죽 주머니와 훈민정음 필사본을 준비해서 가져오너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척무관마저 물러가자 승의공주가 입을 열었다.

    "전하. 당연히 저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비행선은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소이다. 일단 폭발의 위험성이 있지, 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수소만 뭉쳐있는 경우에는 발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소이다. 절대적으로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그런 이유로 유명한 힌덴브루크호의 폭발 사고도 의도적인 테러라는 의혹이 많았소. 게다가 비행선은 사람들에게 발각되기도 쉽고 속도 또한 느리오. 하늘을 날지만 일반적인 자동차 정도의 속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오. 폭발이야 조심하면 되는 것이고, 어차피 적들에게 발각이 되어봐야 추락을 시킬 무기가 이 시대에는 없소이다. 대공포 따위는 없는 세상이니까. 그 말인즉슨 화살을 쏘아 떨어뜨리지 못할 정도의 높이로만 날면 되는 것이라오. 상승하는 높이가 낮으면 낮을수록 안정성이 올라갈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소이다."

    "전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근데 갑자기 고려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것입니까?"

    "박격포와 대포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면 최무선을 만나야 하지 않겠소이까?"

    "최무선이 누구인지는 소첩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전하. 소첩의 기억으로는 최무선은 고려 말엽에 태어난 조선조 초기의 사람입니다. 지금쯤이면 아직 청년의 나이에 불과할 텐데요?"

    "그 또한 잘 알고 있소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또한 아직 십 대 청년인 시절이니까. 하지만 나이 따위는 상관없소이다, 화약과 화포에 대한 최무선 그자의 열정을 높이사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라오. 모자라는 지식과 경륜은 내가 채워주면 그만이오. 고려 상황에 걸맞은 대포의 개발에는 그자만큼 믿고 맡길만한 자가 없소이다. 염려 마시고 내가 없는 동안 전투식량으로 사용될 맛있는 볶음밥이나 선정해 주시구려. 전쟁터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는 건 나도 싫으니까."

    - 드르륵.

    이윽고 재물이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를 든 척무관이 들어오자 왕기가 빠르게 행낭을 꾸린 다음 가주전의 문을 열고 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는 고려 쪽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가며 승의공주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난 백성들이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철혈(鐵血)의 군주가 될 것이다. 정복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려 백성들을 전쟁터로 최대한 빨리 내몰아야만 할 테니까 말이야. 이상적인 계획이라면 의무교육을 실시해서 고려 백성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하겠지만 그게 언제쯤 가능해질지는 나조차도 가늠이 안 된다. 100년이 걸릴지 300년, 500년이 걸릴지 예상이 불가능해. 하지만 당장 내게는 내 명령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전쟁터로 용감하게 뛰어갈 백성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절대적인 공포정치를 시행해야만 해. 고려의 그 누구도 감히 날 거역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말이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은 왕기가 점점 더 속도를 붙이며 뇌까렸다.

    '이왕이면 고려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전장을 지배해야만 할 것이야.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상대할 엄두가 안날 정도의 압도적인 군사력. 그걸 위해서는 최무선이 큰일을 해내줘야만 한다. 내가 바라는 무기체계를 반드시 완성시켜야만 해.'

    공돌이 출신답게 이 시대의 뛰어난 공학자를 만나 의견을 나눌 생각에 왕기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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